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0 6. 에이레네의 밤: 저잣거리 =========================================================================
기어이 수치사 간판을 달고 저승에 입장하는 최초의 인간 엔딩은 피했다. 나는 한시름 덜어 이제는 친숙-미친-해지려하는 아윈의 호칭을 한귀로 흘러 넘겼다. 저놈은 대체 언제까지 저 수치플을 계속할 생각일까. 불릴 때마다 싫어하긴 커녕 외려 기쁜 척 수줍은 척 즐거운 척 이런 반응을 해대면 질려서 그만둘까?
“ 요정님, 표정이 구리네? 애들이 보면 울겠어.”
저 그냥 다시 태어나겠읍니다.
곧 죽어도 저기다대고 기쁜 척은 못하겠다. 나는 보이지도 않을 내 표정을 디스하는 아윈에게 닿지 못할 저주의 말을 속으로나마 흩뿌렸다. 썩을 놈, 재수 없게 드래곤한테 걸려서 다굴이나 당해라. 설마 그 전설의 용괴물들이 쟤보단 세겠지. 나는 울분을 삼키며 대충 말을 받았다.
“ 요정은 무슨 표정을 지어도 아름답다고나 할까?”
“ 그건 진짜 요정일 때 얘기고.”
맞는 말이긴 한데 쟤 입으로 들으니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 맞아요! 요정보단 라테가 훨씬 예쁘죠.”
이쪽도 마음은 고맙지만 이쪽대로 답이 없었다.
나는 황녀에게로 시선을 주며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 참, 여긴 혼자 나오신 거예요? 위험하실 수도 있는데.”
눈대중으로 살폈지만 그녀에겐 일행이 없었다. 신분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호위 서넛쯤은 달고 있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불과 얼마 전 팬미팅자리에서 습격을 받았던 사람답지 않게 황녀는 저 혼자 제법 자유로워보였다. 궁금해 하는 기색을 띄우자 그녀가 답을 꺼냈다.
“ 아뇨. 실력 있는 분들께서 지켜주고 계세요. 비록 제 눈으론 볼 수 없지만.”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어디 숨어서 보이지 않게 여럿이 경호중인 모양이었다. 무슨 은신술의 고수 그런 건가? 복면을 쓴 자객 같은 걸 상상하고 있는데 아윈의 목소리가 툭 귀를 건드렸다.
“ 총 다섯.”
“ 응?”
“ 다섯이 숨어있네. 잡아다 보여줄까?”
“ 뭐? 아니, 괜찮은데. 엄청 필요 없는데.”
나는 사양의 의미를 담아 고개까지 붕붕 저었다. 얘는 진짜 막나가는 놈이니까 황녀가 아니라 황녀 할아버지의 호위래도 개의치 않고 목덜미를 잡아채 들이밀 게 뻔했다. 그리고 난 그런 광경을 정말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충돌만큼은 안 된다. 안 돼! 소시민 휘말림! 소시민 사망!
“ 그분들께서는 그냥 계속해서 본연의 자리를….”
“ 재밌네.”
“ 지킬 수 있도록…어?”
“ 숨은 채로 살기를 뿌려?”
“ 넹?”
살기? 살기를 뿌려? 숨은 채로? 그리고 나는 그 뜻을 알아듣자마자 사색이 됐다. 꺄아아아악, 호위님들아!
“ 주제에 자존심들은 있다 이거지.”
아윈의 눈이 반달로 접힌다. 그 미소를 목격하자마자 나는 몸부터 날렸다. 생각할 새도 없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움직임이었다. 살려야한다. 이 상황에서 아윈이 호위들을 잡아 죽이면 진짜 큰일이다! 나는 아윈의 허리께에 답삭 매달렸다.
“ 살려주세요!!”
안 그래도 이놈 탓에 있는 이목 없는 이목 다 끌어 모으고 있었는데 이젠 아주 뚫어질 지경이다. 부끄러워 소멸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매달린 채로 절절히 외쳤다.
“ 한번만 봐주시죠! 가끔은 생명을 구해주거나 하는 은덕을 쌓아도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다음 생에도 남주인공으로…아니, 지금 같은 완벽남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인데 그 실수를 너그럽게 넘겨준다면 분명 훗날 찬란한 보답이…어쩌구…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게……블라블라.”
아윈은 제 허리께에 매달려 이말 저말을 열심히 나불대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황녀의 호위들이 얼마나 실력이 좋을 진 모르겠지만, 아윈의 먼치킨적인 설정을 고려했을 때 죽일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개미 짓뭉개듯 학살할 수 있다는 게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안 된다, 이 자식아! 이 자리에서 그 친구들의 목을 따는 것만큼은 부디 참아주렴!
