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45화 (45/100)

00045  5. 에이레네의 밤: 무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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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슐라…이….”

난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탁자를 짚었다. 레이스가 달린 흰 장갑이 곱에 씌워진 채다. 하루가 넘게 혹사당한 몸에 기력이 충분히 돌지 않는 것을 느끼며 난 전방의 거울을 응시했다.

“ 무서운 아이…!”

진짜 수박이 됐잖아!

유리에는 웬 다른 사람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모 일본만화의 연기선생 및 주인공의 라이벌이 종종 하던 유행어를 표절하며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마주했다. 이런 말하면 급 호러 장르가 되는 느낌이지만, 나는 거울에 비친 대상이 내가 아니라 마치 또 다른 나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네 이 녀석! 난 라테 엑트리다! 넌 누구지? 너도 라테 엑트리냐!

“ 후후. 그러게 저만 믿으시라고 했잖아요.”

거울에 혼을 뺏긴 나를 보며 에슐라가 콧대를 세웠다. 이 순간만큼은 콧대깡패 케니스조차도 에슐라를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실리콘의 여신처럼 우뚝 높아진 코를 눈에 담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 이건 정말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로젤리아 황녀가 성년을 맞이했던 연회의 첫날이 떠오른다. 그날의 화장술도 충분히 사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 비하면 정녕 새발의 피였다. 그때의 실력은 진정한 풀파워가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면 초시녀어인으로 각성이라도 한 것인가.

나는 부쩍 강해진 에슐라의 화장력으로 치장된 내 모습을 연신 뜯어보며 경탄의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거울속의 내가 그걸 따라한다. 풍성한 금발을 곱게 올려묶어 목덜미를 드러낸 미녀가 한층 또렷해 보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피부는 어찌 표현한 건지 촉촉한 흰색 푸딩에 연분홍 가루를 살짝 뿌린 듯하고, 입술은 당장이라도 틴트 CF를 찍어 완판시키는 게 가능할 것만 같다. 나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박수를 쳤다. 장갑끼리 맞부딪친다.

“ 넌 천재야, 에슐라.”

“ 오호홋!”

뿌듯한지 에슐라가 고개를 치켜들며 도도하게 웃었다. 그래, 천재는 오호홋 하고 웃어도 돼. 나는 나와 내 뒤의 에슐라까지 비추던 거울에서 눈을 뗐다. 이러다가 하루 종일 방에서 안 나가겠다.

“ 아직 여유 있지?”

“ 네. 느긋하게 출발하셔도 돼요.”

몇 시간 후면 드디어 에이레네의 밤이 시작된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천천히 옮겼다. 난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경악할 만큼 충격적으로 예뻐졌지만, 대신 그만큼 눈물 나는 고행을 견뎌야 했다. 세상에 그렇게 마사지의 종류가 많은 줄 난 어제 처음 알았다. 물론 그 시간이 전부 잊혀질 만큼 내 변신은 놀라웠지만.

“ 비숏, 준비 다 됐어요?”

발닦개, 아니, 호위인 비숏을 부르자 그가 마침 채비를 끝낸 듯 방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비숏은 웬일로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고 연미복까지 차려입은 상태였다. 의외여서 나는 선 자리에서 잠시 눈을 깜박거렸다.

“ 무도회에 참석하나 봐요?”

“ 네…아니 근데 누구십니까?”

비숏은 진정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하다말고 내게 물었다. 그의 얼빠진 얼굴에서 거울에 대고 넋을 놓았던 좀 전의 내 모습이 투영된다. 험험. 그럴 만도 하지. 나는 조금 쑥스러워져서 멋쩍게 웃었다.

“ 에슐라가 솜씨가 좋아서요.”

“ 암만 그래도…와…헐…….”

어지간히 놀란 눈치였다. 충격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고생을 생각하면 뿌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가 내 변장(!)에 익숙해져 정신을 차릴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 원래 연회를 좋아하나요?”

“ 아, 그건 아니지만, 에이레네의 밤은 되도록이면 매년 참석하는 편입니다.”

“ 그렇군요. 이유라도?”

“ 그…험험.”

