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44화 (44/100)

00044  5. 에이레네의 밤: 무도회  =========================================================================

시간이 일주일쯤 흘렀다.

난 그 일주일간 황태자와 아윈을 한번, 케니스를 두 번-하필!-씩 만났다. 물론 만남에서 주인공이 되는 건 항상 이벨린이었으니 난 그저 그녀의 곁에 부속품처럼 붙어 상황을 멀뚱멀뚱 구경한 게 전부였다. 황태자는 먼젓번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 것이 꽤 마음에 걸렸던 듯-참 착한 캐릭터다-이벨린과 대화하면서도 이쪽을 제법 신경써주려는 눈치였으나, 자기도 모르게 중간중간 내 존재를 잊고 흠칫거리는 폼이 애잔할 정도였다.

케니스는 더 이상 나를 보고도 표정을 구기거나 하지 않았다.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주름지지 않는 매끈한 미간은 다시 봐도 새로웠다. 대신 나는 있으나 없으나 한 병풍취급을 당했는데, 박멸해야하는 해충취급보다는 백배쯤 안전했으니 썩 만족스러웠다.

이미 나를 공기로 대한 전적이 있는 아윈은 놀랍게도 이벨린이 있는 와중에도 내게 말을 걸었다. 발닦개는 잘 있냐는 시답잖은 안부인사-비숏….-였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는 이벨린의 질문에 태연하게 ‘발수건 하나 선물했거든’하고 대답함으로써 비숏을 향한 내 안쓰러움을 한층 증폭시켜 주었다.

난 저 셋 외에도 따로 로젤리아 황녀를 만나 시간을 보냈다. 손수건을 들고 황성에 방문하자마자 나는 호화로운 접객실로 안내받아 진수성찬을 영접할 수 있었다. 초호화 만찬을 입에 밀어 넣으며 난 내가 집필한 각각의 비모르 작품에 대한 찬양을 두 시간쯤 들어야했다-황녀언니 이미지 와장창…-. 이만 일어선다고 하니 좀 더 있다가라며 나를 붙잡는 황녀의 눈이 얼마나 간절한지, 만약 황녀가 남주인공이고 내가 히로인이었다면 이 소설은 필시 집착감금물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숏은 일주일새 저택 내의 여러 팝콘연합 중 ‘스파이시'에 가입해 활동하는 등, 사용인들과 제법 두루 친해졌다. 오다가다 마주칠 때면 항상 맛을 바꿔가며 팝콘을 햄스터마냥 볼에 쑤셔 넣고 있었는데, 별달리 살이 오르지 않은 것을 보니 꽤 재수 없는 체질을 지닌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비숏은 완전히 내 ‘호위’로 굳어져 나가는 곳마다 따라 나오는 처지가 되었다. 장소불문 자유로운 외출이 가능해진데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아낄 수 있어 나야 잘된 일이었다-목적지에 도착하면 비숏은 알아서 구석탱이에 박혀 쉬다가 돌아오곤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스크롤을 제작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스크롤을 만드는 데에는 마법사와 종이 외에도 특수한 마법연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있어야 종이에 안전하게 마나를 가둘 수 있다나 뭐라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을 했던지, 나는 새하얗게 질려 파들파들 떠는 비숏을 아윈에게 반납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며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나날의 오후, 에슐라가 상기된 얼굴로 말을 꺼냈다.

“ 벌써 내일이 ‘에이레네의 밤’이네요!”

앳된 목소리는 기대에 잔뜩 차있었다. 에이레네의 밤. 에이레네는 이곳에서 여름의 여신을 의미한다. 계절의 초입 무렵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여신이 축복을 내려주는 기간이 있는데, 그 동안 각각 황성과 거리에서 무도회와 축제가 열렸다. 행사가 열리는 시간은 저녁부터 새벽까지라 그 기간을 사람들은 모두 ‘에이레네의 밤’이라 불렀다.

열흘이나 진행되는 규모가 큰 연례행사였다. 자매품으로는 ‘키슬리키의 낮’이 있겠다.

“ 재밌겠네.”

난 영혼을 빼고 대답하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올해의 에이레네는 작년처럼 그저그런 지루한 무도회가 아니다. 이벨린이 참석하고 물고기들이 참석할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 거기다 페리도트 가넷 영애께서 그 날에 맞춰 돌아오신대요.”

끝판악녀가 등장한다!

가넷 후작가의 금지옥엽 페리도트 영애. 그녀는 사교계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이 유명했다. 굳이 등에 업은 가문의 위세와 오만한 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예뻤다. 그것도 엄청.

모두가 사교계의 꽃이라 인정하는 페리도트 가넷은 마치 여신의 현생 같다며 그 미모를 침이 마르게 칭송받았다. 그녀는 이벨린과 로젤리아를 제치고 명실상부 야수의 꽃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타이틀을 꿰차고 있었는데, 등장할 적마다 예쁘다는 서술이 어찌나 구구절절한지 과거 나는 물고기들 다음으로 페리도트의 외모가 궁금했다. 드문드문 글에서 묘사하던 페리도트의 외양이 떠오른다. 꿀이 흐르는 듯한 탐스런 금발이었나. 금발….

나는 거울에 잠깐 시선을 주었다. 하하, 머리 염색할까?

“ 여신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던데, 너무 궁금해요.”

