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의 메시지였다.
기다리던 메시지였는데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감독님 잘 먹을게요~”
“워우, 대표실에서 사는 거라면서?”
스태프들이 가을에게 한마디씩 하고 자리를 이동했다.
좋아하는 스태프들과 달리 가을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던 고은이 매니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스튜디오를 나갔다.
작은 크로스 가방에 휴대폰을 챙겨 넣은 가을이 아무도 없는지 주변을 확인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겁먹을 거 없어! 아자! 아자!”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거울을 보며 하던 기합을 넣은 가을이 휴대폰을 챙겨 들고 스튜디오 밖으로 향했다.
빵-
낮은 경적 소리에 가을이 고개를 돌리자 고급 세단 운전석에서 명석이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가을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미소를 띤 얼굴로 꾸벅 인사한 명석이 재빨리 뒤쪽 차 문을 열었다.
가을이 다가가 명석이 열어 준 차 안을 힐끔 보자, 종이로 된 신문을 보고 있던 태준이 가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 타요.”
태준의 말에 가을이 차 안에 올랐다.
지난번에 탔던 차가 아니었는데도 차 안에는 태준의 체취로 가득했다.
무겁지 않은 머스크 향기와 은은한 나무 향이 멋스럽게 조화된. 포근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였다.
분명 파이팅을 외치고 나왔는데 막상 태준의 얼굴을 보자 긴장감이 몰려와 가을이 저절로 손을 공손하게 모아 쥐었다.
타라고 해 놓고 태준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가을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저…… 아까 문자 보냈는데 보셨어요?”
“봤습니다.”
“아…… 보셨구나.”
그런데 왜 답장을 안 보내셨나요. 제가 뭔가 실수를 많이 해서 그런가요? 차마 말로 하지 못할 실수인가요?
눈으로 잔뜩 질문을 내뱉는 가을의 얼굴을 보며 태준이 대답했다.
“바빴어요.”
“네…….”
“속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태준이 가을의 상태를 훑었다.
뽀얀 피부에 여전한 다크서클, 하나로 대충 묶은 머리, 당장 등산을 가야 할 것 같은 가지각색이 섞인 티셔츠. 그 아래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작은 손.
그리고 궁금함이 가득 묻어 있는 갈색 눈동자.
다른 남자와 자신을 혼동한 게 기분이 좋지 않아 일부러 답변을 하지 않았던 태준이 안절부절못하는 가을의 모습이 귀여워 마음이 느슨해졌다.
“저…… 혹시 제가 어제 대표님께 실수를 한 게…….”
“있죠.”
“있어요???”
죄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내리고 있던 가을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태준과 눈이 마주친 순간.
태준을 향해 가지 말라고 하던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헉!…….”
“기억났어요?”
“혹시 어제…… 저희 집에…… 오셨…… 아니죠?”
아니길 바라는 표정이 너무도 훤히 보여 태준이 말투에 장난이 섞였다.
“어떨 것 같아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집에 가면 현관 비밀번호 바꿔요.”
“…….”
“좋아하는 여자 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건, 꽤 위험해요.”
집에 갔다는 우회적인 표현에 가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외에도 제가 뭔가 실수한 게 있다면,”
“괜찮아요.”
과하게 긴장하고 있는 가을의 모습에 태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나한텐 실수해도.”
“…….”
“다 예쁘니까.”
어젯밤 숙취가 밀려오는지 속이 일렁거려 가을이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서 있는 명석의 모습을 보던 가을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저, 대표님.”
“예.”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둘만 있을 때는 굳이, 그러니까 둘만인 상태에선 그런 연기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난 연기에 익숙하지 않아서요.”
디링-
문자음에 태준이 슈트 재킷에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찬영이 오피스텔 앞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와 포옹을 하고 있는 여러 장의 사진이었다.
“조금이라도 티가 나면 물어뜯을 사람이 많아서.”
문자를 확인한 태준이 가을을 돌아보았다.
