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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는 들러리양-48화 (48/100)

00048  5. 에이레네의 밤: 무도회  =========================================================================

드디어!

나는 가넷 영애를 최대한 가까이서 보기 위하여 슬금슬금 입구 근처로 몸을 이동시켰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한 무리가 단체로 위치를 바꾸는 게 보인다. 마침 페리도트가 제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홀 안으로 사뿐사뿐 걸어들어왔다.

‘ 헐!’

그리고 나는 꼼짝없이 망부석처럼 제자리에 굳었다.

라테의 몸은 눈이 좋은 편이었다. 전자기기가 없어서 그런가. 지구의 기술로 시력을 재보면 2.0은 족히 될 것이다. 선명한 시야에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있음에도 낱낱이 들어오는 페리도트의 외양이 잡혔다.

물결처럼 흐르는 반짝이는 금발. 영롱함을 뽐내는 호박색 눈동자. 모자람 없이 꿈결 같은 이목구비까지. 늘씬한 몸매에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며 차려입은 붉은 드레스는 만개한 장미화원보다도 아름다웠다.

‘ 어, 언니…!’

어서 제 통장에 빨대를 꽂으세요!

나는 적금통장을 갖다 바치는 상상을 하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뭐야. 진짜 심하게 예쁘다. 저렇게 예뻐도 되는 거야? 제국제일미라고 불리는 것이 절로 납득이 갔다. 페리도트가 ‘나보다 못생긴 것들은 다 무릎 꿇어!’라고 외치는 순간, 물고기 세 마리를 제외한 모두가 납작해져야 할 것 같았다. 예쁜 게 유죄라면 무기징역 수준인데.

대단하다. 그리고 저렇게 예쁜 언니를 홀대하는 물고기 셋도 다른 의미에서 대단했다. 저런 존재감을 어떻게 공기취급 할 수가 있지!

하긴 핵미남들의 심리를 내가 알 게 뭐람. 나는 기대이상으로 예쁜 외모에 거듭 속으로 감탄을 연발하며 페리도트를 계속해서 살폈다. 그녀는 지금 같은 주목이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는 표정으로 도도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다시 봐도 인형처럼 곱다. 아니, 인형이 모자라.

만약 내가 원작의 내용을 몰랐더라면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 나 다가갔을 지도 몰랐다. 질투도 적당히 예뻐야 하는 거지. 하지만 앞으로의 전개와 상대의 성정을 뻔히 아는 지금 페리도트에게 접근하는 건 ‘나 죽여줍쇼’하고 불에 뛰어드는 나방이나 다를 게 없었다. 황홀한 미모와 달리 그녀의 행보는 꽤나 악독했으니까.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하녀 채찍질에 옷을 벗겨 내쫓고 손도 자르고…또 뭐가 있었지. 아무튼 눈독들인 남자에게 다른 여인이 있다고 그 여인을 죽이려드는 것부터가 정상은 아닐 것이다. 페리도트와 잘못 엮였다간 좋은 꼴을 보기 힘들었다. 이벨린이야 남주 실드가 빵빵하니 문제없다지만.

‘ 저렇게 예쁜데.’

얼굴이 아깝다. 조금도 아니고 많이 아까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시종이 황제와 황후의 등장을 알려왔다. 뒤이어 황태자도 함께.

아윈 때 한번, 페리도트 때 한번 술렁였던 회장이 세 번째로 동요했다.

“ 아앗, 빛이 걸어들어와…!”

론드미오의 추종자 한명이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와, 저 언니 굉장하네. 저런 대사를 드립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다니. 재밌어보여서 난 옆에서 슬쩍 거들었다.

“ 홀 안의 빛을 전부 빨아들이고 계셔…! 앗, 샹들리에가 초라함을 느끼고 움츠러들고 있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만해야지. 본인이 먼저 했으면서….

