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58화 (58/100)

00058  6. 에이레네의 밤: 저잣거리  =========================================================================

나는 곧 죽어도 길을 잃고 구석에서 울고 짜는 짓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 놈만 봤다하면 다짐이 늘어나는 기분이다. 난 슬슬 아파오는 목을 제자리로 돌려 다시 자빠져있는 공갈단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쟤들이 저 꼴이 된 게 그럼 아윈 짓이라는 말이네.

생각하자마자 탁, 아윈이 땅에 발을 디디는 소리가 들렸다. 으음, 그렇다면 이건 지금 내가 도움을 받은 상황이라는 얘기군. 사냥감(?)을 빼앗긴 기분이라 고마움보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어쨌든 도와준 건 도와준 거니까. 나는 갈등하다 인사말 대신 아윈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건 일단 고맙다는 뜻 이란다!

내 눈짓을 받은 아윈이 어딘지 조금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감탄?

“ 방금 웃기려고 한 거지?”

“ 뭐?”

“ 이런 상황에서까지 노력하다니. 과연, 꿈을 향해 정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쟤는 왜 자꾸 남의 꿈을 개그맨으로 만들고 그러냐. 그거 아니야 개놈아.

“ 큭…몸이 안 움직여!”

“ 이거 뭐야?!”

“ 무거워!”

사이좋게 포개진 채로 공갈단 멤버들이 저마다 버둥거리며 외쳤다. 특히 마지막 외침에서 유독 절절한 진심이 느껴진다. 맨 밑에 쟤는 솔직히 좀 많이 불쌍하네…. 아 감정이입 되는데? 하필이면 가장 덩치 크고 뚱뚱한 멤버가 제일 위쪽에서 짓누르고 있었다. 설마 저거 일부러 한 건가.

옛 추억이 떠오르는 아련한 몰골들을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자니, 아윈이 내게 말을 걸었다.

“ 고객님, 그런데.”

“ 어?”

“ 양심 어디다 뒀어?”

“ 엉?”

얘가 뭐래. 온 대륙에서 가장 몰염치할 것 같은 놈이 갑자기 양심을 운운하네. 참나. 남의 무탈한 양심은 난데없이 왜 찾고 난릴까 싶어 어이없어하는데, 이어진 말에 나는 입을 딱 다물 수밖에 없었다.

“ 연극이 좆같으면 좆같다고 말을 해줘야지, 그렇게 혼자 내빼?”

“ …….”

아, 아니 그건…네가 연극을 보면서 빡쳐하다가도 이벨린의 웃는 얼굴에 마음이 누그러져 연극 중반부터는 대놓고 이벨린의 얼굴이나 관찰하는, 뭐 그런 내용이 예정되어 있었으니까…근데 내가 구라치고 내뺀 건 어떻게 알았대. 그렇게 티가 났나.

나는 입을 봉한 채 말을 골랐다. 젠장, 니가 그렇게 연극 도중에 자리를 탈주하고 여기에 나타날 줄 내가 알았냐고. 설마 이제 감독대신 나의 목숨이…? 아니지. 안 죽인댔잖아. 난 아윈이 과거에 내뱉었던 말을 상기하고 용기를 얻었다.

“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용기가 미약했다.

“ 야! 나부터 살려줘!”

남의 비굴한 사죄에 눈치 없는 공갈단이 끼어들었다. 아니 저것이……근데 너 방금 누구한테 소리친 거니? 서, 설마.

“ 아니, 나부터 살려줘! 이러다 숨 막혀 죽겠네!”

“ 야!! 안 들리냐? 이것 좀 어떻게 해 보라고!”

“ 은발머리! 야!”

저 여기서 나갈게요.

도, 도망쳐야한다. 저 미친 공갈단이 아윈을 못 알아보고 혼이 빠질만한 개소리를 열심히 외쳐대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눈동자를 굴려 도주로를 찾았다. 스크롤, 스크롤을 쓸까? 나는 아직 사람이 터져나가거나 잘게 썰리는 걸 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것도 한 놈도 아니고 네 명이나!

“ …!”

아윈이 허공으로 손을 들었다. 안 돼! 터, 터지나? 기왕이면 터지는 것 보단 써는 쪽으로…!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명소리나 뭐, 콰직콰직이나 그런 게……어, 피냄새도 안 난다.

