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1 5. 에이레네의 밤: 무도회 =========================================================================
카노와 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지척의 영애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급한 마음에 자리에서 도약해 카노의 허리를 부여안은 것까진 좋았는데, 반동이 너무 셌다. 나는 카노의 허리께에 매달려 그녀와 함께 바닥을 두 바퀴쯤 굴러야했다.
후후, 사실 이것은 바로 신 개념 바닥 드레스 청소! 청소의 요정인 내가 더러움을 참지 못하고 봉사정신으로 무료 청소를 해준 것이지!
는 개뿔. 샴페인 때문에 더 엉망이다. 머리와 등이 축축한 것이 넘어지면서 잔 안의 내용물을 내가 고스란히 뒤집어쓴 모양이었다. 나는 팔에 힘을 주어 자빠져있던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힐끗 살핀 이벨린은 다행히 몸이며 드레스며 얼룩 하나 없이 멀끔한 형편이었다. 휴, 살았다. 카노 살았어…….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널브러진 채 얼이 빠져있는 친구를 잡아 일으켰다.
으억, 내 삭신.
“ 라, 라, 라, 라테?”
카노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내 이름 하나를 길게도 더듬었다. 그래, 너의 충격을 이해한단다. 갑자기 제 친구가 몸까지 던져 자길 공격했는데 그럴 만도 하지. 사실 지켜준 거지만. 그나저나 너 살 빠졌더라?
나는 완전히 몸을 일으킨 카노의 귓가에 대고 짧게 속삭였다. 이곳에서 내 행동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해줄 수는 없었다. 벌써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빨리 데리고 나가야지.
“ 사정이 있으니까 일단 잠시만 나한테 맞춰줘.”
“ 뭐, 뭐?”
“ 흐으윽! 나 아까부터 널 계속 찾았어!! 보고 싶었어!!”
나와라 눈물! 한다 연기!
“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충격이어서…네게 먼저 말해주고 싶었어!! 여기서 만나서 정말 너무 다행이야!!”
“ 무….”
“ 물론 넌 많이 놀랐겠지!! 내가 멋대로 가만히 있는 네게 달려들었으니까!!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만 나도 모르게!! 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내 이야길 들으러 와 줄 거지? 넌 착하니까!! 흑흑!”
난 부지런히 소리를 지르며 카노를 나가는 문으로 이끌었다. 물론 나도 함께. 나는 이 소란에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게 나 혼자이기만을 바랐다. 이쯤 난리를 치면 다들 카노는 까먹고 나만 인상에 남겨 떠올리지 않을까. 혹시 저들 중 한둘쯤은 카노가 샴페인을 들고 이벨린을 쏘아보며 다가가는 걸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그거 잊어! 대신 내 생쑈를 기억해! 날 기억해줘!
나는 여차하면 이벨린 실드가 있다. 추가로 황녀언니의 넘치는 총애도 있었다. 연회에서 소란을 피운 책임을 물게 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사교계에 딱히 미련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소문이 뭐라고 나든 상관없다. ‘어머 저 영애가 바로 그 추한 날다람쥐…수군수군’ 오케이! 괜찮! 애초에 원작의 사건들을 구경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발길도 안했을 세계였다. 카노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아, 다 떠나서 내가 발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이 사달은 없었을 거 아냐! 오늘부터 달리기 연습해야겠다. 스피드 스텟을 높일 테야.
“ 후우, 나왔다.”
“ 지, 지금 이게 도대체….”
“ 사람 없는 데로 가자.”
건물 안은 인적이 없을만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처럼 연회가 있는 날은 사용인들이 보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는 회장을 벗어나자마자 입을 닫고 얌전한 목소리로 카노를 이끌었다. 역시 정원이 제일이지.
달빛이 밝아 다행히 정원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이 앉을만한 평평한 돌을 발견하고 카노를 그곳에 앉혔다. 나도 옆에 자리를 잡고나자 몸에 힘이 풀린다. 내가 저질렀지만 뭔 일이래 이게.
