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39화 (39/100)

00039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적막하던 사위는 이후로 조금씩 부산스러워졌다. 어디서 난 건지 굵은 포승줄로 복면들을 한데 묶느라 기사 둘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게 보인다. 여인들도 그를 돕느라 저마다 손발이 분주했다. 여럿의 수고 끝에 복면 떼가 줄줄이 굴비마냥 끌고 가기 딱인 꼴로 엮였을 무렵, 케니스는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검은 사신이 떠났다. 그리고 그가 떠난 빈자리는 금세 남은 이들의 두런거림으로 채워졌다. 그들은 케니스의 작별 없는 ‘나 먼저 감’마저 멋있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하, 이 양반들 콩깍지도 차암.

“ 어쩜 저렇게 대단하실까요?”

“ 소문보다 더 멋있으셔요.”

“ 저 아까 쓰러질 뻔 했다니까요?”

“ 장담컨대 대륙의 그 누가 덤벼도 각하의 상대는 되지 못할 겁니다.”

“ 흑흑 진짜 멋있어.”

“ 조금 전부터 심장에 무리가….”

“ 각하! 절 가져주세요!”

“ 사랑해요!”

난리였다.

나는 찬양을 넘어 이곳에 없는 상대에게 사랑까지 고백하는 내 팬-조금 전까지만 해도-들을 ‘어머 저기 저 사람들 좀 봐’하는 행인의 기분으로 구경했다. 팝콘 어딨어 팝콘. 여기 팝콘 나오라 그래!

복면들이 난입하는 바람에 끊겼던 종전의 열기가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전엔 병풍처럼 서있을 뿐이었던 기사들이 이번 담화엔 몸을 던져 참여중이라는 정도랄까. 와 저 기사 목 터지겠다. 남팬이 더 적극적이라더니. 주인이 바뀐 팬미팅은 그 법석임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난 언제 왔는지 지척에서 멍 때리고 있는 부크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입은 얌전하지만 표정은 저 별나라였다. 그래, 너도 가입했구나. 케니스 팬클럽.

한참 뭘 생각하는가싶던 부크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을 뱉었다. 손가락은 제 물 빠진 회색머리를 한 줌 솎아 잡은 채였다.

“ 전장의 검은 사신이라니…햐, 너무 멋있는데요? 선생님, 저도 별명 하나 만들까요? ‘출판사의 잿빛 사신’ 이걸로.”

난 대답대신 가만히 웃었다.

자살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였다.

*

왁자함은 황녀언니가 손수 나서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을 선언한 후에야 가라앉았다. 그녀는 떠나기 전 정식으로 내게 본인을 소개한 뒤 손수건을 한 장 건네주고 사라졌다. 붉은 장미가 성심껏 수놓아진 흰 손수건은 달려있는 레이스마저 고왔다. 이거 얼말까. 알아봐야 쓸모없는 손수건의 가격 따위를 흘리듯 추측하며 나는 황녀가 남기고 간 말을 떠올렸다.

‘ 로즈, 귀족이죠?’

옷차림의 부내정도를 따진 건 아니랬다. 무의식적인 손짓이나 걸음걸이 같은 행동에서 그것이 묻어나왔단다. 기실 내가 뚝심 있게 대한민국에서 하던 대로 걸어 다니고 움직였다면 매일같이 유모 및 부모님에게 달달 볶이느라 피곤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름 모범생이었던 나는 라테가 들었어야할 유년기의 예법수업도 착실히 이수했다. 당시엔 영화에서나 보던 귀족아가씨가 된 느낌에 나름 재미있기도 했고.

황녀는 저리 말하고 본론을 덧붙였다.

‘ 나를 만나러 와주었으면 해요. 그건 초대장이에요.’

손수건의 귀퉁이엔 장미 외에 황가의 문양도 새겨져있었다. 나는 원작에서 이벨린이 황태자에게 이와 비슷한 손수건을 받았던 것을 기억했다. 허헛, 나 뭔가 요상하게 인기쟁이네. 황녀는 단순히 팬과 작가를 넘어 내게 개인적인 친분을 원하는 것 같았다. 후…이런이런, 결국 조연의 시대가 와 버린 건가!

부크는 황녀가 떠난 이후부터 방금까지 쉬지 않고 ‘역시 선생님입니다’며 호들갑을 떨어대다 잠시 쉬는 시간인 듯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대뜸 안부를 묻는다.

“ 괜찮으십니까?”

“ 뭐가?”

