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2. 두근두근 와작와작 팝콘 팔아요 =========================================================================
“ 이 감동을 나만 느낄 순 없지.”
중얼거린 나는 제자리 뛰기를 멈추고 빈 바구니에 팝콘을 가득 쓸어 담았다. 흘리지 않게 조심조심, 바구니를 품에 안은 나는 그대로 주방을 뛰쳐나왔다. 목적은 간단했다. 난 저택 이곳저곳을 누빌 것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팝콘을 먹일 것이다!
“ 어머, 라테 아가씨.”
“ 좋은 점심!”
주방에서 이래저래 생 쇼를 하는 동안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막 지나고 있었다. 난 있지도 않은 인사를 지어내 건네며 릴리에게 바짝 다가갔다. 릴리는 내 저돌적인 접근에 깜짝 놀란 듯 복도에 서서 눈만 동그랗게 떴다. 난 그녀의 지척에 당도해 샐쭉 웃었다.
“ 아 해봐.”
“ 네?”
“ 얼른.”
내 재촉에 릴리는 당황하다 마지못해 입을 벌렸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갑질해서 미안, 릴리. 그치만 팝콘 주려고 그러는 거니까 뭐…. 나는 도톰한 그녀의 입술사이로 냉큼 팝콘 몇 알을 집어넣었다.
“ 이, 이에 어에여?”
“ 과자야. 일단 먹어봐.”
어리둥절해하던 릴리는 이내 시킨 대로 얌전히 입안에 든 걸 씹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팝콘을 씹어 꼴깍 넘기자마자 릴리가 커다래진 눈으로 즉각 반응했다.
“ 어머나! 이게 정말 뭐에요?”
“ 팝콘. 내가 만든 과자야, 방금.”
드푸가 아주 약간 도와줬어. 난 양심 없이 덧붙였다. 릴리는 그런 내게 태어나서 이런 건 처음 먹어본다며 굉장히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새로운 이에게 팝콘의 맛을 일깨워주었다는 사실에 한층 뿌듯해졌다. 더 먹고 싶다는 그녀에게 팝콘을 한주먹 쥐어주고 난 다음 타자를 찾아 다시 복도를 누볐다.
자작저는 나름 넓은 편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제법 되었다.
“ 안녕하세요, 아가씨.”
“ 라테 아가씨, 여기서 뭐하세요?”
“ 아가씨! 다 큰 숙녀분이 그렇게 품위 없이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제가 몇 번이나….”
마주치는 인물들마다 서로 하는 말은 달랐지만, 난 평등하게 그들 모두에게 똑같은 개수의 팝콘을 먹여주었다. 후훗, 나의 공평함이란. 마르크스도 울고 가겠군. 그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맛있다는 말을 빼먹지 않고 꼭 했다. 이미 팝콘에 빠진 눈치들이었달까. 나는 많은 이들을 팝콘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에 몹시 뿌듯해졌다. 아 성취감 쩐다. 편애 없는 나눔으로 인해 텅 빈 바구니를 품에 끼고 난 폴짝거리며 주방에 회귀했다.
드푸는 한가득 채워나가더니 순식간에 도로 비워온 내 바구니를 보곤 ‘더 만들까요?’하며 물어왔다. 그에 잠깐 고민하다 난 고개를 저었다. 원래 뭐든 때에 맞춰 깔짝깔짝 먹어줘야 맛있지, 아무 때나 왕창 흡입하면 질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팝콘은 살찌니까. 나는 트랜스지방이나 콜레스테롤 같은 두려운 이름들을 상기하며 팝콘은 조금씩만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팝콘도 완성했겠다 더 이상 걱정은 없었다. 이제 태평히 빈둥거리며 대망의 관람일이나 기다리면 된다. 난 내일쯤 시장에 가서 옥수수를 한아름 더 사올까하는 일정을 짜며 싱글벙글 웃었다.
“ 아가씨, 살찌셨죠?”
쏜살같이 찾아온 연회의 마지막 날 아침, 에슐라는 내 코르셋을 조이며 제 주인에게 몹시 불경한 소리를 했다. 난 부러 대꾸 않고 눈만 가늘게 떠 그녀를 응시했다. 그런 말을 하는 에슐라가 되려 나보다 더 살이 쪘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집요한 시선에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에슐라는 헛기침을 하며 끈을 당기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잠깐, 나 숨 좀.
“ 아휴, 힘들다.”
예쁘게 매듭을 묶은 에슐라가 짐짓 고생했다는 듯 이마의 땀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쟤가 진짜. 난 에슐라를 곁눈으로 흘기곤 거울 앞에 서 자태를 점검했다. 깐깐한 코르셋이 잡아준 허리는 여전히 개미마냥 가늘었지만, 대신 전보다 호흡곤란이 가중되었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숨 쉬기 진짜 힘들어…. 이런 젠장. 난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이게 다 팝콘 때문이었다. 이 마성의 팝콘.