“몸에 배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석에겐 연기를 잘한다고 자랑하던 태준이 가을에겐 자신의 연기력을 과소평가했다.
“점심은 해장국으로 준비했는데, 괜찮죠?”
“네.”
“먹으러 가죠.”
“대표님도요?”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얼굴 보니까…….”
태준이 지그시 가을을 바라보았다.
“같이 먹고 싶어졌어요.”
같이 먹고 싶어졌다는 태준의 말에 ‘청남 해장국’ 테이블 한쪽에 가을과 태준이 함께했다.
스태프들의 편안한 차림 반해 슈트 차림인 태준이 이질적인 분위기를 뿜어냈다.
혹시 스태프들이 불편할까 싶어 태준은 가을을 데리고 제일 끝 쪽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했다.
가을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태준과 함께 앉아 피곤해 죽겠다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태준을 향해 조용한 목소리를 냈다.
“임 비서님은 안 오세요?”
“점심 생각이 없다네요.”
사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확히 12시에 점심을 먹는 태준은 이미 명석과 점심을 먹은 상태였다.
언제 어디서 여자들을 상대할 일이 생길지 몰라 늘 명석과 함께 다니던 태준은 이번엔 명석을 두고 혼자 식당에 들어왔다.
태준의 옆에 있겠다는 명석을, 태준이 괜찮다며 만류했다.
“그래도 끼니땐 먹어야 하는데.”
태준이 가을의 앞에 냅킨을 놓고 수저와 젓가락을 챙겨 주자 그사이 점원이 해장국을 가져와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해장국을 앞에 둔 태준이 느슨히 넥타이를 잡아 내리자 어디선가 본능에 가까운 여자 스태프들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쳤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어.”
“목소리 들었어? 난 동굴에 온 줄 알았잖아.”
“조감독님 대단하지 않아? 어떻게 마주 보고 앉아서 밥을 먹지?”
“내 말이. 난 정신 못 차릴 것 같은데.”
여자 스태프들이 조그맣게 속삭이자 근처에 앉은 남자 배우가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명색이 배우인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던 여자 스태프들의 반응에 태준을 힐끔거리던 남자 배우가 앞에 놓인 해장국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심각하게 잘생긴 외모였다.
“많이 먹어요.”
태준이 가을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가 들어도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대표님도 많이 드세요.”
가을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목소리를 냈다.
콩나물 해장국을 바라보는 태준의 눈빛을 읽은 가을이 슬쩍 스태프들 눈치를 보다가 안에 넣으면 더 맛있는 다대기를 챙겨 앞에 놓아주었다.
“처음 드셔 보시죠?”
“예.”
“그럼 제가 황금비율로 만들어 드릴까요?”
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가을이 다대기와 옆에 놓인 재료들을 해장국에 넣어 주었다.
“그럼 술 드시고 나면 뭐로 해장하세요??”
“해장할 정도로 마시지 않아서요.”
“아…….”
과하게 술을 마시고 태준에게 실수를 한 가을이 어색하게 웃으며 수저로 해장국을 크게 떠 입으로 가져갔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요.”
태준의 말에 ‘후-’ 불려고 하던 가을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스태프를 보고 일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제가 알아서 먹을 수 있거든요.”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던 태준이 조심스럽게 콩나물 해장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가을이 어떠냐는 눈빛을 강하게 보냈다.
“맛있네요.”
“그죠? 다 황금비율 덕분이죠.”
별것 아닌 것에 어깨를 으쓱이는 가을의 모습에 태준이 피식 웃었다.
“술 좋아하나 봐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어젠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요.”
“어제는 친구가…….”
가을이 한참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는 김 감독을 한번 보고 말을 이었다.
“입봉하게 된 거 축하한다고요.”
“그럼 나랑도 마셔야겠네요.”
“대표님이랑요?”
“나도 축하해 주려고 했거든요.”
“……괜찮은데.”
“그 기회에 4부작에 관련된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싫으면,”
“어떤 술 좋아하세요?”
