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90)

명석이 안경을 한번 올리고 박 형사에 관한 인적 사항과 경찰서 내 생활 등등, 알아 온 사항을 태준에게 전달했다.

“정가을 씨와는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고, 꽤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 왔답니다.”

“수상한 부분은 없었고?”

“그런 점은 전혀 없었습니다. 모범 경찰 표창도 받은 적이 있고요. 경찰서 내에서도 우직한 형사로 소문이 나 있더라고요.”

“음. 박선호 쪽은.”

명석이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태블릿 PC를 들어 조사해 온 내용을 태준에게 보고했다.

학창 시절에 모범 시민상을 여러 번 받을 만큼 정의감이 투철했다는 것과, 스무 살에 경찰대를 수석으로 들어간 것, 학교 성적 역시 뛰어났다는 점 등, 전반적인 선호에 관한 사항을 읊었다.

“실종된 건 20XX년, 7월 XX일이고, 당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태준이 뭔가를 생각하다 낮은 목소리를 냈다.

“그때면, 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인데.”

“전 군대에서 실종 사건을 다루는 뉴스를 봤던 것 같아요.”

“음.”

“당시 친구와 인터넷을 설치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고장 신고로 출장을 갔다가 그대로 사라진 모양입니다.”

“CCTV는?”

“실종되기 전날 폭우로 낙뢰가 내려쳐서 그 근방에 정전이 됐었답니다. 조그만 마을이라 설치된 CCTV도 별로 없었고요.”

“그래서 행적을 알 수가 없다 이건가.”

“예. 골목에 타이어가 펑크 난 박선호 차가 발견됐는데 경찰 수사로는 고장 신고한 집이 거기서 멀지 않아 걸어서 간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석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고장 신고를 한 사람은 박선호가 수리를 끝내고 돌아갔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이후로 박선호는 사라진 거고.”

“예. 근처에 주차된 자동차 블랙박스에서 고장 신고를 한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찍혔는데, 아쉽게도 해당 자동차가 이동해 그 뒤는 확인이 되지 않았답니다.”

명석의 보고를 듣던 태준이 팔짱을 낀 채 느슨히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고장 신고한 사람은, 수상한 점이 없었나?”

“그 동네 지구대에서 일하는 경찰이었답니다. 워낙 평판도 좋고, 수상점이 전혀 없는 인물이라 따로 수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으음.”

“그리고 그 경찰은 박선호 수사가 시작되고 사흘 뒤,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근방이 바로 산으로 이어져 샅샅이 수색했는데 역시 박선호는 발견하지 못했고요. 핸드폰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이 그 근방 골목이었는데, CCTV가 안 돼서 확인을 하지 못했답니다.”

얘기를 들을수록 태준은 점점 안타까운 마음이 몰려왔다.

고작 스무 살. 이런 일만 없었어도 능력 있는 경찰이 됐을 인물이었다.

“살아 있을까.”

혼잣말 같은 태준의 말에 명석이 대답했다.

“그럴 확률은…… 적지 않을까요.”

태준이 뭔가를 생각하듯 한참 입술을 쓸어내렸다.

“특별 기획을 하면 어때.”

“특별 기획이요?”

“3부작으로 실종자를 찾는 방송.”

‘STN’은 드라마와 예능에 주력하는 방송국이라 그 외의 방송은 시청률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태준은 방송일에 몸을 담고 있는 가을 역시 실종을 다룬 기획 프로그램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특별한 사회적 이슈가 없는 한 손해를 보고 방송을 만들 곳은 없어 포기했을 게 분명했다.

이젠 자신이 있으니 손해를 보더라도 가을에게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다.

“박선호를 포함해서 다른 실종자들도 방송에 내보내는 방향으로 하면 어떨까 싶은데.”

“손해가 클 텐데. 감수하시게요?”

“해야지.”

태준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날 저녁.

가을과 태준이 함께 저녁을 먹고 산장 빌라 5층에 섰다.

저녁에 태준을 만나 저녁을 먹는 동안 자꾸만 어젯밤 일이 떠올라 가을은 달아오르는 뺨을 진정시키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다른 걸 다 떠나 태준과 온전히 하나가 된 그 순간이 가슴 떨리게 좋았다.

태준의 거친 숨소리와, 내려다보는 눈빛, 괜찮냐고 물어보는 다정한 목소리. 몸을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며 음영이 바뀌는 근육까지.

모든 순간이 가슴 벅찼다.

태준은 분명 스리피스 슈트를 입고 있는데, 자꾸만 눈앞에서 꿈틀거리던 조각 같은 복근이 생각나 가을이 얕게 고개를 털어 냈다.

