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24화 (24/100)

00024  4. 엮이는 물고기 세 마리  =========================================================================

본연의 게으름에 충실해 아침잠을 실컷 자고 오전 느지막이 기상했다. 전날 산책을 하겠다 다짐해놓곤 집안에서 팝콘이나 잔뜩 처먹고 잠든 것에 대해 반성의 의미로 싱싱한 풀떼기들을 식사대신 씹던 참이었다. 에슐라가 내 앞으로 편지를 한통 배달했다.

“ 나한테?”

“ 네. 수신인이 아가씨로 되어있어요.”

뭘까. 조용한(?)구경꾼의 나날을 영위중인 내게 이런 서신을 보낼 인물이 있었나? 나는 갸웃하며 내밀어진 것을 받았다. 음, 설마 야밤에 혼자 기어 나오라는 내용의 결투장은 아니겠지. 발신인은 케니스.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곱게 접힌 종이를 펼치자 한눈에 여성스러운 필체가 시선을 끌었다. 서간은 다름 아닌 초대장이었다.

아.

적힌 글귀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참. 이런 이벤트가 있었지. 결 좋은 종이에는 다놀라 자작가에서 다과회를 주최하니 참석을 요한다는 전갈이 쓰여 있었다. 일시는 하루 뒤 정오. 이 초대장은 나뿐 아니라 이벨린에게도 갔을 게 분명했다. 여주인공이 편지의 다과회에 참가하려 길을 떠나다 위험에 처하는 에피소드가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케니스의 검술천재다운 면모를 얼핏 확인할 수 있도록 안배된 사건이었다.

아싸! 나는 설레는 기분으로 내일 또 새벽같이 일어나 이벨린에게 달려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이건 결코 놓쳐선 안 되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실로 진귀한 구경거리가 내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벨린이 휘말리게 될 사태에는 무려, 놀랍게도, 이름 하여 ‘오크 무리’가 등장한다.

오크! 이름만 들어도 판타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몬스터계의 대표되시겠다. 익숙한 만큼 가장 흔하고 만만하게 취급되는 동네북 몬스터였지만 나는 여태껏 그들을 목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판타지의 세계관을 얼추 표방하고 있는 야수의 꽃에는 오크는 물론이거니와 비슷한 개체들이 아마 우글우글 할 테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수도 한복판에 짜잔 하고 나타나주진 않았다. 몬스터를 보기 위해선 도성을 벗어나 어디 외딴 숲에 직접 기어들어가거나 온갖 괴담이 넘치는 험준한 산맥을 타넘어야 했다. 물론 나에게 그만한 패기는 없다.

그럴지니 몬스터 떼를 위험도 0%의 명당-여주인공 옆-에서 구경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춤사위가 절로 나올 만큼 즐거운 기회였다. ‘취익 취익’거리는 녹색 괴물을 실물로 볼 수 있다니. 이벤트 최고! 늘 이유 없이 위험에 처하는 데인저메이커 여주인공 최고!

결정했다. 오늘은 얌전히 집에서 체력이나 비축해야겠다. 순서를 보건데 내일이 케니스라면 금일은 황태자를 만나는 날일 터였지만, 이미 늦잠도 잔 마당에 하루정도는 얌전히 흘려보내는 게 나을 성싶었다. 그래, 푹 쉬고 대신 내일 열과 성을 다해 관람하자. 마음을 다잡은 나는 편한 실내복에 개털인 머리꼴을 그대로 방치하고 산책 삼아 저택 내부를 돌아다녔다. 평소라면 나와 마주치는 즉시 바람직한 숙녀의 차림새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을 유모가 사업 때문에 바쁜지 한 바퀴를 다 도는 내내 보이지 않았다. 어마, 개이득. 너른 복도를 쏘다니는 내 활보는 덕분에 한층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걷다 도중 창문이 눈에 띄면 가서 매달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아 설렌다. 어서 해가 지고 다시 떴으면.

나는 그렇게 소풍 전날의 어린아이처럼 들떠 하루를 보냈다.

*

다놀라 자작가는 위치상으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지만, 대신 수도와 영지 사이에 높은 산이 하나 솟아있었다. 그 산을 통하지 않으면 몇 배나 되는 거리를 돌아서 가야했는데, 얼마 전까진 대다수가 둘러가는 먼 길을 당연한 듯 이용했다. 다른 게 아니라 산에 몬스터가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뜬소문이 아니었던지 실제로 산을 넘다 실종되는 사람 수가 늘자, 황성에서는 부랴부랴 토벌대를 구성해 내보냈다. 구성원은 에스반데 공작-케니스-을 필두로 한 소수정예였는데, 공작은 최강의 검사라는 위명답게 순식간에 산의 몬스터들을 싸그리 정리했다. 몰살에 걸린 시간은 채 한나절도 되지 않았다. 케니스의 무력수준을 생각했을 때 두말하면 입 아픈 결과였다.

