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데…….”
“아무거나 불러도 괜찮습니다. 대표님 노래 듣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영광.”
얼큰하게 취해 휴지를 목과 머리에 칭칭 두른 도식이 탬버린을 흔들 준비를 하며 웃어 보였다.
평소 명석이 준 클래식 모음곡 외에 노래를 듣지 않는 태준은 노래방에 온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 아니면 책이 전부였고, 지금은 일 아니면, 책이나 신문, 뉴스를 보거나 등산과 운동을 하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간간이 명석과 술을 마시는 것 정도가 태준의 일탈이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할 필요성도, 흥미도 없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하면 분위기를 깰 것 같아 일어나긴 했는데, 아는 노래가 없어 난감해진 태준이 뭘 불러야 하나 고심했다.
분위기상 빠른 노래를 해야 하는 건 아는데 그런 노래는 한 곡도 알지 못했다.
“아무거나 편하게 부르십쇼~!”
도식이 가을을 향해 눈짓을 하자 가을도 탬버린을 들고 도식의 옆에 다가와 섰다.
드라마 팀 회식 전문인 두 사람은 태준이 무슨 노래를 부르든 분위기를 띄우며 무대를 불태울 작정이었다.
태준이 고심 끝에 부를 노래를 결정했다.
사람들이 책자로 노래를 찾아 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던 태준이 노래를 찾아 번호를 눌렀다.
태준이 고른 노래는 ‘선 리버’였다.
커다란 노래방 화면에 너무도 환하게 웃는 아름다운 여배우의 모습과 함께 전주가 흘러나왔다.
굵직한 저음과 네이티브 같은 영어 발음으로 노래가 시작되자 도식과 가을이 조용히 탬버린을 놓고 의자에 앉았다.
탬버린의 신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었지만, ‘선 리버’에 맞춰 탬버린을 흔들 재주는 없었다.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고 특별히 잘 부르지도 않았지만 잔잔하게 노래를 하는 태준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었다.
술기운 때문에 자장가처럼 들리는 노래를 감상하던 도식이 가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체 저 대표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가을이 씁쓸하게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독님도 제 주제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무슨. 너한테 딱 맞는 상대라 아까워서 그래.”
도식이 마음에 드는 사윗감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태준을 바라보았다.
“소문과 달리 사람이 아주 괜찮아 보여, 저 봐. 너 보는 눈빛에 꿀 떨어지는 거.”
어색하게 노래를 하던 태준이 가을을 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가을도 미소를 지으려다 빠르게 표정을 돌렸다.
다 연기예요.
촬영 감독인 도식이 속을 정도면 연기력은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가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달칵-
명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온 태준이 노래방 문을 열자 가을을 비롯한 도식과 스태프들이 의자에 기대 잠이 들어 있었다.
태준이 자리에 벗어 둔 슈트 재킷을 챙겨 들었다.
“아이고. 깜빡 잠들었네.”
도식의 목소리에 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만 가시죠.”
눈을 비비며 태준의 모습을 빤히 보던 도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뭐 하나 물어봐도 되죠?”
“그러세요.”
도식이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잠들어 있는 가을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조감독,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
태준이 대답 없이 도식을 응시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깼던 가을이 도식의 질문에 난처할 태준을 생각해 눈을 뜨려 할 때였다.
“좋은데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조감독한테 들어 보니까 응급실에서 처음 만났다던데.”
도식은 노래방에서부터 딸의 남자 친구를 살펴보듯 태준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예.”
“그때 보고 반한 건가?”
“아뇨.”
“그럼?”
도식의 말이 어느새 반말로 바뀌었다.
“정가을 씨를 보고 반한 건…….”
어쩐지 태준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감겨 있는 가을의 눈썹이 여리게 떨려 왔다.
“아마도 산에서……였을 거예요.”
“산?”
태준이 그날을 생각하듯 연한 미소를 띠었다.
밝아 오는 하늘에 비친 가을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던. 알 수 없는 두근거림.
“정상에 서서 절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태준이 잠들어 있는 가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 한눈에 반했습니다.”
스스로도 진심인지, 그저 연기일 뿐인지 알지 못하는 대답이었다.
가을을 바라보고 있는 태준의 눈빛이 모든 걸 말해 주는 것 같아 도식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이렇게 열심히 사는 녀석은 처음 보거든. 힘든 내색 하나도 안 하고 참는 게 어찌나 짠하고 기특한지.”
도식이 아빠 같은 미소로 가을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마냥 웃고 살가운 것 같은데 사람한테 선을 긋는단 말이야. 조금만 더 친해지려고 하면 밀어내거든.”
도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태준을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밀어내도 밀려나지 마요.”
태준이 약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입니다.”
노래방에서 나온 스태프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며 흩어지자 가을이 태준의 차 보조석에 올랐다.
태준과 도식의 대화에 눈도 뜨지 못하던 가을은 잠에서 깬 스태프가 몸을 일으키자 마침 그때 깨어난 척 자연스럽게 눈을 뜰 수 있었다.
