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3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어느 정도는 개겨도 죽을 걱정이 없어졌다는 게 기쁘긴 한데.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계단을 오르며 왼팔을 내려다봤다. 여길 붙잡고 아윈이 텔레포트를 했었지. 졸지에 마탑주가 손수 배웅해준 영광의 조연이 됐다. 근데 얘는 무슨 귀족영애 맨팔을 길가 돌멩이 건드리듯 망설임 없이 잡고 그런담. 물론 아윈에게 내 이미지가 숙녀보다 돌멩이에 가깝다는 사실은 알지만…음…갑자기 눈물이.
팔목을 감쌌던 잠깐의 온기를 떠올리다 나는 문득 이동할 때 멀미가 전혀 없었던 것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텔레포트로 이동했는데 예의 어지럼증이 아예 없었다. 어, 이거 신기한데. 이런 것도 마법천재랑 관련이 있나? 난 아윈의 곁에 붙어있으면 부작용 없는 쉽고 빠른 대륙일주가 가능하겠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옷을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피로도 풀 겸 에슐라가 준비해준 물로 족욕을 하고 있는데 릴리-저택의 하녀-가 내게 알려왔다.
“ 아가씨,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나한테?
찾아올 만한 사람이 있었나. 나는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스스로의 협소한 교우관계에 갸웃하며 대야에 담그고 있던 발을 뺐다. 물기를 닦고 실내화를 신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상념과 함께 손님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둥실 떠올랐다. 카노? 부크? 하지만 둘 다 여기까지 방문할 이유가 없는데. 그리고 곧 응접실에 도착해 손님을 확인하자마자 난 놀라 눈을 껌벅였다.
“ 이벨린?”
“ 아, 라테.”
여상한 차분함으로 앉아있던 이벨린이 나를 발견하고 말갛게 웃었다. 나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에슐라가 타이밍 좋게 차를 내온다. 앞에 놓인 홍차의 향을 맡으며 내가 물었다.
“ 여긴 어떻게?”
“ 각하께서 데려다 주셨어요.”
각하라면 케니스렷다. 딱히 여기까지 뭘 타고(?)왔냐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케니스가 똥씹은 기분으로 이벨린을 이곳에 데려다줬을 걸 상상하니 기분은 흡족했다. 나는 다시 웃는 낯으로 물었다.
“ 그렇군요. 그런데 웬일이에요?”
“ 아까 그렇게 헤어지고 걱정이 되어서요.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 아아.”
역시 천사표 여주인공. 나는 내가 걱정돼서 여기까지 행차했다는 그녀의 말에 화답하듯 미소했다. 다친 곳이야 당연히 없긴 한데.
“ 각하말로는 라테가 스크롤을 사용했다고 들었어요. 무사할거라고는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낌새를 보아하니 오크 퇴치는 생략하고 텔레포트스크롤을 쓴 것만 얘기한 듯 싶었다. 나는 잠깐 입을 다물고 대답을 고민했다. 뭐라고 말할까. 곧이곧대로 ‘야레야레~이 몸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다구? 그러니 더 이상의 걱정은 스탑, 베이비☆’라고 말해주기엔 왠지 배알이 아팠다. 케니스를 엿 먹이고 싶다. 난 차를 한 모금 넘기며 시간을 끌다 입을 열었다.
“ 별 일 없었어요. 그냥….”
“ 그냥?”
“ 하늘을 막 날고….”
나 말고 오크가.
“ 네?”
“ 호흡곤란을 일으키다 찬 바닥에 쓰러지고….”
심장병 연기하느라.
“ 네에?”
“ 겁에 질려 파란 안색으로 도망치고….”
나 말고 공갈단이.
“ 네에에?”
“ 막 쌍욕도 듣고….”
나 말고 간달프가.
“ 어떻게 그런…!”
이벨린이 경악하며 제 입을 가렸다. 내가 늘어놓은 온갖 고난 및 수련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갖은 고초에 너덜너덜해진 역경만화 주인공 같은 얼굴로 씁쓸하게 웃었다. 가라, 메소드 연기! 바람 빠진 행사장 풍선처럼 축 늘어져 그녀를 응시하니 이벨린이 분노에 찬 기세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 한마디 해야겠어요.”