“ 아까 목에…복면 쓴 놈이 칼….”

“ 아, 그거.”

나는 기특하다는 낯으로 웃었다.

“ 그걸 이제 물어봐?”

“ …….”

“ 진짜 빨리 물어본다, 그치.”

“ 죄, 죄송….”

“ 그리고 괜찮아. 멀쩡해.”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난 목을 매만졌다. 부크의 뒤늦은 염려가 무색할 만큼 탈이 없는 건 사실이라, 목을 만진 것도 별 뜻 없이 한 행동이었다. 물론 목덜미에 닿았던 차가운 감촉은 다시 느끼고 싶은 종류는 아니다. 나는 지나치게 방심했던 내 실책을 인정했다. 케니스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스크롤을 너무 믿었다.

나는 간혹 내가 이 세계의 일원이란 걸 잊는다. 언제까지나 관조자일 것만 같았다. 단순히 이 곳이 소설 속임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인가? 매번 속 시원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굳이 이것을 오래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임의의 결론을 낸다. 야수의 꽃이 나름의 엔딩을 맞이할 때까진 스크롤이나 찢으면서 지금처럼 지내자고. 구경하고, 눈 호강하고, 나야 좋구나!

혼자만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만 돌려 시선을 주자 부크가 제자리에서 쭈뼛거리고 있다. 뭐여.

거기서 살 거냐고 재촉하자 부크가 면목 없다는 낯으로 집게를 잃어버렸음을 실토했다. 집게? 아, 성검 철 집게. 그러고 보니 여기 오는 길에 가발을 쓰면서 그걸 부크에게 맡겼었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게 뭐 중요한 일이라고. 난 소심한 부크를 질질 끌고 남은 계단을 내려왔다.

건물 내에서 이동스크롤을 쓰지 않은 것은 에드지의 맛집에 대한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기왕 멀리까지 왔는데 맛이라도 보자 싶었다. 은근히 여기 사람만 아는 변방의 명물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허기진 위장이 부추기는 기대감을 안고 막 건물 밖으로 몇 걸음 내딛은 때였다.

어디서 많이 본 실루엣이 막 지나치다 멈칫한다. 어? 나 쟤 아는데.

“ 고객님?”

그리고 쟤도 날 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잠깐 사라지더니 지척에서 다시 나타난 인영을 응시했다. 아윈이잖아! 뭐지? 여기 만남의 광장인가? 이벨린이야 하루가 멀다 하고 겪겠지만 나는 뭔가 싶어 눈을 비벼야하는 우연이었다. 내가 모르는 새 에드지가 유명 관광지가 됐나. 그럴 리가.

“ 희한하네.”

“ 뭐가? 고객님 얼굴이?”

“ 아니…갑자기 왜 남의 얼굴을….”

“ 그나저나 이런데서 뭐해?”

대꾸무시하고 지 할 말만 하는 게 사람 빡치게 하는 맛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상대는 또라이 마탑주이며 결코 개겨선 안 되는 상대임을 세 번쯤 상기하고 입을 열었다.

“ 약속이 있어서. 그러는 너는 여기 뭐…."

하러 왔냐는 내 물음은 나오다말고 도로 들어갔다. 눈앞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윈은 오른손으로 웬 사람의 목덜미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 그거 누구셔?”

짙은 고동색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했다. 골격을 보아 남자인 듯한 이는 아윈에게 뒷덜미를 붙잡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저 사람 잡으러 에드지까지 온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건 시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 물음에 목 잡힌 사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인 듯 노안인 듯 구분가지 않는 남자였다. 그는 조심스레 눈알을 굴리더니 패기 넘치게 마탑주에게 반말중인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눈빛에 담긴 간절한 메세지가 어째 절로 읽히는 것 같았다.

살려 주세요.

============================ 작품 후기 ============================

라테: ㅎㅎ; ㅈㅅ ㅂ2

+

글이 너무 안써져서 8ㅁ8 진짜... 슬럼프라도 온 줄....8ㅁ8 제발 아니길...아니야..아니야!!!8ㅁ8!!!빼애애ㅐ애액

++

동생: 있자나 어제 부산여행을 다녀왔는데 남친이^0^~~(남친자랑)(남친자랑)

나: 헤어져

아빠: 헤어져

동네 개: 헤어져

+++

련하원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_< 나 꿍꼬또! 후쿠받는꿍꼬또!

(련하원님: 조아라측에 후쿠 환불 문의를 넣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