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90)

한기 서린 태준의 눈빛을 흔들리지 않고 받아 낸 서준이 결연한 목소리를 냈다.

“페어플레이하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태준은 더욱 날 선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선배 마음이 누구한테도 간 게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에요.”

“난,”

태준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페어플레이할 생각이 없는데.”

싸늘하다 못해 당장 누구 하나 목숨을 끊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눈빛으로 태준이 서준의 앞에 바짝 다가섰다.

“그렇게 한가하게 있을 여유가 없어서.”

정정당당하게 가을의 마음을 얻자는 서준의 선전포고에 자신의 뜻을 밝힌 태준이 마당으로 몸을 돌렸다.

“하…….”

재산 빼고 다른 부분은 태준에게 밀릴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도 태준보다 7살이나 어렸고, 돈이야 앞으로 모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태준이 앞으로 다가온 순간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설 뻔했다.

잘생긴 걸 떠나서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남자인 자신이 봐도 멋있었다.

“너무 강적인데.”

태준의 뒷모습을 보며 짜증스럽게 머리를 털어 낸 서준이 이내 마당으로 향했다.

긴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양쪽에 준비된 불판에선 스태프들이 연신 삼겹살을 구웠다.

가을이 집게를 들고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자 혁진이 냉큼 집게를 빼앗아 들었다.

한 차례 가을에게 태준이 오는 걸 비밀로 했다고 꾸중을 들은 혁진이 더욱 착한 표정을 지었다.

“감독님이 이런 걸 하는 게 어딨어요.”

“누가 하면 어때.”

“그건 아니~ 아니죠~”

집게를 든 혁진이 기분이 좋은지 두툼한 삼겹살을 집어 올리며 리듬을 탔다.

“가을 가을, 정가을은 감독, 지니 지니 혁진이는 조 감독, 집게 주인은 누구? 지니 지니 혁진이. 불판은 따듯, 굽기는 바짝, 첫입은 네 입에, 내 마음은 행복~”

혁진의 비트에 가을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좋은 날씨에 좋은 사람들. 마치 야유회를 나온 분위기였다.

“헤이 정가을~.”

혁진이 마이크를 넘기듯 가을을 향해 집게를 가져다 대었다.

“고기는 삼겹살, 오겹살은 비싸. 야채는 상추, 깻잎은 비싸. 네 입에 한 점, 내 입에 두 점, 억울하면 너도, 나처럼 감독.”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 두 사람의 랩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에 나무젓가락을 놓던 지영이 그 모습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가을 언니 기분 좋나 보다. 혁진이 랩, 노래방 아니면 잘 안 받아 주는데.”

지영의 말에 도식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우리 정 감독, 기분 좋아 보이네.”

열심히 고기를 굽는 혁진을 보던 가을이 상자에 든 일회용 접시를 꺼내 놓자 그 옆으로 서준이 빠르게 다가왔다.

“선배 이런 모습 처음이네? 랩을 왜 이렇게 잘해요?”

흐뭇한 표정으로 가을의 모습을 보던 태준이 불쑥 끼어든 서준의 모습에 미간을 구겼다.

“언제부터 랩을,”

“가을 씨.”

태준의 목소리에 가을이 고개를 돌렸다.

“이거, 어떻게 둘까요?”

태준이 누군가 가져온 커다란 반찬통을 가리켰다.

“대표님은 그냥 계세요.”

“나도 도와야죠.”

그 말에 가을이 태준에게 향했다.

“그럼 이건 여기 접시에다가 조금씩 담아서 테이블에 올려 주시면 돼요.”

태준이 일부러 어설프게 반찬을 듬뿍 집어 접시에 덜었다.

“이렇게요?”

“아뇨, 이건 너무 많고요.”

가늘게 보는 서준의 시선을 무시한 태준이 연신 어설픈 모습을 보이자 가을이 그 옆에 딱 붙어서 태준에게 시범을 보였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도식이 잘게 찢어 놓은 마른오징어를 집어 들고 질겅질겅 씹자 그 곁으로 지영이 다가왔다.

“팝콘각이죠?”

