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7 5. 에이레네의 밤: 무도회 =========================================================================
조연의 섬세한 하트에 쩌적 금이 간다. 내 얼굴을 극딜하는 아윈은 그 해맑은 표정에 일말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나쁜…! 이 잔인한! 맹세컨대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예쁠 오늘의 내 얼굴에 대고 어떻게 자다 나왔냐고 할 수가! 물론 아윈의 외양을 기준으로 한다면 나는 자다 나온 정도가 아니라 눈코입이 이상한데 붙어있는 수준이겠지만 그건 기준이 너무한 거지 내 얼굴이 문제인 게 아니다.
나는 내 금간 하트에서 맴도는 욕을 바깥으로 꺼내 전해줄 수 없음에 한탄하며 아윈의 말을 받았다.
“ 어머나. 자다 나온 걸로 보여?”
말이 목구멍에서 탈출하기 직전까지 나는 뒤에 ‘요’를 붙여야하나 고민했다. 무시무시한 소문이 한가득인 마탑주에게 뻔뻔스레 반말을 하는 것은 자칫 내가 그와 긴밀한 사이-개뿔-로 의심받을 여지가 있었다. 물론 페리도트만 아니었다면야 쌍수를 들고 환영할 오해이지만, 곧 그녀가 출격해 아윈에게 관심을 가질 상황에서는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이벨린도 당연스레 반말을 할 테고, 원작을 따른다면 오늘 연회가 끝나기 전 호사가들의 입에 이벨린 도트 영애가 황태자와 마탑주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는 소문이 오르내릴 게 뻔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친구를 잘 두어 감히 마탑주에게 반말을 허락받은 운 좋은 조연’정도로 평가될 것이다.
나는 문장을 이으며 환한 미소를 가장했다.
“ 아닌데. 자다 나온 게 아니라 탄광 캐다 나왔는데?”
그렇단다 이 짜샤. 한술 더 뜨며 비꼬자 아윈은 또 거기에 대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 아~ 어쩐지.”
그리고 다시 전신을 훑는다.
“ 고객님, 힘 내?”
…응, 아무래도 자작저에 돌아가는 대로 혈압에 좋은 음식을 알아봐야겠다.
난 무너지는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나는 예쁘다. 난 예뻐. 그 증거로 성문을 통과할 당시 우측에 서있던 경비병이 나를 힐끔거렸었다. 게다가 등을 돌리고 있을 땐 대놓고 쳐다보기까지 했다고 비숏이 전해주었다. 그래, 나 이런 여자야! 나는 어? 지금 어? 아주 예뻐요! 그런 생각을 하며 심적 데미지를 회복하는데, 문득 아윈이 부쩍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정말 가까운데. 얘 가슴팍이 왜 내 코앞에 있는 걸까.
내 코가 거짓말을 왕창 쳐서 여의봉처럼 길어진 피노키오 코도 아닌데 상대의 가슴팍에 닿기 직전인 연유를 모르겠다. 나는 석고상마냥 뻣뻣하게 굳어 작금의 상황을 이해해보고자 애썼다. …는 전혀 모르겠는데 뭐니 이거?
그때 아윈이 내게서 도로 거리를 벌렸다. 붙어있던 시간은 실제로 아주 잠깐이었다. 멀어지는 상체를 멀거니 쳐다보다 나는 아윈의 손에 어디서 많이 본 게 들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 저거.
내 머리끈?
인지하기가 무섭게 분명 조금 전까지 틀어올려진 채였던 내 머리카락이 아래로 굽이쳐 어깨며 등을 덮는다. ……? 뭐지 이게. 응? 어라?
나는 아윈이 내 머리에 손을 뻗어 머리끈 두 개를 풀러 가져갔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눈을 부릅떴다. 차라리 헛것을 보고 있다는 게 더 그럴 듯 할 것 같았다. 마탑주에게서 갑자기 냄새가 난다. 초등학생 냄새! 가물가물한 기억 속 여자애들에게 몰래 접근해 머리고무줄을 빼어 달아나던 초딩 남자아이들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그려졌다. 차이가 있다면 아윈은 대놓고 가져갔다는 정도일까.
녀석은 얄밉게 웃더니-내 눈에만 얄미운 듯 근처의 영애가 심장통증을 호소했다-손에 든 머리끈을 과거 불량스크롤처럼 순식간에 태워 없앴다. 깜찍한 핑크색을 자랑하던 머리끈이 눈 한번 깜빡하는 사이 검은 재로 탈바꿈했다.
저, 저런 정신 나간.
나는 지나치게 초딩 같아서 초딩 같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윈의 유치한 행동에 말하는 법도 잊고 입을 뻐끔거렸다. 상대가 정말로 초딩이었다면 당장 내 머리끈 돌려내라며 멱살을 잡고 흔들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대상은 초딩의 탈을 쓴 마탑주였다. 멱살을 잡았다간 내 멱이 따이겠지.
난 상대편이 손가락 짓 한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캐릭터라는 걸 다섯 번쯤 되뇌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 그래, 네가 보기에도 머리 푼 게 더 예쁘지?”
그러면서 마치 샴푸 광고를 찍듯 머리카락을 찰랑 쓸어넘……아, 아야. 장신구에 걸렸다. 아.
등신이 따로 없는 내 꼬라지에 지켜보던 아윈이 돌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손가락에 걸린 장신구에 고통을 호소하다말고 빵터진 아윈을 멍청히 응시했다. 웃어? 아나 저 놈이 진짜…. 근데 저렇게 소리 내어 웃는 건 또 처음 보네. 아윈은 치아모델 같은 희고 가지런한 이를 죄 드러내고 있었다. 입 다물고 웃었을 때도 주변이 다 환해진다 생각했는데, 저리 웃으니 이건 뭐….
