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6 2. 두근두근 와작와작 팝콘 팔아요 =========================================================================
열흘 중에서 고작 하루가 지난 날의 아침이었다. 에슐라는 늘상 그래와 이젠 특이할 것도 없는 사자머리를 한 나를 앞에 두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 드레스! 드레스를 사러 가요, 아가씨!”
으응?
에슐라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아침댓바람부터 믿도 끝도 없이 내게 쏟아낸 말은, 아침을 먹고 나서야 그 연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 잘! 보여야죠! 연회장에서! 황태자전하께!”
언제 알았을까. 열흘, 아니 이젠 아흐레 남은 황녀의 탄신연회와 그 연회에 황태자가 참석한다는 소식은 에슐라의 귀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미 자작저의 사용인들은 다 알고 있겠군. 하긴, 어차피 잘나디 잘난 론드미오 황태자는 늘 모두의 화젯거리였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기대에 부푼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에슐라에게 나는 단호히 말했다.
“ 드레스 안 사.”
“ 네? 왜요? 왜 안 사요? 분명 뷰티살롱에 최신 유행하는 드레스가….”
“ 로지에 이모께서 새 드레스를 보내주신 게 고작 2주 전이야. 그걸 놔두고 뭐 하러? 낭비야.”
“ 네에?! 그치만…….”
에슐라가 울상을 했지만 난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현실의 벽을 느끼고 사교파티를 끊은 이후부터, 드레스는 내 관심 밖의 영역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나는 특별히 검소하거나 사치(주로 사비를 이용)를 마다하는 성정은 아니었으나 드레스처럼 흥미 없고 비싸기만(내 기준)한 품목에 들어가는 돈은 아까웠다.
그렇다고 내 옷장에 드레스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외려 그곳엔 생일선물 따위로 받은 가지각색의 드레스들이 제법 빼곡히 늘어서있었다. 더군다나 열다섯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체격은 치수가 맞지 않을 걱정으로부터 날 해방시켜주었으므로(젠장) 선택의 폭이 꽤나 넓은 편이었다.
에슐라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한동안 시무룩해하는가 싶더니, 오후쯤에 갑자기 돌발선언을 했다.
“ 저 화장술 배우러 다녀올게요.”
연회 날 제 아가씨를 꾸며주기 위해 단기출장까지 감행하겠다는 에슐라에게 난 별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기실 아무리 그녀가 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준다 한들 황태자와의 썸씽이 일어날 확률은 0에 수렴했지만, 나는 그러한 사실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그저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재주가 늘면 본인에게도 좋은 일일 테니.
에슐라의 출장은 일주일짜리였고, 그녀는 정확히 이레 후 자작저로 돌아왔다. 나는 그동안 팝콘 만들기를 약 세번 쯤 실패했다.
“ 귀걸이는 이쪽 걸로 하고, 브로치는 어느 게 좋으세요?”
그리고 이틀이 더 지난 대망의 날. 마침내 맞이한 연회 당일에 저택의 시녀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 아무거나…….”
난 그 와중에 죽을 맛이었다.
“ 좋아요, 그럼 아가씨의 흰 피부를 강조하는 쪽으로 골라볼게요. 드레스와의 조화도 생각해서 아무래도 이게….”
“ 아냐, 릴리, 그거 말고 더 옆에 꺼. 왼쪽에서 세 번째.”
“ 이거?”
“ 응. 그게 나아. 업스타일에는 그런 느낌이 어울리더라.”
“ 아하, 그럼 이 걸로. 그럼 다음은….”
공들여 치장해주느라 바쁜 그녀들에겐 미안한 말이었지만, 난 어서 빨리 이 과정이 지나갔으면 하는 일념밖에 들지 않았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대체 이게 몇 시간 째 난리인지 모르겠다. 가장 괴로운 것은 숨도 겨우 쉴 만큼 한계까지 조인 코르셋이었다. 아아, 가여운 내 허리.
“ 가슴께는 진주로 장식할까?”
“ 응. 허리부근엔 붉은 계열이 좋겠다.”
나는 그녀들이 의논까지 해가며 내 드레스에 보석을 주렁주렁 다는 것을 굳이 저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들 이러고 나올 테니 딱히 눈에 띌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기대에 찬 시녀들의 눈빛이 너무…초롱초롱했다…. 난 그들이 오늘 저녁까지나마 꿈을 꿀 수 있게끔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했다. 얘들아, 고생하는데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미안.
“ 아가씨, 거의 다 됐어요.”
“ 거울 한번 보실래요?”
어느새 치장이 막바지로 달해가는 지 에슐라는 전신거울 앞으로 나를 안내했다. 표정들이 싱글벙글한 것이 화장이며 다른 것들이 썩 잘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그닥 기대가 되진 않았다. 솔직히 타고난 생김새가 있는데 꾸며봐야 거기서 거기지, 원판불면의 법칙이 괜히 있겠………괜히 있네?
“ 맙소사. 너네 정말….”
