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90)

가을의 표정이 좋지 않자 태준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요?”

“그게 할머니가 편찮으시다고 해서 본가에 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평소라면 ‘그냥 일’이라고 했을 가을이 솔직하게 자신의 얘기를 전달했다.

“그럼 차 보낼 테니까 타고 가요.”

“아니에요. 길이 막힐지도 모르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더 편해요.”

말한다고 듣지 않는 걸 아는 태준이 더 이상 권유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그럼 도착하면 연락해요.”

“네.”

“출발할 때도 연락하고.”

“네.”

가을이 착한 아이처럼 대답하자 태준이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 뒤.

가을이 마을버스를 타고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 도착했다.

지하철과 시외버스, 마을버스까지 타고 와야 하는, 가을이 사는 지역에서 두 시간을 이동해야 나오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동네였다.

어릴 적에 살던 낡은 한옥 단지에 가을이 15살이 되던 해 재개발로 빌라가 들어섰다.

선호와의 추억이 너무 많이 묻어 있는 곳이라 가을은 이곳에 올 때마다 심장이 아릴 만큼 힘들어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곳곳, 어딜 돌아보아도 선호와 함께했던 곳뿐이었다.

저 가로등은, 수업을 끝내고 온 가을을 선호가 기다리던 장소였다.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자신을 향해 선호는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학교에서부터 뒤를 쫓아온 남학생이 가을에게 고백을 하는 순간에도 선호는 저 자리에 서 있었다.

‘가을아, 네가 만날 남자는 오빠가 골라줄게. 알았지?’

가을에게 고백해 오는 남학생들을 볼 때면, 선호는 늘 자신이 골라 주는 남자를 만나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가을은 선호보다 멋진 남자를 골라 줘야 한다며 해맑게 웃어넘겼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외주 제작사에 취업한 가을은 일 년을 이곳에서 출퇴근을 하다 결국 회사 근처로 독립을 결정했다.

평생 가을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던 친할머니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엔 그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그렇게 가을은 혹시라도 선호가 찾아오면 꼭 얘기해 달라는 말을 하고 독립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가을에게 할머니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가을이 벨을 누르자 안에서 가을의 고모가 문을 열었다.

“바쁜데 미안해서 어떻게 해.”

“아니에요. 이거요.”

가을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전복죽이 든 쇼핑백을 고모에게 건넸다.

“노인네가 아프면 왜 꼭 널 찾는지 모르겠다.”

슬며시 미소 지어 준 가을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방에 오면 느껴지던 특유의 냄새. 한 번도 다정하게 대해 준 적이 없던 할머니였는데도, 가을은 이따금 씩 이 냄새가 그리웠다.

“할머니, 저 왔어요.”

가을의 목소리에 두꺼운 요 위에 누워 있던 복순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으응…… 가을이 왔냐.”

가을이 다가가 앉자 복순이 깊게 주름이 진 손으로 가을의 손을 꼬옥 움켜잡았다.

복순은 결사반대하던 여자와 결혼을 한 아들이 이혼 후 덜렁 손녀만 떠맡기자 못마땅한 마음에 가을을 외면했다.

손자라면 예뻐라도 해 보겠지만 그토록 싫어하던 며느리는 덜렁 딸만 둘을 낳았다.

그나마 가을이 제 아빠를 쏙 빼닮아 데리고 있었지만 복순은 가을에게 애정이 없었다.

가을이 독립을 해서 집을 나갔을 때도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켰던 복순이었다.

그러던 복순이 언젠가부터 몸이 아프면 가을을 찾았다.

그러고는 매번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내 새끼. 할미가 미안해.”

한 번씩 올 때마다 점점 말라 가는 복순의 모습이 가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참을 복순의 손을 잡고 늘 하는 이야기를 들어준 가을이 복순이 잠든 걸 확인한 후 안방에서 나왔다.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고모, 저 갈게요.”

“벌써 가게?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일하다가 온 거라서요.”

“에휴, 너만 고생한다.”

당장 숨이 넘어갈 듯 가을을 찾아 임종이라도 지켜보라고 가을에게 연락을 하면 복순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평온해졌다.

그 상황을 몇 번이나 겪으면서도 복순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으면 정말 마지막일까 싶어 가을은 무리를 해서라도 복순을 찾아왔다.

생방송에 가까운 촬영을 할 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참, 네 아빠 소식은 들었니?”

“아뇨.”

“또 이혼한단다. 이번이 몇 번째야 정말. 애들 장난도 아니고.”

가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새삼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쉬세요.”

빌라 입구를 나선 가을이 선호가 살던 맞은편 빌라를 한참이나 올려 보다 걸음을 돌렸다.

당장 비가 퍼붓기라도 할 듯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너 가을이니?”

이곳에 와서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 선호 모친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어머, 이게 몇 년 만이야? 너 방송국 피디 됐다며? 네 할머니가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 몰라. 호호.”

“…….”

“일이 잘되나 보다. 예전보다 더 예뻐졌네. 우리 선호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너랑,”

“선호 오빠…….”

가을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죽은 거 아니에요.”

“얘 좀 봐. 너 아직도 우리 선호 기다리니? 실종된 지 10년째인데 걔가 살아 있겠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누구보다 선호 오빠를 기다려야 될 사람이 아줌마 아니에요?”

“경찰도 못 찾은 일이야. 잊을 건 잊어야지.”

“어떻게 잊어요? ·····어떻게 잊고 살아요? 아줌마는…… 아줌마는 더 선호 오빠를 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마흔 살 남자와 결혼했던 선호의 모친은 이혼 후 남자가 재혼을 하자 엄청난 양육비를 요구하며 선호를 데려왔다.

