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나는 끄응,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스크롤을 사용할 적마다 느끼는 건데 이놈의 어지럼증은 도통 개선되질 않는다. 드럼세탁기마냥 자비없이 빙빙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내린 느낌이랄까. 텔레포트는 다 좋은데-물론 가격은 전혀 좋지 않다-내 기준 이게 가장 단점이었다. 으으 멀미.
숨을 한 두어 번 깊게 들이쉬고 주변을 눈에 담았다. 낯설지 않은 걸 넘어 친숙한 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역시 여기였군. 건국황제의 동상이 세워진 너른 광장. 수도 저잣거리의 중심부인 이곳은 텔레포트 스크롤의 단골 좌표였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지난 이년반 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스크롤 전문 가게가 나온다.
난 사용한 스크롤의 좌표가 광장이 아닌 집근처 공공재였다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가지고 있던 여분을 죄 날린 마당에 가게에 들러 재충전을 하는 건 필수였다. 그리 따지면 잘된 일이다. 마침 조금 전 이치 하나를 실감한 참이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날 지켜줄 사람-및 몬스터 및 생선-따윈 없다는 걸!
조연으로~ 태어나서~ 명줄도 짧다만~.
늘려줄 사람이 없다면 내가 알아서 늘리면 된다. 개사한 군가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나는 익숙한 방향으로 발을 놀렸다. 자, 이제 슬슬 통장을 다시 텅장으로 만들어볼까? 즐거운 쇼핑타임 고고.
나는 돈 쓸 생각에 경쾌해진 발걸음을 콧노래와 함께 내딛었다. 사치는 항상 나를 신나게 한다. 부자인 기분 짜릿해. 이래서 머니 이즈 에브리띵이라고들 하나보다.
가게로 이동하는 동안 난 마음속으로 케니스나 열심히 헐뜯었다. 살면서 두 번은 못 볼 세기의 졸렬킹. 물고기보다 못한 아메바, 플랭크톤. 이 세상 모든 저혈압 환자들을 구제하기위해 내려온 혈압의 요정같은 새끼, 등등.
아는 욕이란 욕은 모조리 쏟아내고 나니 상대를 향한 빡침이 좀 가라앉는다. 나는 한결 개운해진 심정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 앞에서 발을 멈추고 나는 잠시 가게의 화려한 외관을 눈에 담았다. 늘 생각하는 건데 참 고급지게도 생겼다. 마치 ‘거기 서계신 고객님. 혹시 돈 많아요? 부자 아님 꺼져’하고 선언하는 느낌이랄까. 가벼운 주머니로 들어가려했다간 누군가가 잽싸게 튀어나와 ‘니가?’하며 업신여길 것 같다. 아 상상하니 너무하네.
난 저번에 부크에게 받은 돈을 고스란히 들고 나온 스스로를 칭찬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 어서 오세요, 손님. 찾으시는 제품이 있으신가요?”
주인인 다파라가 눈웃음을 흘리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다년간 갈고닦은 솜씨로 순식간에 내 차림을 스캔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별다른 장식은 없어도 원단하나는 꽤나 고급임을 눈치챘는지 맞이하는 태도가 퍽 공손하다. 난 과거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와 한 치도 다름이 없는 그녀의 태도에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저 로즈에요.”
“ …어머, 어머어머! 고객님!”
눈을 휘둥그레 뜬 다파라가 손으로 제 입을 가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그녀가 진작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걸 이해했다. 방문할 때면 늘 습관처럼 챙이 긴 모자를 눌러쓰고 왔었으니까. 온전히 얼굴을 드러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파라는 내 주위를 빙빙 돌더니 갑자기 박수를 막 쳐댔다.
“ 어머나, 어머나! 너무 예쁘시다! 우리 고객님 선녀처럼 아름다우셨네! 어쩜 이렇게 절세미인이실까. 이리 눈부신 미모를 왜 그동안 가리고 다니셨대요? 제국의 꽃이 여기 있네!”
아부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인양 그녀는 술술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좀 민망해진다. 예쁘단 말은 기분 좋아도 김태희 닮았단 말에는 손사래부터 치게 되는 소시민의 양심처럼. 나는 ‘눈이 멀 것 같은 경국지색’까지 나오는 순간 황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밖에서 들었으면 이건 뭐 빼박 수치사.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 ㅡ다파라. 스크롤 좀 보여줄래요?”
“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쪽으로 모실게요.”