아쉬워하는데 문득 황태자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개드립치는 걸 들었나? 뭐, 이 소란에서 그럴 리가. 정말로 이쪽을 쳐다보는 게 맞는지 확인하려 윙크를 찡긋 날리자, 존재감 없이 황태자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애꿎은 기사가 내게 답례의 눈짓을 보냈다. 오 갓. 괜히 했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사내에게 추파를 던진 찜찜한 기분을 안고 눈을 돌렸다. 마침 황제가 단상에 올라앉는다. 곧 중후한 목소리가 조용해진 좌중에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를 전해왔다.

무표정하니 감흥 없는 얼굴로 인사 내내 옆자리를 지킨 황태자는, 황제와 황후가 퇴장한 뒤에도 평소와 다르게 회장에 남아있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폼이 누구를 찾는 티가 역력하다. 나야 그 대상이 이벨린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사실을 모르는 페리도트가 또각또각 황태자에게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부채를 팔랑이며 도도하게 정면으로 다가간다. 마치 ‘당신이 찾는 사람 바로 여기 있어요’ 라는 듯. 아이고, 언니…아니야, 그거 아니야!

“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 오랜만이군, 가넷 영애.”

“ 어머나아. 그런 딱딱한 호칭은 싫어요….”

페리도트가 눈가를 접으며 교태를 부렸다. 어지간한 남자라면 간을 빼줘도 세 번은 빼줬을 눈웃음이었다. 그러나 황태자가 누군가. 남주인공이다. 론드미오는 웃으면서 그녀의 아양을 쳐냈다.

“ 나는 좋소.”

“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페리도트가 잠시 부채질을 멈췄다. 딱딱한 호칭 싫어용. 어쩔 난 좋은데. 여지도 없이 까인 꼴이었다. 황태자의 추종자라면 고소한 마음에 비웃음을 흘릴 법도 했으나, 상대가 상대인지라 영애들은 눈치만 볼뿐 조용했다.

입을 다문 동안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랜 듯 페리도트가 재차 말을 꺼냈다. 부채가 다시 살랑거린다.

“ 호호, 여전하시군요.”

“ 영애야말로.”

들이대다 까인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그 신비주의였던 황태자를 몇 번이고 만났었다니 조연들보단 낫다고 할까. 부채를 내려 입가를 드러낸 페리도트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 그런 모습에 더, 안달이 나네요.”

달콤한 음성이었다. 목소리마저 악기의 울음마냥 듣기 좋았지만, 당연히 황태자를 흔들 순 없었다. 철벽남 론드미오는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안달이 나든가 말든가. 나랑 뭔 상관? 꼭 이리 말하는 작태에 페리도트의 웃는 얼굴에 금이 갔다. 그녀는 애써 태연을 가장했지만 미처 눈가가 떨리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 감히 이 나를 밀어내?! 감히!’

나는 원작을 토대로 페리도트의 마음 속 외침을 상상하며 아쉬운 손길로 주전부리를 찾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팝콘만한 게 없는데. 팝콘이 어서 황성에 연회음식으로 납품되었으면 좋겠다. 난 가능성 없는 바람을 품으며 별모양 설탕과자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이쿠 핵달아.

“ 그래도 전하, 이것만은 기억하여 주세요. 낯선 땅에서 보낸 이 년간의 유학생활….”

다시 태세를 가다듬은 페리도트가 그윽한 눈길을 보냈다. 그녀의 눈빛이 내 입안에 맴도는 설탕과자의 흔적보다 달게 보였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호박색 눈동자가 오로지 론드미오만 속에 담는다.

“ 그 힘든 시간을 소녀가 누구를 떠올리며 버티었는지….”

그리곤 수줍은 듯 맞추고 있던 눈을 내리깐다. 나비의 날개처럼 연약해 보이는 긴 속눈썹을 한차례 파르르 떤 페리도트가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애교떨며 유혹할 땐 언제고 이젠 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순진한 소녀를 가장한다.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한층 더 그녀를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 앞서 저도 모르게 도발적으로 나가놓곤, 뒤늦게 어찌할 바 몰라 수줍음에 떠는 순진무구한 소녀 같달까. 그 자태가 그녀의 화려한 외모와 대비되어 딱…전문용어로…갭모에! 그래. 지금 페리도트는 갭모에가 쩔었다. 벌써 주변 영식들 여럿이 헤롱거린다.

