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0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응, 마음은 나도 살려주고 싶은데…. 솔직히 내가 무슨 수로 댁을 살리겠어요. 포기하셈. 걍 포기하고 내생에는 여기 말고 아윈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시길. 난 시선을 피하는 대신 상대처럼 눈빛으로 내 의사를 전달해보고자 애썼다. 나는 님을 못 살림! 포기! 부디 덜 아픈 죽음! 즐천당! 뜻이 용케 전해진 건지 남자의 낯에 체념이 어릴 때였다.
“ 이거? 비숏.”
물은 것에 답이 나왔다. 딱히 이름을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니가 알아서 뭐하게’보단 친절한 대답일 테지. 만족한 척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부연설명이 덧대어졌다.
“ 고객님이 따지러왔었던 병신스크롤 만든 놈.”
어머 얘 단어선택 좀 보게. 내가 언제 따지러 갔었다고. 왜곡이 첨가된 덧붙임은 목 잡힌 남자가 왜 그 꼴이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이고 이 사람이 바로 그 불량스크롤…. 무려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잡히셨군요. 불쌍도 해라. 마탑에서 아윈이 내비쳤던 언짢음을 생각해보면 내가 이 사람을 이승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보나마나 0이었다. 나는 방금 정체를 알게 된 상대의 뻔한 최후에 속으로 애도를 보내며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도 해주고자 입을 열었다.
“ 너무 아프게 죽이지는 말,”
“ 어떻게 할까?”
“ 뭐?”
어떻게 하다니 뭘? 목 잡힌 남자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내 말이 씹힌 건 둘째 문제였다. 어라, 이거 혹시? 설마 하는 기분으로 아윈을 쳐다보니 목이 붙들린 이를 앞으로 쑥 내민다.
“ 일단 그 스크롤을 산 건 고객님이니까. 직접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 !”
남자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은 그가 전보다 두 배는 강해진 절실함으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님 제발. 님아 정말 제발.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형상과 어울리는 애절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귀에 울렸다. 나는 뜻밖의 권한이 생긴 것에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 아무거나 정해도 돼?”
“ 내 마음에 들면.”
“ 너 말고 내 마음에만 들면?”
“ 고객님. 뭘 알면서 물어?”
할 말 없다. 그건 그렇지. 내가 내놓는 처분이 별로다 싶으면 목 잡힌 남자는 본래 정해진 대로 이승탈출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나는 간단하게 무죄방면을 외치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고심에 들어갔다. 뭐라도 처벌을 줘야 하는데. 가능하면, 음, 죽음보단 평화로운 걸로.
짱구를 굴리다 나는 사심을 약간 섞어 내놓았다.
“ 한 달 동안 무 임금 노동?”
“ …….”
“ 노동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걸로?”
“ …….”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나는 눈치를 보다 조금 덧붙였다.
“ 가혹한 노동.”
추가한 것에 아윈이 이를 보이며 웃었다. 마음에 드나? 한 사람의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일이라 양심상 긴장하는데 내뱉어진 응답이 나를 안심시켰다.
“ 좋아. 그렇게 해.”
목 잡힌 남자-대충들은 이름이 가물가물했다-는 안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해하는 어중간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살긴 살았는데 ‘가혹한’ 노동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말했지만 나도 그거 마음에 걸린다. 보통은 휴일 없는 고된 업무정도를 상상하겠지만 하필 아윈이라…어…명색이 마법산데 설마 광산에서 채찍 맞으면서 수레 나르진 않겠지?
양보해서 광산일은 시키더라도 채찍질은 제해달라고 부탁할까 고민하는데, 아윈이 목을 붙잡은 손아귀에서 힘을 푸는 게 보였다. 남자가 자유로워졌다. 서, 설마하니 손대신 저 자리에 광산노예를 뜻하는 목줄을! 망상이 점점 그런 쪽으로만 진척될 무렵 아윈이 남자에게 명령했다.
“ 들었지? 한 달이야. 그동안 고객님 곁에서 시키는 거 다해.”
“ …예?”
“ 기껏 놔줬는데 다시 끌고 가고 싶은 멍청한 표정하지 말고. 자, 고객님.”
아윈이 마치 가져가라는 듯 손짓했다. 아니 이게 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남자가 이내 쭈뼛거리며 내 옆에 다가와 선다. 졸지에 좌 부크 우 목 잡혔던 남자, 이렇게 양쪽에 남정네를 거느리게 된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뭐야?”
“ 뭐긴. 고객님이 정했잖아? 한 달 동안 노동시켜서 수익은 고객님 주머니에 채워. 시킬게 없으면 걔로 발이라도 닦든가.”
발….
나는 태연히 ‘너 가져’를 지껄이는 아윈과 오른쪽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곳에서 마법사란 그 존재가 제법 귀했다. 특히 마탑에 속할 정도의 실력이면 어딜 가든 대우받는 귀중한 인력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평민이더라도 마법사 명함을 달면 귀족들이 막대하지 못한다.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고급인력으로 발이나 닦다니 그럼 그 발이 더 시원하겠지…가 아니라.
정말 데리고 가라고? 이래도 되나?
“ 후한 처사야. 알지?”
“ 감읍합니다!!”
