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2. 두근두근 와작와작 팝콘 팔아요 =========================================================================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론드미오가 진정 얼굴깡패였다는 것이다. 얘는 진짜 얼굴로 다 해먹는 놈이었다. 그는 외모 하나로 만인의 이목을 주워 삼켰을 뿐 아니라, 무려 방금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그러니까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이런 짓을 했는데 이게 세상에 멋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이게 멋있을 수 있지? 상상만 해도 오글거리고 손발이 마모될 것 같은데 이걸 그냥도 아니고 멋있게 만들다니 와 얘 진짜 사람 맞냐.
황태자의 행동에 옴므적 매력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여기저기서 탄성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응시한 곳에는 몇몇 영애가 봄날 오후처럼 풀린 얼굴을 하고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다. 오, 맙소사. 론드미오는 고작 3분 만에 사랑에 빠진 소녀 떼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의 대단함을 넘은 비범한 능력에 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 다음전개가 어떻게 되더라. 한순간 나를 예언자로 만들었던 비상한 기억력은 어느새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선명한 서술이 아닌 전처럼 큰 사건 위주로 드문드문 끊기는 구린 기억이 다였다. 뭐야…. 머리 쓸어 올리는 거 떠올리고 끝이야? 난 다시 범재의 것으로 돌아온 내 뇌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예언 맞추는 기분 짜릿했는데.
아쉬워하다 나는 문득 금시의 상황이 제삼자가 본다면 얼마나 웃긴 광경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도 그럴게 연회장 다수의 사람들이 황태자만 보고 있고, 그 와중에 황태자는 여주인공만 보고 있고, 여주인공은 이게 뭔가 하는 어리둥절한 얼굴만 하고 있었다. 뭐지 이거. 코미딘가.
이대로 고착된 채 가만히 흘러가나싶던 형국은 새로운 사람의 등장으로 다른 흐름을 맞았다.
“ 황제폐하와 비전하께서 드십니다!”
헤일론의 주인이 입장했다. 황제와 황비가 장내로 들어서면서 황태자에게 몰려있던 시선이 분산되었다. 나도 론드미오에게서 눈을 뗐고, 그는 이벨린을 응시하던 눈길을 거뒀다.
나는 황태자에게 이처럼 치명적인 유전자를 물려준 장본인에게 다소간의 기대를 가지고 그들을 돌아보았는데, 단상에 올라가 앉은 황제는 놀랍게도 그냥 옆집 아저씨처럼 생긴 풍모였다. …아니? 그렇다면 혹시 어머니 쪽이 대륙제일미? ㅡ또한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흔한 미인상이었다. 어머, 이거 설정미스 아닌가요?
“ ㅡ오늘, 우리 로젤리아의 열일곱 번째 생일축하를 위해 이렇게 모여주어서 감사하오.”
생김새는 푸근하더라도 역시 황제는 황제인 모양인지, 장내를 울리는 그의 축사에는 강인한 카리스마가 가득했다. 나는 감히 황제의 외모를 품평하던 건방진 마음을 고이 접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좌중을 휘어잡는 위엄. 음, 멋지다.
황제의 축하말은 짧고 간결하여 금방 마무리를 맺었다. 그는 ‘연회를 마음껏 즐겨주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황비와 함께 퇴장했는데, 원래 그럴 생각이었던지 황태자가 그 뒤를 따랐다. 론드미오는 애초에 얼굴만 잠깐 비추러 왔던 성싶었다. 그렇게 황태자는 등장한지 5분 만에 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홀 안은 그런 그가 5분 만에 남기고 간 여파 때문에 난리였다.
“ 아아, 황태자전하….”
“ 내가 꿈을 꾼 건 아니겠지? 세상에, 사람이 어쩜 저리 생길 수 있을까?”
“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 다시 뵙고 싶어….”
그 짧은 시간에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수많은 영애들이 론드미오가 없어진 장내에서 하나둘 상사병을 앓기 시작했다. 연회장은 순식간에 환자집합소가 되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역시 팝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다, 퍼뜩 카노가 떠올라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탄식을 삼켰다.
“ 라테, 나…전하의 용안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아.”
카노는 흡사 꿈꾸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내 친구가 환자가 되다니…. 나는 최대한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 심장 떨려?”
“ 응.”
“ 생각하면 막 숨이 막혀?”
“ 조금….”
“ ……화이팅.”
나는 차마 그녀에게 ‘니가 사랑에 빠진 황태자는 곧 남의 물고기가 될 예정이니 그 거지같은 마음 빨리 접어라’고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없었다. 기실 듣는다고 냉큼 접어질 것도 아닐 테고. 나는 대신 카노를 응원했다. 힘내. 멘탈 잘 챙기고…여주인공에게 찻물 끼얹기 같은 건 하지 마렴. 본디 카노는 순한 성정이라 걱정은 없었지만, 혹여라도 악녀로 진화 할 낌새를 보인다면 몸 던져 막아주리라 다짐했다. 난 네가 찻물을 끼얹었다가 찻물처럼 산화하길 바라지 않는단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근처에 있던 샴페인 잔을 집어 들었다. 친구의 무탈한 앞날을 위해 치얼스.
복숭아맛이 나는 샴페인 잔을 비우며 난 이제 뭘 할까를 고민했다. 일단 퇴장한 황태자가 오늘 다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순서상 그가 다시 나타나는 때는 이벨린이 남주인공2 케니스(공작)와 남주인공3 아윈(마탑주)을 만나고 난 뒤였다.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이벨린은 케니스를 황성의 정원에서, 아윈은 수도의 저잣거리에서 만난다. 차례는 열거한 그대로인데 날짜가…가만 보자….
‘ 연회 마지막 날!’
기억났다. 이벨린은 일주일간 열리는 이번 연회의 마지막 날 공작과 마주칠 예정이었다. 아윈은 그보다 뒤에 만나는 대상이었으니, 내겐 적어도 닷새의 시간이 생긴 셈이었다.
팝콘. 팝콘을 만들자.
나는 할 일을 정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은 대학생활을 소중히하는 것이 좋습니다. (잠이 모자라 침침한 눈을 비비며)
저 더이상 나댔다가는 정말 총맞을 것 같네여(에프탕!탕ㅌ타ㅏ탕!)
다음편은 목요일 이후에 만나요 씨유레이러☆
+ㅋㅋㅋㅋㅋㅋㅋ이 소설 로맨스 있으니까 걱정마세여! 라테도 언젠가는 썸을 탑니다! 그 뭐냐, 언젠가는!
+천사엄마 님께서 구.들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해요! 표지 되게 귀여움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