접시에 담겨 있는 마른오징어로 향하는 지영의 손등을 도식이 찰싹 쳐 냈다.

“네가 구워 먹어.”

“제가 구워다 드린 거예요.”

“아, 그랬나.”

오징어를 집어 든 지영이 야무지게 씹으며 태준과 가을, 그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서준의 모습을 구경했다.

“선배, 나는 뭐 할까요?”

서준의 질문에 가을이 아닌 태준이 대답했다.

“본인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하지?”

“대표님도 같은 이유로 선배 찾은 거 같은데요.”

별것 아닌 일로 다시 불꽃이 튀려는 두 사람을 향해 가을이 할 일을 만들어 주었다.

“대표님은 이 정도씩 퍼서 여기에 담아 주시고, 넌, 대표님이 담아 주시는 거 하나씩 저쪽에 가져다 놔.”

“정 감독~”

“넵.”

정찬 CP의 목소리에 가을이 빠르게 몸을 돌리자 괜히 일거리만 만든 태준과 서준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가을이 시킨 일을 했다.

2시부터 시작된 점심 식사가 5시가 되어 가도록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말이 점심 식사지 이대로 술자리가 이어지다 저녁까지 해결한 후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될 게 분명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각자 이야기꽃을 피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그건 이미 썸이 아니지.”

지영과 혁진은 남녀의 썸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얼굴 볼 때 자꾸만 입술로 시선이 가면서 키스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어떻게 하고 싶고. 그런 단계면 썸이 아니라 좋아하는 거야.”

“그런가?”

혁진의 말에 지영이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이미 짐승 단계로 넘어간 건데.”

“지영이 너는 짐승 참 좋아하더라.”

“난 조신남보다는, 짐승남이 좋아. 나만 보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거, 섹시하잖아?”

가을이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맡은 연출자라는 위치. 자신이 찍을 드라마를 위해 모인 사람들.

언제나 조연출의 위치에서 워크숍을 했던 가을은 내내 벅찬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런 가을의 모습을 태준이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좇았다.

별것 아닌 얘기에도 소리 내어 웃고,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살피고 얘기하는 모습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대표님, 이거 드셔 보세요.”

마음이 잔뜩 들떠 곁을 내주지 않기로 한 마음을 잊은 가을이 태준의 접시에 잘 구워진 소시지를 가져와 올려놓았다.

“난 됐으니까 가을 씨 먹어요.”

“고기도 별로 안 드시던데. 이거 엄청 맛있어요.”

가을이 얼른 먹어 보라는 듯 눈을 빛내자 태준이 접시에 놓아 준 소시지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반쯤 깨물었다.

“어때요??”

“맛있네요.”

“그죠~~?”

칭찬받은 아이처럼 해사한 가을의 미소에 태준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 나도 소시,”

“어디가아아아, 은 배우.”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사이 얼큰하게 취한 도식이 서준의 팔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점심 식사 내내 서준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온갖 얘기를 하며 도식은 서준을 놓아주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한번 물면 절대 놓아주지 않기로 유명한 도식 덕분에 태준은 서준의 견제 없이 느긋하게 가을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 은 배우가 노래를 기가~ 막히게~ 한다는데. 한 곡 들어 보자.”

“여기서요?”

노래방 기계는 1층 거실에 있어 저녁을 먹고 예정된 일정이었다.

“반주도 없는데. 노래는 이따가 안에 가서,”

“여기 있습니다!”

혁진이 준비해 온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를 발 빠르게 서준에게 건넸다. 야외에서 노래 부를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챙겨 온 아이템이었다.

혁진이 마이크를 건네는 것과 동시에 지영이 한두 번 놀아 본 솜씨가 아님을 증명하듯 미러볼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혁진이 휴대폰을 들고 맹렬히 눈을 빛냈다.

“뭐든, 제목 혹은 가수 이름만 얘기해 주십쇼~!”

몇 번 기침을 한 서준이 ‘또다시 첫사랑’이라는 곡을 고르자 이내 잔잔한 반주가 깔리고 사람들의 이목이 서준에게 쏠렸다.