“ 그러게. 나도.”

나는 에슐라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머릿속으로 두둥실 페리도트 가넷의 역할을 떠올렸다. 그녀는 로맨스소설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전형적인 악녀였다. 페리도트는 제 추종자들이나 휘하의 사람을 시켜 여주인공을 어떻게든 위기에 몰아넣은 뒤 걸렸다싶으면 교묘하게 꼬리를 잘랐다. 원작에서 이벨린의 곁에 붙어 다니던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영애를 꾀어 뒤통수를 치게 만드는 것도 그녀였다.

물론 그런다고 여주인공이 솜털하나라도 다치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물고기들이 괜히 있으랴. 남주인공 셋은 어떻게 알았는지 이벨린이 위험해질 낌새만 보이면 바람처럼 짜잔 나타났다. 그들은 번갈아 이벨린을 구하며 각자 그녀와의 썸을 진척시켰는데, 당시 독자들이 입을 모아 페리도트를 사랑의 큐피드라고 지칭했을 지경이었다.

그러한 페리도트의 꾸준한 괴롭힘은 비록 성과는 없어도 제법 보는 재미가 있는 편이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친한 척 사람을 접근시켜 뒤통수를 치는 것은 물론이요, 누명에 헛소문에, 납치에다 습격까지 안하는 짓이 없었다. 같잖은 시비부터 살인교사까지! 완전 개흥미진진. 페리도트는 그야말로 팝콘을 부르는 캐릭터였다.

“ 흐흐.”

미처 숨기지 못한 웃음이 새어나갔다. 급 내일이 기다려진다. 물론 페리도트를 구경하는 것은 다소 신중히 해야 할 일이었다. 잘못 눈에 거슬렸다간 원치 않은 프렌드쉴드가 되어 이벨린 대신 후드려맞게 될 테니까. 난 물고기쉴드가 없는 터라 조지면 조지는 만큼 보람차게 조져질 것이 뻔했다. 친구의 반죽음을 계기로 여주인공이 강해지는 전개만큼은 절대 반대다. 그, 그런 건 싫어.

페리도트 가넷은 이년 전 이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내일 에이레네의 밤에 맞춰 제국으로 돌아온다. 아마 일부러 더 주목받는 날짜를 택했을 것이다. 에이레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아 얼른 보고 싶다. 궁금한데.

“ 아가씨는 저만 믿으세요!”

에슐라가 대뜸 제 가슴을 치며 호언했다. 하지만 난 뭘 시키거나 부탁한 기억이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뭘? 하고 묻자 대답한다.

“ 에이레네의 밤이잖아요. 최대한 아름답게 하고 가셔야죠!”

기세가 활활 타오르는 것이 얘가 또 왜 이러나 싶었다. 황태자에게 잘 보이는 건 이미 저번에 포기시켰을 텐데. 가만 보니 에슐라는 주먹까지 쥐고 있었다.

“ 에이레네의 밤은 여신의 축제!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여인들이 여신이 되는 날이죠. 제가 아가씨를 여름의 여신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여름의 여신….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야망이 지나치다. 내 얼굴에 이런 말하고 싶진 않지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진 않는다. 어차피 준비하느라 고생만 할 게 뻔하니 됐다고 설득시키려는데, 에슐라의 눈빛이 생각보다 심상치 않게 빛났다.

“ …에슐라?”

“ 여름의! 여신!”

“ 얘?”

“ 후후후. 여신…!”

왜, 왜이래.

그리고 나는 그날 열여섯 소녀의 집념을 경험했다.

============================ 작품 후기 ============================

최고미녀 악녀언니 > < !

+

(남주투표의 화력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

케니스가 개욕먹던 화의 댓글수를 넘었어...! "ㅁ"(동공지진

결과: 아윈>>>>>>(넘을 수 없는 지지러의 벽)>>> 케니스(의외의 선방) >> 황태자, 비숏(???ㅋㅋㅋㅋㅋㅋ?) > 팝콘 > 이벨린, 황녀, 악녀언니(!)

비숏이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서ㅋㅋㅋㅋㅋㅋㅋ놀랐어요ㅋㅋㅋㅋㅋㅋ비숏 짜식..! "ㅁ" ! 근데 보기에도 없는 후보를...? ...??

++

지난화 후기에 이어

나: 숨쉬면....탈락

나: 팔다리가 두개면....탈락

막내: 눈코입이 두개면....탈락

나: 야 눈코입이 두개면 당연히 탈락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내: 뭐?? 두개일수도 있지 너무한 거 아냐??? 동생 남친인데 그 정도도 이해못해??

나: 어 그래....(ㅁㅊ..)

(카톡으로 직접 만든 도시락 사진을 보냄)

막내: 언니 이거 봐

막내: 어때 곰돌이 도시락이야

사진: (지옥의 파멸 곰돌이 도시락)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왘ㅋㅋㅋㅋㅋㅋ핵무서워ㅋㅋㅋㅋㅋㅋㅋ저게머얔ㅋㅋㅋ앜ㅋㅋ

막내: 닥쳐 조용히 해 언니 먹여버린다

나: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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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over님, 홍홍홍설님, 타로퐁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XD !! 에헤라 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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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서 많은 분들이 아빠 귀엽다 한다고 전해줬더니 엄마가 뿌듯해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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