도식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던 가을은 도식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을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태준을 돌아보았다.
연기자를 했다면 대성했을 게 분명한 연기 실력이었다.
애틋함이 묻어난 태준의 목소리에 산에서 자신을 만났을 때, 태준이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을이 안전벨트를 매자 태준이 바로 시동을 걸었다.
“피곤하면 눈 좀 붙여요.”
“아니에요.”
가을이 얕게 한숨을 쉬자 태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기분 괜찮아요? 시원섭섭할 것 같은데.”
“그렇죠, 뭐. 일할 땐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 하다가도 쉬고 있으면 또 언제 일하나 싶고.”
가을이 느슨해지는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조연출이라는 게 일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게 아니라 누가 불러 주거나, 면접을 봐야 하니까요.”
“이번에 4부작 하고 나면 좀 더 좋은 기회가 올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정적이 흐르자 취기로 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꾹꾹 누르던 가을이 정적을 깼다.
“팝송 좋아하시나 봐요.”
“어머니 애창곡이에요.”
“아, 그 영화 좋아하시나 보다. 정말 명작이죠.”
“영화 좋아해요?”
“네.”
‘로마에서 아침을’ 이 영화는 선호와 함께 본 영화였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가을과 달리 영화를 좋아하는 선호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선호의 방에서 오래된 컴퓨터로 함께 영화를 보곤 했다.
“대표님은 그 영화 보셨어요?”
“아뇨.”
“정말요?? 되게 유명한 영환데.”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게 별로 없나 봐요.”
“그런 편이죠.”
“그럼 뭘 좋아하세요?”
올라오는 취기 누르던 가을이 태준을 돌아보았다.
“정가을 씨를 좋아하죠.”
무심히 툭 뱉은 태준의 말에 가을이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쓸데없이, 심장이 뛰었다.
동요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순간에도 태준은 열심히 연기를 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생각을 멈추려는 듯 가을이 눈을 감았다.
태준 역시 앞만 본 채 말을 하지 않았다.
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차를 멈춘 태준은 그제야 창문에 머리를 대고 잠든 가을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머리가 복잡해져 창문을 반쯤 내렸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식히며 운전을 하다 빌라 앞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탈칵.’
안전벨트를 푼 태준이 여전히 잠이 든 가을을 깨워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으응…….”
창가로 얼굴을 기댔던 가을이 태준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잠이 든 가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준이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흩날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촬영 내내 제대로 잠을 못 잔 듯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연민에 가깝던 태준의 눈빛은 가을의 입술로 저절로 시선이 내려가며 진득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도톰하면서 살짝 벌어진 입술. 낮게 숨을 뱉어 내는 가을의 입술을 향해 멋대로 손이 움직였다.
촉촉하고 말랑한 입술을 지그시 누르자 잇새로 새어 나온 숨결이 태준의 손끝에 닿았다.
매 순간 좋아하는 여자라고 세뇌를 해서 그런 걸까.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두근거림이, 자꾸만 낯선 감각을 깨웠다.
더 이상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듯 태준이 가을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몸을 움찔 떤 가을이 천천히 눈을 뜨자 태준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를 냈다.
“다 왔어요.”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듯 느리게 깜빡이던 가을이 이내 정신을 차리며 자신의 뺨을 살짝 때리곤 안전벨트를 풀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같이 가야죠.”
태준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같은 집은 아니지만, 같은 곳으로 향하는 이 순간. 두 사람의 마음에 떨림이 묻어났다.
* * *
“진짜 이사를 갔다고?”
‘세양 홈쇼핑’ 대표실 안에 찬영이 미연과 마주 앉아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흉내만 낸 거 아니야?”
찬영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비서가 태준에 관한 사항을 보고했다.
“주소지 이전도 하셨습니다.”
“하, 미친놈.”
찬영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
명석을 태준에게서 떨어트리려고 벌인 일이었는데, 그 일로 문규가 태준에게 결혼을 종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태준이 어떤 조연출을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여자에게 관심도 없던 태준이 결혼하라는 말에 갑자기 짝사랑이라니.
어딘가 수상했다.
자신이 아는 태준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정략결혼을 선택하지, 시간을 투자하며 누군가를 쫓아다닐 놈이 아니었다.
명석과 태준을 몰아가기 위해 일을 꾸몄을 때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진짜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공부밖에 모르는 놈이라고 해도 어떻게 여자를 한 번도 만나지 않을 수가 있는지.
그저 독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생각을 하니 이해가 되었다.
명석이만 해도 그랬다.
태준과 명석은 학창 시절 내내 함께했다. 거기다 태준이 미국으로 떠나자, 군대를 제대한 명석 역시 바로 태준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런 행동들이 서로 좋아해서 그런 거라 연결시키니 딱 맞아떨어졌다.
거기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의심을 받는 타이밍에 어울리지도 않는 짝사랑 선언이라니.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아 주변에 사람을 심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있는 촬영장에 밥차나 커피차를 보내면서 틈나면 촬영장까지 오는 게 영락없이 그 여자를 쫓아다니는 모양새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어 태준의 통화 내역, 문자 내역까지 조사했다.
