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29화 (29/100)

00029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 맞아! 맞네! 저 너무한 머리털!”

옆에서 연애에 서툰 공갈단 멤버가 박수까지 치며 한술 더 떴다. 아나 상처….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진짜 너무한 건 건 네 정신 나간 ‘들어드릴게요’ 유우머다. 이 혓바닥이 너무한 놈아.

공갈단은 아리따운 가게주인에게 구애를 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잊은 듯 내게 완전히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상태-아 열받네-로 나를 확신한 그들의 낯엔 하나같이 충격이 가득했다. 하긴, 그럴만하다. 종전의 내 연기가 어디 좀 완벽했어야지. 만약 내가 목격자였다면 있지도 않은 핸드폰을 찾으며 119에 신고하려고 난리를 떨었을 거다.

가게주인은 상황을 모면해보고자 임기응변으로 팔아먹은 손님이 예상외로 패거리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에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러나 슬슬 흉흉해지려는 분위기도 함께 느꼈을 테다. 얼떨떨해하는 기색 뒤로 불안감이 더불어 엿보였다. 나는 한 떨기 꽃처럼 가녀린 그녀에게 윙크와 함께 믿음직한 대사를 날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걱정 말아요, 예쁜 언니! 저 이제 곧 바람과 함께 사라질 거니까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이건 빼고.

“ 쟤가 진짜 아까 그 시체란 말야? 근데 시체가 어떻게 움직여…접시 보니까 타르트도 처먹었네…. 죽은 게 아니야?”

“ 그걸 꼭 말해야 아냐? 딱 보면 몰라?”

“ 저년이 지금 우릴 갖고 놀은 거잖아, 시X!”

“ XXXXX!!!”

누가 양아치들 아니랄까봐 공갈단은 심의삭제 수준의 쌍욕을 걸출하게 뱉으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기류에 놀란 가게주인이 딸꾹질을 하는 게 보인다. 에구, 우리 주인언니만 불쌍하지. 얼른 사라져줘야겠다. 나는 품안에서 잽싸게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잘 구매한 게 맞다면 설정된 좌표는 집 근처 공원일 터다. 나는 이만 간다, 안녕! 너네들은 계속 거기서 듣는이 없는 욕이나 늘어놓으렴. 즐거운 쉐도우 복싱되세요. 양아치들아 사요나라!

찌익!

“ …….”

“ …….”

“ ……?”

?

응?

이게 뭐지. 마법이 발동하질 않는다. 분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스크롤을 두 쪽으로 찢었는데 있어야 할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틀림없이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했는데 나는 여전히 타르트 가게 안이고 욕이나 하던 공갈단도 여전히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항이람. 저기, 스크롤씨? 정신 차려요. 저 지금 당장 이동해야하는데요. 저기요? 뭐야 이거.

난 당황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손에 든 스크롤을 망연히 내려다봤다. 명백히 수십 골드를 지불하고 산 고급 스크롤이 잔망스럽게도 평범한 종잇조각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아니 뭐야. 이게 뭐야. 얘 설마 불량? 진짜? 정말 불량? 내가 지금 중국산 스크롤을 찢었다 이거야?

공갈단은 열성적으로 토하던 쌍욕도 멈추고 가만히 날 응시하고 있었다. 반으로 나뉜 종이를 붙잡고 넋이 빠져있는 나를 잠자코 쳐다보다 이내 뭔가 느끼는 게 있었는지 자기들끼리 숙덕댄다.

“ 쯧쯧….”

“ 많이 아픈가보네.”

“ 하긴, 시체연기를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

“ 이 근처에 수용소가 있었나?”

“ …….”

아 내 혈압. 내 돈. 내 간지-나는 퇴장-….

이런 전개는 진짜 상상도 못했다. 스크롤이 불량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만약 내가 모르는 이에게 스크롤을 구매했다면 사기를 의심했을 거다. 하지만 구입처는 예전부터 늘 가던 단골 가게였다.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전문 가게. 결국 스크롤이 정말 불량이라는 얘긴데…. 내가 소설 속에서까지 가짜 빼고 다 가짜라는 중국의 향기를 맡게 될 줄이야.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가장 쉬운 건 그냥 다른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찢는 거지만, 문제는 자작저 근처로 좌표가 설정된 스크롤이 한 장 뿐이었다는 거다. 내가 방금 찢은 게 끝. 나머지는 광장으로 잡혀있는 것과 좀 전에 운 좋게 주운 게 다였다. 아, 그러고 보니 장거리 텔레포트 스크롤 좌표 모르는데. 어디지.

