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32화 (32/100)

00032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그리고 나는 스크롤 두 장을 얻었다. 텔레포트 스크롤. 둘 모두 엑트리 자작저 근처로 좌표가 잡혀있었다. 하긴, ‘로즈’의 집을 알고 있을 테니. 대수롭지 않게 스크롤을 챙기는 나와 달리 간달프는 입을 떡 벌렸다.

“ 바, 방금 만드신 겁니까?”

“ 응.”

별 것 아니라는 듯 긍정한다. 난 자세히는 몰라 간달프의 경악에 동참하기 어려웠지만 대충 아윈이 남주인공답게 먼치킨스러운 면모를 보여줬다는 것 정도는 짐작 할 수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3분 카레마냥 3분 스크롤 만들기를 못하나보지. 생각하는데 간달프가 억울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아니, 이렇게 금방 만드실 수 있으면…직접 하시면 되지…우리는 좌표 새기고 마나 불어넣는 데만 하루 종일…막 개고생…진짜 생고생…….”

소심하게 볼멘소리를 웅얼거리는 간달프를 보고 있자니 첫 대면 때 느꼈던 넘치는 덕망이나 인자함등의 현자스러운 이미지가 어쩐지 폭망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애잔함은 뭐지…. 할아버지가 아니라 울애긔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아윈의 대꾸는 그러나 이처럼 가녀린 항변에도 가차 없었다.

“ 너네가 하도 마나를 모자라게 다루니까 일 좀 하면서 늘리라는 거 아냐. 마법 발로 배웠어?”

“ 그, 그런…맞는 말이긴 하지만. 흑흑….”

난 충격으로 눈을 부릅떴다. 아윈이 간달프를 울렸다! 아윈이 노인을 울렸어! 아윈이 할아버지를…! 강렬하게 느껴지는 패륜의 향기에 나는 아찔해졌다. 이 상황을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내면의 넘치는 정의감이 외쳐댄다. 난 결연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극진한 대우를 약속받은 우량고객의 입장으로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줘야겠다. 아윈, 야! 귀 파고 똑똑히 들어라!

“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건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한, 아니, 합니다.”

아이 따끔하다.

나는 따끔함이 지나쳐 마치 실크 같은 훈계를 내뱉은 스스로의 입을 매우 처때리고 싶었다. 존댓말은 왜 또 다시 쓴 거니. 아니 물론,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뱉었다간 죽을까봐 무섭긴 했어. 솔직히 남의 10년 인생 구제하려다 내 80년 인생을 날려먹는 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 안 그래? 하하 그냥 말을 말걸….

뒤늦은 후회로 내게 회귀능력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데 아윈이 나를 깨우듯 툭 말을 던졌다.

“ 없는데?”

“ 어?”

“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 여기 없다고. 고객님.”

응?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간달프를 돌아보았다. 간달프는 조금 전보다 한층 굵은 눈물줄기를 흘리고 있었다. 어?

“ 저를 생각해주신 거지요…? 마음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근데 저…사실 이렇게 생겼어도 관에 들어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

왈칵.

간달프는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그가 사라져간 자리에는 잠깐의 온기와 은하수같이 반짝이는 눈물방울만이 남아있었다…. 는 뭐야 이거.

“ 설명 좀?”

“ 쟤 스물다섯이야.”

“ 워.”

스물다섯? 나는 도저히 일흔 밑으로는 보이지 않던 간달프의 외모를 떠올렸다.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지는 깊은 주름과 눈 내린 듯 성성한 백발. 이건 노안으로 납득될 만한 수준이 아닌데. 내가 혼란스러운 눈빛을 하자 아윈이 내 동공지진에 대고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소싯적…아니, 어렸을 때 실수로 남이 만들어놓은 마법소환진을 잘못 가동시키는 바람에 저 꼴이 되었다고 한다. 소환당한 대상이 하필이면 힘깨나 쓴다는 마물이라 저를 소환한 이의 마나가 보잘것없는 것에 분노하여 저딴 저주를 걸었다고.

와 너무행…. 마물 개나쁘네. 그야말로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사연이었다. 그 뒤 저주를 풀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마법진까지 소멸되는 바람에 간달프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희망으로 마탑에 들어와 현재는 이런저런 탑 내부 일을 하면서 그때의 마법진을 재현하기위해 연구 중이라는 것이다. 그렇군.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다 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점을 뱉었다.

“ 너도 그 저주 못 풀어?”

“ 설마.”

같잖다는 얼굴이었다.

“ …왜 안 풀어주는데?”

“ 쟤가 저래 봬도 일을 잘해. 오래 일 해야지.”

“ …….”

이 새끼가 제일 너무하네.

