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90)

태준의 부친인 정열이 성북동 집 거실에 들어섰다.

큰 키에 60대의 중후한 기품이 흘러넘쳤다.

“다녀왔습니다.”

거실에 앉아 뉴스를 보던 문규가 정열의 인사에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집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쯧쯧- 니들은 영 대화도 안 하고 사는 게야? 사부인 몸이 안 좋아서 친정에 갔다.”

정열이 슈트 재킷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몇 시간 전 미연에게 온 문자를 확인도 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 좀 앉아라.”

문규의 말에 정열이 소파에 다가와 앉았다.

걱정이 짙게 묻어난 문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혹시 태준이 말이다.”

“예.”

“그날 일에 대해서 뭘 아는 것 같은 눈치는 아닌 게지?”

문규가 10년 전 태준의 사건을 꺼냈다.

그동안 태준이 여자를 멀리했던 이유가 혹시 그날 일을 기억해서 그랬던 건가 싶어 불안한 마음이 든 문규였다.

문규는 끔찍했던 그때의 기억을 태준이 되살리지 않길 바라왔다.

“그런 눈치는 없었습니다.”

문규가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더 조심해라.”

“예.”

안색이 좋지 않은 정열을 보던 문규가 옆에 서 있던 권 집사를 돌아보았다.

“권 집사.”

“예, 회장님.”

“약은.”

“내일 낮에 가지고 온답니다.”

문규가 고개를 끄덕이고 정열을 돌아보았다.

“약은 잘 챙겨 먹고 있는 게야?”

“예.”

정열은 잦은 두통에 현기증,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에 시달려 왔다.

최고의 의료진이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정열이 짐작하는 건 오래전부터 쌓여 온 울화라고 예상할 뿐이었다.

정열은 원하지 않은 결혼으로 평생을 후회하며 불행한 생활을 했다.

10년 만에 만난 애란이 암에 걸린 이유가 자신 때문인 것 같아서 정열은 이날까지 자책하며 살아왔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애란으로 착각해 미연과 잠자리를 가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정열은 ‘세양 그룹’을 포기하고 애란에게 갈 생각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공간에 문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준이가 좋아하는 아가씨 집안이 아주 형편없더구나.”

문규는 태준의 대표실을 나온 후 바로 가을의 뒷조사를 시켰다.

알아낸 건 가족관계,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과 집안 형편, 학력 등등 기본적인 것들이었을 뿐 어린 시절이나 선호에 관련된 사항은 알지 못했다.

SNS도 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는 주변에 일체 하지 않았던 데다, 박 형사와 연락을 한다는 사실 역시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어 그 부분에 관한 사항을 알아내기는 문규로서도 힘들었다.

거기다 실종자 사이트에 올린 선호와 관련된 게시글에도 가을이 아닌 경찰서의 번호가 올려져 있었다.

박 형사가 혹시 모를 장난 전화를 걱정한 탓이었다.

경찰서에 지인이 있어 종종 가는 것 같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선호에 대한 사건을 모르는 문규는 별다른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주변 평판은 나쁘지 않더라만. 학력도 좋지 않고 직업도 변변찮고.”

“…….”

“무엇보다 영 개운하지가 않단 말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여자에게 관심도 없던 녀석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하자마자 짝사랑 타령이라니. 내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문규가 깊은 눈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일인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만, 만약 태준이가 좋아하는 게 맞으면. 넌 어쩔 생각이냐.”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태준이 짝으로 괜찮냐 이 말이야.”

“전…….”

잠시 말을 멈춘 정열이 입을 열었다.

“태준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10살까지 아버지인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온 태준은 결국 엄마까지 잃었다.

태준을 만났을 때 어린 태준이 처음으로 뱉은 말은 자신을 향한 원망도, 미움도 아니었다.

한없이 순수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한 말은, ‘우리 엄마가 많이 아파요.’였다.

그 말에 애써 누르고 살아온 마음이 무너졌다.

왜 헤어졌을까.

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어린 아들에게 이런 말이 나오게 했을까.

수많은 ‘왜’를 만들어 내며 자책하고 자책했다.

