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8 3. 상석과 물고기 세 마리 =========================================================================
굳이 깊게 생각을 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보단 나름 아첨하려다보니 입안에서 자동으로 만들어져 튀어나간 문장이었다. 황태자는 저 잘생겼다고 추켜세우는 내 말에 기뻐하기는커녕 떨떠름한 기색을 했다.
얘는 웬 개소리지?
굳이 해석하자면 딱 저런 낯빛이라 난 약간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왜? 본인 외모가 너무 뛰어난 바람에 심봉사가 됐다는데 이거 극상의 칭찬 아닌가? 혹시 내가 돈 달라고 해서 그러는 거니?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여긴 보험금이라는 게 없나보구나.
그러고 보니 딱히 황실에 보험비를 납부한 기억은 없었다. 그래도 세금은 꼬박꼬박 냈는데. 이거랑 별로 상관없나. 어쨌든 이미 뱉은 말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난 눈알을 반 바퀴 굴리며 침묵으로 이 상황을 넘기려 노력했다. 여기서 보험금이란 어쩌고…블라블라 떠들어봤자 황태자의 안색은 더욱 구려질 게 뻔하다.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지. 어휴, 뒤늦은 후회지만 개드립 괜히 쳤다.
론드미오는 나를 그리 오래 쳐다보진 않았다. ‘얘 이상한 애네’ 정도의 의미를 담은 시선은 금방 거두어졌다. 있지도 않았던 내 이미지가 그에게 좀 구린 방향으로 생성되었다는 걸 자연히 알 수 있었다. 하하. 내 인생.
“ …산책 중이었나?”
“ 예.”
“ 둘이?”
“ 예.”
론드미오의 담화상대는 다시 이벨린으로 회귀했다. 그녀는 황태자의 질문에 얌전히 짧은 대답만 꺼냈다. 질의와 단답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가 재차 물음을 던졌다.
“ 둘이 무슨 사인가?”
나와 이벨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차분히 대답했다.
“ 친구입니다.”
왈칵. 나는 소소한 감동에 입을 막았다. 여주인공과 친구되기 퀘스트가 완전히 완료되었음을 전해주는 알림창 같아 뿌듯함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이 영광의 일부를 건달들과 아윈에게 돌립니다. 성취감에 빠져있는 내게 그러나 황태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 왜?”
“ …….”
쟤가 진짜. 왜긴 왜야. 나랑 이벨린이 친구인 게 뭐가 이상하냐? 개드립 하나 쳤다고 대체 사람을 얼마나 등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의 열려있지 못한 마음을 속으로 마음껏 힐난했다. 드립 하나로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수 있다고 여기지 마라, 이 자식아.
“ 흠흠. 뭐, 아니야. 방금 말은 취소하지.”
“ …….”
“ 그보다 그댈 우연히 만나서 반가운데. 이름이.”
“ 이벨린 도트입니다.”
“ 그래, 이벨린. 그대를 다시 보게 되어 무척 기뻐.”
그나마 염치는 있는지 말을 정정한 황태자가 이번엔 이벨린더러 작업멘트를 날렸다. 멘트의 느끼함은 둘째 치고라도 그의 눈웃음이 저절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우와, 미친. ‘피식’을 소화할 때부터 얼핏 짐작은 했지만 목소의 파급력이 상상이상이다. 부드럽게 살 접히는 눈매가 잘하면 남자도 홀릴 법했다.
허나 그만치 파격적인 눈웃음에도 이벨린의 철벽은 끄떡없었다.
“ 황송합니다.”
“ 말을 편히 해도 좋아.”
“ 그건…송구합니다.”
이벨린이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거절했다. 부끄러워하는 낯도, 기뻐하는 빛도 없었다. 황태자는 그녀의 튕김-그의 입장에선-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찡그리더니 내게 눈길을 옮겼다. 뭐. 왜 또 날 봐.
“ 반응이 영 딱딱해. 보통은 좀 다르지 않나?”
“ …?”
“ 이름이 어찌되지?”
“ 라테 엑트리입니다, 전하.”
“ 음, 라테. 그대를 만나게 되어 참 기쁘군.”
다짜고짜 이름을 묻더니 론드미오는 이벨린에게 했던 대사를 고스란히 내게 읊었다. 뭐야, 그러니까 철벽이 아닌 일반적인 반응을 보여 달라 이거냐. 난 교과서 예제가 된 기분에 좁혀지려는 미간을 신경 써 폈다. 황당하긴 했지만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구태여 못해줄 건 없었다. 그래 뭐, 어디 보자.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가 초면에 내게 만나서 기쁘다고 한다. 걸어 다니는 조각미남. 심지어 돈도 많다. 나한테 만나서 기쁘다고…. 나는 잠깐 고민하다 반응을 정했다.