“ 지금 이 순간 살생을 참지 않는다면, 다음 생에 나의 썸남으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 썸남?”
“ 예비 남자친구.”
“ !”
나는 하다하다 협박까지 내뱉었다. 태연하게 하는 꼴을 지켜보던 아윈이 내 말에 처음으로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
“ 그건 끔찍한데.”
협박이 통했는데 기쁘지 않은 이유 좀.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윈은 마음을 돌렸다. 내 머리를 잡고-크윽-떼어나는 손길과 함께 그 위로 목소리가 떨어졌다.
“ 그래. 안 죽이지 뭐.”
“ …진짜?”
“ 저것들보다 요정님이 더 재밌으니까 봐줄게. 좋지?”
어, 으응. 정말 좋구나. 그 와중에도 저놈의 거지같은 호칭은 빼먹지 않다니 참으로 꼼꼼하다.
이유야 무엇이든 황녀 호위 대학살을 피한 건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다. 나는 순순히 아윈에게서 떨어지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십년감수했네. 그 사달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혼란도 그런 혼란이 없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그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황녀언니를 붙잡고 바들바들 떨 뻔했다. 나는 참사를 막아낸 스스로가 대견해서 잠시 밀려오는 감동을 만끽했다.
황녀는 나와 아윈이 하는 짓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이내 내게 다가와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 사이좋네요.”
어엉……?
난 도무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황녀언니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받은 황녀의 녹안이 잘게 떨린다. 그걸 보는 내 동공도 덩달아 진동했다. 황녀언니…?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당황시키는 눈빛교환이 끝난 건 아윈이 입을 연 후였다.
“ 죽이지는 않겠지만 경고는 해야지.”
말이 나오기 무섭게 주변의 온도가 가라앉았다. 온도계로 재본 건 아니지만 직감 상 몇도 낮아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서늘해진 온도에 막 한기를 느낄 때쯤, 변했던 공기가 다시 평소의 훈훈함을 찾았다. 찰나였지만 명백하게 피부로 느껴졌던 변화에 내가 ‘?’하는 기분으로 눈을 깜박이다 물었다.
“ 뭐 한 거야?”
“ 이제 비굴한 존댓말은 끝났어?”
“ …더 쓸까요?”
“ 아니. 방금 건 간단하게 경고한 거야, 그것들한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호위들에게 겁을 주는 과정이었던 모양이다. 살기라도 뿌리거나 뭐 그랬겠지. 겁을 줘도 아윈이 대충 줬을 것 같진 않았으니 그들이 다시 상대를 자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휴, 진짜 살았다. 저기 어둠속의 호위님들, 다음부터는 도발을 하더라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해주세요. 적어도 저는 없는 곳에서요. 플리즈.
황녀는 한 박자 늦게 제 호위들이 문제였음을 알아차렸는지 아윈에게 사과를 건넸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정말 공손한 사과였……잠깐, 황녀언니. 지금 깨달은 거면 좀 전에 속삭일 땐 내 행동을 뭐라고 생각했던 거죠. 설마 노는 거? 논다고 생각했…?
황녀언니는 내게도 미안하다 인사를 전달했다. 나는 그에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문제없이 잘 넘어갔으니까 된 거지. 나는 대신 황녀가까이 얼굴을 대고 다른 얘기를 소곤거렸다.
“ 전하, 저 아까 노는 거 아니었어요. 그거 나름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어요….”
그녀는 동공지진으로 화답했다.
나는 슬슬 자리를 이동하고 싶었다. 아윈의 외모에 내 행동까지 겹쳐 시선집중이 무슨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멤버가 여자 둘에 남자 하나라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딱 좋았다. 예를 들어.
A: 이 남자는 내꺼야!
B: 아냐 내꺼야!
남자: B가 더 예쁘군.
B: 아잉♡
A: 서…설마 날 버릴 건가요? 내 몸도 마음도 다 주었는데!
A: 날 버리지 말아요…당신이 날 버린다면 난 죽어버릴 거예요!
남자: 그냥 지금 죽어.
A: 살려주세요!!
뭐 이런 거…아주 막장이구먼. 아무튼 장소 탈주의 욕구가 몹시 넘실거린다. 나는 벗어나겠어! 이 거리를! 물론 혼자 도망칠 수는 없겠지. 나는 황녀언니를 향해 눈가를 찡긋거렸다.
“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축제구경이라도 하러 갈까요?”