다파라는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종종 걸음을 옮겼다. 안내를 따라 층을 올라가자 늘 구매하던 종류의 스크롤들이 줄맞춰 나열되어있었다. 보통은 워낙 고가인 만큼 들고튀는 행위를 방지하기위해 선결제로 거래를 진행했지만, 난 그냥 우량고객도 아닌 초 우량고객이었던 터라 대우가 남달랐다. 나는 세심한 손길로 필요한 것들을 손수 골라냈다.
얘랑, 얘랑, 이거랑…. 그래, 내친김에 얘도.
총 열다섯 장을 골라 준비된 바구니에 담자 다파라의 낯이 환해지는 게 보였다. 관리에 실패해 씰룩거리는 입가가 인상 깊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곧장 대금을 지불하고 스크롤뭉치를 챙겼다.
“ 감사합니다, 고객님! 또 오세요!”
가게 앞까지 쫓아 나온 다파라가 연신 꾸벅거리며 인사했다. 금액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었지만 역시 부담스럽다. 나는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고 후다닥 그녀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골목으로 몸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길은 들어서자마자 괜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늘 덕에 선선한 건 좋네.
지저분하진 않지만 썰렁한 길을 걸으며 나는 앞으로의 행로를 고민했다. 나 이제 뭐하지. 아직 늦지 않았으니 애초의 목적지였던 다과회에 참석하는 방안도 있었지만 딱히 내키지 않았다. 기억이 맞다면 어차피 이벨린도 불참할 텐데 애써 가 뭐할까. 할 게 없어 심심해 죽을 지경이면 몰라도. 자고로 재미있는 이벤트란 여주인공이 곁에 있어야 발생하는 법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문득 드는 생각에 난 주변을 휘 훑었다. 적당히 음산하고 인적도 없는 것이 만약 이벨린과 함께였다면 백퍼센트 사건에 휘말렸을 만한 배경이었다. 와 여기 운치 있네. 현상수배중인 흉악범과 우연히 마주한대도 어색함이 없을 듯하다.
물론 그런 일이 지금 당장 일어날 확률은 희박했다. 난 얌전히 기대(?)를 버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달랑 조연 혼자 있는데 누가 번거롭게 어그로를 끌겠…….
툭.
“ 아이고!”
“ …?”
흉악범인가!
-는 아니었다. 호리호리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우연인 척 나와 어깨를 부딪치고는 제 팔을 부여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과장된 표정과 그 뒤로 설렁설렁 기어 나오는 일행 두 놈을 보아하니, 이들의 정체파악이 어렵지 않았다.
어깨빵 공갈단!
일부러 어깨를 부딪혀놓곤 제 팔이 부러졌니 어쩌니 하며 치료비를 요구하는 질 낮은 양아치집단. 난 나와 부딪힌 상대와 그 너머의 일행 둘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음, 내 소중한 내장을 위협할 사시미따위를 품에 안고 있지는 않는 듯하군. 그냥 어디에나 있는 동네 일진느낌이다. 정체를 파악하고 난 코웃음을 쳤다. 이런 애들은 스크롤도 필요 없다.
“ 아이고, 내 팔! 팔이 부러졌네!”
“ 무슨 일이야?”
“ 이 여자가 내 팔을….”
짜고 펼치는 어색한 연기가 그저 비웃음만 유발했다. 실력하고는…. 가소롭기 짝이 없다. 애송이들, 진짜를 보여주지.
나는 순식간에 표정을 뒤바꾸며 내 가슴께를 와락 움켜쥐었다. 팔이 부러져? 후, 그건 초짜들이나 하는 짓.
“ 으…윽…심장이…!”
어깨를 부딪쳤는데 심장이!
나는 왼쪽가슴을 움켜쥐고 한순간에 삶과 죽음을 오가는 사람처럼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새하얗게 질린 내 안색에 공갈단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나는 온전히 연기에 몰입하여 힘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난 더 이상 라테 엑트리가 아니다. 나는 병자다. 심장병을 앓고 있어 미약한 충격도 조심해야하는 유리 같은 환자다. 나는 나약한 심장병환자다. 나는 환자.
완전히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로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 큭…이대로…죽는 건가? 이런…으윽, 곳에서…?”
내가 들어도 완벽한 음성이었다. 이게 환자가 아니면 대체 누가 환자란 말인가. 누가 봐도 난 이미 반쯤 죽었다. 아련하게 허공으로 뻗은 손마저 부들부들 떨자, 공갈단 무리가 한층 더 당황해 뒤로 주춤 물러난다. 당혹이 가득한 얼굴로 그들이 막 서로를 돌아보았다.