“ 정신이 오락가락한 건 불쌍하지만, 그래도 혼은 나야지.”

“ 맞아. 감히 우릴 농락해?”

“ 우리 꼴을 우습게 만든 죄는 크다, 이년아.”

공갈단은 연민의 시간을 끝냈는지 다시금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곧 덤벼들 판이다. 어쩔 수 없지. 마음 같아선 쟤네를 바깥으로 끌어내 공격마법이나 마음껏 갈기고 싶지만 방법-밖으로 끌어낼-이 없으니 참는다. 나는 여분의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려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 쟤 또 뭐 하는데.”

“ 알게 뭐야, 일단 한 대 쳐서 끌고 올게!”

헉. 말처럼 진짜 칠 모양인지 한 놈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누차 얘기하지만 가게는 좁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건 순식간이었고, 덕분에 난 스크롤을 확인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이 선착순으로 손에 잡히는 걸 찢어야했다. 아오 이 인정머리 없는 놈. 다른 악당들은 주인공이 변신하는데 몇 분씩 걸려도 다 기다려 주더만.

찌익.

“ ?!”

제대로 찢은 모양이다. 환한 빛 무리가 나를 감싸는 것과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던 풍경이 흐릿해졌다. 아차, 그러고 보니 욕해줘야 하는데.

“ 야이 병”

슉.

“ 신들아!”

아, 아깝다….

난 어김없이 띵 울려오는 머리를 감싸며 혀를 찼다. 중간에서 잘리다니 아쉬워라.

그나저나 여긴 어딜까. 잡히는 대로 급하게 찢은 스크롤은 적어도 광장 좌표는 아니었다. 뒤바뀐 장소는 낯익기는커녕 처음 보는 곳이었다. 왠지 남의 사유지 같은 느낌이 물씬 드는 평지하며, 내 정면에는 웬 탑이……탑?

나는 마법이 발동되고 쓸모없는 종이로 변한 스크롤을 내려다봤다. 그때 주운 스크롤. 장거리 텔레포트래서 얼마나 장거리인가 했더니 맙소사, 정말 멀었다. 나는 다시 전방으로 눈을 옮겼다. 이거 마탑이잖아?

검은 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건축물이 원기둥모양으로 높게 솟아있었다. 엄청나게 높다. 여기서는 물론이거니와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난다고 해도 꼭대기가 보일 것 같지 않았다. 야수의 꽃 세계관에서 이만한 비주얼의 탑이라면 십중팔구 마탑이다. 손모가지를 걸고 단언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십에 구할 정도는.

“ 으으음.”

그래서 이제 어쩐담. 관광 온 셈 치고 한 바퀴 빙 둘러 구경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한때 열심히 지도를 팠던 내 기억이 옳다면 여기서 자작저까지는 마차로 3일 밤낮이 걸렸다. 이 상황에서 집에 돌아가는 올바른 방법은 엉덩이와 의자가 하나 될 때까지 마차를 타는 게 아니라 광장으로 이동하는 스크롤을 사용하는 거겠지. 어휴 내 피 같은…이라기엔 너무 쉽게 벌긴 하지만 아무튼 소중한 돈이.

ㅡ아니, 잠깐. 생각을 하다 돌연 떠오르는 사실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내가 지금까지 신명나게 소비해온 스크롤들, 전부 마탑에서 제작한 것들 아니었나? 맞을 거다. 그래, 맞다. 마법스크롤은 마탑에서 독점으로 공급하는 물품이었다. 가게는 단순히 판매처일 뿐이고, 그건 즉 스크롤에 문제가 있는 건 마탑의 책임이라는 뜻인데.

‘ 옳거니!’

잘됐다. 온 김에 사정을 얘기하고 스크롤 보상받아야지. 돈을 내고 상품을 구매한 입장에서 이정도 권리추구는 당연하다. 나는 발을 놀려 탑의 입구 앞에 섰다. 대부호의 저택이나 황성처럼 문 앞에 경비병이 서있거나 하진 않았다. 을씨년스럽게 휑한 자리에서 나는 시커먼 문을 마주한 채 손을 들었다. 어디보자, 두들기면 되나?