그러자 그녀는 별안간 손뼉을 쳤다. 뭔가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 라테는 윙크하는 것도 귀엽네요.”
“ …….”
물고기들로 인한 생명의 위협도 통제하지 못했던 내 몸가짐을 황녀언니는 조신하게 바꿔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윙크 금지다. 요조숙녀가 돼 버려…!
어쨌든 나는 진심으로 날 요정 취급하는 황녀와 그런 황녀를 짜게 식은 표정으로 응시하는 아윈을 매달고 거리를 누볐다. 고정식 시선흡수기에서 이동식 시선흡수기가 되어 가는 곳마다 이목을 좌라락 끌었지만, 대부분의 눈길이 아윈과 황녀언니에게 머문 터라 난 비교적 쾌적한 시간을 영위할 수 있었다. 난 탱커 둘을 앞세우고 주목의 홍수에서 슬쩍 비껴나 돌아다녔다.
황녀언니는 나와 함께 축제를 구경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는데, 의외였던 건 그녀가 나와 아윈의 관계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혹시 그냥 알아서 짐작한 걸까. 어, 어떤식으로…? 나는 만약 그녀가 충격적인 오해를 하고 있다면 그것을 정정해 줘야하나 말아야하나를 고민했다. 황녀가 추측만으로 소문을 낼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라도 잘못 이야기가 퍼진다면 나는 진격의 페리도트에게 찜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평범한 조연, 제.국.제.일.미에게 찜.당.하.다?!
그리고 정말로 찜이 되겠지. 흑흑, 그런 결말은 싫어. 인간찜 다메요.
나는 다음에 황녀언니랑 둘만 만나는 자리를 가졌을 때 이 주제를 넌지시 말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혹시 모르니까, 응. 페리도트가 여주인공 치우겠다고 날뛰다가 본인이 치워지기 전까지는 가능하면 몸을 사리자.
“ 이것 봐요, 라테. 귀엽죠?”
“ 허허. 예쁜 아가씨께서 보는 눈이 있으시네!”
“ 뭔데요?”
축제는 은근히 볼거리가 많았다. 나는 황녀의 표정이며 말투에서 그녀가 상당히 들떠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꼭 황성에만 갇혀있다가 굉장히 오랜만에 바깥을 구경나온 사람 같았다. 헉, 그럴지도.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황녀언니는 케니스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성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럼 오늘 축제에서 케니스랑 마주치려나. 으음. 끄으음. 호구사랑은 안되는데…황녀언니 호구사랑만큼은…! 난 황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그녀가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렸다. 노점판 위로 수제느낌 물씬 나는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줄지어 늘어서있었다.
“ 인형이네요.”
“ 요정님, 인형모델 한 적 있어? 똑같은데.”
아윈이 지목한건 초보자가 만들었는지 눈코입이 대충 아무데나 붙어있는 성의리스한 생김새의 봉제인형이었다. 야이씨…. 왜 하필 머리카락이 노란색이고 난리야, 저 인형은.
“ 인형보다 라테가 훨씬 귀여워요!”
그야 내 눈코입은 적어도 제자리에는 붙어있었다.
============================ 작품 후기 ============================
찜엔딩으로 가버렷!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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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소설을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아빠: 너 글쓰는 거 계약했다며?
나: 웅
아빠: 그럼 그걸로 돈 버는거냐?
나: 웅 아마도
아빠: 올~
나: ㅎ
아빠: 그럼 이제 아빠 회사 그만두면 되냐?
나: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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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구들 완결은 몇 편 정도?
A. 110-120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일단 본편만요!
근데 또 뭐...ㅇㅁㅇa....써봐야 안다능...ㅇㅂ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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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요미댓글
hyokee님: 여봐라 이벨린이 무엇이냐!!!!! 나발이옵니다!!!!!!!!! ⊙▽⊙/
샤무엘님: 아위니_(:3」∠)_
빵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끄앙ㅋㅋㅋㅋㅋㅋ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읽을때마다 매번 광대승천이에요ㅎㅎㅎ흐흫ㅎㅎㅎ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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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234님, 엘티냥님, rdq님, pingno님, 리꾸꿍님, 김블리님, cherrysagy님, 라프니아님, 회색요괴님, 지비인님, xi03님, 부산사람님, 갓 핸드님, 딸기양갱이님, 루일라님, 2510님, 月下佳影님, 히아렌님, 완소아님, 얌욤님, 0네레시스0님, ChlorisAriel님, orbi님, 블랙니트님, 란케이님, 날스괴님, soulover님, miticita님, 가가65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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