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9 3. 상석과 물고기 세 마리 =========================================================================
“ …크흠.”
그리고 내 기억은 잘못되지 않았다. 론드미오는 당장 저것을 끌고 가 경을 치라거나 허리춤의 검을 뽑아 휘두르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상황에 대한 민망함과 내 깝침에 대한 못마땅함을 일부 담은 헛기침만 뱉었을 뿐이다. 괴성을 지르며 날뛰었던 케니스를 생각하면 놀라울 만치 자비로운 반응이었다. 물론 방금의 깐죽거림과 케니스에게 했던 짓을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걸 감안하더라도 황태자는 지금 내게 하늘처럼 관후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 그랬다. 론드미오는 작중 물고기중 이벨린의 지인에게 가장 후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특정인을 꼬실 때 상대의 주변인물까지 공략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여자친구의 오빠, 언니, 동생, 친구들에게도 잘해주는 사람처럼. 물론 문제라면 용모가 지나치게 잘난 탓에 미소 한방으로 여주인공 친구의 환심 이상을 사고 만다는 거랄까.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이벨린의 친구 비슷했던 영애가 도중에 뒤통수를 치는 것도 다 쟤가 원인이었다. 저 인간이 영애더러 눈웃음만 안 날렸어도. 어휴, 죄 많은 물고기.
이벨린은 여전히 황태자의 품안에 있었다. 그 안에서 눈만 깜박이다 이내 무안함을 감추지 못한 론드미오의 어색한 손길을 타고 다시 풀려난다. 제자리에 멀뚱히 선 그녀는 나를 잠깐 쳐다보는가싶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 풋, 아하하!”
“ 어, 이벨린?”
“ 아하하하, 흉폭한 맹수라니…하하하!”
이벨린은 말 그대로 청아하게 웃었다. 맑고 깨끗한 웃음소리였다. 그 티 없는 청량함을 듣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좀 된 옛날의 기억이 저절로 떠올랐다. 과거 내가 개그프로를 보며 뒤집어져 웃던 걸 친구가 녹음해서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분명 돼지 멱따는 소리였다. 절대 이런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었다. 무시할 수 없는 선명한 대비에 나는 흐르려는 한줄기 눈물을 겨우 참았다.
그래…여주인공 너는…나처럼 ‘으헥헥헥헥’하고 웃지 않는 구나….
배 잡고 웃는 것도 예쁘다니, 이건 불공평하다. 난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이 세계의 차별을 새삼 깨우치며 슬픔을 삼켰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나는야 들장미 조연 라테. 굳센 마음을 가지자 생각하며 론드미오의 반응을 보고자 눈을 돌렸다. 그가 이벨린의 웃는 얼굴에 시선을 못박은 게 보인다. 황태자는 이벨린의 웃음이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응, 네가 보기에도 범인처럼 으헥헥헥켁케켁 하고 웃지 않는 게 남다른가 보구나. 아니면 그냥 예뻐서 보는 건가. 근데 벌써 호감플래그가 꽂힐 때는 아닌데.
이벨린은 한참을 웃고 나더니 눈에 맺힌 눈물까지 닦았다. 내 회심의 깝침이 그녀에게 회심의 개그로 통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체 뭐가 그리 웃겼을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벨린만 같다면 난 지금 당장 개그판으로 뛰어들어도 대성할 텐데.
웃음기가 잠잠해지고 난 뒤 이벨린은 황태자에게 약간 미안한 얼굴을 했다. 내가 론드미오 놀리겠다고 한 말에 빵 터져 웃었으니 그럴만하다. 황태자는 사과하려는 이벨린을 선수 쳐 막았다. 그는 외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것에 만족한 기색이었다. 재차 눈웃음을 치더니 하는 말이.
“ 몹시 예쁘게 웃는군.”
으윽, 느끼…….
…해야 정상인데 잘 어울렸다. 어울려서 당황스럽다. 뭐지. 쟤는 대체 안 어울리는 대사가 뭘까. 있긴 있는 걸까. 이벨린을 벽에 밀어붙이고 ‘얼마면 돼?’를 씨부려도 멋있을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문득 들었다. 황태자의 한계는 대체 어디인걸까.
