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90)

‘위이이이잉.’

한적한 동네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과학수사대 차량과 경찰차, 그리고 태준의 차가 좁은 골목길을 올라갔다.

얼마 뒤 경찰들이 혜경의 집 대문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래?”

“글쎄, 과학수사대??”

“뭐 사람이 죽고 그런 거 아냐?”

“아유, 그럼 안 되는데. 집값 떨어지잖아.”

누가 죽었는지보다 집값이 우선인 동네 사람들이 모여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경찰들과 박 형사가 먼저 올라간 후 태준의 차에서 태준과 가을, 명석이 내렸다.

“가을 씨 데리고 먼저 올라가 있어.”

명석이 가을과 함께 혜경의 집 대문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던 태준이 깊은숨을 내쉬며 당시를 떠올렸다.

[사람을, 사람을 죽인 거야?]

[죽이려고 그런 게 아니야. 이 자식이 멋대로 달려든 거라고!]

[네가 우리 태준이를 위협하니까 그런 거 아냐!]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우리 태준이야?]

패닉 상태에 빠진 건 태준뿐만이 아니라 혜경과 정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어쩔 거야. 어떻게 할 거냐구!]

[묻어 버려야지.]

[뭐?]

[계속 비가 왔으니까 땅 파기도 수월할 거야. 텃밭에 묻어 버리면 돼.]

[말도 안 돼!]

[거기에 묻는 게 제일 안전하니까. 나만 믿어.]

모든 기억을 떠올린 태준이 선호를 찾을 수 있도록 문규에게 부탁했다.

그 후 도담 경찰서에 협조 요청을하고 과학수사대와 함께 선호의 시신을 찾는 일이 진행되었다.

이 집은 혜경과 정기가 사망하고 오랜 시간 빈집으로 남아 있다가 몇 년 전 신혼부부에게 매매가 된 상태였다.

처음엔 완강하게 거절하던 신혼부부는 태준의 진심이 담긴 설득 끝에마당을 수색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

태준은 자신이 짐작한 대로 이곳에 선호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가을 역시 선호를 찾는 현장에 함께하고 싶다고 해 태준이 가을을 태우고 함께 온 것이었다.

그날, 가을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난 후 태준은 가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신을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볼까 봐. 차마 가을의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가을은 한참이나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태준을 향해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해 태준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놀이터를 벗어나 빌라로 올라갈 때까지 가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지만 태준은 그저 가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선호와 관련된 사안을 문규와 진행하는 동안 가을과는 제대로 된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오늘, 며칠 만에 가을의 얼굴을 본 것이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수척해진 가을의 얼굴에 마음이 아파 태준은 오는 내내 제 손만 힘껏 쥐어야 했다.

힘든 가을의 곁을 지켜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만든 사람이 자신임을 알기에 태준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혜경의 집으로 몇 걸음 옮기던 태준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후우…….”

그 자리에 선 채로 옅게 떨려 오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지금에서야 기억이 난 태준은 혜경의 집 앞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서 목숨을 끊던 혜경의 얼굴이 떠올라 태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매만지던 혜경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얕게 몸을 떨던 태준이 이내 트라우마에 맞서듯 막힘없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찬 바람이 강하게 불며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하늘에 잔뜩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빨리해야겠는데.”

“서두르자고.”

땅을 파기 위한 장비를 마당에 펼친 과학수사대 경찰들이 넓은 마당 한쪽에 쌓여 있는 많은 장작을 치우기 시작했다.

조금 전, 태준이 말한 텃밭이 보이지 않자 넓은 마당을 둘러보던 경찰이 한쪽에 수북하게 쌓인 돌 위로 장작이 쌓인 것을 발견했다.

혹시 싶어 몇 개의 돌을 치워 내자 그 아래 흙이 나타났다.

선호를 텃밭에 묻은 정기가 산에서 돌을 날라 텃밭을 모두 메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급하게 장작을 구해 수북하게 쌓아 놓았다.

마당 한쪽에 장작이 들어가는 커다란 화로를 놓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탓에 태준이 발견된 후 집을 살펴보았던 형사들은 그곳이 텃밭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거기다 최대한 빠르게 사건을 덮는 바람에 눈여겨볼 시간도 부족했다.

“어유, 뭔 장작이 이렇게 많아.”

집 안에 벽난로가 있는 집이라 이 집을 매매한 남자가 많은 양의 장작을 더 쌓아 둔 상태였다.

혹시라도 비가 올까 싶어 빠르게 장작과 돌을 치우고 있는 경찰들 곁으로 박 형사와, 가을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태준과 명석이 그 장면을 함께 지켜보았다.

한참을 돌을 치워 낸 후 텃밭이 나오자 경찰들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보며 가을은 연신 제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깨물었는지 퉁퉁 부르튼 입술에 피가 맺힐 지경이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음식도 먹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하며 가을은 혼란한 마음을 버텨 냈다.

다행히 태준이 촬영 일정을 조절해 며칠간 촬영이 미뤄진 상태였다.

하지만 가을은 차라리 몸이 힘들어 잠시라도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태준이 겪은 일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벅찬데, 거기다 선호와 얽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을 멍하니 앉았다 누웠다 하며 제대로 밥조차 먹을 수 없었다.