내용까지 알 수는 없지만, 전화나 문자로 끊임없이 그 여자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명품으로 휘감은 미연이 커피잔을 들었다.
“황 비서가 그러는데, 태준이가 한강에서 그 여자를 억지로 끌어안더란다.”
“태준이 그놈이요?”
“원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르는 법이야.”
“…….”
“남자를 좋아하는 게 더 좋긴 하다만, 그 여자랑 결혼해도 나쁘진 않겠어.”
미연이 우아한 동작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가진 게 영 없는 별 볼 일 없는 여자야. 이왕이면 그런 여자랑 결혼을 해야 태준이한테 힘이 실리지 않지.”
찬영이 가는 눈으로 입술을 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영 찜찜했다.
연한 베이지색 매니큐어가 발린 손톱을 보던 미연이 이내 비틀어진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독한 놈이야. 어떻게 그렇게 흠 하나 찾을 수가 없는지.”
“…….”
“하긴, 죽기 직전에 재산 노리고 자기 아들 ‘세양 가’에 보낸 제 엄마 닮았으니 그렇게 독한 거겠지.”
대표실에 내리쬐는 햇살을 등지고 있는 미연의 모습이 더 표독해 보였다.
“그냥 곱게 죽을 것이지. 뭐 하러 뒤늦게 연락을 해.”
온갖 모함으로 애란과 정열이 헤어지게 만든 후, 술에 취해 애란만 찾아 대던 정열과 잠자리를 가진 미연은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그렇게 정열을 차지한 줄 알았는데. 정열은 자신에게 한 번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랬던 남자가 10년 만에 애란이 나타나자 급격히 흔들렸다.
거기다 두 사람의 사이에 아이까지 존재했다.
갑자기 나타난 애란뿐만이 아니라 애란과 정열, 두 사람을 쏙 빼닮은 태준도 미치도록 싫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미연은 날마다 애란에게 찾아가 저주의 말을 뱉었다.
아픈 애란을 돌본다는 천사 같은 이유를 대고 끝도 없이 애란과 태준을 괴롭혔다.
애란이 사망한 후, 어린아이가 울지도 않고 자신에게 꼬박꼬박 새어머니라고 부르며 반듯하게 성장하는 태준이 끔찍이도 싫었다.
찬영과 출생이 다른 혼외자 출신인데도, 문규가 끔찍하게 아끼는 것도 늘 못마땅했다.
하지만 찬영의 후계를 위해 그런 마음을 숨긴 채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문규와 정열에게 착한 며느리, 아내 역할을 해 왔다.
“쓸데없이 영양가 없는 여자들 만나고 다니지 말고, 태준이한테 더 신경 써. 할아버지한테 가서 애교라도 부리라고.”
“할아버지가 제 애교를 받아 주시기나 하나요.”
“선물이라도 하든가. 뭐든 태준이보다 나은 걸 하란 말이야!”
미연이 형형히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태준이가 후계를 물려받으면, 제일 먼저 뭘 하겠어.”
“…….”
어린 시절, 자신들을 보던 태준의 눈빛을 기억하는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태준이 ‘세양 그룹’을 차지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으로 와 샤워를 하고 나온 태준이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해결해야 할 업무가 많아 하루 종일 가을에게 연락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집으로 들어오기 전 습관처럼 살펴본 501호는 불이 꺼져 있었다.
혹시 그동안의 피로로 잠을 자고 있나 싶어 태준은 가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태준이 뻣뻣해진 목을 힘주어 주물렀다.
그러다 유리로 된 소파 테이블 아래 수공으로 만든 고급 장식함을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자 장식함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젓가락이 보였다.
활짝 웃으며 행운권을 선물한다던 가을의 모습이 생각나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던 태준은 크기에 맞는 장식함을 사서 넣어 두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렇게 장식함에 나무젓가락을 넣어 둔 게 우스운지 태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작사 대표를 만나는 저녁 일정이 좋아하지 않는 중식당으로 잡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태준이 가볍게 뭐라도 먹기 위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또다시 집 안의 모든 불이 꺼졌다.
사람을 불러 확인한다는 걸 바빠서 잊고 있던 태준이 조만간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몸을 돌렸다.
가을이 했던 것처럼 차단기를 올려 볼 생각이었다.
그 순간.
[태준아.]
소름 돋는 여자의 목소리가 태준의 귀를 울렸다.
그 목소리에 태준의 호흡이 가빠지며 숨도 쉴 수 없는 공포심이 온몸을 뒤덮었다.
[태준아.]
“으으…….”
뒤로 넘어지듯 소파에 앉은 태준이 점점 가빠지는 호흡에 거칠게 숨을 들이켜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식은땀이 태준의 온몸을 뒤덮었다.
Rrrr-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에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 액정이 반짝거렸다.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던 태준이 간신히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저 정가을,
“나 좀…….”
-여보세요?? 대표님,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나 좀…… 도와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