“무슨 생각 해요?”

“네??”

“계속 고개를 흔들길래.”

“아, 아뇨.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요.”

“피곤해요?”

“아뇨.”

“그럼…….”

태준이 고개를 까닥여 502호를 가리켰다.

“들어올래요?”

“……대, 대표님 집에요?”

“가을 씨 집도 좋고.”

“……시간이 좀 늦지 않았나……싶은데.”

“괜찮아요.”

태준이 가을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속살거렸다.

“잘 거니까.”

“저, 저는 안 잘 건데요.”

“안 자고 뭐 하게요.”

“……영화도 보고, 책도 좀 읽고…….”

“그리고?”

“…….”

“오늘 안 잘 거예요?”

“……자야죠.”

“그러니까, 이왕 잘 거, 나랑 자요.”

그게 무슨 논리인가 싶었지만 태준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가을의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어젯밤 일만 생각해도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는데, 오늘까지 이어지면 폭발할 것 같아 가을이 슬쩍 몸을 뒤로 빼냈다.

“제가 오늘은…… 몸이 좀…….”

“아직 안 좋아요?”

태준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가을을 내려다보았다.

“아뇨 몸이 안 좋다기보다…… 심, 심장에 무리가 좀 가서…….”

말끝을 흐린 가을이 냉큼 501호 도어락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태준이 잡을 새도 없이 가을이 냉큼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을 맞은 태준이 목덜미를 한번 꾸욱 누르며 미소 짓다 502호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끝낸 태준이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을 들었다.

잠시 뉴스를 보다가 소파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가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나는 ‘흔들어’ 컬러링이 나오다가 이내 가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헤어진 지 15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새 가을이 보고 싶어진 태준이 그윽한 눈빛을 했다.

“나보다, 영화나 책 보는 게 더 좋아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당황할 때 짓는 가을의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짓던 태준이 짐짓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상처받았어요.”

-어…… 진짜 그게 아니라 제가…… 어제 일로도 너무 떨려서 오늘까지 그러면…….

“정말 잠만 자려고 했는데.”

-…….

“올래요?”

-정말 잠만 잘 거예요?

“정말.”

태준이 자꾸만 올라가는 입술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거짓말.

“하하. 들켰네.”

태준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생각 바뀌면 언제든 와요.”

-…….

망설이는지 잠시 말이 없던 가을의 목소리가 수화음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그래도 오늘은 집에 있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체력이 중요하니까.”

-체력이요?

“말했잖아요. 다음부턴 안 봐준다고.”

-…….

“많이 다를 테니까, 기대해요.”

수화기 너머 가을의 얼굴이 얼마나 타들어 가고 있는지 안 봐도 느껴질 정도로 긴 침묵이 이어졌다.

-……대표님도 처……음이라면서…….

가을이 뒷말을 삼켰다.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할게요.”

-……

“난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가을의 반응이 귀여워 일부러 짓궂게 굴던 태준이 리모컨으로 TV를 끄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책 읽을 거면 조금만 읽고, 일찍 자요.”

-네. 대표님도 얼른 주무세요.

“내일 봐요.”

-네.

태준이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저 통화만 했을 뿐인데, 이토록 마음을 벅차게 하는 사람.

처음으로 느낀 이 행복이,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몇 시간 뒤.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보고 이제 막 잠이 든 태준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악몽을 꾸는 듯 식은땀까지 흘리며 계속해서 몸을 움찔거리던 태준은 이내 호흡마저 가빠졌다.

“으으…….”

잔뜩 인상을 쓰던 태준이 뭔가에 놀라 꿈에서 깬 듯 상체를 일으켜 거친 숨을 뱉어 냈다.

“하아…… 하아…….”

식은땀이 태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태준이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손으로 닦아 냈다.

사방이 막힌 넓은 공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

‘철컹.’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 소리가 공포영화보다 더 소름 끼쳤다.

분명 처음 꾼 꿈인데. 어쩐지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숨을 고르며 시간을 확인한 태준이 다시 침대에 누웠다.

쉽게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사이 서서히 날이 밝아 왔다.

* * *

16부도 아닌 4부작이라 비교적 간단한 고사가 진행되었다.

배우들과 연출진, 스태프들이 모여 촬영이 무사히 끝나길 기원하는 자리였다.

고사 현장에 오면 늘 바쁘게 현장을 챙기던 가을이 이젠 연출자가 되어 제일 먼저 고사상에 절을 했다.

“우리 정 감독 그렇게 쫙 빼입으니까 꼭 모델 같네.”

도식의 말에 사람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혼란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가을이 흰색 셔츠에 검은색 재킷을 걸치고 그 아래 검은색 슬랙스를 갖춰 입었다.