비숏이 민망한 얼굴로 이유를 꺼내지 않고 삼켰다. 뭐, 굳이 듣지 않아도 어련히 추측이 된다. 에이레네의 밤 무도회는 평소보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들이 두루 눈에 띄는 연회였다. 에슐라의 말마따나 너도나도 여름의 여신이 되고자 안 그래도 예쁜 얼굴들을 더욱 빡세게 꾸미기 때문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미녀들을 꼬시기 위해 에이레네의 밤은 영식들의 참여율 또한 높았다.

게다가 이번 무도회에는 제국제일의 미 페리도트 가넷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상기된 볼짝을 보아하니 비숏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난 꿈꾸는 듯 기대에 찬 얼굴을 한 비숏에게 처참한 근미래를 슬쩍 언질해주었다.

“ 아윈도 올 걸요. 무도회에.”

“ !!”

평온하던 비숏의 눈동자에 급격한 지진이 닥쳤다. 나는 그의 진도 높은 동공 떨림을 지켜보며 쯧쯧 혀를 찼다. 하여간 불쌍한 캐릭터. 비숏의 행동만 보면 아윈이 무슨 닿기만 해도 뒤지는 걸어다니는 대재앙처럼 느껴진다.

맞지만.

“ 그, 그걸 어떻게…아시는….”

“ 다 아는 수가 있어요.”

비숏은 내 정보에 엄청나게 동요했다. 당장이라도 입고 있는 연미복을 찢어야하나 엄청 고민하는 것 같았다. 병 주고 약 준다고, 난 이번에는 희망을 속삭였다.

“ 괜찮을 거예요. 여차하면 그냥 제 뒤에 숨어요!”

물론 그게 효과 있을 거란 의미는 아니다. 비숏은 의외로 내 허세가 믿음직하게 느껴졌는지 갈팡질팡하다 결국 연회에 참석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그래, 미인을 보기 위해서라면야. 마탑주의 공포쯤이야!

나는 비숏과 함께 텔레포트를 통해 이동하기로 하고 남는 시간동안 푹신한 소파에서 다과를 즐겼다. 지난 며칠 눈물겨운 소식의 성과로 내 허리사이즈는 전보다 조금이나마 줄은 상태였다. 덕분에 코르셋을 차고도 과자를 두어 개 쯤 집어먹는 여유를 부릴 수가 있었다. 물론 이 이상 먹었다간 숨 못 쉬지.

시간이 가까워지자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곧장 황성 근처로 이동했다. 성문으로 걸어가며 나는 문득 든 의문을 던졌다. 혹시 황성 내부로도 텔레포트가 가능한가요? 대답은 아니오, 였다. 성내에 안티텔레포트 마법진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마탑이랑 똑같네.

에이레네의 밤에 유독 사람이 넘치는 또 다른 이유는, 초대받지 않은 이도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귀족이나 준 귀족에 한해서였지만, 신분을 증명 받아 성문을 통과한 이들은 모두 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장하기 직전 회장의 입구에서 비숏이 시종에게 작게 속닥거렸다.

“ 호, 혹시 오늘…탑주님도 참석하시나요?”

“ 마탑주님 말씀하시는 거죠? 초대장은 발송된 걸로 압니다만,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르겠다는 대답치고 시종의 어조는 부정에 가까웠다. 당연히 안 오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하긴, 아윈이 지금껏 황성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곧대로 참석한 역사가 없었으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이번엔 올 것이다. 백퍼센트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무도회에서 페리도트가 아윈에게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우리의 매우 예쁜 악녀언니는 물고기 셋 중 황태자와 아윈을 제 것으로 찜하고 욕심낸다. 황태자는 장차 황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요, 아윈은 만인이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을 제 발치에 무릎 꿇리고 모두의 부러움을 사길 원해서였다.

대륙최강의 마법사 마탑주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 자신의 발아래 엎드리게 한다.

얼굴도 제일 예뻐, 몸매도 엄청 착해, 집안까지 한가락 하는 모든 게 완벽한 페리도트에겐 세 가지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꿈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꿈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꿈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저건 솔직히 기립박수로도 모자랄 거대 꿈이다.

뭘 무릎 꿇려. 말만 들어도 식은땀이 난다. 이런 건 또 모르지만. ‘내가 무릎을 꿇은 이유는 네 목을 날리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슥삭.

