00062 6. 에이레네의 밤: 저잣거리 =========================================================================
“ 무슨 소리세요, 오라버니. 인형도 귀엽지만 라테의 귀여움에는 못 미치죠.”
황녀언니는 그 와중에 미적 감각이 의심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이 인형을 귀엽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의견 신뢰성이 바닥이다. 아니 얘 눈코입, 눈코입이……엉엉.
나는 당장 목이라도 비틀고 싶은 충동이 이는 인형을 손에 든 채 갈등하다, 결국 오래 고민하지 못하고 눈물과 함께 그것을 얌전히 품에 안았다. 아윈이 훗날 인형의 안부를 확인했는데 잘 지내지 못하고 있으면 그 죄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아나 졸지에 인형을 모셔야하는 처지가 되다니. 노점 아저씨, 아저씨는 왜 이런 걸 파셔서 저를 슬프게 하시나요…? 꼭 얘를 이런 얼굴로 만드셔야만 했나요? 네?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
“ 어렸을 적 헤어진 쌍둥이동생인가?”
망할 놈의 론드미오는 1절만 할 줄을 몰랐다. 닥쳐. 그만해라. 너 금발벽안 인형 주문제작해서 심심할 때마다 배에 송곳 찔러버린다.
“ 호호, 즈언하. 농담이 대단히 노잼이옵니다.”
“ 농이라니? 에스반데 공, 공도 그리 생각하지 않나? 아무리 봐도 헤어진 쌍둥이가 인형이 되는 저주에 걸린 것이 틀림없어.”
“ 같은 사견입니다.”
넌 뭘 또 거기에 끄덕거리고 앉았냐. 나는 기가 차서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다 조만간 맞춤 인형 세 개를 주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 오늘부터 흑마술 배운다. 말리지마.
“ 전혀 안 닮았는데요 뭘. 다들 너무 놀리지 마세요.”
두 물고기의 유치한 행동을 보다 못하겠던지 이벨린이 나섰다. 봐봐 안 닮았다잖아! 난 이벨린의 변호에 십분 동감하며 그녀를 향해 감격에 겨운 눈빛을 날렸다. 흑흑 여주인공언니, 역시 언니가 짱이에요. 어서 저 망측한 물고기 둘에게 공포의 때찌때찌를! 대륙서열 0위의 파워를 보여주세욧! …어, 잠깐. 나 방금 뭐 생각났는데.
속으로 개드립을 치다말고 원작의 내용이 떠오르다니 타이밍이 참 뜬금없다. 어쨌든 생각난 김에 나는 솟아난 기억을 더듬었다. 상기된 장면은 다름 아닌 이벨린과 아윈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어, 이거 꽤 중요한…아항!
구체적으로 떠오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윈이 조금 전처럼 마탑의 급한 연락을 받고 자리를 비우는 장면은 원작에서도 두 번 정도 나왔다. 첫 번째 부름 때는 이번에 그랬듯 저 혼자 쉭 사라지는 놈이, 두 번째 연락이 왔을 때에는 곁에 있던 이벨린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아윈을 따라 마탑으로 가게 된 이벨린은 그 날 처음으로 아윈의 신분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는데-이벨린은 아직 아윈이 마탑주라는 걸 모른다! 주변반응만 봐도 티가 다나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나도 모름. 과연 여주인공쨔응!-, 그 직후 아윈에게 ‘솔직히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아윈은 아윈일 뿐이잖아’하는 크리티컬한 대사를 날림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그렇다. 바로 물고기3이 어장에 완전히 입주하게 되는 핵심적인 장면이었다! 뭐야 보고 싶잖아. 재밌겠잖아! 넌 너일 뿐이야라니 완전 명대사감인데? 난 나일뿐이야, 누구도 날 대신 할 순 없어~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 모든 걸 보여줄 거야! 빰빰 쿵덕쿵.
이벨린에게 잘 붙어 있다가 저때가 왔다싶으면 ‘어머낫 대단히 공교롭게도 나도 딱 마침 마탑에 볼일이!’ 하며 스크롤을 찢어볼까. 그래 좋아. 괜찮은데? 가까운 시일 내로 마탑행 이동스크롤을 하나 사야겠다.
그러고 보니 여주인공에게 하트를 빼앗긴 뒤 아윈은 극이 후반부로 갈쯤 무려 이런 대사까지 입에 담는다.
‘이벨린. 너도 내가 괴물 같아?’
괴물…. 하…. 난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토했다. 괴물이라니, 어떻게 자기 자신을 그런 대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당장 괴물한테 사과해라. 엉?
“ 아무튼 로젤리아, 넌 이만 들어가도록 해라. 밤이 너무 늦었어.”