애란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태준은 한 번도 자신에게 원망 섞인 말을 하지 않았다.

슬퍼하지도, 웃지도 않고. 세상에 공부가 전부인 것처럼 태준은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다.

애를 쓰는 태준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살갑게 다가가지도 못하는 못난 아빠였다.

깊게 가라앉은 정열의 모습을 보던 문규가 소파 등받이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

“허락한다는 말이냐?”

“예.”

“흠, 나도 결혼한다고 하면 허락할 생각이다.”

문규의 말에 정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렇게 허락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

거실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정열을 보는 문규의 눈빛이 슬픔으로 젖어 들었다.

“죄송합니다.”

정열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올라가 볼게요. 쉬세요.”

2층으로 올라가는 정열을 바라보던 문규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졌다.

* * *

탁-!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조연 배우들의 촬영 장면이 시작되었다.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촬영이라 현장은 가을이 지휘했다.

그리고 그런 가을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태준이 팔짱을 낀 채 지켜보았다.

현란한 무늬의 티셔츠에 청바지. 평소와 똑같은 모습일 뿐인데 카메라를 잡은 가을의 모습은 어딘가 달랐다.

마치 온 오프 버튼이라도 있는 듯 촬영에 들어가면 가을의 몸에서 진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모두가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태준의 시선 끝엔 가을이 있었다.

현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을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태준의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태준이 가을을 만나러 촬영장까지 쫓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확인하러 온 문규였다.

“권 집사.”

“예, 회장님.”

“태준이 저 녀석이 저런 표정 한 거, 본 적 있나?”

“아뇨. 처음 봅니다.”

가을의 모습을 눈으로 좇고 있는 태준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컷! 좋습니다~. 점심 드시고 와서 촬영 이어 갈게요!”

가을의 말에 조용하던 스튜디오 안이 부산해졌다.

오늘도 역시 태준이 스태프들을 위해 근처 식당을 예약해 둔 상태였다.

촬영 때문에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 둔 태준이 슈트 재킷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내자 문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 할아버지.”

-점심이나 같이 먹자꾸나.

“바쁩니다.”

-시간 되는 것 같은데 뭐가 바빠.

뭔가 싶어 태준이 고개를 돌리자 문규가 태준을 향해 다가왔다.

“이 녀석. 여자 쫓아다닐 시간은 있고, 할애비랑 밥 먹을 시간은 없는 게야?”

문규의 등장에 태준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가을 씨 찾아오지 마시라고,”

“쯧쯧, 널 찾아왔는데, 네가 여기 있는 걸 어쩌누.”

“그럼 지금 저랑 나가세요.”

태준이 서둘러 나가려 했지만 문규는 미동도 없이 서서 어딘가를 바라만 보았다.

문규의 시선이 향한 곳은 스태프와 얘기를 끝내고 돌아서는 가을이었다.

아무리 태준을 밀어내는 연기를 하는 중이라 해도 문규와 눈이 마주쳤는데 무시할 수가 없어 가을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점심 먹으러 갈 참인가?”

“네.”

“태준이 너도?”

“……예.”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먹자꾸나.”

“가을 씨 빨리 먹고 촬영 들어가야 해요.”

“나는 한가하냐, 이놈아.”

태준을 흘겨보던 문규가 가을을 돌아보았다.

“나랑 먹기가 싫은 게야?”

“그게 싫다기보다 살짝 부담스럽…….”

“하긴 늙은이랑 밥 먹는 걸 누가 좋아할꼬. 혼자 가도 받아주는 식당이 어디 있으려나.”

가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챈 문규가 씁쓸한 목소리를 냈다.

“할아버지 저랑,”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게야.”

태준의 말도 잘라낸 문규가 슬픔이 더욱 배인 목소리를 내며 권 집사를 돌아보았다.

“안 그런가, 권 집사.”

권 집사가 대답 대신 미소로 답하자 누가 봐도 씁쓸한 표정을 한 문규가 몸을 돌렸다.

태준의 뛰어난 연기 실력은 문규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쓸쓸해 보이는 문규의 뒷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가을이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다 결국 문규를 불러 세웠다.

