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 0. 시작 =========================================================================
큭큭. 너는 평소 네 머리카락을 소중히 하지 않았어. 자, 게임을 시작하지.
“ …….”
나는 별 거지같은 환청을 들으며 눈앞에 놓인 거울을 응시했다. 십대후반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갈색 눈을 느리게 깜박거리며 제 머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뻗친 꼴이 아주 볼 만하다. 세발자전거 타고 다니는 정신이상자 놈이 내가 잠든 사이에 내 머리위에 폭탄이라도 터뜨린 걸까. 어찌나 이쪽 저쪽으로 뻗쳐있는지 갈기 싸움으로 동물의 왕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휴, 이놈의 잠버릇.
어릴 적 유독 잠자리를 뒤척였던 다음날, 산발이 된 내 머리를 보고 “와 이거 완전 까치집이네”하고 혼자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 웬 까치가 등장해 제 집을 소중히 품에 안으며 ‘엮지 마 x발!’하고 절절히 외치는 꿈을 꿔야 했다.
아 회상하지 말걸. 아침부터 진짜 사람 슬퍼지게…흑흑.
“ 아가씨, 일어나셨…에구머니나.”
늘 그렇듯 내 기상을 확인하러 온 벨벳 유모가 내 두피가 제 집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듯한 파격적인 자유갈구 머리스타일에 깜짝 놀라 입을 가린다. 응, 놀랄 만 하지. 오늘따라 상태 심각한 거 나도 인정. 내가 어제 뭔 짓을 했더라.
“ 간밤에 잠자리가 좀 뒤숭숭하셨나봐요. 많이 뒤척이셨네.”
“ 으응…조금.”
뒤척임 정도로 만들어질 머리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유모는 에슐라를 불러온다고 했고 난 그에 잔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슐라는 전생에 미용실 가위가 아니었을까싶을 만큼 남의 머리를 잘 정돈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고, 그러한 그녀의 재주는 지금처럼 내게 대단히! 몹시! 유용했다.
기다리는 동안 세수라도 할까. 준비된 세숫물에 손을 담그며 나는 습관처럼 재차 거울을 쳐다봤다. 아침이라 조금 부은 눈을 한 폭탄머리 소녀가 멀거니 이쪽을 응시한다. 익숙해지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던 옅은 색소의 갈색 눈과 금발머리가 이젠 당연히 내 것인양 자연스러웠다. 새삼스럽지만 얼굴평가를 하자면 눈은 제법 예쁘다. 피부도 깨끗한 편이었다. 머리카락…은……후……말을 말자. 아오.
끝이 살짝 내려간 눈이 어딘가 비굴한 듯 하면서도 귀여운-뭐. 왜. 뭐.-인상의 거울 속 소녀는, 엑트리 자작가의 무남독녀로 풀네임은 라테 엑트리라고 한다. 나이는 열여덟. 키는 161. 발사이즈는 230.
바로 내가 ‘들어와 있는’ 몸이었다.
뭔 소리냐고? 나 빙의했거든. 전엔 나이 스물다섯의 중등부 학원 강사 김혜정이었는데, 지금은 귀족가문의 외동딸 라테 엑트리 영애다. 게다가 덧붙이자면 여긴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지구도 아니고 무려 소설 속 세계였다.
나는 지금 소설 속에 들어와 웬 극중 캐릭터를 내 몸으로 삼은 채 숨을 쉬고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거지같은 머리카락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벌써 10년 째였다.
내 인생......
============================ 작품 후기 ============================
(2015. 9. 20 수정)
가볍게 가는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가볍게 즐겨주세용. 찡긋☆
+
지금 정주행하러 왔다는 코멘을 다는 당신. 당신을 사랑할꺼야 -_< ★
독자: 크윽...내 손가락이 부러지더라도 댓글을 달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