팔불출 론드미오는 못내 여동생이 걱정된 듯 황녀에게 곧장 귀성할 것을 권했다. 황녀언니는 여기서 헤어진다는 것이 썩 아쉬운 눈치였으나 지금이 늦은 시각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머뭇거리던 황녀가 대답을 꺼냈다.
“ 오라버니께서 함께 돌아가 주신다면요.”
맞아. 혼자 가는 건 싫지. 나는 집에 보내고 너만 남아서 놀면 불공평하잖아. 황태자는 잠시간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슬슬 파장의 때가 다가온 듯싶었다. 아이구야 물고기들 억울하겠다. 기껏 축제에 나와서 장붉피만 보고 집에 가다니…! 또르륵.
“ 라테도 이만 귀택할 건가요?”
황녀의 물음에 난 딱히 갈등할 것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는 길었다. 그리고 내일은 장붉피처럼 여주인공 혼자만 재밌는 게 아닌, 너도 재밌고 나도 재밌는 꿀잼 구경거리가 예약되어 있었다. 오늘 집에 들어가서 체력 충전하고 내일 그거 봐야지. 꺄륵 기대된다.
“ 이름으로 부르는군.”
“ 라테요?”
“ 그래.”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그렇게 불렀지, 하며 황태자가 덧붙였다. 황녀언니는 그 말에 거리낌 없이 나와의 친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로즈 짱’이라고 외치는 듯한 강렬한 눈빛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내게 꽂힌다. 으음! 이렇게 다시 한 번 느끼는 비모르의 파워!
론드미오는 제 여동생이 날 향해 고스란히 드러내는 애정에 다소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한편으론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같았다. ‘왜?’ ‘아니 왜?’하고 생각하는 게 상판 위로 잘만 비친다. 저기, 짜샤, 그런 실례되는 생각은 표정관리 좀 하면서 떠올려줄래?
“ 라테는 그럼, 혼자 돌아가나요? 위험하지 않겠어요?”
염려가 그득그득 묻은 목소리가 내 귀환 길을 묻는다. 나야 뭐 스크롤 한 장만 찢으면 바로 집 앞 도착인 터라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참, 생각해보니 나도 통신구 같은 게 있으면 좋겠네. 필요할 때마다 비숏 소환하게. 사람을 부린다는 양심의 가책은 이리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앗 원래 없었나.
스크롤 언급은 제하고 대충 걱정할 거 없다는 식으로 둘러 대답하려는데, 한발 앞서 황녀언니가 파격적인 돌발선언을 던졌다.
“ 에스반데 공께서 데려다주시면 안될까요?”
“ …예?”
한 박자 늦은 대답은 지목당한 당사자에게서 나왔다. 방금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의심하는 황당한 얼굴이었다. 아니 이게 갑자기 뭔 소리여? 당황스러워 얼이 빠지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엥? 누가 누구를?
“ 아무래도 너무 걱정이 되어서…저는 오라버니와 함께 돌아가야 하니, 부디 공께서 도와주셨으면 해요.”
“ …굳이…그럴 필요 없을 겁니다.”
탐탁지 않은 얼굴로 케니스가 나를 힐끗 돌아보았다. 쟤 입장에서야 내가 집에 홀로 서서가든 기어가든 가열차게 굴러가든 그러다 도중에 묻지 마 살인마를 만나서 조각조각 땃따따로 전국에 흩뿌려지든 조금도 알바 아닐 테지만, 직접 대상이 ‘걱정 된다’고 말하는 황녀의 면전에다 대고 그런 내심을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솔직담백하게 ‘저 노란머리가 집에 가다가 목만 남더라도 1도 상관없읍니다’라고 답하는 대신 돌려서 다른 이유를 댔다.
“ 과한 염려십니다. 오늘은 축제일이라 새벽까지 마차가 운행하기도 하고, 뭣보다 설마 이 야밤의 축제에 참가하면서 귀족의 신분으로 제 몸 하나 지킬 방도조차 없이 나왔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케니스는 한마디를 덧댔다.
“ 멍청이가 아니라면.”
오호라!
이 녀석 좀 보게! 그런식으로 말하면 내가 자진해서 ‘그렇습니다! 전 믿는 바가 있으니 집에 무사히 혼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에스코트 서비스는 노땡쓰!’라고 나서줄 줄 알았던 거니. 원래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멍청이 운운하는 걸 들으니 마음이 바뀌었다. 내 손수 너에게 짜증이 솟구치는 최악의 에스코트 길을 선물해주마, 케니스야.
“ 어쩌죠, 저 아무것도 없이 몸만 달랑 나왔는데.”
“ 뭐….”
“ 멍청이라서요. 죄송.”
몽총이라서 뎨동하다는. 난 대꾸하며 천연덕스레 웃었다. 마주한 케니스의 얼굴이 싸하게 굳는다. 그러고 보니 쟤 저번 몬스터사건 때문에 내가 스크롤을 들고 다닌다는 걸 대강 알고 있으려나? 하긴 그럼 뭐할까, 본인 입으로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중인데. 나는 웃음을 지우고 그 위로 짐짓 울상을 덧그렸다.