나는 지난 며칠간 나를 비롯한 저택의 가솔들이 얼마나 신명나게 팝콘을 먹어댔는지 기억했다. 그들은 카라멜 시럽이나 치즈소스를 뿌리는 등 여러 조미료를 첨가하는 신박한 응용력으로 나를 놀래 켰고, 번갈아 주워 먹는 여러 종류의 팝콘들은 당최 질리지가 않았다. 어느새 치즈파, 카라멜파, 스파이시파 등등으로 나뉜 여러 종파(?)사이에서 나는 꿋꿋이 오리지널을 외치며 그들과 함께했는데, 결국 그 결과 닷새 만에 이 꼴이 나고 말았다.
난 코르셋이 내게 주는 고통에 벌써 지쳐 말했다.
“ 오늘은 대충 꾸미자….”
“ 네? 왜요?!”
에슐라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난 그 불만에 도리어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너 설마 아직도 미련 못 버렸니?
확실히 고생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한층 예뻐지긴 했지만, 그런다고 황태자가 이벨린을 버리고 내게 눈길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외모문제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구태여 얼굴싸움으로 끌고 가더라도 나는 완승과는 거리가 먼 외양이었다. 며칠 전 본 황성에는 그야말로 절세미인들이 널려있었으니까.
아, 떠올리니까 불만 쌓이네. 기껏 예쁜 얼굴에 빙의한 보람이 무색하게도 이 세계엔 미인들이 차고 넘쳤다. 아니 왜? 남자는 세 놈 빼고 다 흐릿하게 생겼더만. 물론 얼추 작가의 의도가 짐작되긴 했다. 그만큼 남주인공들에게 인기가 몰리도록 하고, 그 많은 미녀들을 다 마다하며 여주인공을 선택하는 것에 특별함을 가중시키려 한 거겠지. 난 착잡함에 고개를 내저었다. 소설로 읽을 땐 좋았는데 실제로 들어오니까 여기 완전 꿈도 희망도 없다.
여튼 나는 황태자와 나를 엮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기대인지 에슐라에게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현실에 기반한 내 서술에 열여섯 꿈 많은 소녀의 얼굴이 점차 울상이 되는 게 보였다. 미안, 애슐라. 너도 이제 성장하렴.
설득이 성공한 덕에 난 간단한 치장만을 마치고 해방될 수 있었다. 하하, 개이득. 사실 예뻐지는 기분도 좋긴 좋았지만 어차피 구경이나 할 건데 용모가 무슨 상관이랴. 고생도 고생인데다 시간 아까웠다. 나는 오늘 돌아오면 관람한 내용을 에슐라에게 최대한 흥미진진하게 설명해주랴 마음먹으며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차를 탈시간이 다되어 내가 챙긴 것은 소량의 비상금과 옥수수 알갱이였다.
“ 조심히 다녀오렴.”
“ 걱정 마세요.”
엑트리 자작부인, 내 어머니는 늘 걱정이 많았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보니 나름 독특한 캐릭터셔. 생각하며 난 마차를 출발시켰다. 품 안의 옥수수꾸러미가 느껴지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가 미리 완성된 팝콘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구경 시 눅눅해진 것을 먹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차에서 보내야하는 시간을 생각해볼 때 차라리 옥수수를 챙겨 입성 직전에 튀기는 것이 나았다.
한참을 달리다 나는 황성이 가까워질 무렵 마차에서 내렸다.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은자를 하나 쥐어주며 설명과 함께 옥수수의 조리를 부탁했다. 간단한 과정이었으므로 난 손쉽게 팝콘을 얻을 수 있었다. 종이봉투 같은 것에 팝콘을 담고 나는 즐겁게 황성으로 향했다. 성문의 경비병은 내가 들고 있는 팝콘에 그닥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궁금해 하면 하나 먹여줘야지 하던 참아라 살짝 아쉬워졌다.
나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연회장이 아닌 정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도 회장 안에선 성대한 파티가 진행 중이겠지만 내 볼일은 그곳에 없었다. 이벨린이 남주인공 2를 만나는 장소는 홀이 아닌 정원 한구석이었다.
“ 이 쯤 맞나?”
혼잣말과 함께 난 샅샅이 정원을 뒤졌다. 기억이 맞다면 사람이 올라갈만한 큰 나무와 아슬아슬 기울어있는 새둥지가 있어야했다. 어릴 때 이 근처에서 토끼를 만났던 아련한 추억이 슬 떠오를 쯤, 나는 목적하던 것을 찾았다.
‘ 유레카!’
나는 쾌재를 부르며 발견한 나무의 근방을 살폈다. 마침 운 좋게도 몸을 숨겨 구경할만한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난 냉큼 달려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자세를 잡은 뒤 잠자코 여주인공의 등장을 기다렸다. 이제 곧 이벨린이 나타나 저 나무 위를 타고 올라갈 것이다. 왜냐하면 까마득히 위에 있는 위태로운 새둥지를 바로잡아줘야 하거든.