고작 8살이었던 선호를 방치하며 모친은 밖으로만 나돌았지만 천성이 착하고 밝은 선호는 척척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 오히려 엄마를 위해 집안일까지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선호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훌륭한 경찰이 돼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던, 둘도 없는 효자였다.

“너도 참 가망성 없는 일에 힘 빼고 산다. 그만 잊고 살아.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가을이 가빠지는 숨을 참으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전, 절대 안 잊어요.”

“그런다고 선호가 살아오겠니? 어머, 나 좀 봐. 나중에 또 보자.”

마치 남의 아들처럼 얘기하고 돌아서는 선호 모친의 모습에 분노한 가을이 숨을 골랐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그런 욕을 하는 시간도 아까운 사람이었다.

분노를 참아 내듯 주먹 쥔 가을의 손이 얕게 떨렸다.

“후우…….”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킨 가을이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

뭔가 놀란 표정으로 가을이 빠르게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하던 가을이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오늘이 선호의 생일이었다.

휴대폰을 보는 가을의 손이 덜덜 떨려 왔다.

어떻게 선호 오빠 생일을 잊을 수가 있지.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던 선호의 생일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선호와 함께 지내던 동네까지 찾아왔다. 그런데도 선호의 생일을 이제야 기억해 냈다.

박 형사와는 종종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최근에는 그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거기다 신원 불명의 남자 사체가 발견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 연락이 없었던 탓에, 선호의 생각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니, 그 모든 건 핑계였다.

자신의 머리에 다른 것이 가득 차 선호의 생일을 잊은 것뿐이었다.

디링-

태준에게 온 메시지가 화면에 보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 도착했냐는 태준의 메시지에 이제 막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던 상태였다.

[할머님은 어떠세요?]

[아직 할머니네 댁이에요? 아니면 출발했나?]

가을이 넋이 나가 서 있는 사이 태준이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디링-

[비 올 것 같은데 우산 있어요?]

[어디예요? 차 보낼까요?]

가을이 미동도 없이 서서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읽었다는 표시는 사라지는데 가을에게 답이 없자 태준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괜찮아요?]

[걱정되니까 연락 줘요.]

태준의 메시지를 멍하니 보기만 할 뿐, 가을은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떨리는 손에 들려 있던 가을의 휴대폰이 손바닥에서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장창.’

휴대폰 액정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금이 갔다.

그대로 서서 액정에 금이 간 휴대폰을 바라보던 가을이 휴대폰을 집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잊을 수가 있지.

휴대폰을 집어 든 가을이 그대로 무릎에 머리를 파묻었다.

‘쏴아아아아아.’

가을이 지하철역 계단에 오르자 매섭게 비가 퍼부었다.

한참을 멍하니 지하철역 지붕 아래 서서 내리는 비를 보던 가을이 어느 정도 비가 그치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퍼붓던 비에서 부슬비로 바뀌어 있었지만 걸어가는 동안 가을의 몸은 촉촉이 젖어 들었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 속에 가을이 비를 맞으며 천천히 골목길을 올라갔다.

자신은 절대 선호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자신마저 잊으면 선호가 너무 가여워서…… 선호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일이 바빠 잊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지금보다 더 바쁜 날에도 가을은 단 한 번도 선호의 생일을 잊은 적이 없었다.

선호를 기다리는 동안 바뀐 건, 태준의 존재밖에 없었다.

제주도에서만 태준을 먼저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

태준에게 들떠 있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선호를 떠올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하…….”

절대 선호를 잊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친 자신이 우스웠다.

가족에게 잊혀진 선호가, 자신도 점점 잊혀 가는 선호가 가엽고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한참을 넋이 나가 걷던 가을이 작은 놀이터에 있는 원통형 미끄럼틀 안에 몸을 비집고 앉았다.

무서운 게 있으면 다락방에 숨었던 어린 시절 모습처럼 그렇게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몸에 딱 맞는 장소에 들어가 손톱을 물어뜯던 어린 시절 버릇처럼 가을이 처음 느끼는 자책과 당혹스러움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었다.

투투투둑- 투투투둑-

또다시 비가 퍼부었다.

놀이터 미끄럼틀 위로 내리치는 빗소리에 가을은 온몸을 맞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맹렬하던 비가 또다시 잦아들었다.

Rrrr-

[강태준 대표님.]

벨소리가 쉬지 않고 놀이터를 울렸다.

마음에 균열이 간 것처럼 [강태준 대표님] 위로 금이 간 액정이 보였다.

연락이 없으면 얼마나 두려운지 알고 있고 있었지만 가을은 태준의 연락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디링-

전화가 끊긴 후 메시지 음이 울렸다.

[어디예요? 전화할 수 없는 상황이면 메시지라도 줘요.]

디링-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디링-

[기다릴게요.]

시간이 흐른 후 또다시 메시지 음이 울렸다.

디링-

[걱정되니까 연락 좀 줘요.]

태준에게 연락이 올 때마다 마음이 불에 탄 듯 욱신거렸다.

비에 젖은 가을의 몸이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10년간 선호에 대한 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살았던 가을이었다.

그런 가을이 선호의 생일을 잊었다는 사실에 패닉 상태가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쌓아 오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진 듯 가을은 지금 공황 상태였다.

그런데 이 순간에.

선호에게 미안해 견딜 수 없는 이 순간에도.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선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가을이 쭈그리고 앉은 다리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디선가 비에 젖은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빠르게 가까워지던 소리가 가을의 앞에서 멈추었다.

고개를 든 가을의 눈앞에 물에 젖은 정장 구두가 보였다.

미끄럼틀 앞에 멈춰 선 긴 그림자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미끄럼틀 안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가을과 눈을 맞추고 앉아 있는 사람은 태준이었다.

“찾았다.”

응급실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걱정이 가득한 태준의 까만 눈과 마주한 순간.

가을은 자신의 마음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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