“ 갑자기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워졌어요. 괴한이라도 만나면 어쩌죠? 마차강도가 나타나면요? 어쩜 좋지…….”
“ 정말 맨몸으로 혼자 나온 건가?”
듣고 있던 론드미오가 끼어들었다. 정말로 그리 대책 없이 행동한 거냐고 묻는 듯한 시선에 난 조금 기가 차 그를 빤히 보다 이벨린을 슬쩍 눈으로 가리켰다. 야, 니가 말하는 노대책의 최고봉은 사실 여주인공이거든? 어차피 너네가 지켜줄 거라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가면 딱 하나 챙겨서 무모하게 뛰어든 건 나 말고 저쪽이거든요? 내 눈짓에 자기도 막 그걸 깨달았는지 황태자가 멈칫한다. 곧 그는 말을 바꿨다.
“ …뭐, 그럴 수도 있지.”
빙신…….
케니스도 마침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흠칫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유 멍청이들.
이 와중에 황녀언니는 나서서 쐐기를 박았다.
“ 부탁드릴게요, 에스반데 공.”
케니스가 함부로 명령을 받을만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었다. 황녀가 손수 부탁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는데 거절하기란 아무리 케니스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 내키지 않는 청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호호홋, 비록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지금 너의 속은 실로 오만상일 게 뻔하도다. 껄껄 꼬숩다능!
“ 도트영애께서도 이만 들어가실 거죠?”
황녀언니의 눈길이 이벨린에게로 닿았다. 물고기들도 다 해산하는 분위긴데 당연히 그렇겠지. 혼자 남으면 위험하기도 하고. 아마 케니스가 함께 움직여 여기서 저택의 위치가 가까운 이벨린을 먼저 데려다주고, 그 다음 순번이 내가 될 것이다. 혹시 이 놈 나중에 황녀언니 없다고 나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가는 거 아냐? 딱히 상관없긴 하지만 그럼 일러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황녀의 물음에 긍정한 이벨린이 이어서 다소 의외의 요청을 꺼냈다.
“ 황녀전하, 혹 폐가 되지 않는다면 전하와 함께 이동하고 싶습니다.”
============================ 작품 후기 ============================
눈코입 중구난방 인형: 난 사실 어릴 적 헤어진 네 쌍둥이 언니가 맞단다
라테: ㅅ발!
+
어제 오늘 죽만 먹는 중인데 머짓...본죽 생각보다 맛있자나...?"ㅁ" 쏘 딜리셔쓰 (우량고객 될 기세
걱정해주신 분들 다들 감사드려요ㅠㅠ 아직 쾌차는 아니지만 손가락은 잘 움직임..! (!)
++
~잘도 노는 동생네 커플~
동생: (집에서 장난치고 놀다가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으며) 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염.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죠
남친: 오 베이비 내가 깨워줄게요~쪽
동생: (눈을 뜨며) 뭐야 미친 난쟁이잖아!
남친: 크케케케 공주님 눈치가 빠르시군요 케케케
카톡으로 전해들은 나: 쿵짝 쩌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다음편: 목표 내일 자정
실현가능성: 복불복
영혼을..태운다..ㅅ!
++++
저 사실 미리보기하면 유료회차에 댓글 한..열개쯤 달릴줄 알았는데 8ㅁ8 힝잉 다들 고마워요 흐엉엉 왈칵 8ㅂ8 크헝
*
감사한 팬아트들 4편이 추가되었습니다! 작품공지에서 확인해주세용☆
(PC화면에선 크기조절이나 엔터 등이 안먹히네용 8ㅁ8 앱으로 보시는 게 더 깔끔하실듯!)
**
Somnium31님, 벌꿀마카롱님,Jeong25님, honeybutter님, pingno님, 홍당무2님, 생자몽님, soulover님, 대공녀님, dahyang님, Belride님, 프림로즈s님, 내발가락의때님, 비덜기님, 어위스라라님, ㅁaaaaaㄹeee님, OliveDrab님, 엘티냥님, 라프니아님, 김블리님, 메디아루나님, 연인서님, 매화와벚꽃님, ell111님, 쿠이요님, 블랙니트님, 시크다짱님, 하늘바람타고님, 효림님, 0qoxmf0님, ryan9084님, hibou님, 0네레시스0님, 일쿵절쿵님, 아라벨리아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ㅁ" 크으...나의 엔제루님들 "-" 어서 이리와서 안기세욧! '3' 쭈압쭈압 뻐뻐뻐 -3-♥
(엘리아냥이/가 독자님들을/를 공격했다!)
(독자님들은/는 강력한 데미지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