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90)

10년 전.

스물두 살이던 태준은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어, 지금 복귀하는 거야?”

스무 살이 되자마자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독립을 했던 태준은 제대 후에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갔다.

30평대의 고급 빌라였다.

태준이 주차장으로 향하며 명석과의 통화를 이어 갔다.

-예. 지금 들어가요. 나중에 휴가 나오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형.

해병대에 입대한 명석은 휴가 내내 태준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래. 몸조심하고.”

차에 오른 태준이 한국대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공부할 게 산더미라 주로 하루 일과를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었다.

볼 일이 있어 골목길에 들어섰다가 맞은편 오르막길에서 내려오던 승합차 한 대가 태준의 운전석을 향해 돌진했다.

태준이 급하게 핸들을 꺾으려던 순간 브레이크가 아닌 액셀을 밟은 상대차가 운전석을 박았다.

‘쿵-!’

제대로 방어 운전을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다행히 큰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운전자인 기수가 100% 과실을 인정해 보험 접수 후 접수 번호와, 연락처만 주고받은 채 헤어졌다.

그 후 도서관으로 가던 길에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머리가 아파 태준은 ‘희망 병원’을 찾았다.

대인 접수가 되어 있지 않아 우선 사비로 진료를 보고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때마침 걸려 온 문규의 전화에 접촉 사고로 병원에 와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문규가 당장 종합검사를 하라고 성화를 했지만 태준은 MRI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차 수리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둘 때였다.

“태준 학생.”

태준의 집 아래층에 사는 혜경이 태준에게 다가왔다.

교통사고로 죽은 동생과 태준이 닮았다며 혜경은 틈틈이 음식 같은 걸 챙겨 주곤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오는 가사 도우미가 음식을 챙겨 놓기 때문에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집 근처에서 마주칠 때마다 늘 살갑고 상냥하게 웃으며 누나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그 뒤로 태준은 가끔씩 거절하지 않고 음식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 헬스장에서 우연히 만나 혜경이 같은 학교 출신이며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을 귀찮아하는 태준이었지만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혜경은 그저 누나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 만나거나, 길에서 만나면 이따금 편안하게 미술에 관한 대화를 하곤 했다.

“무슨 일이세요?”

“미안한데,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될까?”

폭력성이 강한 전남편이 만나자는 연락을 하는데 도저히 무서워서 혼자 나갈 수가 없으니 잠깐만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은 싫어하는 태준이었지만 혜경의 얼굴이 두려움에 가득 차 있어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태준이 결국 보조석에 혜경을 태웠다.

혜경과 함께 향한 곳은 몇 년째 공사가 중단된 한 공사장 안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기로 하셨…….”

고개를 돌린 태준이 목이 따끔하다고 느낀 순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 후 태준이 깨어난 곳은 넓은 방이었다.

방이라고 해 봤자 침대, 기다란 소파, 작은 식탁과 의자, 벽시계가 전부인. 그 외 일체 가구도 집기류도 없는 곳이었다.

양손은 수갑이 채워져 있고 다리도 수갑 형태의 굵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거기다 목에도 목줄을 채우듯 어딘가에 길게 묶어 놓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혜경이 다가와 태준의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태준아.”

피하고 싶은데 아직 마취가 깨어나지 않아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태준이 있는 힘을 다해서 혜경의 손길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우리 태준이.”

약 기운이 남아 있는 태준이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나……한테 왜 이러…….”

“내가 널 얼마나 갖고 싶었는데.”

“……당신…… 미쳤……어?”

“미쳤지.”

혜경이 태준의 뺨을 또다시 쓸어내렸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가 있겠어.”

혜경의 얼굴이 기묘하게 비틀렸다.

“영원히 도망가지 못해. 여긴, 널 위해서 특별히 만든 곳이거든.”

혜경은 아름다운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상 소유욕을 갖고 있었다.