그렇게 공작이 잠깐 수고해준 덕에 사람잡아먹던 산은 안전한 지름길이 되어 지금은 너도나도 잘만 이용하고 있다…는 실정이었지만 역시 이벨린의 경우는 달랐다. 없던 위험도 만들어내는 마당에 몬스터의 부활쯤이야.

산 길 한복판, 나와 이벨린은 낯선 콧바람소리에 누비던 발을 멈췄다.

“ 이게 무슨 소릴까요.”

“ 글쎄요?”

우린 마차를 타지 않고 직접 걸어 산을 넘던 차였다. 산세가 험해 마차를 몰기 어렵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풍경도 구경할 겸 직접 타넘는 게 어떠냐고 이벨린이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 냉큼 수락했고, 함께 맨몸으로 산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 취익, 인간이다, 취익.”

“ 취익! 죽인다, 인간! 취익.”

대박. 나는 갓 등장한 오크 떼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응시했다. 과거에 읽었던 묘사처럼 건장한 사람 몸에 돼지 머리를 얹어놓은 녹색 괴물들이 옹기종기 무리지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저마다 몽둥이 등의 무기를 하나씩 든 모양새가 제법 형형했다.

몬스터다, 진짜 몬스터야! 게다가 얘네 사람 말을 해요!

확성기에 대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험상궂은 돼지 얼굴-제사상에 올라가는 친근한 돼지가 아니라 꿈에 나올까 두려운 험악한 용병돼지느낌-을 한 괴물이 비염 걸린 사람보다 심한 콧바람 소리를 내며 우리가 쓰는 언어를 내뱉고 있었다. 몹시 오묘한 기분이다. 느낌 진짜 이상한데.

흔들리는 동공으로 오크들을 주시하다 나는 겁에 질린 연기를 했다.

“ 우, 우리 이제 어쩌죠?”

“ …왜 몬스터가….”

이벨린은 건달 때와 달리 당황한 낯이었다. 하긴 당연하지. 이 판국에 안 놀라면 그게 사람인가. 케니스가 나타나 구해줄걸 미리 아는 나도 이렇게 심장이 벌렁벌렁한데.

나는 이벨린의 곁에 붙여 오크 무리에게 강렬한 눈빛을 쏘았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볼지 모르는데 최대한 살펴둬야지. 자세히 보면 각자 미묘하게 다른 듯한 오크들의 면면은 쳐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휴, 그 와중에 몸은 또 좋네. 녹색이지만. 쟤 근육 좀 봐라, 꿈틀거리는 게 아주 역동적이야. 초록색이지만.

“ 취익, 죽인다! 취익.”

“ 취익, 인간 죽인다, 취익!”

똑같은 대사를 재차 재생하며 오크들이 나와 이벨린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몇몇은 중간 중간 허공에 대고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하는 것이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와…진짜 무섭다. 구세주가 곧 등장한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나 기절했겠는데.

그런 감상을 받고 있자니 시기 좋게 예정된 기사가 등장했다.

“ 취익, 인간, 또 있다! 취익.”

“ 새로운 취익, 인간이다! 취익.”

목도는 나보다 오크들이 빨랐다. 뒤를 돌아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우뚝 서있는 케니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방금 막 이 광경을 목격한 듯 수려한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었다. 왜 이런 산길을 지나가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우연히 스쳐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를 조우.

“ …잔당이 남아있었나.”

불쾌한 기색을 담고 흘러나온 목소리가 스산했다. 뚜벅, 뚜벅 케니스가 이편으로 가까워지는 동안 오크들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왜 저러나, 의문이 드는 순간 그 이유를 깨달았다. 케니스의 살기가 그들을 속박하고 있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케니스가 천천히 칼을 뽑는다. 나는 그 모양을 보며 오크 떼가 썰릴 때 눈을 감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음, 영화라면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많이 역하겠지? 역시 감을까. 판단이 기우는데 마침 케니스가 내게 시선을 주었다.

“ …….”

날 지금 발견했나. 찌푸려진 미간 위로 짜증이 덧대어진다. 그는 나와 이벨린을 번갈아 응시했다. 그러더니 반쯤 꺼낸 칼을 도로 칼집에 집어넣는다.

? 너 지금 뭐하니?

케니스의 입술 한쪽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그가 이벨린의 허리에 팔을 두르는가 싶더니, 단번에 그녀를 안아 올렸다. 대뜸 이벨린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린 케니스는 그대로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를 두고.

…엥?

============================ 작품 후기 ============================

ㅇㅅㅇ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케니스 욕 바가지로 먹을 것 같긴한데 사실 전 얘가 이러는게 제법 마음에 듭니당ㅋㅋㅋㅋㅋㅋ아 그렇다고 남주란 얘기는 아니고 '-' 안알랴줌!

+

띠링) 팀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띠링) 팀프로젝트2 단톡방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레포트가 추가되었습니다.

띠링) 한글문서 다섯장짜리 독후감이 추가되었습니다.

........? (동공토네이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러분 제가 어떻게든 잠수만은 피해볼게요...(각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