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9 2. 두근두근 와작와작 팝콘 팔아요 =========================================================================
작심하고 나니 멀뚱히 서서 낭비하는 시간이 급속도로 아깝게 느껴졌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더 이상 한가한 구경꾼이 아냐, 중요한 용무가 생긴 바쁜 여자다. 얼른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빈 잔을 내려놓고 막 카노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려던 차였다. 무심코 옮기던 시야에 연회의 본래 주인공이 들어와 나는 그대로 잠시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다.
로젤리아. 론드미오의 누이인 그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따금 호응하듯 얕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눈가가 접히고 입술이 호선을 그릴 때마다 황녀의 주위로 꽃망울이 여럿 피어나는 느낌을 준다. 나는 언제 속으로 호들갑(바쁘다고)을 떨었냐는 듯 다시 얌전히 관망태세에 들어갔다. 로젤리아 황녀는 꽃 같은 미인, 이라는 말이 틀에 맞춘 듯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 저렇게 예쁜데.’
그 자태를 열렬히 감상하다 나는 얼핏 그녀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더듬어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황녀는 다소 미련한 캐릭터였다. 그녀는 여주인공의 어장이 무르익을 때쯤 케니스(남주인공2)에게 연심을 품게 되는데, 케니스는 누가 소설 남주 아니랄까봐 얼굴 되고 성격 되고 지위도 되는 황녀에겐 눈길한번 주지 않고 저 외에 다른 물고기가 둘이나 더 있는 여주인공만 호구처럼 좇는다. 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히 비운의 인물인데 심지어 로젤리아는 이벨린의 곁에서 그녀에게 굉장히 잘해주기까지 한다. 당시 ‘?’ ‘??’ ‘???’ ‘????????’만 난무하던 댓글창의 혼란이 뒷받침하듯 로젤리아의 행동은 깨나 상식 밖의 것이었다. 나라면 벌써 이벨린 머리채를 잡아도 너댓번은 잡았을 텐데 황녀는 제 오라비와 연정상대를 동시에 어장에 넣고 관리중인 당사자에게 ‘당신이 웃어야 케니스도 웃으니까요….’라며 지극정성을 다한다. 그야말로 하늘을 뚫는 호구력이었다.
나는 머지않을 그 미래를 상기하며 황녀에게 착잡한 시선을 보냈다. 예쁜 언니, 언닌 왜 그렇게 호구에여?
애석함에 고개를 젓고 있자니 로젤리아가 재차 꽃처럼 웃는 게 보였다. 다시 봐도 참 예쁘다. 청초하고. 저런 미인이 목을 매는 케니스의 상판은 또 얼마나 휘황할까. 나는 조금 전 관람했던 황태자와 얼추 비슷할 공작의 상상도를 속으로 그려보며 카노에게로 눈을 돌렸다. 황녀는 이쯤 봤으면 많이 봤다. 인사하고 빨리 가야지. 팝콘이 시급하다.
먼저 가겠다는 말에 카노는 제법 놀란 얼굴을 했다.
“ 왜? 벌써?”
“ 응, 그냥 할 일이 좀 생겨서. 넌 더 있을 거지?”
“ 어, 응. 나야 뭐…….”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는 카노의 뺨이 붉었다. 혹시 모를 황태자의 재출현을 기다리겠다는 뜻이 역력하여 난 차마 치미는 딱함을 삼킬 수 없었다. 얘 오늘 여기서 밤새겠네.
론드미오는 어장의 균형을 위해 케니스와 아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게 뻔했지만, 난 가식어린 미소와 함께 사실과는 다른 말을 했다. 대강 내 몫까지 황태자를 영접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연회장을 나오자 시종이 재빠르게 마차를 불러주었다. 출성하자마자 올라탄 마차에서 올 때와 같은 흔들림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시야가 어둠으로 덮이는 즉시 카노가 먼저 떠올랐다. 우웃, 내 친구 카노 불쌍해.
청춘이란 다들 그렇게……사랑의 쓴 맛을 보며 성숙해가는 거겠죠? 나는 친구의 성장을 기원하며 마차에 등을 기댔다. 그새 어두워진 창밖의 풍경은 그닥 볼 게 없었다. 난 잠깐 떴던 눈을 다시 감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힘을 쭉 뺀 채 기대어있자니 점차 편안해지는 신체에 덩달아 마음까지 안정을 찾는다. 잔잔한 수면처럼 고요해진 심중에서 나는, 복잡한 것들은 저리 떨치고 나를 가장 평온하게 하는 주제를 연상했다.
‘ …이번작품 인세가 얼마나 될까?’
돈 생각이었다.
*
자작저로 귀택했을 때는 이미 완연한 밤이었다. 난 주방으로 달려가는 것을 아침으로 미루고 대신 드레스와 머리에서 장신구를 떼어내는 에슐라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부지런히 보석함을 정리하고 내 머리를 빗어 내리면서도 계속해서 작은 입을 조잘거렸다. 나는 에슐라의 앵무새 같은 질문에 일단 숙지하고 있던 모든 미사여구를 동원해 황태자의 외모를 설명했는데, 한참이나 이어지는 찬사를 반짝이는 눈으로 경청하던 에슐라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래서 황태자전하와는 어떤 썸이 있었는데요?’하는 표정을 했다. 나는 내가 그 어떤 문장을 통해 돌려 말하든 에슐라를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에, 뱉어낸 말은 가감없는 사실 그대로였다. ‘다른 영애들과 함께 먼발치서 구경했어.’
말을 듣고 에슐라는 한참이나 조용했다. 목욕물을 거의 다 받을 때까지 침묵한 그녀는 혹여라도 뒤에 이어질 ‘그런데 한참 구경하던 와중, 갑자기 전하께서 이쪽으로 다가오시는 거야.’같은 반전을 기대하고 있던 듯했으나 내가 별다른 말없이 씻을 채비를 하자 그제야 울상인 얼굴을 했다. 잔뜩 시무룩해진 기색에 욕실로 들어가며 조금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에슐라도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닌 듯 목욕을 마치고나오니 그녀는 다시 멀쩡한 낯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꿀잠을 자고일어나 대충 사람 꼴을 갖추자마자 주방으로 내달렸다.
“ 좋은 아침, 드푸!”
잠을 푹 자서인지 모르겠지만 난 꽤 기분이 좋았다. 왠지 팝콘 따윈 한 방에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근거 없이 솟아오르는 자신감에 가득 찬 채로 주방에 들어서 밝게 인사하자, 날 발견한 주방장 드푸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 히익!”
“ …….”
“ …….”
상처가 되는 반응이긴 했지만, 저지른 짓이 있었던 고로 그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난 지난 일주일간 내가 팝콘을 만든답시고 주방에서 벌였던 각종 테러를 상기하며 드푸의 질겁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D 목요일에 만나자고 해놓고 조금 일찍 왔습니당.
그...뭐...내일 시험 오후라서 여유가 있었어요..(동공지진)
.....신에겐 아직 기말이 있사옵니다.
목요일에 정말 빠방하게 다시만나여ㅠㅠㅠㅠ씨유레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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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베 화력이 엄청나네요. 저 진짜 깜짝 놀람. 깜!!!!짝 놀람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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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고 빵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팝콘대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카노랑 썸타냐는 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배째질 뻔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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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ddl0610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_;! 드..드릴 건 없고 제 사랑이라도 어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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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리안님, Jacaranda님, 빱알님께서 라테를 그려주셨습니다.
뜰에 오시면 보실 수 있어요. 끄앙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