난 말을 잇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야말로 사기에 가까웠던 터다. 와, 말도 안 된다 진짜. 과거 어느 날 신부대기실에서 보았던 친구의 얼굴보다도 지금의 내가 더 놀라웠다. 이건, 정말…쌩얼을 들키는 순간 곧바로 전쟁이 시작될 것만 같은 수준이랄까.
이런저런 장신구로 틀어 올린 머리가 무겁긴 했지만, 대신 화려하고, 화사하고, 또 예뻤다. 이래서 여자는 꾸며야한다고 하는구나. 나는 항상 보던 내 얼굴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져 거울에 대고 요모요모 뜯어보았다. 오…암 쏘핫.
마무리로 드레스 밑단을 정돈하고 나자 치장은 완전히 끝났다. 난 평소에 비해 실로 아리땁게 단장된 채 방을 나섰다. 마주치는 사용인들마다 내 변신을 놀라워했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어머니께서 호들갑을 떠신 덕에 나는 약간 쑥스러워졌다.
연회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작저는 수도에 위치한 저택이었으나 황성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기에, 나는 소요될 시간을 생각하여 다소 일찍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달리는 동안 저절로 상념이 떠올랐다. 이벨린 도트, 론드미오 드 헤일론. 두 사람에 대한 서술이 차례로 머리를 스쳤다. 마침내,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 도착했습니다.”
마차는 무사히 나를 황성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입구에서 신분을 확인받고 입성한 후 곧장 연회장으로 향했다. 예정된 시각까지는 아직 여유가 좀 있었으나 너른 홀 안은 이미 사람들로 잔뜩이었다.
“ 라테!”
“ 카노.”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카노였다. 그녀는 뭇 경이로운 내 변신에 놀란 듯 했으나, 그런 걸로는 카노또한 나에 못지않았다. 늘 수수한 멋으로 일관하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장미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상기된 뺨을 보니 황태자를 본다는 사실이 꽤나 설레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칭찬(예쁘다)과 간단한 담소를 나눴다. 그러다 시계는 정각을 가리켰고,
마침내 연회가 시작되었다.
들뜬 대화들로 시끄러운 홀 안에서 나는 잠자코 샴페인을 홀짝이며 주인공들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마시던 잔을 다 비우기도 전, 우렁찬 목소리가 소음을 갈랐다.
“ 론드미오 드 헤일론 황태자전하와 로젤리아 드 헤일론 황녀전하께서 드십니다!”
홀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이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방금 전까진 소란스러워 들리지 않았던 악단의 감미로운 연주가 감도는 연회장 내로, 두 인영이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
“ …세상에…….”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툭, 하고 부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미쳤구나!’
나는 생각했다. 론드미오를 보자마자 저절로 떠오른 것이었다. 남주인공1 황태자는 실로 미친 외모를 하고 있었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되살았다. 친한 친구가 우연한 기회로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생겼다 일컬어지던(카메라로는 그 미모를 십분지 일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소문이 공연했다)남자배우를 코앞에서 보고 돌아온 날이었다. 어땠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
‘ …잘생겼어. 시발, 잘생겼어! 그냥 시발 어 잘생겼어!!’
라고 말했다.
그때는 브로카 영역(손상 시 언어장애가 오는 뇌의 일부분)이라도 다쳤냐며 친구를 놀렸었지만, 이제와 나는 그녀를 십분 이해했다. 그것은 그녀의 최선을 다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여느 로맨스판타지에서 남주인공의 외모를 묘사하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가 남발되었던 이유 또한 납득할 수 있었다. 소설을 집필하면서 ‘그는 매우 시x 잘생겼다.’ 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쌍욕을 부르는 미모. 황태자는 정말이지 기겁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과거에 소설에서 남주인공을 대륙최고미남(..)으로 설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대륙최고는 좀 오바였나'하고 생각하면서 무협지를 읽었는데
천하제일미
고금제일미
ㅇㅅㅇa.....응. 남주인공 대륙최고미남 해도 될 것 같아요.
+
2X년 살면서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을 딱 한번 본 적이 있답니다.
수줍은 새내기 시절 학교 정문 근처 지나가다 목격.
와;;; 군중 속에서 자기 혼자 빛나는 사람 처음 봄. 후광이란 게 정말 있긴 있구나 싶었네요. 근데 왜 그 뒤로 몇년 간 못봤지...
(아이도루를 코앞에서 봤을때도 저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대체 그 사람 뭐였을까요. 어케 생겨먹은겨. 지금은 생김새가 아예 기억도 안나요 그냥 빛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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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어디서 엄청난 미인을 보고 와서는 "진짜! 진짜 이쁘더라! 아니 진짜 그냥 진짜 이쁨!! 진짜!! 아 진짜!!" 라고 하더라고요. '진짜'만 한 20번 함ㅋㅋㅋㅋㅋ정말 표현 할 말이 없나봐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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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젠 슬슬 진심 공부해야할듯......사요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