“ 라테, 대체….”
“ 카노.”
나는 몸을 돌려 카노를 똑바로 응시했다. 카노와는 오래알고 지낸 만큼 정이 꽤 들었다. 이름만 아는 데면데면한 영애였다면 이벨린에게 시비 털다 아윈에게 죽든 말든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속으로 명복정도는 빌어줬겠지만. 난 말을 잠시 고르다 입을 열었다.
“ 너 조금 전에 샴페인 끼얹으려고 했지? 도트영애한테.”
“ 그….”
카노가 흠칫 놀란다. 내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 왜 그랬어?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는 도덕적인 질책을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회장에는 마탑주도 있었어. 너도 알잖아? 소문.”
제게 반대하는 마탑의 수뇌부를 마탑주가 손짓 하나로 몰살시켰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가 사람을 죽일 때 성별,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귀가 열린 이들이라면 다 알았다.
“ 이벨린 도트는 마탑주가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야. 카노, 네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지 이제 좀 이해가 돼?”
내 말을 알아들은 카노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다. 그래, 너 쓱싹 될 뻔했어 쓱싹! 나는 한숨을 한번 더 쉬었다. 이제 설득할 시간이다.
“ 나도…내가 왜 그러려고 했었는지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질투에 눈이 멀어서….”
“ 카노.”
“ 으응?”
“ 예전에 로맨스소설 읽은 적 있지? 거기 남자주인공이 유독 멋있다고 좋아했었잖아.”
“ 응…그랬지.”
“ 황태자전하를 그 남자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 어?”
“ 볼 수는 있지만 다가가거나 만질 수는 없지. 그리고 짝도 이미 정해져있어. 카노, 황태자는 우리완 인연이 없는 존재야. 그 남자주인공처럼.”
완전 사실이지만 비유인척 이야기했다. 크으, 나만 아는 이야기…! 카노의 눈이 떨린다.
“ 어차피 안 될 사람이야. 질투도 하지 마. 그건 그냥 소설처럼 그들의 정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자. 우리는 관전자고, 그들과 상관없는 우리의 삶을 사는 거지.”
“ …….”
“ 그냥,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여기면 편하지 않을까? 솔직히 생긴 것도 우리랑 같은 종족처럼은 안 생겼잖아.”
카노는 한참 대꾸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말에 반발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그녀는 고민이라도 하듯 긴 시간 말을 아끼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라테는.”
“ …….”
“ 라테 너는, 황태자전하를 봐도 아무 느낌도 안 들어? 꿈에 그리던 왕자님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거나하지 않아?”
“ 난.”
말이라고. 당연하지. 황태자는 굳이 직유하자면 내게 잘생긴 배게 같은 존재였다. 그 뭐야 사람 사이즈로 캐릭터가 인쇄되어있는 베개. 그걸 보고 사랑에 빠진다면 그냥 자살하는 편이 나았다.
“ 나는 원래 다른 종족한텐 안 설레.”
그리고 카노는 뭔가 강하게 깨달은 얼굴을 했다.
*
회장에 소란이 일었다. 사용인들이 오래 걸리지 않아 바닥의 얼룩을 말끔하게 치웠지만 여파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있었다. 소란을 목격했던 이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낮춰 숙덕거렸다. 방금 무슨 일이래? 몰라. 누군데?
문제로 삼으려면 삼을 수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굳이 책임을 씌운다면 ‘연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죄를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그냥 넘어가고자하면 소음 없이 덮을 수도 있었다.
저를 둘러쌌던 인사들이 방금의 소동에 정신이 팔린 사이 황태자는 자리를 옮겨 이벨린에게로 다가갔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난리는 바로 그녀의 지척에서 터졌다. 대체 무슨 일인가.
순간, 발을 막는 이가 있었다.
황태자는 제 앞을 가로막은 상대를 응시했다. 저 붉은 눈을 마주하는 건 꼭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황실과 마탑의 교류가 전무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런 구도는 생경했다. 제게 할 말이라도 있나.
