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살벌할 정도로 잘생겼다는 얘기를 듣는 태준이 살벌함이 더해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잘못 알고 계신 게 아주 많습니다, 김은봉 감독님.”
갑자기 나타난 태준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를 내며 다가오자 사색이 된 김 감독이 당황스러움에 빠르게 눈을 굴렸다.
가을을 비롯해 스태프들 역시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은 듯 서서 태준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첫째. 정가을 씨 연출 문제.”
“…….”
“정가을 씨 실력은 그 자리에 계시던 PD분들이 인정한 사안입니다. 김 감독님이 추천한 신입 피디보다 실력이 월등하다는 뜻입니다.”
태준이 한 걸음 더 김 감독 앞으로 향했다.
“두 번째. 정가을 씨가 날 꼬신 게 아니라, 내가. 정가을 씨를.”
태준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가을을 돌아보며 강조하듯 강한 목소리를 냈다.
“무척. 좋아하는 겁니다.”
태준의 말에 김 감독을 비롯해 주변 스태프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김 감독의 만행을 이번에야말로 SNS에 올리겠다고 벼르던 지영은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놀라서 태준과 가을을 번갈아 가며 돌아볼 때 가을이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태준의 말에 멋대로 뛰는 마음과, 김 감독에 대한 분노가 섞인 숨소리였다.
“마지막 세 번째.”
가을을 보던 태준이 김 감독을 향해 바짝 다가섰다.
김 감독보다 한참이나 큰 태준이 서늘한 표정으로 김 감독을 내려다보았다.
“정가을 씨는 반반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
“예쁩니다.”
태준의 말에 모여 있던 스태프들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사람을 옭아매는 태준의 눈빛과, 형형한 김 감독의 눈빛이 부딪쳤다.
두 사람의 기세에 스튜디오 안에 숨이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평소 김은봉 감독님을 높이 샀는데 무척, 아쉽네요.”
여러 가지 뜻이 담긴 태준의 말에 김 감독이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김 감독이 강하게 추천하던 신입 피디는 학교 후배이자 지인의 아들이었다.
자신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쳐 놨는데 제작 피디들이 대표의 추천을 받은 가을에게 찬성표를 내자 욱하는 성격이 터져 스튜디오까지 와서 퍼부은 김 감독이었다.
명색이 천만 감독인데.
김 감독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공과 사는 구별하셔야죠. 사심이 있어도 그렇지, 어떻게 연출자로 정가을을 추천합니까.”
태준이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오늘 내정된 연출자들 모두 거기 계신 피디분들이 추천한 분들입니다. 김 감독님도 신입 피디를 추천하셨고요.”
“아무리 그래도 대표님 빽을 이용하는 건,”
“신입 피디도 김 감독님 빽을 이용하려던 거 아닙니까.”
“…….”
“그렇게 치면 정가을 씨는, 좀 더 높은 빽이 있는 것뿐입니다.”
맞는 소리라 김 감독이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태준이 얼어붙을 것 같은 눈빛으로 가을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사과하세요.”
스튜디오 안에 가을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반반한 얼굴을 이용한다는 말, 사과하세요, 감독님.”
감정이 더 격해지면 앞으로 촬영에 문제가 생길까 봐 조용히 감정을 눌러 내던 가을이었다.
일적인 부분에 대한 욕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런 모욕적인 말은 참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최대한 감정을 다스린 후 이성적인 상태에서 요구한 것이었다.
가을과 김 감독이 서로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모두가 숨죽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배달이요~!”
갑작스러운 배달 직원의 등장에 김 감독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그대로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김 감독이 사라지자 공기가 순환된 듯 스태프들이 저마다 ‘후우’ 숨을 뱉어 냈다.
태준이 방금과는 다른 부드러운 표정으로 스태프들을 둘러보았다.
“출출하실 것 같아서 음식 좀 시켰는데, 다들 드시고 하시죠.”
태준과 가을의 눈치를 살피던 스태프들이 어딘가 어색한 몸짓으로 배달된 음식을 챙겼다.
그때였다.
“싫다고 말씀드렸는데, 왜 여기까지 찾아오고 그러세요. 정말…… 사람 난처하게.”
가을이 그제야 생각난 듯 태준이 촬영장에 오면 하려던 말을 뱉은 후 화난 척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는 듯 미소지은 태준이 고급스럽게 포장된 샌드위치 하나와 음료를 들고 가을을 쫓아갔다.
태준과 가을이 이동하자 그제야 여자 스태프들이 서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이 대표야?”
“그런가 본데? 뭐야, 지금 저 대표가 조감독님 쫓아다니는 거야?? 그렇지, 괜히 커피차를 보낼 리가 없지.”
“웬일이야. 눈빛 봤어? 미쳤다 진짜.”
“정가을 씨는 반반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예쁩니다.”