평소 가영이 면접을 보러 다닐 때 입던 옷을 빌려 입고 나온 것이었다.

“누가 보면 연출이 아니라 배우인 줄 알겠어요.”

“그러니까 가을 언, 아니 감독님 진짜 피지컬 끝내줘요.”

혁진에 이어 지영까지 말을 보탰다.

“왜들 이러세요. 송학 주점 가려고?”

“정 감독이 쏘면 당연히 가지.”

머쓱해하던 가을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그때 스케줄이 있어 늦게 도착한 서준이 고사상으로 다가왔다.

검은색 슬랙스에, 검은 재킷, 그 안에 흰 셔츠. 가을과 커플 같아 보이는 복장이었다.

서글서글한 미소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 서준이 가을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자 도식을 비롯한 사람들이 감탄사를 뱉었다.

“누가 보면 남녀 주인공인 줄 알겠어.”

“그러게요, 두 사람 그렇게 있으니까 화보 같네.”

185cm인 서준과 170cm인 가을이 같은 복장을 하고 서 있자 잡지 화보에 나올 것 같은 비주얼이 탄생했다.

그 말이 싫지 않은 서준이 가을의 모습을 훑으며 미소 지었다.

“선배 이렇게 입으니까 못 알아보겠어요.”

“감독님 정말 이쁘죠~”

지영이 가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선배 이쁜 거야 뭐. 하루 이틀 일은 아닌데. 오늘은 좀 심하네.”

서준의 말에 가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가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서준이 그제야 고사상을 쳐다보았다.

“고사상에 절하고 드라마 잘되게 해 달라, 무사히 끝내게 해 달라. 이런 거 비는 거죠?”

서준의 질문에 도식이 대답했다.

“그렇지.”

“다른 거 빌면 안 돼요?”

서준의 말에 지영이 관심을 보이며 슬쩍 다가왔다.

“뭐 빌게요?”

가슴께밖에 오지 않는 지영의 뒤쪽으로 가을을 보던 서준이 불쑥 지영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이별 기원.”

덕분에 심장이 쿵 떨어진 지영이 서준을 따라 작은 목소리를 냈다.

“이별 기원?”

“누가 좀 헤어지면 좋겠다 싶어서.”

“와우, 이별 기원. 나빴는데 로맨틱해.”

지영이 얕게 고개를 흔들며 박수 치는 시늉을 하자, 스태프와 함께 있는 가을을 빤히 보던 서준이 고사상으로 향했다.

서준이 고사상에 절을 하고 얼마 뒤,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사상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멀찍이 태준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짙은 네이비 슈트를 입은 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태준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햐- 역시 강 대표 이길 사람이 없네.”

“그러니까요, 잘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분위기가 달라요.”

도식과 혁진이 딱 붙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가을의 눈에는 태준이 여자들을 피해 걸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10년을 저렇게 긴장한 채 살았을 걸 생각하자 안쓰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안녕하세요.”

태준이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강 대표 큰 거 꽂으려고 왔구만.”

도식이 손으로 돈 봉투를 잡는 시늉을 했다.

슈트 안쪽에서 돈 봉투를 꺼내 고사상에 올려놓은 태준이 가을에게 다가왔다.

“정 감독님, 오늘은 평소보다 더 멋지네요.”

사람들과 있을 때 태준은 가을을 정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태준의 칭찬에 저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 짓던 가을이 이내 표정을 돌렸다.

“이렇게 있으니까 그림이 더 사네. 완성체야 완성체.”

도식의 말에 고개를 돌렸던 태준이 스태프들과 함께 있는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가을과 커플룩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옷차림새에 태준의 미간이 구겨졌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키가 불쑥 올라온 서준이 타오르는 눈빛으로 태준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저, 대표님.”

태준에게 뭔가 할 얘기가 있는지 지영이 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생각 없이 그저 태준을 향해 손만 뻗었을 뿐인데 가을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영아!!”

고사 현장이 울릴 만큼 큰 가을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덕분에 지영 역시 깜짝 놀라 태준을 향하던 손을 거뒀다.

“그러니까, 오늘 점심을 어디서 먹기로 했지?”

갑자기 가을이 고사를 끝내고 점심을 먹기로 한 얘기를 꺼내자 지영이 가을에게 다가왔다.

“배 많이 고프세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있는 가을을 보던 태준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의아한 행동이었지만 태준은 가을이 왜 그랬는지 알고 있었다.

괜히 여자에 대한 증상 얘기를 꺼내 가을을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태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Rrrr-

휴대폰 벨소리에 발신자를 확인한 태준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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