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 그, 그래.”
“ 아무튼 그런 걸 떠나서요, 마법사님이니까 마법을 잘 쓰시겠죠?”
“ 그렇겠지. 아까 허공에서 나타나는 거 봤잖아.”
“ 그럼요, 손에서 막 불도 나오게 할 수 있어요?”
던지는 질문이 꼭 어린아이 같다. 그러고 보니 마법사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겠구나. 불쏘는 거야 뭐, 그 정도는 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이나 구전이야기에 나오는 마법사의 이미지를 참고해 현실적인 비숏의 한계를 덧붙였다.
“ 참고로 용은 못 잡아.”
아윈이라면 또 모르지만.
에슐라는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던지 별달리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대신 반짝이는 눈으로 내 지척까지 쪼르르 다가온다. 움직이는 폼이 먼 옛날에 키웠던 햄스터를 떠올리게 해 나는 아주 잠시 동안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해바라기 씨 외엔 거들떠도 안 보던 도도한 뚱돼지녀석. 퍼져있을 때면 그 크기가 사뭇 위협적이었지…후후.
가까이 다가와 침대에 찰싹 붙은 에슐라가 기대에 찬 눈을 깜박였다.
“ 저 마법 구경하고 싶어요.”
“ 손에서 불 뿜는 거?”
“ 네!”
“ 그러다 우리 집 다 탄다.”
“ 그, 그럼 다른 거라도….”
“ 농담이야. 위험할 것 같으면 마당이나 연무장으로 나가면 되지. 지금 가서 보여 달라 그래.”
“ 당장이요? 그래도 돼요?”
“ 응! 내 이름 팔아.”
난 환한 미소와 함께 에슐라를 출발시켰다. 신나서 달뜬 발걸음으로 방을 나가는 뒤통수가 유독 동그랗다. 곧 비숏의 소소한 노동이 시작되겠구먼. 나는 그렇게 에슐라를 보내고 조금 식은 물에서 발을 뺐다. 뽀송한 수건에 대고 물기를 닦은 뒤 침대위로 발을 올렸다. 눈에 들어오는 발의 생김새가 제법 예쁘장한 것이 마음에 든다. 후훗, 발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구? 그래봤자긴 하지만…. 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침대에서 몸을 한 바퀴 굴렸다.
어디 보자. 내일은 이벨린을 만나러 가볼까.
정자세로 누워 발을 까딱이며 나는 내일의 일정을 생각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이벨린을 만나 앞전의 케니스 험담을 철회하는 것이 내 심신의 무사에 좋을 것이다. 나는 바르게 누운 자세를 유지하며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물고기 세 마리가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하는 게 언제부터였더라…신경전 빨리 구경하고 싶은데. 졸잼일 것 같은데.
기실 이벨린이 제국에 등장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구경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란 소리였다. 나는 가물가물했다가 선명해졌다 하는 원작의 내용을 떠올리다 어느 순간 깊은 수마에 잠겨들었다.
“ 좋은 아……으음.”
나는 내뱉던 인사를 도로 집어넣었다. 아침에 마주친 비숏의 상태는 어떻게 봐도 좋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난 하룻밤 새 눈에 띄게 파리해진 그의 낯빛을 살피다 말을 던졌다.
“ 꿈에 마탑주라도 나왔어요?”
“ 아, 아닙니다!”
비숏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붕붕 저었다. 나는 그의 공포가 담긴 고갯짓을 바라보다 이어 물었다.
“ 그럼요?”
“ 그냥 잠을 조금, 못 잤더니….”
그리고 마나도 약간…. 비숏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림을 덧댔다. 수면부족에 마나고갈? 아하. 나는 그의 말에 어젯밤 잠깐의 노동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일이 밤새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나, 에슐라 이 아이…! 뽕을 뽑다니!
어제 귀환 때부터 자꾸 본의 아니게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있다. 나는 다소 미안함을 담아 그의 수고를 토닥였다.
“ 고생 많았어요. 이해해주세요, 저택의 아이들이 살아 움직이는 마법사를 보는 건 처음이라….”
아마 에슐라가 저 혼자만 보러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 추측하며 아이들이라 언급하는데 비숏이 주춤한다. 응? 어째 살짝 떠는 것 같은데.
“ 살아 움직이는 게 처음이라면…살아있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는 마법사들은…많이….”
“ 아니! 아뇨, 그런 거 말고요.”
이런, 문장에 오해의 여지가. 나는 손을 내저으며 정정했다. 시체나 박제 따위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법사들을 뜻한 거였다며 해명하자 비숏이 눈에 띠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그런데 보통 그런 쪽으로 받아들이나? 나는 비숏에게 비친 내 이미지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아윈 친구 아닌데.
난 비숏에게 아침식사를 권하며 일층으로 내려갔다. 아침을 먹은 뒤 곧장 이벨린에게 가 볼 계획이었다. 식사를 함께 들며 어머니에게 외출의사를 이야기하자 그녀는 웬일로 흔쾌히 허락했다. 어라, 여차하면 몰래라도 나갈 생각이었는데.
“ 당연히 마법사님도 동행하는 거지?”
아하. 그녀의 걱정이 사라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난 비숏에게 슬쩍 눈짓했다. 눈치를 챈 비숏이 파리한 안색을 감추며 괜히 더 믿음직한 척 어깨를 편다. 나는 생글생글 웃었다. 이거 잘하면 한동안은 마음 편히 무한외출이 가능하겠는데.