“ 용건이라도?”
그는 첫 대면에선 마탑주에게 반경어를 사용했었다. 그러나 상대가 꾸준하게 말을 놓자 그도 어느 순간부턴 예의를 버렸다. 저 새끼는 대우해줄 만한 놈이 아니다.
“ 문제 삼지 마.”
상대에게서 흘러나온 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였다. 작았지만 론드미오에겐 똑똑히 들렸다. 그는 목적어가 생략된 아윈의 문장을 해석하고 묘한 감흥을 느꼈다. 끼어들 줄 몰랐는데.
라테가 저지른 소란은 황태자만 입을 다물면 없던 일처럼 넘길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이가 바로 황태자였다. 그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데 감히 다른 이들이 그 일에 나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눈에 거슬렸더라도 입을 다물고 넘어가야 한다. 마탑주라면 황태자와 신분대결을 할 필요가 없으니 예외겠지만 그는 오히려 지금 소란을 덮을 것을 먼저 권하고 있었다.
물론 권유보다는 명령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황태자는 이미 아윈의 화법이 익숙했다. 원래 저런 놈이다. 황태자는 어조 하나로 마탑주와 마찰을 빚을 만큼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 뭐, 그러지.”
황태자의 뇌리에 엉망인 꼴을 하고 회장을 나가던 인영의 뒤통수가 떠올랐다. 에이레네의 밤이라고 유독 힘을 줬는지 평소와 사뭇 다른 용모를 하고 있던 소녀는 그 단장을 오래 뽐내지도 못하고 헝클어진 머리에 샴페인을 뒤집어쓰고 바닥을 구른 모양새로 요란스레 퇴장했다.
문책에 올릴 생각은 그도 애초부터 없었다. 아윈이 굳이 저리 나오지 않더라도.
대답을 들은 마탑주는 그와 오래 시선을 공유하지 않고 바로 등을 돌렸다. 그리곤 멀뚱히 서있던 이벨린에게 춤을 신청한다. 돌아가는 상황에 드레스자락만 움켜쥐고 있던 이벨린이 잠시 주저하다 내밀어진 손을 잡는다. 이내 홀 중앙에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언제 소동에 대해 이야기했었냐는 듯 둘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기 바빴다.
============================ 작품 후기 ============================
다키마쿠라 황태자어빠'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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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주기에 대해 물으셔서.
A. 비정기입니다! 많이 쉬면 자주 올라오고, 적게 쉬면 뜸하게 올라올 거예요.
알바가 쉬는날이 정해진 게 아니라서...8ㅁ8a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하고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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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달지 마셔요 집필의욕 땅에 떨어져요^_ㅠ
losw909님 주인공 성격 짜증나서 하차했다가 까먹고 다시 주행하고 다시 짜증나셔서 열받으신다는 거, 구들 아예 보기싫으니 리스트에서 지웠으면 하신다는 댓글 둘 다 삭제하겠습니다. 투베 리스트나 최신작 리스트에서 구들 보기 싫으시면 조아라에 건의를 하세요 ㅇㅅa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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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엄마 나 소설 후기에 아빠얘기 썼더니 독자님들이 아빠 귀엽대
엄마: 네 아빠가 좀 귀엽긴 하지^^ 호호
동생: (오만상)
엄마: 어머 네 동생 표정좀 봐 햄스터같다
나: 햄스터는 무슨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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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늘 감사합니다! 여러분 뜰에 놀러오시면ㅋㅋㅋ팬픽이 낭낭해요ㅋㅋㅋㅋㅋㅋ라테가 이사람 저사람한테 사랑받고 있어요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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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꼬지님, 아스밀리온님, runien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꺄르륵 꺄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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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추천 늘 감사합니다XD 댓글많아...넘행보캐..8ㅁ8
51화까지 오면서 슬럼프를 겪지 않은 건 구들이 처음이에요! 다 여러분의 사랑 때문인듯 /ㅅ/ 꺄앙 알라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