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17화 (17/100)

00017  3. 상석과 물고기 세 마리  =========================================================================

론드미오도 봤고, 케니스도 봤는데 마지막 주자 아윈만은 보지 못했다는 게 못내 아쉬워 한동안 이벨린에게 찰떡처럼 붙어 다닐 계획을 세운 게 불과 하루 전이었다. 어차피 어장을 공산주의로 운영하는 이벨린은 공평하게 남주인공 셋과 순서대로 썸씽을 만들어야 했기에, 그녀는 황태자와의 재회 전에 필연적으로 아윈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 노리고 내 집요하게 이벨린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겠노라 다짐했더니 웬걸.

벌써 만났다. 그것도 나 없을 때.

“ 라테와 헤어지고 막 저택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때 생각이 난 거예요. 머리핀을 두고 왔다는 걸.”

건달이벤트가 있던 날 나와 이벨린은 밥을 먹고 거리를 좀 구경하다 해가지기 전 작별했다. 난 그날 귀가하자마자 목욕을 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이 밝기 무섭게 이벨린을 만나러 그녀가 머무는 백작저로 향했다. 그리고 응접실에서 시녀가 내온 차 한 잔을 기울이며 들은 얘기가 바로 저리 시작했다.

조연을 집에 보내자마자 문득 종전에 산 머리핀이 제 품이 아닌 가게에 있음을 떠올린 여주인공. 그녀는 머리핀을 가지러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소매치기에 당해 지갑을 분실하게 되는데, 잃어버린 지갑을 마침 근처에 있던 남주인공3이 멋지게 찾아주더라ㅡ는 것이다.

“ …….”

난 눈물나게 슬펐다.

꼭 그렇게 둘만의 만남을 가져야만 했던 거니? 난 어차피 있어봐야 병풍인데 좀 같은 장소에 끼워주면 안됐던 거니? 차의 끝맛보다 씁쓸한 진한 아쉬움에 난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입맛만 다셨다. 기실 세 남주인공 중 아윈의 외양을 가장 기대했었는데. 그런 터라 이리 미련이 크다. 천진난만 순진무구 천사처럼 예쁜 얼굴을 하고 뒤로는 가차 없이 사람을 죽이는 놈. 그 예쁜 미친놈의 얼굴이 정말 궁금했다. 웃으면서 사람 목을 딴다는데 대체 그런 설정의 캐릭터는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해서.

문득 원작 외전을 통해 읽었던 아윈의 화려한 전적이 떠오른다. 그가 처음 마탑의 주인을 뜻하는 성 ‘헤브림’을 얻었을 때, 마탑에서는 그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반발의 여론이 드높았다. 그도 그럴게 웬 듣도 보도 못한 새파랗게 어린놈-심지어 아윈은 빈민가 출신이었다-이 유력한 후보였던 노익장 대마법사를 제치고 난데없이 헤브림을 달아버린 상황이었다. 반대의 목소리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 가운데서 아윈은 잠자코,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법한 나약한 얼굴로 어찌 감히 마탑의 주인자리를 탐내냐며 조롱하는 무리들을 그들이 언급했던 개미처럼 앉은 자리에서 처죽였다.

마탑에 기거하던 마법사들의 삼분지 일이 몰살당했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소문은 삽시간에 제국 전역을 휩쓸었고 아윈은 한순간에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인원이 대폭 감소한 마탑은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는 듯 했으나, 이내 소문을 듣고 몰려든 각지의 마법사들로 인해 오히려 전보다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풍문에 의하면 은둔해 생활하던 마법사들까지 죄다 튀어나와 등록을 해댄 통에 족히 그 증가량이 두 배는 된다고도 했다.

소설 속 아윈은 이런 놈이었다. 마법으로 한정짓자면 그의 무력은 야수의 꽃 안에서 가장 강했다. 인터넷소설로 친다면 세계서열 1위정도? 물론 검술영역에선 케니스가 가장 강했으니 걔도 세계서열 1위일 것이며, 론드미오도 싸우면 지진 않을 테니 또한 세계서열 1위였다. 인터넷소설에서 세계서열 1,2,3위가 죄다 한국에 몰려있는 것처럼 야수의 꽃에선 대륙서열 1위 셋이 모조리 한 제국에 몰려있었다. 솔직히 이 제국 ‘졸라세’이런 걸로 개명해도 될 것 같다. 뭔 미친 대륙최강들끼리의 소소한 모임이람.

“ 차 맛이 어때요, 라테? 식었을 텐데 새 걸로 한잔 더 할래요?”

이벨린의 목소리가 날 상념에서 건져낸다. 난 곧장 대답하는 대신 그녀의 얼굴을 잠시 동안 빤히 쳐다봤다. 응, 그래. 그러고보니 서열1위들을 어장에 넣고 관리하는 네가 바로 대륙서열0위로구나.

그리고 내가 그 대륙서열0위의 친구고.

“ 아뇨, 괜찮아요. 차 맛있네요. 향도 좋고.”