태준의 잘못으로 그렇게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태준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버텨 낼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가을이 땅을 파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10년을 기다리며 생각한 모습 속에 이런 장면은 있지 않았다.

차가운 땅속에 주검이 된 채 묻혀 있었을 선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을의 눈가가 그렁하게 차올랐다.

“얼마나 깊이 묻은 거야.”

“묻힌 게 맞긴 한 거지?”

경찰들이 작은 목소리로 두런거렸다.

꽤 깊이 팠는데도 아직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자 혹시 태준이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경찰들이 의문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 아마도 이곳에 있을 거라는 얘기에 과학수사대와 경찰들은 현장으로 나와야 했다.

그 때문에 경찰들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경찰청장의 지시가 내려왔다는 얘기에 군말 없이 이곳까지 온 상태였다.

혹시라도 정말 이곳에 사람이 묻혔다면 함부로 땅을 팔 순 없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땅을 파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과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누군가 구경하려는 듯 계단을 올라오자 박 형사가 날이 선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시면 안 돼요!”

그 목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움찔거리며 뒷걸음치자 박 형사가 누군가를 돌아보았다.

“민준아.”

“예, 반장님.”

“가서 사람들 못 들어오게 해.”

“예.”

박 형사의 지시에 막내티가 역력한 형사 한 명이 빠르게 대문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냐, 뭐 때문에 그러느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

“뭐 좋은 거라고 구경을 하려고 해.”

남의 일을 흥밋거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저리가 난 듯 박 형사가 내내 툴툴거렸다.

가을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기에 박 형사의 신경은 더 예민해져 있었다.

가을에게 태준과 어떤 사이냐고 물어봤을 때 이미 둘 사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박 형사였다.

박 형사 역시 태준과 선호가 연관되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안 좋은 사건을 겪은 태준이 가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걱정돼서 둘 사이를 물어봤었다.

선호의 죽음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 원인이 태준에게 있었으니 가을이 얼마나 힘들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땅이 점점 파헤쳐질 때마다 가을의 마음도, 지켜보는 태준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한참을 더 조심스러운 작업이 이어졌지만 아무것도 발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경찰들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춥고 궂은 날씨에 확실하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 불만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 갈 때.

“어?”

경찰 한 명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여기 뭔가 있는데.”

경찰의 목소리에 다른 경찰 한 명이 연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그 소리에 맞춰 가을의 심장도, 태준의 심장도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어유, 대체 얼마나 깊이 묻었던 거야.”

경찰 한 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신을 발견했을 때를 대비한 각종 장비들을 일사불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후우…….”

파르르 떨던 가을의 입에서 얕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강풍이 부는 날씨에도 맞잡은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그 사이 하늘은 더 어둑해졌다.

뭔가 있다는 확신이 들자 빠르고 일사불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주변의 땅을 파헤치고 조심스럽게 유골을 꺼내는 작업이 시작되자 가을은 숨을 고르기 힘든 상태에서도 그 모습을 꿋꿋하게 눈에 담았다.

발견된 유골이 선호가 맞다면, 이 모든 걸 외면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게 자신의 몫이었다.

뒤이어 당시 선호가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유골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자 가을이 쥐고 있던 손을 거칠게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준이 가을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이내 손을 거뒀다.

“저…….”

가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박 형사를 돌아보았다.

“제가 가까이에 가서…… 가까이에서 봐도…… 될까요?”

10년을 기다려 온 선호였다.

이런 모습으로 마주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지만 마지막인 선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고 싶었다.

박 형사가 과학수사대 경찰에게 다가가 뭐라고 얘기하다 가을을 향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태준이 같이 가 준다는 말을 참아 내고 다른 말을 뱉어냈다.

“괜찮겠어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가을이 선호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선호가 좋아하던 셔츠에 베이지색 슬랙스. 선호의 생일에 자신이 사 줬던 얼마 하지 않던 흰색 운동화.

통신사 로고가 적힌 조끼만 빼면 금방 오겠다고 하고 뛰어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는데, 선호의 모습은 바뀌어 있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 내며 가을은 유골이 된 선호의 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외로웠겠다. 선호 오빠.

이 안에서 혼자. 10년을…….

어떻게 10년을…….

‘가을아, 금방 올게.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온다더니, 10년이 걸렸네.

바보 박선호.

눈물을 참아 내며 덤덤히 선호의 모습을 살피는 가을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 박 형사가 고개를 돌렸다.

태준 역시 그런 가을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선호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던 가을이 뭔가를 보고 털썩 주저앉았다.

뼈만 남은 선호의 손가락에 경찰 반지가 걸려 있었다.

‘가을아, 난 경찰이 될 거야.’

‘경찰?’

‘정말 멋지지 않아?’

‘와, 진짜 멋지다.’

‘내가 경찰이 돼서 평생 지켜 줄게. 꼬맹아.’

힘겹게 참아 내던 가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선호 오빠…… 으흐으으흑.”

한 번도 선호를 생각하며 울지 않던 가을이었다.

자신이 울면 선호가 정말 죽은 것 같아서.

선호를 떠올릴 때면 더 많이, 더 애써 웃었다.

그런 가을이 10년 만에 마주한 선호의 죽음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