그리고 황태자에게 윙크를 날렸다. 찡긋.
“ …….”
“ …….”
이게 아니야?
아까보다 배는 무거운 침묵이 나와 론드미오 사이에 내려앉았다. 해놓고 판단하니 좀, 일반적인 행동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맞아, 귀족영애란 자고로 쑥스러워함이 미덕이었지. 왜 이런 생각은 항상 사후에 드는 걸까. 뒤늦게 밀려오는 민망함에 나는 이번에도 말없이 눈을 굴렸다. 아니 근데 대담한 성격이면 있을 수 있는 반응 아닌가…. 하긴 그래도 보통은 안 이러겠지.
황태자는 윙크를 날린 나와 이벨린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물러가려는 듯 뒤로 한걸음 옮겼다. 어차피 원작 상에서도 슬슬 퇴장할 때가 맞긴 했지만 왠지 나 때문에 앞당겨진 것만 같은 이 이상한 기분은 뭘까. 론드미오에게 내 인간상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모순된 마음으로 난 그에게 인사를 올리려 자세를 잡았다. 그때였다.
부스럭, 확!
수풀에서 뭔가가 재빠르게 튀어나왔다. 이벨린의 지척이었다. 황태자가 순식간에 이벨린을 제 품으로 끌어당겨 보호한 것과, 그 무언가의 정체가 햇빛아래 드러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쫑긋.
무언가가 제 귀를 빳빳하게 세우고 코를 벌름였다. 옆에 달린 수염이 잘게 움직인다.
토끼였다.
누가 봐도 반박할 수 없는 작고 깜찍한 토끼였다. 뭐지, 여기 토끼가 왜있어. 야수의 꽃에선 정원마다 토끼를 키우는 게 유행인가. 나는 과거의 추억을 상기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토끼라니, 뭔 몬스터나 암살자라도 나타난 마냥 이벨린을 감싼 황태자만 꼴이 우습게 됐다. 이런 민망한 이벤트가 원작에서도 있었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지금 너무나 깐죽대고 싶다는 것이다.
깐죽거리고 싶다. 깐죽대고 싶어!
난 결국 충동을 참지 못했다.
“ 꺄악! 흉폭한 맹수 토끼가 왜 이런 곳에!”
“ …….”
“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제 친구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그가 여주인공의 사람에게 몹시 관대한 성격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황태자를 향해 샐쭉 웃었다.
============================ 작품 후기 ============================
Q. 라테 안 죽나여?
A. 갠차나여! ^0^ 황태자 차캄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여러분 저 댓글 많으면 안절부절 못하면서 글 쓰는거 어찌아시고ㅠㅠㅠㅠ하..다들....사랑해여(왈칵
그나저나 전 피곤하면 글을 못쓰는데(비문 쩔고 오타쩔고 종종 전개도 이상해져서 나중에 다 지움ㅜㅜㅜ)요즘은 좀 시도때도 없이 피곤해서 글 쓸 시간이 촉박하네요. 아오. 춘곤증인가...엉엉
+
쓰고싶은 글이 생겼어요. 제목은 <양지바른 그늘 밖>
[로맨스/회귀/후회남주]
10년을 되돌아왔다.
진창으로 내 삶을 내던졌던 열다섯의 아카데미. 그 속에 나는 다시 발을 디디고 섰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개가 아니다.
...ㅇㅅㅇ진지물!
근뎈ㅋㅋㅋㅋㅋㅋ안지를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끄악ㅋㅋㅋㅋ협박이 너무 무서웤ㅋㅋㅋ엌ㅋㅋㅋㅋ저 댓글읽다가 소름 여러번 돋았어요 하하 절대 안지름 무조건 구들 완결이 먼저임 (정색)(진지)(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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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궁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0.0 !!! (울멍)
흑흑...뽀뽀 할 테니까...이리와여!
(그리고 엘리아냥은 감옥에 수감되었다. 여러분들의 면회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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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십= 몇 십
목소= 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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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 수정했습니다! 생각 없이 단어를 썼네요. 죄송합니다ㅠㅠㅠ대명사처럼 넓게 쓰이는 줄 알았어요. 가볍게 볼 단어가 아니었네요. 지적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