그리고 시끄럽던 공갈단의 목청도 사라졌다. 그냥 조용하다. 나는 머리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감았던 눈을 슬쩍 떴다. 뜨자마자 보인 건 갑자기 부쩍 가까워져있는 아윈의 얼굴이었다.

“ 끄악!”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 비명은 여성스럽지가 못하구먼.

“ 뭘 그렇게 쫄아.”

“ 아, 아니.”

너 같으면 안 놀라겠냐? 음, 안 놀라겠네. 난 여러모로 질겁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꽥꽥대던 공갈단 넷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어, 분명 여기쯤….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한 빈자리를 멀거니 응시하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 …소멸?”

“ 그거 잘 안 써. 성가셔서.”

할 수는 있다는 말이구나. 진짜 별 무서운 마법도 다 있었다.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한층 궁금해진 공갈단의 행방을 입에 담았다. 소멸이 아니면?

“ 여기 있던 애들은?”

“ 걔들 뭐.”

“ 없어졌잖아. 네가 한 거 아니야?”

“ 맞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아윈이 답을 추가했다.

“ 대충 보냈어. 아무데나.”

아무데나 천당?

어디로 사라졌는진 모르겠지만 느낌상 결코 멀쩡한 곳은 아닐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아윈의 대답을 통해 그가 이동마법으로 공갈단을 치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쟤는 참, 마법을 무슨 숨 쉬는 것처럼 쉽게 쓴다. 본인이 직접 이동하는 것보다 남을 이동시키는 게 훨씬 어렵다고 들은 것 같은데, 손짓 한번으로 네 명이 강제텔레포트라니 과연 먼치킨다웠다. 다른 물고기 둘도 무력수준이 비슷하다는 설정일 텐데 셋이 서로 싸우기라도 하는 날엔 그 순간이 바로 세계멸망의 때가 아닐까.

그리고 소시민인 나는 그 여파에 휩쓸려 플랑크톤처럼 쉽게 픽 죽겠지. 얘들아, 꼭꼭 사이좋게 지내렴.

“ 고마워해.”

“ …어? 뭐? 세계멸망 안 시켜서?”

깜짝 놀랐네. 얘가 설마 내 마음을 읽었나 했는데, 이어진 아윈의 말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 고객님 때문에 곱게 보내줬잖아. 그것들.”

“ 그것들? …쌓여있던 네 명?”

“ 그래. 목을 따버릴까 했는데.”

붉은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나 때문에 곱게 보내줬다니? 나는 껌벅껌벅 눈꺼풀만 여닫으며 상대를 응시했다.

“ 고객님이 병신처럼 쫄길래 안 썰고 얌전히 보낸 거 아냐.”

뭐? 그런 거였어? 그건 정말 고마운 말이었지만 ‘병신처럼’을 빼준다면 더 고마울 것 같았다.

“ 내가 그렇게 쫄았었나.”

“ 응. 불쌍할 정도로.”

“ …….”

“ 많이 불쌍하더라. 울진 않았어?”

고마움이 조금씩 희석되고 있었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든 아윈이 나를 배려해줬다는 건 참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굳이 대상이 내가 아니더라도 아윈은 타인을 신경 써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과는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벨린 앞에서야 성질도 죽이고 내숭도 떨고 한다지만, 그건 그가 남주인공이고 그녀가 여주인공이기 때문이지 아윈에게 배려심이라는 게 존재해서가 아니다. 나는 대단히 생경한 아윈의 마음씀씀이에 조금 얼떨떨해졌다. 이것도 고객님 대우인가? 대우가 파격적이군.

“ 그래. 완전 고마워. 그리고 안 울었어.”

내 인사와 해명에 아윈이 눈을 접어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진 모르겠지만 웃는 거 하난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천사처럼 맑다. 볼 때마다 개사기…. 그나저나 얜 이제 뭘 할 계획일까. 웬 물고기가 어장주인을 놔두고 튀어나오고 난리야.

“ 근데 연극은 왜 보다말고 나왔어?”

정색한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려꽂히는 시선에 난 말을 바꿨다.

“ 아니, 음, 왜 이벨린이랑 같이 안 있고.”

“ 이벨린이고 나발이고 연극이 좆같잖아.”

