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90)

명석이 바짝 다가오자 두 사람의 얼굴 사이가 불과 몇 센티도 안 될 듯 가까워졌다.

“이렇게?”

명석이 코앞에서 낮은 목소리를 내자 가영이 ‘꿀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침을 넘겼다.

“……오빠.”

명석이 대답 없이 그대로 가영만 바라보았다.

“뽀, 뽀뽀해도 돼요?”

“안 돼요.”

명석이 곧장 가영의 안전벨트를 당겨 꽂았다.

“뭐야, 그럼 왜 이렇게 가까이 와요?”

“안전벨트 해 달라면서요.”

“아니이! 그거 말고. 칫.”

가영이 창문으로 휙 고개를 돌리자 명석이 슬쩍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안전벨트를 맸다.

가영의 행동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놀리고 싶은 기분이 들어 한 행동이었다.

“뒤에 빵 있으니까 출출하면 먹어요.”

“…….”

가영은 창문만 본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태준이 아니면 평소 장난을 치지 않는 명석이 괜한 일을 한 건가 싶어 사뭇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장난쳐서 미안합니다.”

“…….”

“기분 많이 안 좋아요?”

여전히 가영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명석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정가영 씨.”

“…….”

“미안합니다.”

“…….”

“기분 별로면 오늘은 그냥 갈까요?”

명석의 말에 창문만 보고 있던 가영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얼굴이 빨개진 채 가영이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너무 떨려서…….”

명석이 코앞에 왔을 때부터 이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심장이 뛰어 대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일부러 창문만 보고 있던 가영이었다.

화가 나서 그런 줄 알았던 가영이 얼굴이 빨개서 고개도 들지 못하자 명석의 심장 어딘가가 일렁였다.

“내가, 그렇게 좋아요?”

“네…….”

“어느 부분이요?”

“모르겠어요. 그냥…… 전부 다요.”

잠시 말이 없던 가영이 고개를 들어 명석을 바라보았다.

“저 진짜 가벼운 마음 아니고 이런 적도 처음이에요. 하루 종일 오빠 생각만 나고 어떻게 하면 오빠 마음에 들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하고.”

“…….”

“그러니까 저랑 세 번 만나는 동안엔 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말 제 인생을 거는 중이거든요.”

결연한 가영의 표정을 보던 명석이 낮은 목소리를 냈다.

“알았어요.”

“그러게…… 왜 이렇게 멋있어서…….”

혼잣말 같은 가영의 말에 움찔한 명석이 시동을 걸었다.

얼마 뒤.

놀이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신이 난 가영이 어디론가 빠르게 뛰어가더니, 양손에 뭔가를 사 들고 명석에게 돌아와 하나를 건넸다.

“이거요.”

“……이걸 왜.”

명석의 말과 동시에 가영이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했다.

“오빠도 얼른 해요.”

“…….”

“얼른요.”

명석이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영혼이 나간 표정으로 보기만 하자 가영이 냉큼 명석에게 머리띠를 씌워 주었다.

“우아, 완전 귀여워.”

“…….”

명석이 머리띠를 벗으려는 듯 손을 올리자 가영이 사정하듯 양손을 맞잡았다.

“딱 한 시간만요. 네?”

가영이 영화에 나오는 고양이 같은 눈망울을 하자 명석이 어쩔 수 없이 머리띠를 벗겨 내려던 손을 거뒀다.

“뭔가 타고 싶으면 줄을 서야 할 것 같은데.”

멋스럽게 단풍이 든 주말 야외 놀이공원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가영에게 이끌려 명석이 향한 곳은 놀이기구와는 상관없는 ‘호러 탐험대’였다.

무서운 곳을 함께 통과하며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곳.

‘썸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었다.

어색한 사이로 들어갔다가 껴안은 채 나온다는 전설의 공간.

가영이 생각해 둔 첫 번째 코스였다.

예약을 하고 입장을 하는 곳이라 얼마 전 명석에게 연락을 받고 겨우 예약에 성공한 가영이었다.

명석이 느긋하게 팔짱을 꼈다.

“호러 탐험대라.”

“전 귀신, 좀비, 이런 거 진짜 엄청, 무섭거든요.”

“그런데 왜 들어갑니까?”

“네? 아 그게 담력을 좀 키우고 싶달까.”

“굳이, 호러 탐험대에서.”

“네!!”

가영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걸 싫어하는 태준과 달리 명석은 저 안에서 365일 생활해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을 스타일이었다.

가영 역시 가을과 마찬가지로 공포물을 좋아해 웬만한 건 무섭지 않은 성격이었다.

오히려 귀신 분장을 하고 사람을 놀라게 하면 했지, 비명 지를 가영이 아니었다.