“ 물론이죠!”
그렇게 비숏은 내 호위라는 명목 하에 나들이를 함께하게 되었다.
조식을 마치고 외출준비를 시키자 그는 조금이나마 마나를 회복하겠다며 솔랑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사이 다소 느긋한 속도로 익숙한 채비를 마무리했다. 오후의 햇살을 생각해 숙녀다운 흰 양산을 챙기는데 문득 팝콘을 가져갈까하는 충동이 든다. 음, 아무래도 이벨린 곁에 붙어있으면 못해도 남주인공 중 한명은 만나겠지. 나는 팝콘용 옥수수와 입맛에 맞는 양념가루를 챙겼다.
“ 이제 가요. 혹시 지금 텔레포트 할 수 있나요?”
“ 가능합니다. 대신 저는 죽을 테지만요.”
“ …….”
그런 피의 텔레포트는 사양이다. 나는 근처의 사용인에게 마차를 준비해달라 일렀다.
돌아올 때는 이동마법을 쓸 수 있을 거란 희망적인 얘기를 들으며 난 비숏과 함께 목적지까지 마차를 탔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으니 시시한 잡담과 풍경구경을 통해 이동시간을 금세 보낼 수 있었다.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다른 백작저에서 나를 반긴 것은 이벨린이 이미 외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 헐.”
그런…. 역시 어제 자빠져 잘 게 아니라 전갈을 먼저 보냈어야했나. 설마하니 케니스라도 만나러갔으면 어, 어떡한담. 최악의 가정을 통해 사색이 되어가는 나를 건진 것은 추가된 정보였다.
“ 아가씨께선 황성에 일이 있다 하셨습니다.”
“ !”
나는 곧장 발을 돌렸다. 잠깐이라 아직 가지 않고 머물러있던 마차에 도로 올라타 황성이라는 새 목적지로 재차 이동했다. 황성이면, 오늘의 순서는 너무 당연하게도 황태자렷다. 케니스는 그 다음 순서였다. 이거 한시름 놨네.
황성까지는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 아무 식당에서 팝콘을 완성했다. 음, 냄새 끝내주고. 이곳의 재료로 만든 치즈가루도 꽤 맛이 좋았다. 오히려 치즈자체의 맛은 더 진하다. 옆에서 뚫어져라 시선을 보내는 비숏에게 한 움큼 쥐어주고 종이봉투의 입구를 돌돌 말았다. 넉넉히 챙겨왔으니 나도 먹고 얘도 먹고 쟤도 먹고 해도 모자라진 않을 테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비숏을 달고 황성으로 향했다. 입성까지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이제 어디에서 이벨린을 찾느냐는 거다. 난 짱구를 굴려 여주인공이 극의 초반에 어떤 사유로 황성에 방문했었는지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무도회는 아니고…음…아, 도서관!
맞다. 원하던 고서가 황실도서관에 비치되어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여주인공은 주저 없이 황성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침 도서관을 방문한 황태자와 우연찮게 만나는 것이다. 나중에는 황태자가 희귀고서를 구해준다는 걸 빌미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데이트였나.
아무튼 장소를 알았으니 지체할 필요가 없다. 나는 힘차게 발을 놀리려다 멈칫했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파리한 비숏의 안색이 눈에 들어온다. 이 친구 회복이 좀 더디네…. 난 그를 배려하기로 했다.
“ 저 황성에 있는 동안 어디 짱 박혀서 마나 회복해도 돼요.”
그러자 비숏은 신나하며 총총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홀몸이 되어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마주치는 시종들마다 붙잡고 길을 물었더니 어렵지 않게 도서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자, 이제 이 모퉁이만 돌면.
“ 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뚝 자리에 멈췄다. 내가 눈먼 장님이었다면 부딪혔을만한 위치에 낯설지 않은 인영이 서 있었다. 두어 번 봤다고 벌써 얼굴이 낯익다. 똑바로 올려다보는 건 불경이었지? 나는 급하지 않게 허리를 숙였다. 황태자 하이?
“ 차기 제국의 태양, 황태자전하를 뵙습니다.”
============================ 작품 후기 ============================
잊혀진 당신(!) 황태자짜응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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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태풍이 온댔는데 왜...행사는 취소가 아닌걸까요? "ㅁ" 굳세어라 행☆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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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 @[email protected] 알람 꺼놓고 원하는 만큼 푹 자고 싶어요..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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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에게 남친이 생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빠~
엄마: 어제 ㅇㅇ이가 남자친구랑 밤새 전화로 싸우는 것 같았어요.
아빠: 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핫핫핫
(하루 뒤 주말아침)
막내: 내일은 즐거운 부산여행^ㅁ^/ 남친에게 도시락을 만들어줘야지!
(우당탕 쿵탕 쨍그랑 콰광)
아빠: (자다 말고)뭐..뭐냐! 무슨 일이야!!
막내: 도시락 ㅇㅅㅇ
아빠: 뭔..설마 남친?
막내: 웅 >_<
아빠: 아니 남친이랑 싸우면 며칠은 가야지 가시나가 자존심도 없어! 니가 매달렸냐?
막내: 내가 안 매달려써!
아빠: 가시나가 매달린다고 받아주냐 우리 가문의 수치다
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수칰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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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over님, 부산사람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XD !! 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