“ 뭐, 뭐야. 이 여자 왜이래?”
“ 설마 죽는 거 아냐?”
“ 미, 미친…. 세상에 어깨 쳤다고 죽는 사람이 어딨어?”
“ 몰라 시발 여깄잖아!”
혼란에 찬 그들의 대화가 만족스러웠다. 너넨 사람 잘못 만났어. 내가 이래봬도 수험생시절 연기하나로 야자를 밥 먹듯이 빼던 사람이다!
난 연기에 박차를 가했다. 허공에 뻗었던 손이 힘없이 늘어진다. 스르륵, 몸이 기울었다.
“ …인사는…하고…싶었는…데…….”
털썩.
온몸에 힘이 빠진다. 차가운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금색 머리카락이 땅을 수놓는다.
심장병을 앓던 가련한 나는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 어깨빵을 당하고 죽었다.
“ …시, 시발….”
“ 야, 튀자!”
“ 미친! 같이 가!”
“ …….”
내 시체(?)를 앞에두고 우왕좌왕하던 양아치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의 발자국소리가 사그라들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다, 기척이 완전히 가시고 나서야 슬며시 눈을 떴다. 으아, 바닥 차가워. 난 잽싸게 몸을 일으켜 구겨진 옷과 머리를 정돈했다. 먼지를 털어내고 머리를 나름대로 다시 묶고 나서, 나는 제자리에서 히죽 웃었다.
실로 끝내주는 명연기였다.
하, 내가 다 감탄스럽다. 어쩜 이렇게까지 완벽한 연기를.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양아치들이 의심을 내비쳤다면 주저 없이 스크롤을 갈겼을텐데, 그럴 일 없었다. 스크롤 아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로 공갈단을 평화롭게 물리친 것에 뿌듯해졌다. 이쯤 되면 홍천녀-유명한 연기만화에 등장하는 전설의 배역. 연기의 천재만 맡을 수 있다-도 노려볼 법하다. 난 고양된 기분으로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쳐들었다. 하하하하!
팔랑.
“ 하하…응?”
신나게 웃고 있는데 내 위로 종잇조각이 하나 떨어져 내렸다. 이건 뭐지. 난 출처모를 종이 한 장이 천천히 하강하는 걸 가만 응시하다 손을 뻗어 그것을 낚아챘다. 생긴 게 익숙하다했더니 종잇장은 다름 아닌 마법스크롤이었다. 심지어 장거리 텔레포트. …어멋, 이거 비싼 건데.
이게 왜?
쓰레기도 아니고 하늘에서 난데없이 떨어질 연유가 없다. 급히 고개를 재껴 위쪽을 살폈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허공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대체 뭔 일이래.
“ 흠.”
나는 짧게 고민하고 스크롤을 홀랑 품에 집어넣었다. 바람 한 점 안 불었으니 어디 멀리서 흘린 게 날아든 것도 아닐 테다. 난 속 편히 누가 내게 준 선물이겠거니 여기기로 했다. 할 짓 없는 마법사가 지나가다 구경이라도 하고 던져줬나 보지, 뭐.
============================ 작품 후기 ============================
구경값 ㅇㅅaㅇ
예전에 동생이 사람들이랑 우르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벽에 붙은 광고를 보고 "와 김태희 되게 예쁘다"했다가
그 말을 들은 엄마가 그 자리에서 "네가 더 예뻐! 네가 김태희 보다 훨!씬! 예뻐! 김태희보다 더 예뻐!"
영화관으로 가는 박터지는 엘리베이터였는데 순식간에 시☆선☆집☆중
그랬다네옄ㅋㅋㅋㅋ(눈물에 찬 문자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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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발표
그 다음주도 발표
그 다음엔 시험
.......'-'.......
방학 전까지는 연재가...뜸할..것...같아여....
(당장 오늘도 밤샘 피피티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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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짜라빰님, 허롱님, 뉴엘리스님 후원구폰 감사합니다^0^! 이런 걸 주신다고 제가 기뻐날뛸 줄 알았다면 그건 크나큰 오예입니다♡ 눈누난나 워우워예 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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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께서 제 팬카페(ㄷㄷ)를 만들어 주셨어요(동공지진
근데 이름이 팝콘아냥...'-'...(동공지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