오로지 ‘썸의 성지’인 이곳에서 명석과 밀착도를 올리고 싶은 목표뿐이었다.

그렇게 밀착도를 올리며 서로를 잔뜩 의식하게 된 후엔 단둘만 있을 수 있는 대관람차를 탈 생각이었다.

“제가 겁이 너무 많아서요. 막 비명 지르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무슨 속셈인지 훤히 보였지만 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났을 때부터 꽉 밀착되게 안겨 놓고는 스킨십을 하기 위해 이곳을 예약했을 걸 생각하니 자꾸 기막힌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명석이 입술을 꽉 물었다.

조금 뒤, 명석과 가영이 입구에 들어섰다.

“저 손 떨리는 것 좀 보세요.”

가영의 손이 진짜인 것처럼 덜덜 떨렸다.

“너무 무서운데…… 소, 손 좀 잡아 주시면.”

가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명석이 잡으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명석이 정말로 손을 내밀자 가영의 심장이 제 기능을 넘어 빠르게 뛰었다.

이번엔 진짜로 손을 덜덜 떨던 가영이 명석의 손을 잡았다.

명석이 가영의 손을 꽉 맞잡자 부드럽고 따듯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졌다.

‘호러 탐험대’ 만세. 만드신 분 아침마다 절할게요.

가영이 마음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입장했다.

“크크큭, 커커컥. 그그그극.”

사람 소리 같지 않은 성대를 긁는 좀비의 목소리가 컴컴한 공간에 기묘하게 울려 퍼졌다.

와.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워.

가영이 소름 돋는 척 슬쩍 몸을 떨었다.

곳곳을 지날 때마다 평온한 명석과 달리 가영은 열심히 비명을 질렀다.

몇 번 자신의 목적에 맞게 명석에게 의도적으로 안길 때마다 명석은 괜찮다는 듯 살포시 가영을 도닥였다.

힘도 센데, 무서움도 없고. 다정하고. 갈수록 명석이 더 좋아졌다.

가영이 눈에서 하트를 쏟아 내며 명석의 얼굴을 바라볼 때 잔뜩 무서운 표정과 목소리를 한 좀비가 가영의 앞으로 다가왔다.

“으그그극. 키키킥.”

“…….”

좀비가 가까이 오고 있는 건 생각도 안 하고 가영은 물끄러미 명석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비명 질러요.”

“아 참.”

명석의 말에 비명을 지르려던 가영이 이내 자신의 속셈을 들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귀여워하는 눈빛을 한 명석과 달리 가영의 얼굴은 귀신 분장한 듯 빨개졌다.

놀라게 하려고 다가왔던 좀비가 아무렇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에 ‘으그그극’ 소리를 내며 안쓰럽게 퇴장했다.

부끄러움이 몰려온 가영이 슬그머니 명석의 손을 놓았다.

“너, 너무 무서워서 비명 지르는 걸 깜빡했네.”

입술을 말아 물던 가영이 앞으로 걸어갈 때 명석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

가영이 너무 놀라 숨 쉬는 것도 잊은 표정으로 명석을 돌아보았다.

“좀, 무서워서요.”

전혀 무섭지 않은 목소리를 한 명석이 가영의 손을 잡은 채 앞으로 향했다.

그 시각.

가을과 태준은 산에 올랐다.

제대로 하는 산행이 아니라 산장 빌라 뒤쪽에서 올라가는 낮은 코스의 산행이었다.

전망이 좋은 넓은 바위에 자리 잡은 가을이 신문지 위에 좋아하는 명란 볶음 김밥을 내려놓았다.

가을이 비닐을 벗기고 나무젓가락으로 김밥 하나를 집어 앞에 있는 태준에게 건넸다.

“드셔 보세요.”

태준이 가을이 건넨 김밥을 입 안에 쏙 넣었다.

“어때요?”

“음, 맛있네.”

“제가 왜 좋아하는지 알겠죠?”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김밥을 태준이 맛있다고 하자 가을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자신이 권하던 김밥을 극구 사양하던 태준과 이런 사이가 될 줄은 짐작도 못 했던 가을은 뭔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자꾸만 마음이 벅차 숨을 고른 가을이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앞으로 보이는 울긋불긋 예쁘게 물든 단풍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그 옆에 태준이 있어 행복했다.

가을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사진 찍어 드릴게요.”

“같이 찍어요.”

“대표님 한 장 찍고요. 자, 시선은 45도, 약간 쓸쓸한 듯 아련한 느낌으로. 내가 가을 남자다. 이런 느낌 알죠?”

가을의 말에 태준이 미소를 지을 때 가을이 ‘찰칵’ 셔터를 눌렀다.

자연스럽게 날리는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미소가 화보에 싣고 싶을 만큼 멋있었다.

“새삼, 참 잘생겼다.”

