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6 2. 두근두근 와작와작 팝콘 팔아요 =========================================================================
“ !…뭐야?”
내 같잖은 힘에 영향을 받을만한 덩치가 아니었는데도, 워낙 갑작스런 끼어듦이었던 탓인지 건달이 몸이 미약하게나마 이쪽으로 휘청했다. 그는 이벨린을 때리려던 것을 멈추고 제게 감히 기습을 행한 범인을 찾아 눈을 돌렸다. 휙 꺾이는 고개에 건달과 눈을 마주치고 난 히익, 하며 뒷걸음질 쳤다. 쟤 진짜 얼굴 너무 무서워.
순전히 제 생김새 하나 때문에 쫄아있는 내게 건달이 이를 드러냈다.
“ 이 년은 또 뭐야?”
“ …….”
아까부터 내내 이벨린의 곁에 붙어있던 나를 마치 이제야 발견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 터다. 응, 그럼, 착각이겠지. 아무리그래도 조연인 라테가 엑스트라인 건달보단 비중이 10배쯤 많을 텐데 그런 네가 나를 지금껏 공기취급 해왔다고 말하는 거라면 난 너무나 슬플 거야.
그러나 건달은 내게 비수를 꽂았다.
“ 있는지도 몰랐던 년이 설치네.”
으아아!
저 놈, 아니 저 년이. 이 얼굴로 뒷골목 평정할 것 같은 년이. 기껏 살려줬더니 배은망덕한 소릴 찍찍 내뱉는 것에 난 더없이 마음이 쓰라렸다. 지가 누구 때문에 사망플래그를 피했는데. 기껏 여주인공을 때려 끔살당하는 미래를 막아줬더니 저 흉악한 건달이 은혜모르기가 하늘을 찌른다. 난 원통해져서 힘껏 눈을 부라렸다-모자 때문에 잘 보이진 않겠지만-.
물론 내가 건달의 생명을 위해 돌아가는 상황을 막은 건 아니었다. 저런 놈이야 죽든 말든. 그보단 이벨린에게 잘 보이기로 마음먹은 마당에 그녀가 얻어맞는 걸 멀뚱히 지켜봐선 안됐기 때문이다. 누가 자기 처맞을 때 구경이나 하던 애랑 친구하고 싶겠어. 난 자연히 나설 수밖에 없었다.
“ 아주 쌍으로 겁대가리를 상실해서…그래, 네가 대신 맞겠다 이거냐?”
그렇다고 그게 이런 의미는 당근 아니다.
뭘 미쳤다고 대신 맞아. 농담이시겠죠? 그러나 건달은 빈말이 아니었던 듯 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 근데 잠깐, 이벨린은 손바닥이었으면서 난 왜 주먹인거야? 이게 사람 차별하네.
야무지게 말아 쥔 건달의 주먹이 천천히 들어올려지는 걸 보며 난 결국 선택의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더 이상 태평히 아윈의 출현이나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자칫하다간 내 소중한 코뼈나 광대와 작별하게 생겼다. 저 무기 같은 주먹이 내 고운 얼굴을 뭉개기 직전 미친 타이밍으로 “잠깐!”하는 멋진 목소리가 들려오는 전개도 일순 상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보단 그냥 내가 피떡이 된 이후 이벨린이 재차 위험해졌을 때 “잠깐!” 하고 구원자가 나타나는 전개가 열 배는 더 가망이 많아보였다. 하하, 그건 안 되지. 조연 피떡엔딩 결사반대요.
어쩔 수 없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윈의 얼굴구경은 포기하는 걸로 하고 ‘그걸’ 사용하는 수밖에.
결심을 굳힌 나는 즉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큰소리로 “타임!!”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건달이 동작을 멈추고 ‘이게 무슨 재롱을 떨려고’하는 시선을 보내는 사이 난 재빨리 이벨린을 끌어다 내 뒤로 숨겼다. ‘그걸’ 사용할 때 얘가 휘말리면 안 되니까. 이벨린은 돌아가는 상황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끌려왔다.