“저랑 같이 드세요!”

얼마 뒤.

한식당 안에 문규와 태준, 가을이 자리했다.

촬영 스케줄이 빡빡해 멀리 가지 못하고 스태프들끼리 자주 오던 한식당을 찾아왔다.

처음엔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하던 가을이 이내 갈치조림 가시를 야무지게 발라서 하나는 문규의 앞에 하나는 태준의 앞에 놓아주었다.

매번 감독들과 스태프들을 챙기는 습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드셔 보세요. 이거 진짜 맛있어요.”

“태준이는 갈치 안 좋아하는데.”

문규의 말에 가을이 옆에 앉은 태준을 돌아보았다.

“갈치 안 좋아하세요?”

“오늘부터 좋아합니다. 잘 먹을게요.”

가을이 발라 준 갈치를 덥석 입으로 가져가는 태준을 기막힌 표정으로 보던 문규가 가을을 돌아보았다.

“가을 양은 왜 안 먹고.”

“전 여기서 많이 먹어 봤어요.”

가을이 태준의 반응을 보려는 듯 고개를 돌리자 태준이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맛있네요.”

“그죠? 할아버지도 얼른 드셔 보세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살아 어른들에게 친숙한 가을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룹의 회장님이 아니라 그저 여느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크흠.”

태준과 찬영, 외손주들을 제외하고 사람들에게 ‘회장님’ 소리만 듣던 문규가 괜히 헛기침을 뱉었다.

가을이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썩 싫지 않았다.

“얼른요.”

가을의 기대에 찬 눈빛을 받으며 문규가 갈치조림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어떠세요?”

“아직 씹지도 않았다.”

“아…….”

가을이 멋쩍어 배시시 웃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워하더니 금세 살갑게 행동하는 가을의 모습을 태준이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가을은 연신 문규의 반응을 기다렸다.

“제법…… 맛있구나.”

“그죠? 맛있죠?”

자신이 만든 음식을 가족들에게 칭찬을 받은 것 같은 것처럼 가을이 기뻐했다.

그런 가을의 모습이 귀여워 태준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 역시 문규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 두 사람은 어디서 만났고?”

“응급실이요.”

“응급실에서요!”

누군가 뭘 물어오면 대답할 사항을 몇 가지 추려서 외워둔 두 사람이었다.

“응급실은 왜 갔을꼬?”

“제가 과로로 쓰러졌는데 대표님이 응급실까지 태워다 주셨어요.”

“쯧쯧- 그렇게 말랐으니 과로로 쓰러지지.”

“제가 말라 보여도 건강 체질이에요.”

“건강 체질인데 왜 쓰러지누?”

“그날 체감 온도가 무려 40도가 넘었거든요. 일사병이 겹쳐서 그런 거예요.”

“쯧쯧, 내가 그 나이 때는 하루 한 끼 먹고 공사 현장을,”

“할아버지, 점심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태준이 늘 하는 문규의 얘기를 끊어 내자 어딘가 어색한 긴장감을 느낀 가을이 슬쩍 목소리를 냈다.

“저 책에서 봤어요.”

가을의 말에 문규와 태준이 동시에 가을을 바라보았다.

“‘맨발로 달리고, 열정으로 숨 쉬어라.’”

평소 ‘STN’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가을이 우연히 발견해서 읽은 문규의 성공 신화 자서전이었다.

자신의 자서전을 읽었다는 얘기에 문규가 MSG가 첨가된 얘기를 꺼냈다.

문규의 얘기에 가을은 특기인 감탄과 칭찬, 박수까지 치며 열심히 호응했다.

두 사람이 책에 관한 얘기를 하는 동안 끼어들지 못하던 태준이 시간을 확인한 후 강한 목소리를 냈다.

“저희 이제 들어가 봐야 해요.”

태준의 말에 문규가 앞에 놓인 물을 한 잔 마신 후 그제야 용건을 꺼냈다.

“그래 가을 양은, 아직도 우리 태준이가 싫은가?”

“네.”

망설임 없는 산뜻하기까지 한 대답에 문규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렇게 같이 점심도 먹고 하는 거 보면, 태준이가 영 싫은 건 아닌 것 같은데.”