난 금세 기분이 좋아져 회답했다. 새삼 눈앞의 인물이 더없이 단단한 방패막이라는 걸 실감한 덕이었다. 그래, 내 친구가 야수의 꽃 여주인공인데 뭐가 문제일까. 나는 상승된 기분에 따른 넓어진 마음으로 아윈에 대한 미련을 손쉽게 털어냈다. 뭐 이벨린 곁에 붙어있다 보면 자연히 마주치겠지.

반쯤 남은 미지근한 차를 마저 들이키고 싱글벙글해 있자니 이벨린이 돌연 산책을 제안한다. 뜬금없었지만 난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졸졸 이벨린을 따라 백작저의 정원에 들어서니 햇빛과 어우러진 녹음이 싱그럽다. 자고로 여주인공이 하자는 건 웬만하면 가타부타 말없이 어울리는 게 좋다. 그래야 굿이나 보고 떡을 먹을 수 있는 법이다.

그래, 마치 지금처럼.

“ 황태자전하?”

“ 이런데서 다 만나는군.”

과거 삼일밤낮 황궁의 정원을 배회하고도 머리털 한 올 볼 수 없었던 황태자가 대뜸 이벨린네 앞마당에서 등장했다. 그 겁나 말도 안 되는 출현에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과연, 역시 여주인공은 자기네 집 뒤뜰에서 길을 잃어도 남주인공을 만난다는 소리가 사실이었군.

이벨린은 황태자를 알아보았다. 그가 누군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첫 만남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감흥은 없어보였다. 그녀는 황태자가 아니라 황태자의 시종을 만났더라도 비슷했을 정도의 의문만 내비쳤다.

“ 왜 이런 곳에….”

“ 백작에게 용무가 있어 들린 차라.”

론드미오가 간단히 대답했다. 이벨린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흥미와 호기심 따위가 어려 있었다. 저 눈이 호감에서 사랑으로 바뀌기까지 얼마나 걸리더라. 시기상 그는 아직 ‘이 여자가 정말 내게 관심이 없단 말이야? 뭐하는 여자지?’하는 단계에 속해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열심히 황태자의 용안을 살폈다. 다시 봐도 진짜 잘생겼군. 신기하게 생긴 얼굴이다. 미술학도도 아닌 내가 비율 좀 재보자며 연필을 쥐고 달려들고 싶게 만드는 생김새였다. 저 얼굴을 만들기 위해 대체 이 세계 몇 명의 남자들이 희생됐을까. 그 중에 아마 내 짝-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남자-도 있었겠지. 아아, 갑자기 가슴이 미어진다.

어쩌면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내남자의 희생에 대한 애도를 담은 시선이 생각보다 강렬했던 모양이다. 이벨린에게 고정되어있던 황태자의 벽안이 도륵 내게로 굴러온다. 예상 못한 눈맞춤에 의아함을 느끼자마자 말이 날아왔다.

“ 어쩐지 얼굴이 따갑다했다. 뭘 그렇게 보나, 내가 그리 잘생겼어?”

난 그 물음에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등신 같은 질문이다 싶었다. 자뻑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해서. 자기가 눈 튀어나오게 잘생겼다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 것 아닌가. 하긴 뚫어져라 쳐다보다 걸린 마당에 눈 깔으라고 안하는 게 고마운 판이다. 나는 그의 답이 정해진 질의에 성심성의껏 그 정해져있는 답을 뱉었다.

“ 예. 잘생겼습니다. 전하의 눈부신 외모에 눈이 멀어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맹인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황실에 청구하면 보험금 나오나요?”

============================ 작품 후기 ============================

??여러분 저 어린이날 선물받은듯

선작수랑ㅋㅋㅋㅋ아니 저번편 코멘트 수 왜이래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대다수가 남주들 욕이긴 한데...(땀

아무튼 그 격한 반응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다음편으로 화답해야 할것 같아서 ㅜㅜㅜㅜ오늘 일하고와서 피곤하지만 열심히 썼어요!(칭찬을 바라는 초딩같은 눈빛)오타 및 비문은 내일 수정해야징..ㅎ..ㅎㅎ

+

아윈에 대한 사소한 변명. 이건 제가 서술을 똥멍청이같이 한 탓이긴 한데 ㅠㅠㅠ뉴뉴 아윈은 외모지상주의가 아니에요(주륵). 걔가 얼굴을 확인한 건 온리 이벨린. 라테는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아서 모자도 안건들여봄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라테 생긴거 모름ㅎㅎㅎㅎ만약 이벨린 눈이 하나고 라테가 대륙최고 미인이었어도 아윈은 이벨린한테 관심가졌을거에여..왜..왜냐면 여주버프가 손나 갱장하니까!!!(..

그밖엔 해줄 변명이 없다. 욕 마음껏 하세여....ㅇㅅaㅇ 아윈 미안...너도 내 새낀데..미앙..☆대신 장수할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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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안->벽안 수정했습니다 아리가또!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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