내가 이벨린을 보호하는 듯한 자세가 같잖았는지 건달이 피식피식 비웃는 게 보였다. 그래, 열심히 비웃어라. 넌 이제 끝났으니까. 지금부턴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나는 건달무리가 죄다 내 전방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품에 손을 넣었다. 능숙한 손길로 익숙한 종이한 장을 꺼내 쥔다.
우선 이걸 쓰기 전에 한마디만 해주고.
“ 우락부락한 년아, 그거 아냐?”
“ 우락…뭐?”
“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다!!”
난 장렬하게 외치고 곧장 손에 든 종이를 찢었다. 찌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돌연 바람이 인다. 주님, 오늘도 정의로운 돈지랄이 되는 걸 허락해주세요. 가라, 매지컬☆캐쉬☆파워! 나와 이벨린의 옷자락을 약간 살랑일 정도의 바람은 건달무리에게 닿는 순간 매서운 돌풍으로 급변했다.
후아아앙!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건달들이 사이좋게 비명을 질렀다. 너나 할 것 없이 줄줄이 소제지마냥 나란히 하늘을 난다. 그들은 폭풍 같은 바람을 타고 강제로 공중부양을 했다.
“ 끄아악!”
“ 으아아악!”
이내 다채로운 비명과 더불어 하나둘씩 저 멀리 쿵, 털썩 널브러진다. 그 꼴을 지켜보다 이벨린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마법?”
정답! 그녀의 말마따나 방금 발생한 바람은 마법의 힘이었다. 내가 찢은 종이가 그냥 일반 종이가 아니라 마법스크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개당 기십 골드짜리 고급스크롤. 나는 건달들의 꼴좋은 전멸에 의기양양 어깨를 폈다. 하하하하, 가소로운 것들.
부크가 궁금해 했던 내 돈의 사용처가 바로 이것이었다. 난 버는 돈의 대부분을 스크롤을 사는데 소비했다. 종이 하나로 마법사가 된 기분을 느끼는 건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만큼 짜릿한 일이어서, 과거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스크롤을 접한 이후부터 난 사치품목을 하나로 고정했다. 스크롤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에서 난 그냥 우량고객도 아니고 초! 우량고객으로 대우를 받았다.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쌓이거나 도저히 삶이 지루해서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곳으로 가 돈을 물 쓰듯이 썼던 탓이다. 인세로 벌어들이는 금액이 천문학적이었기에 가능해온 사치였다.
아무튼 이걸 여기서 꺼내게 될 줄이야. 아윈의 등장이 정해져있던 이벤트라 이 전개는 상상도하지 않았다. 아윈 얘는 진짜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물고기3은 당최 지금 어디에. 원작과 어긋나는 그의 행방에 대해 고심하고 있자니, 이벨린이 얼떨떨한 어조로 물어왔다.
“ 저어, 라테? 방금 건 도대체….”
끝을 흐리는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난 잠깐 대답을 고민했다. 눈 튀어나오게 비싼 스크롤을 한 뭉치 들고 다니며 내킬 때마다 펑펑 쓴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눈을 한 바퀴 굴리고 대강 말을 지었다.
“ 작년 생일 때 선물로 받은 호신용 마법스크롤이에요. 혹시나 해서 늘 가지고 다녔는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 아아.”
이벨린은 납득한 듯 끄덕이더니 갑자기 꾸벅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내가 놀라 쳐다보니 후드 밑으로 드러난 입매가 곱게 올라간다.
“ 덕분에 살았어요. 라테가 제 은인이에요.”
“ ㅡ어, 그럼 우리 서로 은인이네요?”
“ 어머. 그러게요?”
이벨린이 입가를 가리고 호호 웃었다. 난 그 웃음에서 호감을 읽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런 이득을 봤나. 이벨린이 처한 위기-물론 나도 함께 위기였지만-를 타파한 일로 그녀의 환심을 산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하구만. 어지간히 꼬이지 않고서야 누가 자길 구해준 사람을 싫어하겠어. 난 예상보다 쉽게 얻은 방패막에 그녀를 마주하고 함박 웃었다. 이렇게 케니스 참살루트를 피해가는군. 좋아. 아주 잘됐어.