차라리 저주를 풀어줄 테니 평생 여기서 일하라고 하던가…아, 그건 그거대로 너무하구나. 어느 쪽이든 간달프의 미래는 영 밝지 못하다. 부디 아윈이 간달프의 눈물겨운 노안탈출을 방해라도 안하길 바랄뿐이었다. 힘내, 백발친구.

나는 속으로 간달프의 앞으로의 나날에 파이팅을 외쳐주고 주섬주섬 갈 채비를 했다. 채비래봤자 방금 받은 스크롤 중 하나를 꺼냈을 뿐이지만. 본래 목적이었던 스크롤 보상도 받았겠다 이제 집에 가야지싶어 자세를 잡는데 아윈이 내 행동을 막았다. 찢으려는 스크롤의 선단을 잡는다.

? 뭐지. 스크롤 사용을 방해하는 아윈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보다 나는 대뜸 말했다.

“ 내가 좋아서 보낼 수 없는 건 알겠지만, 너무 집착하진 말아줄래? 나는 만인의 연인이라 집착해봤자 소용없단다. 난 소유할 수 없는 바람 같은 여자야.”

물론 헛소리였다. 꽃미남이 내게 집착한다면 나는 두 배쯤 그에게 더 집착해줄 의향이 있었지만, 그만의 연인을 넘어 그만의 스토커가 되어줄 자신이 있었지만 그건 아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뭐 애초에 해당될 수가 없다. 아윈이 내게 집착하는 건 그가 광산주인이고 내가 도망친 광산노예일 때나 가능한 전개일 테니까. 아오…굶으면서 채찍질당하다 도망치는 광산노예 다메요.

아윈은 이 와중에 내 말을 유우머 취급했다.

“ 조금 웃겼어.”

응. 어째 기분이 좀 더러운데 정상이겠지?

아윈은 조금 기특하다는 얼굴로 나를 마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개그맨지망생 여기듯 쳐다봤다. 나 장래희망 개그맨 아닌데…. 왜 쟤는 내 이미지를 저따위로 잡은 거야.

“ 가상하니까 선물.”

“ 뭔 선….”

슉.

“ 헐.”

선물이라고 말하며 아윈이 내 팔을 잡아챈 거의 동시였다. 살인마 꽃미남이 내게 스킨십을 한 것에 무서워해야하는지 설레어야하는지 미처 갈피도 잡기 전 내 몸이 이동했다. 물론 아윈도 함께. 나는 순식간에 뒤바뀐 주변을 둘러보고 눈을 크게 떴다. 우리집근처잖아.

이동이 끝나자 아윈이 손을 뗀다. 그가 말했다.

“ 고객님, 참고로 마탑 내에서는 텔레포트 못 써. 스크롤도 물론. 전대 마탑주가 마법진을 깔아서 막아놨거든.”

아, 그래? 그래서 내가 스크롤 쓰려할 때 막았던 거구나. 하마터면 쌩 스크롤 날릴 뻔했네. 난 그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모순점에 멈칫했다. 야 그럼 니가 쓴 건?

의문을 뱉으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물음을 읽은 건지 아윈이 표정으로 대답하는 게 보였다. 같잖다는 얼굴. 와 저거 오늘만 벌써 두 번째네. 내가 마법사였다면 목숨 걸고 저 놈의 죽빵을 때리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넌 대체 같잖지 않은 게 뭐니?

“ 그럼 고객님, 잘 들어가. 앞으로도 스크롤 많이 사고.”

최대한 띠꺼운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데 아윈이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왠지 마지막 말이 핵심인 것 같은 느낌은 뭘까. 나는 평생 버는 돈을 족족 마탑으로 자동이체 시키는 상상을 하다 고개를 흔들고 저택으로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긔엽고 가녀린 간달프 쨔응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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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주의보가 와서 어제오늘 일을 쉬었어요. 겁도 없이 친구들 만나러 나갔다가 다음날 아침 8시에 집에 들어옴..^0^..한동안은 휴일이 생기면 방콕을 해야게따고 생각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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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하셔서..제가 하는 일(알바)은 나레이터모델 이랍니다! 비가 억세게 오면 행사취소잼'-' 오랫동안 오면 실업자잼..."-"

내일부터는 한동안 쭉 바쁘다는 말을 들어서 ㅠ0ㅠ 다음편은 좀 늦을 지도 몰라요! 안 올라오면 아 이 인간 휴일없이 일하고 있구나 생각해주세여;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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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엘리스님, 채꼬지님, qkrtjdus77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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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푸딩님ㅋㅋㅋㅋㅋㅋㅋㅋ저번화 댓글보고 숨넘어가게 웃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흑토가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흑나무늘보<<넘사<<흑토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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