얼마나 기다렸을까? 고대하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디 연회에 관심이 없는 이벨린이 갑갑함에 정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나무 위의 둥지를 발견하게 되는 전개였다. 차분히 걸음을 옮기다 이내 나무에 시선을 주는 그녀의 모습에 난 팝콘 하나를 골라 입에 넣었다. 노릇하게 튀겨진 팝콘은 아직 바삭했다. 음, 아주 좋아.
“ 아, 어떡한담.”
이벨린의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느새 올라간 나무위에서 다시 내려올 방법을 찾지 못해 옴짝달싹못하고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조금만 있어보렴.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가 나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오!
“ …그런데서 뭘 하는 거지?”
남주인공2, 케니스 폰 에스반데. 잘나가는 제국 최연소공작의 등장이었다.
난 치솟는 흥미진진함에 팝콘을 열심히 집어먹으며 상황을 관전했다. 물론 최대한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근데 쟤 목소리 엄청 좋네.
“ 어…누구세요?”
이벨린이 제게 말은 건 공작에게 멍하니 물었다. 케니스는 그녀가 저를 모른다는 사실에 통수를 맞은 표정을 했다. 아나, 개웃겨. 유학생인데 모를 수도 있지. 나는 이벨린의 누구냐는 물음에 굉장히 놀란 듯 반응하는 공작의 작태에 치미는 웃음을 참았다. 뻔하니까 더 재밌어.
“ 정말 날 모르나?”
“ 네. 혹시 알아야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아, 혹시 이 곳 폐하…실리는 없는데.”
이벨린이 나무 위에서 백치미 터지는 대사를 읊으며 어리둥절해하자, 그 꼴을 응시하던 케니스가 돌연 피식, 웃음을 뱉어냈다. 그리고 난 폭소를 참기위해 입을 막았다. 황태자도 피식, 쟤도 피식. 혹시 그거 남주인공 패시브 스킬이니?
“ 저기, 웃지 말고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혼자선 못 내려가겠어서….”
“ 애초에 그런 곳에 올라간 이유가 궁금하군.”
“ 둥지 때문에요….”
“ 둥지?”
“ 네. 새둥지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기울어져 있어서, 좀 잡아주려다 보니.”
말을 마치고 이벨인이 민망한 듯 헤헤 웃었다. 케니스는 그런 이벨린에게 알겠다 대답한 뒤 그녀가 뛰어내리는 것을 받아주었다. 오호, 이것 참 황태자에 비하면 빠른 전개로군. 물고기2가 물고기1을 제치고 있었다. 어차피 뒤로 가면 평등해지겠지만.
그나저나 갑자기 바람이 불어 그런지 둘의 말소리가 전처럼 잘 들리지 않았다. 난 드문드문 끊겨 들리는 그들의 대화에 조금 답답해졌다. 궁금한데. 잠시 기다려 봐도 여전히 미약한 전달에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가까이가자. 한, 두 발자국만.
그리 생각하며 발을 딛었을 때였다.
와작!
“ …?”
난 내 발치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 이건? 언제 흘렸는지 바닥에 떨어진 팝콘을 내가 정통으로 짓밟은 효과음이었다. 유난히 바삭한 조각이었던 듯 소리는 선명했고, 남주인공 케니스는 귀가 밝았다.
“ ㅡ누구냐.”
걸렸네. 이런, 설마 팝콘때문에 들킬 줄이야. 나직한 목소리에 한숨을 삼키며 주저없이 성큼 앞으로 나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지나가던 행인1 행세를 할 생각이었다. 핑계거리야 만드는 대로 나올 테니까.
그러나 태연자약 말을 꺼내려던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케니스의 눈동자를 마주하곤 그대로 흠칫 굳었다. 낮게 가라앉은 짙은 남색 눈. 나를 향한 시선에 속 깊은 곳부터 올라오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낯설지 않다.
뭐지?
난 저 눈을 알고 있었다. 나는 분명, 저런 시선을 기억하고 있다.
저건.
저건 분명…….
‘ 아니 이 새끼가?’
깨닫자마자 욕이 나왔다. 케니스는 다름 아닌 사생팬을 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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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빠방하져??*-_-* (제기준(뿌듯
+
걱정되는 이 소설의 미래...
남주인기<<<<<<(넘사벽)<<<<<<<<팝콘 인기
왜 전 쓰는 것마다 무생물이 인기가 더 많아여?(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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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조심하세요ㅠㅠㅠㅠ(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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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읽을때마다 없던 기운도 솟아나는 기분이에요ㅋㅋ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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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팬: 특정 인기연예인의 사생활,일거수일투족까지 알아내려고 밤낮없이 해당 연예인의 일상생활을 쫓아다니며 생활하는 극성팬을 지칭한 표현.
학업이나 직장생활까지 뒷전으로 미룬채 해당 연예인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고, 특히 스토커 수준으로 변하는 사례도 있는터라 최근 들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오픈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