이게 다 원작을 비틀고 아윈이 나타나지 않은-여전히 이유는 모르겠으나-덕이었다. 얘, 정말 아리가또. 난 속으로 아윈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원작의 전개와 달라졌다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뭐,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시작이 다르더라도 어차피 그가 이벨린의 어장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변치 않을 테니까. 그런 소설이었으니.
복지는 끝내주는데 치안은 구린 웃긴 예산분배를 증명하듯, 이 난리를 벌였는데도 경비병 하나 달려오지 않는다. 난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건달에게 금화를 회수하러 다가가며 이벨린더러 밥이나 먹으러가자고 제안했다. 재깍 그러자는 회답이 뒤에서 들려온다. 나는 귀하신 10골드님을 주우며 메뉴는 뭘로 할까를 궁리했다.
*
웬 미남자가 골목의 풍경을 한눈에 담은 채 제 턱을 매만진다. 남자는 놀랍게도 공중에 떠 있었다. 익숙한지 편안한 자세로 허공에 주저앉은 그의 은발이 마치 천상의 실로 엮어낸 듯 아름답다. 자연히 사람의 시선을 앗는 붉은 눈동자가 후드를 쓴 여인에게로 향했다.
“ 흐음.”
잠시 뭔갈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꽤 거리가 떨어진 공간에 바람이 불며 여인의 후드가 벗겨졌다. 비단 같은 청흑발이 나부끼며 얼굴이 드러난다. 의아한 얼굴로 녹색 눈망울을 깜박이는 것이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남자가 옅게 웃었다. 나쁘지 않군.
그는 여인의 얼굴을 기억에 담아두려는 듯 응시했다. 한낯 비렁뱅이 아이에게 금화를 내밀 때부터 여인은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서지 않은 것은 순전히 확인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행, 모자를 쓴 또 다른 여성. 그 일행에게서 익숙한 마나가 느껴졌다. 어렴풋이 짐작가는 마나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기위해 참견을 배제했던 그는, 그러나 여인이 다친다면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여인의 일행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그녀가 건달에게 뺨을 맞도록 내버려뒀다면 일행은 건달과 함께 나란히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일행이 지닌 마나의 정체는 예상했듯 제 소유의 마탑에서 발행된 스크롤이었다. 감지되는 마나의 크기로 보건데 한두 장이 아닐 터다. 금액을 생각하면 용할 정도였다. 대부호의 딸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옷차림은 수수한 주제에 고액의 스크롤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잠시 흥미를 끌었으나 말 그대로 잠시였다. 목표였던 확인이 끝나고 남자는 일행에게서 관심을 거뒀다.
대신 여전히 흥미가 남은 건 방금 얼굴을 확인한 여인이다. 남자의 눈 꼬리가 즐거운 듯 접혔다. 볼일이 있어 잠시 나온 차에 의외의 수확을 얻었다. 잠시간 더 여인을 눈에 담은 남자가 이내 허공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 작품 후기 ============================
드디어 남주 셋이 죄다 등장 (후련
그와중에 라테 벌써 두 번이나 죽을 뻔 했네여(!
인생 파란만장 쩔 b '-' b
*16화쯤 와서 알아보는 여주 인지도 (feat. 남주들)
>IF 라테가 묻지마 살인을 당했다!
론드미오(남주1): ? 라테가 누구ㅎ
케니스(남주2): 개이득
아윈(남주3): 내 알바 ㄴㄴ
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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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의 표지가 바뀌었어요:D EspressoDoppio님께서 예쁜 라테를 그려주셨답니다! 감사해요(하트뿅뿅
++
라테 남주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여러분..?(동공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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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거 로맨스!에여! 구들 로맨스에여!! 존잘들 중에 라테짝 있어여...!(오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