스무 살이던 태준이 이사를 왔을 때.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한 혜경은 어떻게 하면 태준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몰두했다.

몇 달 뒤 태준이 입대하자 그동안 혜경은 그를 갖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부모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미술관을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넘치는 재력으로 인가가 드문 산 아래 위치한 지역에 땅을 사 2층짜리 집을 지었다.

명의는 오래전부터 혜경을 좋아하던 정기 앞으로 해 두었다.

태준을 가둔 곳은 지하로 철저하게 방음 공사가 된 곳이었다.

그가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몇 개월간 좋은 이웃인 척, 따듯한 누나인 척 행동하며 태준의 경계심을 없애는 데 공을 들였다.

그렇게 장소를 물색하고 동선을 파악한 후 CCTV도 없고, 인적이 없는 공사 현장으로 태준을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다.

그 후에 혜경은 태준의 목에 마취약이 들어 있는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혜경이 태준의 차 블랙박스 USB를 가지고 밖으로 나간 사이, 정기가 쓰러진 태준을 업고 근처에 세워 둔 자신의 차 트렁크에 태준을 실었다.

태준의 차는 그대로 공사장에 두고 태준만 감쪽같이 사라진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차를 처리하기 위해 운전을 했다간 공사장 근처 CCTV에 바로 노출돼 추적을 당할 것이 뻔했다.

이후 정기는 태연히 타이어가 펑크 났다는 신고를 한 후 견인차에 실려 현장을 벗어났다.

새벽이 돼서 산에 오른 정기는 불법으로 알아낸 태준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고 최근 목록을 찾아 문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답게 모든 행동은 장갑을 끼고 진행했다.

[죄송합니다.]

짧은 문장 하나를 문규에게 보내고 휴대폰을 산 아래로 던졌다.

정기는 경찰이 되기 전부터 오랜 시간 혜경을 짝사랑해 오고 있었다.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나며 집착으로 변해 갔고, 태준의 일을 도와주면 마음을 받아 주겠다는 말에 혜경의 공범이 되었다.

태준이 ‘세양 그룹’ 손자임을 알게 된 정기가 혜경을 말렸지만 태준을 향한 집착의 정도가 도를 넘어선 혜경은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혜경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정기는 결국 이 미친 행위에 단단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광기에 물든 두 사람에 의해 태준은 지하에 감금당했다.

태준에게 문자를 받은 문규는 불안한 생각을 누르며 냉철하게 생각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것도 새벽에 태준이 이런 문자를 보낼 리가 없다고 생각해 조용히 움직였다.

행여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룹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 당연히 태준이 돌아오리라 믿었던 문규는 비밀리에 움직이는 게 훗날 태준에게도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미연은 친정 식구들과 한 달간의 긴 크루즈 여행을 떠난 상태였고, 찬영은 군대에 있었다.

문규는, 정열과 권 집사에게만 사실을 알린 뒤 돈독하게 지내던 경찰청장의 도움을 받아 언론의 노출을 피해 은밀하게 움직일 조사팀을 꾸렸다.

조사의 시작은 태준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혜경이었다.

‘태준이 학생과는 종종 이런저런 상담을 하곤 했어요. 요즘 힘든 일이 있는지 길에서 만날 때마다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그날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차에 탔죠. 그런데 갑자기 인적이 없는 공사장에 차를 세워 덜컥 무서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날이 밝을 때 얘기하자니까 알겠다고 해서 전 차에서 내려 그대로 집으로 왔어요.’

혜경이 진술한 내용이었다.

공사장 근처 CCTV에 혼자 걸어가는 혜경이 모습이 찍혀 있었고 그 이후로도 수상한 정황은 없었다.

거기다 평소 혜경이 태준에게 음식도 주고 동생처럼 대했다는 동네 주민의 말과, 태준이 사라진 이유가 자살 쪽으로 무게가 실려 혜경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그 후 근처 CCTV를 모두 살펴봤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CCTV가 없는 곳에 차를 세운 정기는 치밀한 성격답게 견인차를 불러 현장을 이동했다.

