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59화 (59/100)

00059  6. 에이레네의 밤: 저잣거리  =========================================================================

아윈은 사람이 수치사로 죽을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는 것 같았다. 일부러 걸음을 빨리해 거리를 늘리자, 아윈은 벌어진 간격을 좁히지 않고 오히려 떨어진 곳에서 목청을 높였다.

“ 요정님!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네?”

“ …….”

내가 무슨 짓을 하면 쟤를 죽일 수 있을까. 악마한테 영혼을 팔아도 안 되겠지. 나는 이참에 아예 뛰어서 도망칠까도 생각해보았으나, 그러기가 무섭게 아윈이 성큼성큼 다시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허엉, 신이시여.

“ 이제 뭐 할까?”

“ …….”

“ 요정님. 왜 말이 없어?”

“ 꼭 그 시…같은 호칭을 써야겠니?”

욕할 뻔했다. 아윈은 내 억눌린 분노가 가득한 말에도 그 뻔뻔한 태도에 일말 동요가 없었다.

“ 요정님이 왜? 마음에 안 들어?”

“ 어. 네. 끔찍합니다. 제발 좀 멀리 치워주세요.”

“ 싫은데.”

“ 왜…왜죠? 왜 하필 그 요…하는 호칭을 써야하는데? 뭐 때문에?”

“ 고객님이 싫어하니까.”

아 얘 진짜 죽이고 싶다.

나는 실현 불가능한 허황된 살인충동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삼켰다. 이놈 진짜 나한테 왜이래. 이쯤 되니 이벨린이 마법처럼 쨘하고 나타나 얘를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지금 하는 꼴을 봐선 딱히 여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나설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 물고기가 달라졌어요.

아윈은 괴로움에 부들부들 떠는 나를 옆에 두고 질리지도 않는지 수치플레이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게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그 정신 나간 호칭에 익숙해져갔다. 가면을 써서 정말 다행이다. 가면은 진짜 신의 한수였어.

목적지 없는 걸음이 찾아낸 장소는 또 하필이면 길거리음식이 널린 골목이었다. 가지각색의 주전부리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유혹한다. 아…안 돼! 저걸 먹었다간 또다시 다이어트야!

필사적으로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눈빛의 갈망은 미처 숨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윈의 목소리가 나를 두드렸다.

“ 당장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 눈빛인데?”

설마 그럴 리가. 그 정도는 아니란다, 자식아. 나는 방금 막 유혹에 넘어갈 뻔했던 닭 꼬지 노점을 가능한 태연한 기색으로 지나치며 응수했다.

“ 마음대로 다 먹었다간 돼지 돼.”

“ 지금은 아니야?”

“ 닥….”

닥치라고 하고 싶다. 닥쳐! 아직 아니야! 코르셋 아직 잠기거든? 약간 여유…솔직히 여유는 없지만 어쨌든 잠기거든? 그러나 물론 말 한마디에 목숨을 걸 기개는 내게 없었다.

“ 닥닥 닥자로 끝나는 말은~손바닥 발바닥 땅바닥 밑바닥 머리 한 가닥.”

내 스스로가 너무 애잔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아윈은 ‘닥’을 수습해보려는 내 비굴한 노력에 빵터지더니 저 혼자 열심히 웃어댔다. 한밤의 거리에 시원한 웃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퍼진다. 나는 노점에서 꼬지를 파는 예쁜 언니가 굽던 것이 타는 줄도 모르고 아윈에게 넋을 놓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꼬지 아까웡….

노점들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이 어딘가에 팝콘도 있겠지. 뭔가 아윈을 달고 다니니 심력소모가 커 체력까지 덩달아 깎이는 기분이었다. 한 것도 없는데 고생한 느낌. 이정도 고행(?)을 겪었으면 보상으로 주전부리 하나정도는 입에 넣어도 되지 않을까. 유혹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윈은 다 웃었는지 다시 나를 건드렸다.

“ 요정님, 그냥 먹지 그래?”

“ 괜찮아.”

“ 푹 퍼진 요정님도 나름 희소가치가 있을 걸?”

그런 희소가치 엄청나게 필요 없었다. 됐어! 됐다구! 됐….

“ 가격이 얼마예요?”

“ 작은 봉지는 50쿠퍼, 큰 봉지는 1실버입니다.”

“ 그럼 큰 봉지로 하나 주세요.”