“ 입장하시겠습니까?”

“ 아, 네.”

시끌시끌.

들어선 회장 내부는 넓었다. 그리고 사람이 넘쳤다. 인파가 많으니 자연히 홀 안은 이야기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 인파속에서 아는 얼굴을 찾으려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아마 카노가 있을 텐데….

“ 헉!”

집중에서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는데 갑자기 옆에서 헛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비숏이 텔레포트를 한 세 번은 쓴 직후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응? 얘 왜이래? 그러더니 핏기 없는 안색 그대로 허둥지둥 도망친다…도망?

…설마.

“ 꺅!”

빈 공간에 예고 없이 사람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형체가 생기자 지척에 있던 영애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놀라 간이 떨어졌을 그녀는 이내 나타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곤 심장마저 떨어뜨린 표정을 지었다.

은발에 보석 같은 붉은 눈. 같은 종족이 맞나 의심스러운 외모.

띠링! 아윈 이(가) 등장했습니다.

아윈은 당연하다는 듯 텔레포트로 나타났다. 비숏이 내게 해주었던 설명이 떠오른다. 성내에는 텔레포트를 막는 마법진이 설치되어있다 했었지. 그건 설령 쓸 수 있어도 쓰지 말라는 뜻일 텐데…. 저런 저런 무법자새끼.

난데없이 등장한 무법자 아윈은 그 모습이 드러나기 무섭게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다. 회장 안에서 저 혼자만 빛이 난다. 워낙 마이웨이가 강해 옷도 아무거나 주워 입고 오지 않을까 했더만, 마탑주는 예상외로 격식에 맞는 흰색 연미복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황태자의 첫 등장 못지않은 광채였다. 아오 얘 눈부셔.

그나저나 아윈이 원래 지금 출연하던가? 좀 이른 것 같은데. 지금 회장에는 황태자도, 페리도트도 아직 없었다. 이벨린이야 지각이 예정되어있고.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맞다 확신할 수 없으니 그냥 고개만 갸웃하는데, 마침 이쪽을 쳐다본 아윈과 눈이 마주쳤다.

“ 어? 고객님.”

마주치기 무섭게 아는 척을 해준다. 눈 튀어나오게 예쁜 페리도트도 돌멩이 취급하는 상대였으니 나름 영광이라면 영광일 것이다. 아윈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멀지 않은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내 앞에 우뚝 멈춰선 아윈이 돌연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눈에 이채를 띈다. 뭐, 뭐지. 당황하다 순간 지금 내가 환골탈태수준으로 달라진 모습이라는 게 생각이 났다. 맞다. 내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난 지금 제법 예쁘….

“ 고객님, 자다 나왔어?”

이런 썩을 놈이!

============================ 작품 후기 ============================

악녀언니 이름 원래 레아르 조으녜 이런걸로 대충..지으려다...그래도 최고미인인데 가오(!)가 있지 싶어서 보석이름을 끌어다 지어줬답니다!

+

~모녀의 극딜~

나: 난 다음에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할거야 >_<

엄마: ㅎㅎ아빠같은 남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나: ...!

막내: 설마 있어도 미쳤다고 언니를 만남? 풉

나: ...!!

~막내에게 약한 아빠~

막내: 아빠 나 방학 보충 째고싶엉ㅜㅜ아빠가 학교에 저나해서 핑계좀ㅎ

아빠: ㅇㅋ

엄마: 어휴 철수(가명)씨!

아빠: 왜, 왜요? "-" (동공지진)

엄마: 잘했어요 ^^

아빠: (방긋)

막내: (방긋)

나: 절레절레...

++

유사성 논란으로 제보를 받은 작품은 해당 작가분과 현재 쪽지를 통해 연락하는 중입니다. 상대 작가님의 입장에 따라 이번 일이 쪽지로만 조용히 마무리 될지, 공지를 올려 공식적으로 제가 입장표명을 하게 될지 결정 날듯 합니다. 저는 가능하면 사태를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 가급적이면 전자이길 바라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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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over님, H.헬륨님, 블랙니트님, 크록페일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꽃날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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