“ 아니에요, 이벨린. 괜히 저 때문에….”
내가 함께 일어서며 만류-하는 척-하자 이벨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쾌차하라는 말을 남기고 바깥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이벨린의 전투적인 발걸음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녀를 배웅했다. 사요나라 케니스. 너는 평소 여주인공의 친구를 소중히하지 않았지.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남은 홍차를 비웠다. 한동안은 케니스 피해 다녀야겠다.
가벼운 걸음걸이로 방에 돌아와 이번에는 과일을 즐겼다. 당도가 적당한 블루베리를 씹어 삼키며 새파랗게 변했을 혓바닥 따위를 상상하는데 릴리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 손님이 오셨어요.”
또?
오늘 무슨 날인가. 나는 꼭지를 딴 딸기를 하나 입에 넣고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입에 든 것을 우물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꼴이 유모가 보았다면 어김없이 잔소리를 쏘아줄 법 했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오늘도 바빴다. 난 혀에 남은 딸기의 단맛을 음미하며 응접실 문을 벌컥 열었다.
“ 아, 선생님!”
“ …….”
“ 잠깐만요, 선생님! 닫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문 닫고 도로 올라가고 싶다. 난 간절히 호소하는 부크를 귀찮은 눈길로 쳐다보다 의자에 가 털썩 앉았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딱히 글 관련으로 전달받을만한 사항이 없었다. 있다 쳐도 멀쩡한 전서구를 놔두고. 왜 온 거야?
“ 뭐.”
“ 드릴말씀이 있어서요.”
“ 뭔데? 올셀.”
부크는 대부분의 정보와 용건을 서찰을 통해 전했지만, 간혹 지금처럼 직접 찾아올 때도 있었다. 대체로 글로 남기는 것이 더 위험한 은밀한 이야기-19금 외전 요청이 폭주하고 있어요 등-이거나 한시가 급한 사안에 한해서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그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친척 형 ‘올셀’의 신분을 빌렸다. 우량고객-눈가림용으로 책을 여러 권 사 모았다-인 내게 희귀도서나 원하던 신간이 입수되었음을 알린다는 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묻자 부크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 애독자 만남회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애독자 만남회?”
“ 예. 선생님의 애독자, 즉 팬 분들 여럿과 선생님이 직접 만나서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건데….”
팬미팅이잖아?
여기에도 그런 게 있구나. 나는 일단 알아듣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걸 왜 여기까지 와서 은밀하게 말하고 난리야. 타박하려 입을 여는데 부크가 한 박자 빨랐다.
“ 날짜가 내일입니다.”
“ 장난하냐?”
이게 하루전날 통보를 해? 내가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자 부크가 면목 없다는 듯 몸을 비비 꼬았다. 아, 잠깐, 아. 내 눈.
“ 죄송합니다. 이게 저희도 예정에 없던 거라…. 그리고 장소가….”
“ 어딘데 뜸을 들여?”
“ 에드지 영지입니다.”
“ …? 뭐?”
잘못들은 줄 알았다. 내가 미간을 팍 구기자 부크가 재차 어쩔 줄 몰라 했다. 자기네 간판작가를 맹인으로 만들고 싶은 건지 다시금 베베 몸을 꼬는 흉한 작태를 응시하다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 아니, 에드지 영지?
에드지는 그야말로 변방 중에 변방이었다. 여기서 마차를 타도 족히 일주일, 아니지, 보름은 걸리는 거리였다. 산맥을 끼고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소도시는 교통편이 불편한터라 왕래도 적었다. 보통 수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늙어죽을 때까지 가볼 일 없을 특색 없는 변방의 영지.
나는 부크의 갈색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얘가 꿈을 꾸나.
“ 내일 있을 팬미팅, 아니 애독자 만남회를 여기서 보름은 걸리는 에드지 영지에서 하겠다고?”
시간을 달리는 청년이니? 내가 돌았냐는 시선을 보내자 부크가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 만남회의 자금을 댄 쪽에서 스크롤을 제공했어요. 에드지 까지 곧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고요.”
“ 허?”
덧댄 설명은 외려 그게 더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텔레포트라지만 에드지 영지는 결코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못된다. 못해도 장거리 스크롤 두 세장은 필요했다. 그걸 제공을 해?