물론 걔네는 걔네고. 론드미오가 꿈쩍이나 할 리 없다. 그는 귀찮은 얼굴로 이 상황을 빠져나갈 핑계를 찾듯 다른 곳에 눈길을 주었다. ‘알게 뭐야. 너네 집 개라도 떠올렸나보지’하는 속마음-원작 토대-을 꺼내지 않은 건 그 나름대로의 후작영애를 향한 배려일 것이다. 사위를 두리번거리던 황태자가 마침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구경하고 있던 나와 눈을 마주쳤다.

“ …….”

음…. 착각이나 자의식과잉으로 치부하기엔 마주해있는 시간이 길다. 혹시 먼저 눈을 깜박이면 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황태자의 입이 열리는 게 언뜻 보였다. ? 뭐? 님 혹시 나한테 말 걸려고? 설마? 페리도트가 옆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 이-.”

“ 아아, 머리야!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담…. 당장 찬바람을 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

도와줘요 연기웨건!

난 혼신의 힘을 다해 두통에 찌든 환자를 연기하며 자연스럽게 비틀거렸다. 그러면서 어지러운 걸음으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난다. 친다 도망! 위해서 생존! 페리도트와 황태자의 눈에서 일단 벗어나야했다.

저 인간은 이벨린이랑 같이 있을 땐 내가 보일락 말락 아일락 정도로 비치는 모양이더니 이럴 땐 또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짜샤, 내 목숨은 소중해요! 난 근처를 훑다 커튼이 쳐지지 않은 테라스로 홀랑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 사람이 있음을 나타내는 커튼을 확 치고 나서, 난 눈에 보이는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하마터면 일 날 뻔했네. 페리도트를 더 구경할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녀에게 찍히는 것보다야 백배 나았다. 이벨린이 회장 안에 나타날 때까진 여기에 조용히 짜져있어야겠다.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밤바람이 차다. 난간으로 둘러진 야외 테라스는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을 여과 없이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밝게 뜬 달빛과 회장의 불빛이 사물을 분간토록 돕는다. 나는 몸을 일으켜 난간에 가까이 다가갔다.

허리께를 조금 넘어 올라오는 구조물을 잡고 난 경치를 눈에 담았다. 2층의 테라스는 지상에서 썩 높이 올라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눈에 꽤 너른 풍경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 이벨린이 정원에서 아윈을 만났으려나.

생각하기가 무섭게 꽤 떨어진 곳에서 인영 한 쌍이 얼핏 부스럭거렸다. 어라, 혹시? 거리가 거리인지라 생김새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째 느낌이 묘한 게…. 그 순간 내 몸이 갑자기 바닥에서 붕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추락사 엔딩 아님

+

유명한 4대 멘붕만화를 봤어요 "ㅁ" 마음이 치유됨 (?)

아. 참고로 비위 약하신 분들은 절대 찾아보지 마셔요. 트라우마 생길듯.

++

~식사 중인 사람 리딩 금지~

~응가 주의~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인데 급떵 신호가 왔다고 힘겹게 참고있다고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온 답장)

떵: 나가고싶어요!!...제발..나가고 싶다구요

제발 내보내줘욧...

떵꺼주름: 넌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급 집착소설)

나: 미..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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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고양이님, 좌안나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뭔가..."ㅁ" 감사의 영상편지를 보내야 할 것 같은 느낌...!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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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번화 댓글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승 로맨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콤.살.벌한 사.신.들 과의 저.승.로.맨.스☆ 지금바로 구.들과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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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모에는..음...배우 마동석이 생긴 것과 다르게 귀여운 걸 좋아하고 병아리를 밟으면 죽을까봐(..)가장 무서워하는 등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네티즌들이 갭모에라고 하는 것에서 가져왔습니다! 화려하고 강하게 생긴 미인이 알고보니 서툴고 순진한 소녀'ㅁ'! 하는 상황으로 갭모에 단어를 차용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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