뭐라! 이벨린이 나발취급을 받다니! 나는 아윈의 파격적인 언어구사에 놀라 눈을 끔벅였다. ㅈ들어가는 비속어를 남발하는 건 그렇다 치고, 이벨린의 취급이 원작에 비해 너무 하찮았다. 물론 타인과 비교하면 여전히 잘해주는 축이겠지만, 애초에 여주인공이 타인이랑 비교대상이 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원작의 아윈은 이벨린에게 손가락도 함부로 대지 못했는데, 지금 이 놈은 손이 문젠가 수틀리면 발도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래도 설마 발은 참으려나.

좌우간 어제부터 계속 이상하네. 얘, 3번 물고기.

“ 그럼 이제 뭐할 건데?”

“ 글쎄.”

“ 아무거나 할 거 하세요. 전 그럼 이만.”

“ 아, 할 일 생각났어.”

“ 잘 됐네, 안녕-.”

“ 은혜도 모르는 고객님 쫓아다니기.”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뒤돌았던 몸을 재차 돌렸다. 아윈의 뻔뻔한 낯짝이 보인다.

“ 왜? 그보다 은혜를 모르긴 누가 몰라?”

“ 고객님이.”

“ 내가 뭘.”

“ 기껏 구해준 은인을 버리고 혼자 가겠다잖아?”

“ 헐…….”

그럼 내가 널 챙겨야한다는 소리니? 나는 아윈의 끔찍한 주장에 느껴지는 지금 이 기분이 공포인가 고민했다. 싫은데…니 갈길 가…. 라고 하면 내 목이 갈 길을 가겠지? 몸 놔두고?

“ 그래 그럼. 같이 가야지. 내 동료가 돼라!”

아윈은 딱히 대답이 없었다.

나는 결국 마탑주를 달고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얼마 걷지도 않아 시끄럽던 주변에 침묵이 내려앉고, 뒤이어 숨 삼키는 소리들이 연달아 들려왔다. 축제를 밝히는 등불이 아윈의 수려한 얼굴을 얼마나 잘 비춰주고 있을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나는 새삼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랑 비교당하는 건 좀 슬프잖아….

내 옆을 홀린 듯이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로 웬 꼬마아이가 눈을 말똥거리며 제 옆 사람 치맛자락을 끄는 게 보였다. 엄마로 추정되는 여인이 쭈그려 앉아 시야를 맞춰주자 아이가 조잘거린다.

“ 엄마도 봤어? 요정님이지?”

“ 어? 으응, 맞아. 요정님이야.”

“ 요정님 옆에 있는 사람도 요정님이야? 요정님은 요정님 이랑만 같이 다니지, 그치?”

“ 그래그래, 우리 공주님 잘 알고 있네?”

“ 헤헤. 작은 요정님, 큰 요정님!”

아, 아냐, 애기야. 난 아니야. 나는 아니란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착각에 양심이 따끔거려왔다. 마침 아윈도 그걸 들었는지 옆에서 말을 건다.

“ 가면 벗지, 요정님?”

시발…….

============================ 작품 후기 ============================

애기: 저 언니도 가면 벗으면 요정님처럼 생겨께찌 >ㅁ< 헤헤

라테: (오열)

+

~카톡방~

A: 고딩때 노페입고 왔는데

A: 나랑 똑같은 패딩입은 남자애가 있었서

A: 남자애: 올 패딩 똑같네ㅋ

A: 나: 이거 울 할머니 옷인데 ㅇㅅㅇ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할머니랑 썸타...?

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 근데 진짜 울 할머니 옷이었어ㅜㅜㅜ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기닼ㅋㅋㅋ

나: A: 머얔ㅋㅋㅋ너 울 할머니랑 썸타냐?

나: 남자애: 쉿. 이래서 눈치빠른 닝겐은 싫다니까...

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뭨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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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배터지는)한가위 되세요☆

무료로 풀릴 때는 추석 이후겠네요. 추석 잘 보내셨길!^ㅁ^/ !! (배터지셨길!)

다음편은 음....

추석때 제가 바빠서...8ㅁ8 확답을 못드리겠어요ㅠㅠㅠㅠ

최대한 노력해보겠지만...너무 기다리지 마시고 맛난 추석음식 냠냠 하면서 보내셔요!

사랑합니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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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ㅁ8 고맙습니다 제가 후쿠 알뜰하게 모아서 치킨시켜먹을게요...크흡...(감격 (눈물 (뱃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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