나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발을 멈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청초한 음성이 절로 내 고개를 잡아끈다. 근원지를 찾아 시선을 돌리자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팝콘 노점과, 그 노점 앞에서 상품을 구매중인 동그란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이 느낌은…! 아는 뒤통수의 느낌이로구나! 거기다 어깨위로 걸친 후드 때문에 반쯤 가려져있긴 하지만, 등불이 비춘 머리색은 틀림없는 백금발이었다. 저 머리색은 분명.

“ 많이 파세요.”

“ 예쁜 아가씨가 마음씨까지 고우네. 허헛, 고맙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상인의 인사를 뒤로하고 마음까지 고운 예쁜 아가씨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드러난 그 얼굴에 나는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역시, 황녀언니! 축제에는 참가했구나! 와 이렇게 다 만나네.

로젤리아 황녀는 색이 어두운 수수한 원피스 위로 비슷하게 칙칙한 후드를 걸치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뒷골목st 패션으로도 황녀언니의 미모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머리만 빼꼼 드러났는데 그 머리가 예쁘다. 나는 반가움에 아는 척을 하려다 입을 합 다물었다.

…뭐라고 부르지? 이 거리 한복판에서 황녀전하! 하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에 빠진 사이 이번엔 황녀 쪽에서 나를 발견했다. 나를 한번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 그녀가 아윈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린 후 곧이어 ‘아!’하는 표정을 했다. 황녀가 밝게 웃는다.

“ 라테!”

아니, 어떻게 알아 본 거죠! 그러나 나는 그녀의 눈길이 내 머리카락을 향했었음을 알고 있었다. 흑흑, 뭐냐구! 왜 다들 그런 걸로 구분하냐구!

종종걸음으로 가까워진 황녀언니가 금세 내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녀는 대체로 날 이름보다는 로즈라고 부르길 좋아했지만, 일행인 아윈을 신경 쓴듯 필명대신 본명을 입에 담았다. 나는 여전히 상대의 호칭을 고민하며 일단 인사부터 꺼냈다.

“ 축제 구경하러 나오신 거예요? 더 반갑네요, 이런데서 보니까.”

“ 후후, 저도요. 라테를 여기서 다 만날 줄이야!”

황녀언니가 생글생글 웃었다. 날-정확히는 로즈를-향한 무한애정에 약간 민망하기도, 으쓱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마주하다 퍼뜩 아윈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소개를, 음…해야 하는데.

“ 아윈, 이쪽은….”

“ 알아.”

목소리가 시큰둥했다. 제국제일미 페리도트에게도 저런 전적이 있으니 별로 새삼스러운 반응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내 입장이다. 어느 한쪽에게도 개길 수 없는 고래사이에 낀 처지였으니 나는 슬그머니 긴장에 발을 담갔다. 아윈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타입이라 이럴 때마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 그래.”

황녀의 인사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는 사이야? 공손한 인사를 상대가 건방지게 받았음에도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기색이었다. 물론 대상이 대상인지라 개의한다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황녀언니는 당황하는 낌새조차 없었다.

“ 전에 만난 적이 있어요?”

“ 어쩌다 몇 번.”

로젤리아를 보며 물었으나 답은 아윈에게서 나왔다. 아 네, 성의 넘치는 답변 감사합니다. 황녀언니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 덧붙였다.

“ 오라버니와 함께 뵌 적이 있어요. 일 때문에 탑을 방문한 적이 있거든요.”

탑을 언급하는 황녀의 목소리가 작았다. 아마도 장소를 의식하는 듯했다. 내가 황녀전하라는 호칭을 삼가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치만 아윈은 여기서 누가 배에 힘을 주고 ‘마탑주가 나타났다!!’하고 사자후를 질러도 딱히 신경 쓰지 않을 느낌이었다. 애초에 하고나온 꼬라지부터가 이목을 끌지 않겠다는 의지가 0.1도 없구만 뭐.

아 생각하니까 열 받네. 존잘들은 소시민과 함께 다닐 때 반드시 가면을 써야하는 법이나 좀 만들어지면 좋겠다.

“ 그런데.”

“ 응?”

“ 요정님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 !”

말릴 새도 없이 아윈이 황녀언니의 앞에서 끔찍한 호칭을 입에 올렸다. 황녀의 고운 녹색 눈동자가 의아함을 담고 깜박인다. 아, 안 돼!

“ 요정…님?”

“ 이거. 요정님.”