빠른 태세 전환에 태준이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금세 내려왔다.
“정가을 씨는 어떤 술 좋아해요?”
“전 소맥이요.”
“소맥…….”
태준은 한 번도 마셔 보지 않은 술이었다.
“좋네요. 조만간 시간 잡아 보죠.”
얼결에 잡힌 술 약속에 가을이 고개를 끄덕이고 해장국을 떠 입에 넣었다.
뜨끈한 해장국이 들어가자 숙취가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김 감독하고는, 잘 풀었어요?”
“네.”
“사과는?”
“하셨어요.”
태준이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대표니임~?”
과도한 콧소리를 내며 고은이 비어 있는 태준의 왼쪽 자리에 앉았다.
김 감독이 있는 테이블에 앉아 내내 가을을 노려보다가 결국 태준에게 온 고은이었다.
태준의 소문은 고은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재벌에, 잘생긴 얼굴. 들이댄 여자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는 얘기들.
스태프들에게 태준이 여자를 싫어하는 건 소문일 뿐이고 실제로는 가을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고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잘난 여자들을 죄다 거절한 남자가 가을을 좋아하는 건 그저 호기심이거나, 으레 재벌들이 그렇듯 쉽게 놀다 버릴 여자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러다 오늘 점심을 대표가 사 준다는 말에 정성도 지극하다며 비웃었는데.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잘생긴 많은 연예인들을 보고 살아온 고은은 일반인인 대표가 잘생겨 봤자 얼마나 잘생겼을까 하고 한참 과장된 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실제로 보니, 입이 벌어질 만큼 잘생긴 외모에 주변을 압도하는 기품이 흘러넘쳤다.
이런 남자가 가을을 쫓아다닌다니. 배가 아파 음식도 입에 넘어가지 않았다.
얼굴로만 치면 자신이 훨씬 예쁜데. 마음만 먹으면 꼬시지 못할 남자가 없다는 자신감으로 고은은 태준의 옆자리를 양해도 구하지 않고 앉았다.
고은이 태준을 향해 한껏 애교 섞인 미소를 보냈다.
“오늘 점심 사 주셔서 감사해요~.”
스태프 전체에 사 주는 음식인데 마치 개인적으로 사 준 듯한 뉘앙스였다.
“그렇지 않아도 해장국 먹고 싶었거든요.”
“예.”
태준이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고개를 돌렸다.
“지난번 커피차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그 커피 좋아하시나 봐요?”
“풍미가 좋아서요.”
“어머~ 그러니까요. 역시 수준이 다르시구나~.”
커피에 무슨 수준을 따지니.
가을이 낮게 고개를 젓고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었다.
“여기 해장국집도 제가 좋아하는 가게인데 대표님이랑 저랑 취향이 비슷한가 봐요~.”
콧소리를 내던 고은이 습관인 척 태준의 팔에 슬며시 손을 댔다.
누가 봐도 다분히 의도적인 스킨십이었다.
그 순간, 태준이 매섭게 고은의 손을 쳐 냈다.
마치 몹쓸 게 닿은 듯 태준의 표정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태준의 눈빛이 얼마나 서늘한지 앞에 있는 가을이 놀라서 젓가락으로 집은 깍두기를 떨어트릴 정도였다.
얼어 있는 고은을 향해 태준이 싸늘한 목소리를 뱉었다.
“이런 스킨십은 자제해 주시죠.”
태준이 경고가 짙게 배어난 눈빛을 보냈다.
“내가 지금, 잘 보여야 하는 여자가 있어서요.”
조금 전 가을을 따듯하게 바라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태준의 모습은 서릿발이 내릴 만큼 차가웠다.
안면을 익힌 후에 따로 연락을 하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던 고은이 얼굴이 새빨개져 그대로 쌩하니 해장국집을 나갔다.
그 탓에 매니저와 담당 스태프들이 밥을 먹다 말고 고은을 따라 나가자 가게 안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남자들에게 끼를 부리던 고은을 알고 있던 여자 스태프들은 고소하다는 표정을 애써 감췄다.