“새삼?”

“늘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깜짝 놀랄 만큼 잘생겼다. 이 말입니다.”

피식 웃은 태준이 가을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같이 찍어요.”

태준과 함께한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 가을이 휴대폰을 보며 사진을 확인했다.

“이거 잘 나왔다.”

사진을 보고 미소 짓는 가을을 태준이 물끄러미 응시했다.

“잘 나왔죠?”

가을이 태준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태준이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그 바람에 놀란 가을이 몸을 뒤로 빼내며 주변을 살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괜찮아요.”

가을이 가볍게 눈을 흘겼다.

“안 괜찮거든요.”

“알았으니까 사진 봐 봐요.”

가을이 다시 태준에게 바짝 다가와 휴대폰을 들어 보이자 이번엔 태준이 가을의 볼에 ‘쪽’ 입을 맞췄다.

“아이, 진짜.”

“왜 점점 예뻐져요.”

가을이 괜히 제 뺨을 매만졌다.

“……아닌데, 다크서클 엄청 내려왔는데.”

“그건 매력 포인트고.”

“다크서클이요??”

태준이 끄덕였다.

“이제 촬영 시작하면 매력이 흘러넘치겠네요, 저.”

가을의 말에 태준이 웃음소리를 냈다.

최근 들어 꾸기 시작한 반복된 꿈 때문에 날 서 있던 기분이 가을과 함께 있는 이 순간엔 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디링-

가을이 서준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른 스타일로 여러 벌 입은 서준의 사진이었다.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이런 분위기는 어떠냐는데, 선배 생각은 어때요?]

‘거기에 네가’ 남자 주인공의 옷차림을 묻는 메시지였다.

이미 주인공들의 옷 스타일 논의를 마친 상태였지만 가을이 제 의견을 서준에게 전달했다.

[그것도 괜찮네.]

[역시 연출자답게 안목 좋네.]

태준과 사귀고 있다는 얘기를 한 이후 사적인 연락은 끊은 서준이 기특해 가을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 메시지예요?”

“아, 서준이요.”

“은서준?”

순간 표정이 변한 태준을 눈치챈 가을이 재빨리 말을 꺼냈다.

“서준이한테는 우리 사귀는 거 얘기했어요. 걔한테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잘했네.”

그제야 눈빛을 돌린 태준이 흡족한 듯 가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상태로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고마워요.”

“응?”

“실종자 찾는 방송 기획해 주셔서요.”

얼마 전 태준은 실종자를 찾는 방송을 3부작으로 기획하고 있다는 얘기를 가을에게 전했다.

손해 볼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방송을 기획한 태준에게 가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을 느꼈다.

“10년이 지나서 아무런 성과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기획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가을이 환하게 웃어 보이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이 뚫려서 머리가 시원해지는 게 너무 좋지 않아요?”

태준이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며 가을의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난, 사방이 막힌 곳이 좋아요.”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태준을 가을이 슬쩍 밀어냈다.

“지, 진짜 누가 본다니까요.”

“아까 본인이 한 말 잊었어요?”

“무슨 말이요?”

“여기, 사람 잘 안 온다고 했는데.”

가을이 그제야 이 자리에 앉기 전 사람이 잘 안 오는 명당이라고 자랑한 게 떠올랐다.

“……저 김밥 먹었는데…….”

“나도 먹었어요.”

태준이 자꾸 몸을 뒤로 빼는 가을의 허리를 잡아 그대로 입을 맞췄다.

옆에 있는데도 자꾸만 만지고 싶고, 만지고 있으면 더 느끼고 싶은. 가을에게 향하는 마음이 넘쳐 주체가 되지 않는 태준이었다.

한참이나 키스를 이어 가던 태준이 살며시 입술을 떼어 내며 속살거렸다.

“그만 내려가요.”

살짝 벌어진 잇새로 숨을 내쉬고 있는 가을의 입술 위로 태준이 달뜬 숨을 뱉어냈다.

오늘 밤엔 악몽을 꿀 시간이 없게 가을을 품에 안고 밤새 놓아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태준이 다 먹지도 않은 김밥을 비닐 봉투에 넣고 빠르게 일어섰다.

“잠깐만요, 진짜 내려갈 거예요?”

“진짜.”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을을 태준이 조심스럽게 잡아 주었다.

“벌써 내려가긴 좀 이른데.”

“등산으로 체력 키웠으니까.”

태준이 가을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써야죠.”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는 가을의 심장이 터질 듯했다.

태준이 가을의 손을 잡고 몸을 돌릴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Rrrr-

발신자는 르망호텔 민 회장이었다.

희연의 문제 아니면 연락할 일이 없어 잠시 고민하던 태준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강태준입니다.”

통화를 하던 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희연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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