CCTV가 없는 곳에 차를 세웠지만 이동하면 곧 주변에 있는 CCTV에 차가 찍힐 것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형사라면, 공사장 근처를 지나가는 차를 살펴보면서 그의 차가 그 시간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걸 눈치챌 터였다.

그 상황을 피하려고 범행을 저지르기 30여 분 전에 차를 세우고 타이어가 펑크 나 견인차에 실려 간 것처럼 해 의심을 피하려던 것이었다.

그의 계획대로 공사장 근처에서 견인차에 실려 가는 정기의 차 트렁크에 태준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산 아래에서 태준의 휴대폰을 발견한 형사들은 그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 태준을 찾지 못했다.

공사장에 덩그러니 남은 차. 산 아래에서 발견된 태준의 휴대폰.

흔적도 없이 사라진 태준을 조사하며 형사들은 미궁에 빠졌다.

이제라도 사건을 크게 알려야 한다는 정열과, 반드시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문규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시간은 며칠이 흘러갔다.

“태준아.”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 태준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소유욕을 갖고 있는 혜경은 그 곁에 앉아 태준의 사진을 찍거나, 캔버스에 그리는 기행을 벌였다.

태준이 몰라보게 수척해져 가는데도 혜경은 그저 감탄만 했다.

“아름다워.”

혜경의 손이 뺨에 닿을 때마다 태준은 차라리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목줄이 걸린 채 죽음을 맞이하긴 싫었다.

넓은 방 안. 탈출에 도움이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져오는 식기류 역시 탈출에 도움이 될 만한 도구들은 아니었다.

몇 군데 설치되어 있는 CCTV, 지문으로 인식되는 두꺼운 철문.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이 없었다.

태준의 목에 걸린 줄은 화장실 안까지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와야 할 때면 정기가 태준의 수갑을 풀어 주었고 그때마다 저항을 해 봤지만 목과 발이 묶여 있어 정기에게 금세 제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도, 물도 거부하는 상태에서 태준은 그렇게 수척해져 갔다.

그 와중에 혜경은 음식을 주러 오거나, 태준의 그림을 그리려 내려오거나, 멍하니 태준을 감상하거나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마치 소중한 보물처럼. 만지는 것도 아까운 듯 혜경은 그저 태준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너처럼 아름다운 걸 본 적이 없어.”

혜경이 태준의 뺨을 또다시 훑어 내릴 때 힘겹게 저항하던 태준이 있는 힘껏 손을 물었다.

“악!!”

그때 지하로 들어왔던 정기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태준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무슨 짓이야!!!”

정기가 날린 주먹에 며칠간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은 태준이 맥없이 쓰러졌다.

태준이 맞은 것에 경악한 혜경이 정기의 뺨을 매섭게 내려쳤다.

‘짜악-!!’

손에 태준의 잇자국이 나 있는데도 혜경은 정기를 매섭게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쳤어? 감히 누구한테 손을 대는 거야!”

“하…… 감히?”

“너 따위가 손을 댈 수 없는 사람이야.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구!!”

“저 자식이 뭔데. 나랑 뭐 다른 게 달렸기라도 해?”

정기가 매섭게 태준에게 달려들자 혜경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 마!! 아악~!!!!!”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납게 울부짖는 혜경의 모습을 보던 정기가 이성이 돌아온 듯 혜경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혜경아.”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을 보던 태준이 수갑이 뒤로 채워져 있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지도 못한 채 넋이 나간 웃음소리를 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매섭게 비가 몰아치고 낙뢰까지 내려 일대가 정전이 되었다.

완벽하게 방음이 되어 있는 공간에 갇혀 있는 태준에게는 똑같이 지옥 같은 날들일 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다음 날.

‘딩동.’

초인종 소리에 정기가 인터폰을 확인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인터넷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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