“ 누군데? 이름난 상인의 딸이거나 대부호의 딸이거나, 뭐 그래?”
“ 신분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얘기를 전하러 온 사람이…기사였습니다.”
그것도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제 호위로 고용한 이가 알려줬다며 부크가 소곤거렸다. 기사를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사람이라. 난 자세를 바꿔 몸을 앞으로 숙여 턱을 괴었다. 정식기사는 대부분 귀족이었다. 출신이 평민이더라도 기사딱지를 다는 순간 준귀족으로 대우받는다. 그런 이를 용건이나 전달하러 보내는 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평민에겐 무리였다. 최소한 귀족, 그것도 꽤나 지위가 높은.
“ 역시 내 팬이야. 레벨이 다른데?”
난 장난처럼 중얼거리며 턱을 괸 손을 바꿨다. 부크가 예까지 꽁지 빠지게 달려온 이유를 알겠다. 내 독자들 중 귀족이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한정판 프리미엄을 붙여 엄청난 고가에 내놓은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었다-이번처럼 만남을 주최할거란 예상은 못했다. 게다가 위치는 또 왜 그리 변두리인지.
부크가 똥줄이 탄다는 얼굴로 ‘하실 거죠? 하실 거죠?’하고 연달아 물어왔다. 나는 몰라도 귀족의 눈 밖에 난다는 건 그에게 타격이 큰 일이리라. 나는 안심하라는 의미로 부크의 곱슬머리를 개 쓰다듬듯 헝클였다. 할 테니까 쫄지 마련?
어차피 나도 궁금하니까. 왕복을 스크롤로 한다면 팬미팅에 빼앗기는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았다. 그 정도면 뭐. 그나저나 보통 팬미팅에선 무슨 얘기를 한담? 나는 다른 방향으로 고민을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_< (결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표정으로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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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신설된 '도담도담'이라는 작가연합의 멤버가 되었습니다:D ☆
도담도담 식구분들은 총 저를 포함 아홉분으로
1. 그린그림 (고요의 숲, 베토벤 환상곡)
2. 꿀느님 (원피스 패러디: 약속의 요리법)
3. 대딩의 삶 (그냥 닥치고 뛰어라, 토사구팽)
4. 벗뜰 (평범해지렵니다)
5. 에클레어 (아르델의 부부사기단, 가시꽃과 원숭이,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6. EKAH (대공 전하의 모든 것, 더블 로열)
7. 초화 (블랙스피넬)
8. 쥬키리아 (후작부부)
9. 엘리아냥 (검은머리 황녀님, 구경하는 들러리양)
작가분들께서 요로코롬 함께하고 계세요!
(박수를 치며 레드카펫을 깔아본다)
도담도담의 카페주소는 http://cafe.naver.com/dodamwriters
7월 15일부터 가입승인이 되고, 우선 베타테스트로 독자분들 30분만 받아 운영해볼 예정이랍니다. 문제없이 굴러간다 싶으면(!) 그 후로도 주기적으로 독자분들을 추가로 받을 계획이에요^.~
(※카페 가입 나이제한은 19세입니다)
(※추가. 베타테스트를 인원을 선착순으로 받게 되었습니다ㅜㅜ미리 말씀드리는 걸 잊었어요 죄송해요! 신청을 하셨으나 승인이 안되신 분들은 다음 승인날짜에 가입이 되신답니다!)
카페에 가입하신다면 종종(가뭄에 콩나듯)올라오는 제가 중1~2 시절에 쓴 흑염룡이 미쳐날뛰는 헌터헌터 패러디 습작이나, 작품 관련 안 관련 개소리 뻘소리 안 궁금한 저의 사는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강제로 작가의 사적인 부분들을 알게 돼버렷...!!) 이런, 예고만 들어도 벌써 눈이 썩는 것 같으시다구요? 걱정마세요! 다른 대작가분들께서 올려주시는 양질의 컨텐츠들로 오염된 눈을 씻을 수 있으니까요^_<~☆(찡긋)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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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고양이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ㅁ@ 으앙ㅇ엉 조아라 오류난 줄;;ㅁ;;; 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