태준이 문규를 제지하려 뭔가 얘기하려 할 때, 가을이 단호한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전,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감정을 믿지 않습니다.”

그 말에 태준이 가을을 바라보았다.

“그런 감정은 금방 퇴색하고 결국 서로를 향한 증오로 변질될 뿐이에요.”

“…….”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가을이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중한 걸 만들고 싶지 않아요.”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가을이 문규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단호한 가을의 모습을 보는 문규의 눈빛이 깊은 색을 띠었다.

“그만 일어나시죠.”

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규의 지팡이를 챙겼다.

소중한 걸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박선호 때문인지. 태준의 기분이 어딘가 깊게 가라앉았다.

한강 둔치.

가을과 태준이 산책길을 걸었다.

오후 7시쯤 촬영이 끝나자 태준이 가을을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해 두 사람이 함께 이동했다.

그러다 잠깐 바람을 쐬자는 태준의 제안에 한강 둔치를 걷는 중이었다.

“오늘 미안해요.”

문규를 만난 일로 태준은 가을에게 몇 차례나 사과를 했다.

“괜찮다니까요.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옵션에 있던 건데요 뭘.”

“그거 말고도…….”

태준이 말을 멈추자 앞만 보며 걷던 가을이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요.”

“사람들이요??”

“가을 씨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어? 어떻게 아셨어요?”

태준이 가을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계약 짝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가을은 끊임없이 거절을 하고 태준은 계속해서 쫓아다녀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태준은 상대가 싫다는데 쫓아다니는 자신을 욕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화살은 자신이 아닌 가을에게 향했다.

좋은데 튕긴다, 어장 관리한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보고에, 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해 가을이 자신의 행동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화살이 자신에게 올 수 있게 조치했다.

그랬음에도 몇몇 사람들이 안 좋은 얘기를 한다기에 가을이 걱정된 태준이 곧장 스튜디오로 간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듣게 해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제가 남의 말 무시하는 게 특기니까 전혀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가을이 태준을 보며 밝게 웃어 보였다.

“제가 가진 게, 근력, 정신력, 실력. 세 가지거든요.”

“하하하.”

걱정한 자신과 달리 꿋꿋한 가을의 모습에 태준이 저도 모르게 큰 웃음소리를 냈다.

“진짜 다행이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쓸어 올린 태준이 가을을 부드럽게 내려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정가을 씨라서.”

가을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잘 보시는 거죠. 사업가의 선구안 같은 거랄까?”

그때, 태준의 눈에 의심스러운 사람이 보였다.

깊게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새어머니인 미연의 곁에 있는 황 비서가 분명해 보였다.

어디서부터 따라온 걸까. 보조석에 앉아 있던 가을의 기분을 살피느라 누군가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다행히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주의를 주기 위해 태준이 가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왜요?”

“지금 누가 우릴 보고 있어요.”

“누가…….”

가을이 슬쩍 곁눈질을 할 때였다.

‘꺄아아옹.’

“엄마야아아아아!!”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나자 잔뜩 경계하던 가을이 저도 모르게 살짝 태준을 끌어안았다.

“으앗, 죄송해요.”

가을이 빠르게 떨어지려 하자 태준이 가을을 당겨 안았다.

“대표님……?”

“잠깐만…… 안고 있을게요.”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의심을 가지고 뒷조사를 하고 있는 미연이 행여 여자에 대한 이상 증상을 눈치채는 일은 없도록 해야 했다.

그러려면 이렇게 가을을 만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편이 확실했다.

가늘게 눈을 뜨던 황 비서가 그 모습에 그대로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눈으로 황 비서를 좇던 태준이 품에 안겨 있는 가을에게 시선을 옮겼다.

가을의 달싹거리는 숨소리가 제 가슴에 울렸다.

“갔어요??”

가을이 작은 목소리를 냈다.

“…….”

“……대표님?”

가을의 온기가. 가을의 체취가. 태준의 이성을 흐트러지게 했다.

맞닿은 이 느낌을 좀 더, 지속하고 싶었다.

“……아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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