서준이 반주에 맞춰 첫 소절을 부르자 여기저기서 ‘오~~~’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평소 목소리와는 달리 감미로우면서도 낮은 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를 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이었다.

쑥스러운 듯 연신 얼굴을 매만지며 노래를 부르는 서준의 모습에 풋풋한 대학생의 느낌이 물씬 묻어났다.

“수줍어하는 모습과 그렇지 못한 노래 실력. 이래서 고막 남친~ 고막 남친 하는구나.”

서준이 노래를 잘한다는 정보를 도식에게 얘기한 게 연예인들의 SNS를 보고 사는 지영이었다.

지영을 비롯해 여자 스태프들이 노래를 부르는 서준을 향해 몽롱한 눈빛을 보냈다.

“다시 만난 너에게~ 또다시 사랑을 시작하려 해~♪”

운명처럼 첫사랑을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준이 점차 노래에 집중하며 방향을 은근히 가을 쪽으로 돌려 노래를 불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태프들은 그저 감미로운 노래에 심취했고, 서준이 가을을 좋아하는 걸 눈치챈 세 사람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감상했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른 가을은 가사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저 서준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했다.

모두가 서준의 노래에 감탄할 때 태준만 팔짱을 낀 채 한껏 길어진 눈으로 서준을 노려보았다.

태준이 듣기에도 서준의 노래 실력은 자신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와아아~~!!”

“가수네, 가수야.”

“앵콜~~.”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대본에 노래하는 장면 넣으면 안 되나?”

정찬 CP의 말에 여기저기서 ‘찬성’, ‘넣읍시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가 역시 그 말에 탐이 나는 듯 눈을 빛냈다.

“진짜 쑥스럽네.”

괜히 목덜미를 누른 서준이 슬쩍 가을을 돌아보았다.

“잘하네.”

가을의 칭찬에 쑥스러움이 배가된 듯 서준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태준이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 순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태준뿐이었다.

“아, 맞다! 수박!!”

지영의 말에 가을이 고개를 돌렸다.

“수박?”

근처에 계곡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온 지영은 철이 한참 지난 수박을 백화점에서 비싸게 사 와 계곡물에 담가 놓고 온 상태였다.

“계곡물에 수박 담그는 게 캠핑의 끝판이잖아요. 점심 먹고 계곡에서 수박 먹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얼른 가져올게요!”

“지영이 넌 인마, 소시지 구워야지. 어, 정 감독이 갔다 오면 되겠네.”

도식의 말에 가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지영아, 내가 갔다 올게.”

“아니에요. 언니 혼자 위험,”

“강 대표랑 같이 갔다 오면 되지.”

그렇지 않아도 가을과 함께 가려고 했던 태준이 도식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서준 역시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요.”

“아이고오~ 우리 은 배우는 앵콜 불러야지.”

도식이 서준의 팔을 잡아당기며 마이크를 건네자 여기저기서 ‘앵콜, 앵콜’ 소리가 퍼졌다.

태준과 가을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동안 도식에게 철저하게 마크를 당한 서준은 그 자리에서 앵콜 곡을 몇 번이나 불러야 했다.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지영이 말한 곳에서 수박을 찾아 손에 든 태준이 가을과 함께 산책길을 걸었다.

곳곳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들기 시작한 숲속은 고혹적인 분위기가 묻어났다.

숲속에서 부는 잔잔한 가을바람이 두 사람에게 스치자 가을이 풀 내음을 맡으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 진짜 좋다. 요즘 날씨가 여행이나 소풍 가기 딱 좋은 것 같아요.”

“그러게요. 좋네.”

“대표님도 즐거우세요?”

가을의 질문에 걸음을 멈춘 태준이 고개를 슬며시 꺾어 가을을 바라보았다.

“어때 보여요?”

적당히 오른 술기운, 시원한 바람에 묻은 일렁이는 풀 내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가을이 제 마음이 묻어난 대답을 했다.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태준이 산바람에 흩날린 가을의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겨 주는 동안 숨을 참은 가을의 뺨이 살며시 떨려 왔다.

“큰일이네.”