“ 손님이 오셨군요.”

미처 건드리기도 전에 문이 알아서 스르릉 소리를 내며 열렸다. 끼익도 아니고 스르릉이라니. 나무가 아니라 돌문이었구나. 열린 문 너머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화배우인줄…왜 그 반지 때문에 세상 초토화되는 판타지영화에 나오는 마법사 할아버지.

간달프 할아버지가 인자하게 웃으며 재차 내게 말을 건넸다.

“ 여기까진 어쩐 일로?”

+++덧. 본편과 상관없는 또다른 엔딩. (※병신같음 주의)

<가게주인 엔딩>

마법이 발동하지 않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때였다. 황당한 낯으로 스크롤만 살피는 나와 영문몰라하는 공갈단 사이로 갑작스런 웃음소리가 끼어들었다.

“ 아하하하!”

“ …?”

“ 스, 스위티?”

주인 언니?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갈단의 험악한 모습에 떨고 있었던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즐겁다는 듯 소리내어 웃는 얼굴은 방금까지의 가녀린 자태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어딘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 아, 성공이네. 오랜만에 쓰는 마법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 무슨…….”

“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지켜보고는 있었는데…도망치려 하다니, 그건 안 되죠.”

그렇게 말하는 가게주인의 눈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저 말은…내 스크롤이 효과가 없었던 게 다 주인언니 때문이라고? 즉 언니가 무효화마법 같은 걸 써서 텔레포트 발동을 막았단 얘기? 그런 거?

그러나 충격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 기왕이면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죠.”

훌렁.

“ ?!”

“ !!”

“ 마…맙소사!”

주인언니가 가발을 벗었다. 결 좋은 긴 생머리는 어디로 사라지고 사내다운 짧은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럴 수가. 언니가…언니가 아니었어!

“ 스위티이이이이―――――――!!!!”

연애에 서툰 공갈단 멤버가 눈물을 흩뿌리며 절규했다. 그의 비통함에 나까지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가게 주인은 아예 상의까지 벗어던진 채 완연한 남자의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잔근육이 보기 좋게 자리 잡은 몸에서 수컷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 세, 세상에!”

“ 가발을 벗었는데 어깨가 넓어졌어?!”

“ 가발을 벗었는데 키가 커졌어!”

“ 스…위…티……털썩.”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혼돈의 도가니탕 속에서 유일하게 가게주인만이 홀로 유유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평화로운 낯으로 본인이 초래한 혼돈 파괴 망가를 스윽 둘러보다 내게 눈길을 주었다. 시선을 교환하더니 눈가를 접어 웃는다.

“ 타르트를 아주 게 눈 감추듯 먹더군요. 그 작은 몸으로. 그만큼 맛있었나 봐요? 그때부터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

“ ?!”

나니?

알고 보니 여장변태 가게주인은 반로환동-언제부터 이 미친 야수의 꽃이 무협과 세계관을 공유했는지 모를 일이다-까지 한 100살이 넘는 천재 마법사였다. 얼굴과 몸은 젊다지만 실제나이는 이미 관에 들어갔어야하는 할아버지는 별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문제는 그걸 거부할 힘이 내게 없다는 거다.

천재중의 천재마법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있긴 있다. 물고기 세 마리.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들 중 누구도 나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아마 이 상황을 알지도 못하겠지. 흑흑 이 나쁜 놈들아!

그렇게 나는 타르트가게에서 만난 천재마법사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그래도 미남이라 좀 다행이다.

-끗-

지금까지 구경하는 들러리양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구들은 본편을 완결 낸 뒤 다른 캐릭터 루트를 타는 외전(물론 본편상관無)도 두어개 정도 쓸 예정이에요. 확실하진 않지만. 이벨린 여장 루트도ㅋㅋㅋㅋ생각해 보겠습니다ㅋㅋㅋㅋㅋ물론 이번화 보너스처럼 병신같이 쓰진 않을테니 걱정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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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람님, 크록페일님, 오지치즈님, 검은고양이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3^♡

(기쁨의 댄스) (되도 않는 웨이브) (허리 삐끗) (눕는다) (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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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늦는 이유는 순전히 바쁘기 때문입니다. 멘탈이나 의욕때문이 아니니 걱정마셔요 ㅠvㅠㅎㅎㅎ

잠잘 시간도 모자라서 투잡은 그만둠. (궁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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