“사장님, 여기 깍두기 조금만 더 주세요.”
가을의 우렁찬 목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울렸다.
촬영장 분위기가 냉랭한 것 정도는 가을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다.
가을이 테이블 위에 흘린 깍두기를 집어 밥그릇 뚜껑에 놓고 테이블을 닦은 후에 아무렇지 않게 해장국을 떠서 입에 넣었다.
언제 차가웠나 싶게 그새 따뜻한 눈빛으로 바뀐 태준이 그런 가을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어디선가 ‘최고은이 또 난리 치겠네,’ ‘괜히 화풀이하는 거 아냐.’ 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들은 태준이 조금 전 고은의 행동을 되짚어 보았다.
자신이 가을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텐데.
그런데도 그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행동을 한다는 건 가을을 무시하지 않으면 못 할 행동이었다.
“혹시 최고은 배우가 괴롭혀요?”
“에이, 아니에요.”
“괴롭히면, 나한테 일러요.”
태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며 가을을 향해 듬직한 오빠 같은 미소를 지었다.
“혼내 줄 테니까.”
늦은 시각.
‘STN’ 대표실 안 소파에 태준과 명석이 마주 앉았다.
태준이 휴대폰 메시지로 봤던 찬영의 사진에 대한 정보를 명석이 알아 온 참이었다.
“강찬영과 함께 있는 여자는 ‘우리 항공’ 승무원입니다. 이 여자 앞으로 이번엔 아파트를 한 채 사줬더라고요.”
“음.”
뭔가를 생각하던 태준이 눈썹을 쓸며 말을 이었다.
“새어머니 쪽은 어때.”
태준은 찬영과 미연의 뒷조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태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곳곳에 자신 쪽 사람들을 심어 두는 일이었다.
“사모님께서 한국병원에서 진료한 대표님 진료기록을 확인하셨답니다.”
태준의 한쪽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별다른 기록이 없어서 아쉬웠겠어.”
“그리고 대표님 유학 당시 동기들을 알아보셨답니다. 아마…….”
“진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닌지 확인하려는 거겠지.”
태준을 끌어내릴 기회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있을 모습이 눈에 훤했다.
“더 주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 알아보라고 한 건.”
가을과 점심을 먹고 나온 후 태준운 평소 고은의 행실이 어땠는지 명석에게 알아오라고 시킨 참이었다.
“최고은이 그동안 현장에서 정가을 씨를 비롯해서 스태프들에게 행실이 좋지 않았답니다.”
“지금 최고은이 ‘세양 그룹’ 관련 CF 찍고 있는 게 몇 개지?”
“세 개입니다.”
“앞으로 스태프들에게 안 좋은 얘기가 들리면 브랜드 이미지 차원에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협박할까요.”
“이번엔 경고.”
“예.”
“특히, 이번 드라마 현장을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봉 필름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대로 둬.”
“사과했답니까?”
“응.”
며칠 전, 김 감독이 가을에게 폭언을 한 날. 사과를 하지 않고 나갔던 김 감독을 태준이 대표실로 불러냈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으면 김 감독이 대표로 있는 은봉 필름에서 제작한 영화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얘길 전했다.
‘세양 그룹’은 매년 영화에 거대한 투자를 하고 있었고 최근 은봉 필름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투자를 한 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김 감독이 가을에게 사과를 한 것이었다.
“혼자서 참고 견디는 스타일 같으니까 현장에 지켜볼 사람 더 보내.”
“예.”
피곤함에 목덜미를 누르던 태준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출출하지?”
“그렇게 출출하지는,”
“콩나물 해장국 먹으러 가자.”
“예?? 지금요??”
점심을 먹은 상태로 가을을 만나 콩나물 해장국을 반도 먹지 못하고 남긴 태준이었다.
“내가 황금비율을 알아.”
태준이 벗어 둔 슈트 재킷을 걸치자 고개를 갸웃한 명석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태준은 조금씩 가을에게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