“ 크윽!”
외마디 신음과 함께 대각선 즈음에 서있던 영식이 코피를 터뜨렸다. 미, 미친 파괴력. 남자 코피를 터뜨렸어! 사내의 코피!
충격적이지만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첫 만남에 아윈이 웃는 걸 보며 저건 남녀노소를 다 꼬실 눈웃음이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이 되고 있었다. 나는 뭇 영애들이 황태자보다 더 가망 없는 절망적이기까지 한 짝사랑에 빠져드는 광경을 떨리는 동공으로 관람했다. 또 상사병들 대거 앓겠구나. 불쌍한 영혼들이여.
죄 많은 무법자 아윈은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이 심장을 잡고 고꾸라지든 코피로 강을 만들든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만큼 웃은 뒤, 나타났을 때처럼 소리 없이 회장에서 사라졌다. 무법자다운 그의 퇴장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 정원에서 이벨린과 마주치겠지. 여긴 왜 온 거래 대체.
떠나면서 아윈이 남긴 말이 머릿속을 잠깐 맴돌았다.
‘ 역시 웃겨.’
광대취급 장난 없군. 과연 네가 내 맘속에 가득 찬 진솔한 쌍욕을 듣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살아남고자하는 비굴한 반응들이 상대에겐 개그가 된다니 슬픈 일이었다.
용케 아윈의 등장을 미리 점지하고 도망친 비숏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입구로 도로 나가는 것까진 봤는데. 내 뒤에 숨으랬더니 숨기는커녕 조건반사처럼 튀어나갔다. 피난처가 어디든 정원만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아윈 때문에 머리 상태가 영…. 기껏 예쁘게 꾸몄더니 뭔 꼴이람. 나는 머리를 매만지다 하녀에게 빗과 거울을 부탁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 놀리고 폭소한 뒤 사라진 아윈은 그 잠깐 사이 홀 안에 남긴 여파가 어마어마했다. 꿈꾸는 듯한 얼굴과 술렁임이 너른 공간에 가득하다.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소리가 대부분 아윈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뭐, 그럴만하다만.
나는 장신구를 피해 산발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머리를 빗은 뒤 한쪽으로 모아 땋아 내렸다. 그리고 갈증이 이는 목에 샴페인 한 모금을 밀어 넣으며 가장 가까이서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열었다.
“ 바, 방금 그 사람. 대체 누구야? 어느 가문 영식이라니?”
“ 타국의 왕자님은 아닐까?”
“ 바보들. 어쩜 그렇게 소문에 둔해? 은발에 붉은 눈, 마탑의 주인이잖아! 소문으로 듣던 것과 완전히 똑같던걸.”
어린 소녀들끼리 입을 모아 조잘조잘 마탑주를 화두에 올렸다. 다행히 내 얘기는 안 나오는군. 생각하자마자 목소리를 타고 내가 흘러나왔다.
“ 세상에, 마탑의 주인이라면 그 천재마법사? 저렇게 젊단 말이야? 근데 같이 얘기하던 상대는 누구래?”
서로 마주보고 도란거리던 세 영애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한테로 쏠렸다. 몹시 사양하고 싶은 주목이구먼. 나는 눈을 피하며 샴페인을 마저 들이켰다.
“ 특별하지도 않은데.”
“ 맞아. 뭐,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 저 정도는 널렸잖아?”
지들 딴에는 소곤거린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토씨하나까지 다 들렸다. 팩 고개를 돌려 빔을 쏴주니 찔리기는 하는지 안 그런 척 딴청을 피운다. 생긴 면면들이 끽해야 열다섯은 되었을까싶게 어렸다. 그래, 봐 준다 애기들. 어차피 오늘이 지나고 나면 너넨 또 다른 사람을 욕하고 있을 거야. 나는 샴페인 잔을 비우고 자리를 옮겼다.
구석으로 이동하니 여긴 또 영식들의 담화가 한창이었다.
“ 이거 참 놀랍군요.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 정말 저 나이에 마탑에서 가장 강하단 말입니까?”
“ 괴물로 불리던 전대 마탑주 타브오너가 두려워했을 정도의 재능이라더군요.”
“ 허어! 과연 마탑의 은빛 사신….”
“ 쿨럭!”
난 사레들러 기침이 튀어나오는 입을 가렸다. 마탑의 뭐? 은빛 뭐? 이건 케니스의 검은 사신과 달리 원작에서 들어본 적 없는 호칭이었다. 요즘 사신이 유행인가…? 이쯤 되니 황태자에게도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알고 보면 ‘제국의 황금 사신’이런 거 아녀?
신명나게 기침을 쏟아낸 뒤 기관지를 진정시키자, 시종의 우렁찬 목소리가 회장을 갈랐다. 힘찬 성량이 일러주는 건 페리도트 가넷의 입장이었다.
============================ 작품 후기 ============================
Q. 왜 여주의 머리를 풀렀나요?
로판남주: 그녀의 목덜미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아윈: 고객님 빡치라고ㅋ
라테: ㅅ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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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먹으려고 새벽에 빼빼로를 사다 둔 엘리아냥)
아빠: 이 빼빼로 누구꺼냐?
막내: 언니꺼
아빠: 그럼 먹어도 되겠네.
(부시럭 껍집을 까더니 동생에게 빼빼로 3개를 쥐어준다)
아빠: 이거 니가 먹은거다
(방으로 홀랑 들어감)
막내: 머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고 일어나 전해들은 나: 아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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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논란 해결되었습니다. 위로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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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