이번에도 이벨린은 그저 황송하다 답했다. 감흥 없는 대답이었다. 그 너른 가슴팍에 안겼다 나왔으면 태도가 좀 바뀔 법도한데 여전히 무심하다. 론드미오는 이벨린의 태도를 예상한 듯 딱히 실망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냥 말 편히 하라니까, 하고 재차 말한 그는 웃음을 본 답례인지 내게도 선심을 썼다.
“ 그, 친구도 말을 편히 해.”
그새 내 이름 까먹었냐. 뭐 별로 상관은 없었다. 친구인 것만 알아주면 됐다. 나는 론드미오의 인심에 주저 없이 냉큼 답했다.
“ 그럴게요.”
대답이 너무 빨랐나. 황태자는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시선을 주었다. 어째 저 표정 자주 보는 것 같네. 떫은 감 먹은 표정.
“ …그만 가보지. 더 지체했다간 백작이 기다릴 테니.”
“ 존안을 뵈어 영광이었습니다. 살펴 가시길.”
“ 얼굴 봐서 좋았어요. 잘 가세요.”
“ ……다시 만났으면 좋겠군.”
황태자는 이벨린에게만 느끼한 인사를 남기고 그렇게 사라졌다. 내 건방진 작별 말에 흔들리던 동공이 선하다. 너무 까불댔나.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그만.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저런 정신 나간 입방정을 떨 생각은 없었다. 난 다음에 만날 이벤트를 고대하며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론드미오가 자리에서 떠나고 나는 전처럼 이벨린과 둘이 되었다. 내 얼굴을 보니 다시금 토끼드립이 떠오르는지 이쪽을 향한 눈에 거듭 웃음기가 어린다. 나는 이번에는 호호 웃는 이벨린과 함께 정원을 두어 바퀴 돌았다. 대화를 나누며 느껴지는 나에 대한 호감도가 폭소이후로 조금 오른 듯했다. 의외긴 하지만 나야 잘된 일이다.
산책을 마치고 나와 이벨린은 다시 실내로 돌아왔다. 황태자를 만났으니 이제 오늘 이벤트는 끝일 거라 생각했다. 세 물고기들과의 첫 만남 이후 변칙적으로 발생하는 우연한 만남들까진 세세히 기억나지 않았기에 그냥 어림잡아 하루에 한명씩 만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던 차였다.
주섬주섬 귀가 준비를 하는 내게 이벨린이 제안했다.
“ 사실 오늘 도서관에 갈 예정이었거든요. 혹시 따로 일정이 없다면 같이 갈래요?”
도서관?
웬 도서관이지. 그러고 보니 이벨린은 고서를 빌리기 위해 국립도서관에 종종 출입했다. 물론 가서 책만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주인공답게 이벨린은 도서관에서 주로….
‘ 케니스구나!’
남주인공2와 마주쳤다. 이거 잘됐네. 안 그래도 케니스에겐 한시 빨리 내가 이벨린의 친구가 되었음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넌 이제 나를 못 죽인다는 걸 어서 알려줘야지. 거 기대되는구만.
나는 즉시 회답했다. 물을 필요도 없는 제의였다. “좋아요!” 씩씩하게 내뱉은 나는 이벨린의 외출 채비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자 일어섰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하하 설렌다.
============================ 작품 후기 ============================
피곤피곤. 금토일이 가장 피곤하네요ㅠㅠㅠ (퀭..
남주후보로 드디어!! 남주인공들을 미는 분들께서 한 두분씩 근근히ㅋㅋㅋㅋ등장하고 계십니다ㅋㅋㅋㅋㅋㅋㅋ이거 보물찾기하는 기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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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아덴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0^!! 저 요즘 복터지네여 깔깔깔
흐..흐흐..흐흐흐흐 흐흐흐흐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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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의 행동이 글러먹었다거나, 정신이상자같다거나, 죽고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여 불편하시다면 조심스레...뒤로가기 추천해드립니다. 빈정대는 게 아니라, 정말요. 그냥 제 소설이랑 맞지 않으신 거예요. 댓글을 차근차근 읽다가 써봅니다. 굳이 맞지 않는 캐릭터를 억지로 이해하셔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조아라에는 구들외에 재미있는 소설이 별처럼 많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