“……뭐가요?”

“좋아서.”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이른 시간에 울어 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가쁘게 뛰는 가을의 심장 소리가 섞여들었다.

“나랑, 다른 데 갈까요?”

서준이 했던 말과 같은 얘기를 들었을 뿐인데.

가을의 심장이 그때와는 달리 요란하게 뛰었다.

그 시각.

카페에 명석과 가영이 마주 보고 앉았다.

태준을 따라 워크숍에 가려고 했던 명석은 태준이 혼자 다녀온다고 해 회사에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 여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걱정스러웠지만 알아서 조심하겠다는 태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업무를 보았다.

그러다 또다시 가영에게 날씨가 좋다는 둥, 음식이 맛있다는 둥, 하는 메시지가 오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정확한 치료비용을 알려 주지 않는 가영에게 직접 치료비를 전해 주려고 만나자는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지금, 가영과 커피를 사이에 두고 앉은 참이었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나온 가영은 평소 차림하고는 전혀 다른, 목까지 채운 셔츠에 검은색 재킷, 무릎까지 오는 정장 치마를 입고 자리에 나왔다.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명석을 위해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나온 가영이었다.

“치료비, 후유증을 포함해 허리를 다쳐 생긴 손해액을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히 하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저처럼 젊은 사람은 아주 뒤늦게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요. 진짜예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지금 정산을 못 하겠다는 얘깁니까?”

“……계산 끝내고 나면 나랑 연락 안 할 거잖아요.”

“정가영 씨.”

가영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오늘 저 어때요? 오빠 스타일 맞아요?”

애쓰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짠해 명석이 더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제 스타일 아닙니다.”

“이것도 별로예요?”

가영이 입술을 내밀며 아쉬움이 묻어난 표정을 지었다.

평소 노출이 과한 옷을 즐겨 입어 명석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한 것 같아 가영은 최대한 얌전한 옷으로 입고 나온 상태였다.

“그럼 어떤 게 오빠 스타일인데요? 내가 다 맞출게요.”

“내가 말하는 건 외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그럼요?”

“정가영 씨. 올해 스물두 살이죠?”

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올해 서른한 살입니다.”

“나이 차이 딱 좋네! 9살이면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이 있잖아요!”

궁합을 안 보는 나이는 4살 차이었지만 가영은 일단 우기고 봤다.

“난 서른다섯쯤에 결혼을 할 생각입니다. 그럼 정가영 씨는 스물여섯이 되겠죠.”

명석이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가영이 낮게 고개만 끄덕였다.

“스물여섯에 결혼하긴 무척 이른 나이예요.”

“결혼할 수 있어요!”

“아뇨. 결혼을 하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고, 그걸 포기하기에 스물여섯은 너무 어려요.”

“그럼 일단 연애라도…….”

“난, 연애와 결혼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너무 어려서…… 그래서 싫다는 거예요?”

명석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요. 늦게 태어나고 싶어서 늦은 게 아닌데. 어리고 싶어서 어린 게 아닌데.”

울먹이던 가영이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오빠도 그 나이 되고 싶어서 된 거 아니면서…… 아홉 살 차이가 뭐가 많다고…… 열 살 차이도 아닌데. 나 진짜 결혼할 수 있는데…… 평생, 훌쩍, 평생…… 일찍 낳지 그랬냐고 엄마 아빠 원망할 텐데…….”

가영의 흐느낌이 점점 커지자 명석이 냅킨을 뽑아 가영의 앞에 놓아 주었다.

“세상에 좋은 남자 많아요.”

“나한테 좋은 남자는 오빠뿐인데…… 으흐흑.”

가영이 명석이 준 냅킨으로 눈물을 닦으며 연신 흐느꼈다.

“그럼, 흑, 나이 말고, 흐흑, 나이 말고는 내가 흐으윽, 어떤데요.”

자신의 취향을 맞춘다고 옷 스타일도 다르게 입고, 마스카라 때문에 검은색 눈물로 범벅이 된 가영의 얼굴을 명석이 빤히 바라보았다.

“나이 빼면,”

“…….”

“귀엽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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