꺄악! 제발! 수치사! 아윈은 심지어 손가락을 들어 날 가리키기까지 했다. 황녀언니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빤히 보였다. 안 돼…으흑흑…. 이렇게 죽는 건가…수치사로……. 하, 좋은 인생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는 무슨. 난 잠시 후 기가 찬 광경을 목격했다.

“ 맞아요! 어쩜 그렇게 딱 맞는 별칭을 찾으셨어요? 작고, 귀엽고, 정말 딱 요정 같아요! 그렇죠?”

“ …….”

“ 표현할 말이 없었는데, 와, 드디어 찾았네요! 노랗고 탐스러운 머리카락도 그렇고 동글동글 예쁜 눈동자도 그렇고, 요정이라는 단어가 너무 잘 어울려요.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윈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황녀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조잘거렸다. 환한 표정이며 반짝이는 녹안하며 어딜 봐도 그녀가 지금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화, 황녀언니…. 아윈이 말을 잃게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러나 나도 함께 말을 잃었다. 수치사는 안받아준다고 천당 문턱에서 쫓겨나 다시 현세로 왔더니 더 큰 수치가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 살려줘.

“ 황녀. 눈에 이상 있어?”

아윈, 야, 그래도 황녀님인데 말에 너무 예의가 없는 거 아니니. 하지만 담긴 의미에는 공감이었다.

“ 네? 제 눈이 왜요? 참, 라테.”

“ 아, 네?”

“ 저도 요정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장미의 요정. 괜찮을까요?”

괜찮겠어요?

전혀 미친 괜찮지 않았다. 심지어 업그레이드 됐잖아! 아 언니 제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는데 그보다 아윈이 약간 빨랐다.

“ 안 돼.”

“ 네? 어째서요?”

“ 나만 부를 수 있어. 그거.”

이렇게 기쁘지 않은 소유권주장은 처음이었다. 그런 호칭에 집착하지 말아줄래 미친놈아? 그래도 두 명이 부르는 것보단 한 명이 부르는 게 나았으니 난 속으로 아윈을 열심히 응원했다. 마탑주의 반대에 부딪힌 황녀언니는 다행히 별다른 저항 없이 포기하는 모양새였다. 미인의 시무룩한 표정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내 멘탈이 먼저니까…. 암쒀리 예쁜 언니…….

============================ 작품 후기 ============================

아윈: 닥 뭐?

라테: ...암욜맨! 다라닥닥 그대여~다라닥닥 오늘도~

아윈: ㅉㅉ

+

한가위 잘 보내셨나요 8~8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길바닥..위에서...^_ㅠ

흑흑 명절날 장거리 이동 왓더...헤ㄹ...

++

도착한 큰집. 탈이 나서 방에 누워 앓고 있으니 등장한 삼촌.

삼촌: (방으로 슥 들어온다)

삼촌: 너 아프다며?

나: ㅇㅇ....

삼촌: 진짜 아프냐?

나: ㅇㅇㅇ....

삼촌: (핸드폰을 내 위 허공으로 들며) 이거 피해봐

나: 아오 ㅅㅂ

시간이 흐른 뒤 병상에서 일어난 나: 삼촌을 후기형에 처할 것이다...!

+++

라테도 예쁘장한 편이지만.."-" 미녀들이 너무 많은 세계여따고 한다...(슬픔)

아윈 외전은 후반부쯤에 나옵니당! (찡긋

++++

엘티냥님, 어린연님, 0네레시스0님, 이윤즈님, 쿠루쿤님, 파란자두님, 민 라임님, 희수뿡님, smile2님, 마도사월인님, 블랙니트님, 홍홍홍설님, 에미야용량이짜다님, tchet님, 라프니아님, 소리나무잎님, sunmu98님, 프랑스님, peshania님, 어위스라라님, 일반인33님, 레이니모멘트님, 수면대화님, yee5880님, 천유월s님, soulover님, 아줌마님, pingno님, 피노키5님, 레몬나라님, 김블리님, gigik님, 샤이키토야님, o청록o님, 은만두야님, 비타민달력님, 크로이츠필님, 윤희수님, ii묘ii님, ryan9084님, 연이a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숯불치킨 시키고 싶었는데 오늘 추석이라 문을 안열어여...(당연하다

나: ㅜㅜ주유소는 오늘 하던데

동생: 그야 차가 길가다 멈추면 위험하니까 근데 치킨은 안먹으면 위험

동생: 하네

나: 그치

동생: 언니 죽잖아

나: 그렇지

동생: 돼지+개복치...ㅉㅉ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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