남자가 우렁차게 외쳤다. 되나보다. 아니, 되는 정도가아니라 이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긴 누구라도 저승관광이나 광산노예보다는 어느 귀족영애의 노동력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것도 고작 한 달인데 뭐.
나는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고급 노동력을 얻었다.
“ 참, 아까 이분 이름이….”
“ 아무렇게나 불러.”
“ 아니 이름이 있는데 뭘 아무렇게나 불러.”
“ …비숏입니다.”
남자, 비숏이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제 성명을 뱉었다. 비숏. 짧아서 좋구나. 외우기 편하다.
“ 그래 그럼, 비숏 씨는 내가 알아서 가혹한 노동을 시킬 테니 맡겨 두렴.”
아윈은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비숏에게 ‘날짜 맞춰 복귀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힐끗 바라본 비숏의 표정은 어쩐지 한 달 후에 대륙이 망했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음, 하기는 나도 과거 무심코 연 화장실 안에 곱선생이 존재할 때면 다시 문을 닫는 순간 지구가 알아서 터져주길 바라곤 했었지. 그래, 그랬었어. 심할때는 두 마리나…아오 지금 생각해도 개 쌍시옷.
쓰잘데기 없는 추억에 괜히 몸서리치는 날 깨운 것은 부크였다.
“ 아니…어…선생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리 물으면서 부크는 눈을 비볐다. 황당하겠지. 비빈 눈을 껌벅이더니 재차 뭐라 한다.
“ 왜 사람을 막 받고 그러세요?”
“ 얘 봐. 내가 달랬어? 준 놈한테 가서 따져.”
엄밀히 말하면 받은 것도 아니고 대여였다. 그는 내 말에 아윈으로 화제를 바꿨다.
“ 그러고 보니 그 사람도 특이하네. 누구예요? 완전히 요정처럼 생겼던데.”
키 큰 요정이었다며 부크가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이해는 되지만 가당찮은 말이었다. 세상에 사람 죽이는 요정도 있나. 예부터 요정은 인간들의 친구라고 보고(?) 들었거늘. 나는 부크의 뭣 모르는 외모찬양을 도중에 끊었다.
“ 마탑주야.”
“ 네?”
“ 은발에 붉은 눈. 유명하지?”
부크는 잠시 어리벙벙하게 굳어있더니 이내 사색이 됐다. 부크가 인터넷소설 여주인공도 아니고 남들 다 아는 소문을 저만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잠시 어디 모자란 사람처럼 어버버 거리더니 비숏을 조심스레 가리켰다.
“ 그, 그럼 이 분은?”
“ 마탑 소속 마법사.”
“ 헉!”
부크가 벼락 맞은 사람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러더니 내게 바짝 붙는다.
“ 오늘따라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황녀전하에, 마탑주에, 마법사님까지…. 완전 대박 끝장나게 대단….”
“ 아니까 떨어져.”
소박맞는 부크를 지켜보다 비숏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나를 ‘저기…’라며 부르더니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하나 물어왔다. 이름 부르면 되겠지 뭐. 소개도 할 겸 라테 엑트리라고 말해주자 비숏이 고개를 끄덕인다.
“ 예, 라테 님.”
“ 님은 무슨. 그리고 굳이 존대 할 필요도 없어요.”
최소 외관은 나-라테-보다 열 살 이상 많아보였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닙니다. 탑주님과 서로 말을 놓는 사이시지 않습니까. 존대를 들으셔야합니다.”
거기다 제 생명의 은인이시기도 하구요. 비숏이 덧붙였다. 그렇게나오는데 나도 굳이 더 반말을 권유하진 않았다.
어쨌든 상황이 대강 정리됐으니 다시 원초의 목적지인 맛 집으로 향할 땐가. 셋이 된 인원으로 우리는 식당을 찾아 이동했다. 걸어가는 길에 나는 문득 든 혹여나 하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 작품 후기 ============================
비숏 을(를) 얻었다!
+
슬럼프 온 거 아니었나봐요(안도)
다들 감사합니당 (하뚜)
++
~즐거운 명절~
막내: (평소 엄마만 일하는 것이 불만이었음) 아빠 설거지해!
아빠: 뭐래ㅎ 너나 해
막내: (아빠를 부엌으로 강제로 끌고간다) (부엌에 밀어넣고 입구를 막음)
아빠: ! (다시 나오려고 함)
막내: (몸으로 막음)
아빠: 가시나야 비켜!
막내: 히히 못가!
나: 역시 막내는 아빠 일시키는 재주하난 좋단말야 천재적이야
엄마: 호호호^^
결국 아빠는 그날 설거지를 하셨다. 해피엔딩.
할머니: "-" (명절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큰아들의 뒷태를 지켜보는 할머니의 동공지진)
+++
쓰다보니 은근 후기에 가족얘기가 많네요'-' 갠지에 부록으로 엘리아냥네 패밀리 스토리 같은 걸 넣어볼까나 ㅇㅅaㅇ 후..그리고 동생(막내) 헤어져
++++
검은고양이님, 허롱님, 부산사람님, 슈거김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XD!
답례의 애교를 보여드리게써요.
일더하기일은 기여미 >_< ! 이더하기 이는 4
"-"
아이시떼루! (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