누군가 태준의 말을 흉내 내자 ‘꺄아악’ 소리를 내며 스태프들이 서로의 몸을 치며 방방 뛰어 댔다.
“저 대표 여자를 싫어한다는 소문 있지 않았나?”
“소문이 다 소문이지 뭐.”
“근데 조감독님 멋있지 않아? 참아야 할 건 참고, 아닌 건 진짜 단호하더라.”
“그러니까 지난번 최고은한테 한 것도 분위기 장난 아니었잖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가을이 멋있음을 인정했다.
“그나저나 감독님, 대표한테 찍혀서 어떻게 해?”
“찍힐 만하지. 어떻게 조감독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일단 우리부터 걱정하자. 감독님한테 죽어나게 생겼다, 이제.”
화가 난 김 감독이 스트레스를 촬영장에 풀어 댈 게 뻔했다.
“죽었다…….”
스태프들 얼굴에 벌써부터 깊은 어둠이 서렸다.
스튜디오 안 구석진 장소에 멈춰 선 가을이 그제야 숨을 ‘후우’ 뱉어 냈다.
“잘했어요.”
태준의 말에 가을이 고개를 돌렸다.
“김 감독한테 사과하라고 한 거.”
“사과받아야 할 일이니까요.”
태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가을의 손을 가리켰다.
“김 감독, 한 대 치려고 했어요?”
가을이 그제야 자신이 아직까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을 펼쳐 보자 얼마나 꽉 쥐었는지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던 손바닥에 다시 혈색이 돌아왔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법이었다.
“주먹 쓸 일 생기면 날 불러요.”
가을이 바라보자 태준이 씩 웃어 보였다.
“내 주먹이 더 셀 테니까.”
그 말에 가을이 피식 웃어 보이자 태준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가을에게 건넸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샌드위치로 했어요.”
가을이 말없이 태준이 건네는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받았다.
김 감독이 한차례 퍼부을 거라는 건 예상 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태준을 꼬셨다느니, 얼굴이 반반하다느니 하는 말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 순간에 태준이 나서지 않았다면 정말로 김 감독의 얼굴을 한 대 쳤을지도 몰랐다.
태준이 슬며시 가을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내가 괜히 나섰어요?”
“아뇨.”
“김 감독뿐만이 아니라 혹시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신경 쓸 거 없어요. 내가 추천하기 전에 정가을 씨가 추천됐고 김 감독 때문에 밀려난 걸, 내가 바로잡은 것뿐입니다.”
애초에 4부작 페스티벌은 태준이 제안한 기획이었다.
가을의 마음을 돌리려는 의도로 만들어 낸 기획.
미니시리즈는 아직 단독 연출의 경험이 없는 가을을 내세우기에 위험부담이 컸다.
짧은 시리즈 형태의 공모전을 열 계획이었으니 그 전에 4부작을 편성하는 게 딱 적당한 기획이었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 연출을 빌미 삼아 가을에게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단막극과 달리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울 작정이었다.
가을과 함께 일한 세월이 있으니 의지가 될까 싶어 일부러 책임 PD도 김 감독으로 내세웠던 태준이었다.
‘시간을 지나서’를 끝내고 잠시 쉬고 싶다던 김 감독에게 태준은 엄청난 보수를 약속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던 중에 가을이 먼저 연락을 해 왔다.
상황을 알아보니 연출자를 선정하기도 전에 드라마국 정찬 CP가 가을을 추천한 걸 김 감독이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도와 달리 김 감독은 가을의 입봉을 방해했지만 태준에겐 오히려 좋은 결과였다.
그렇게 오늘 회의에서 태준이 정찬 CP가 낸 기획안의 연출자로 가을을 추천했다.
드라마 연출의 경우 신입들은 조연출로 실력을 쌓다가 대부분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연출자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기회를 잡으면 그 후에 실력을 보이는 건 오롯이 연출자의 몫이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안 합니다.”
“…….”
“정가을 씨 능력을 파악하고 내린 결정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신경 안 써요. 한동안 대표님 빽으로 기회 얻었다는 소문이 퍼지겠지만 제가 실력으로 증명해 보일 거예요.”
가을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였다.
이럴 땐 김 감독 밑에서 일한 게 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3년 동안 늘어난 건 실력뿐만이 아니라 누구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멘탈이었다.
“감독님하고도 제가 잘 풀어 볼 거고요.”
아직 찍어야 할 회차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고 앞으로 마주쳐야 할 일도 수없이 많았다.
잘못한 부분은 확실히 사과를 받고 앙금이 쌓이지 않도록 깨끗하게 풀어내야 했다.
가을이 미소 지으며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우울해하거나, 위축되는 모습 없이 오히려 파이팅이 넘치는 가을의 모습을 태준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네요.”
“뭐가요?”
“자신감 있는 모습.”
“자신감 없었으면 7년간 못 버텼죠.”
“고마워요.”
가을이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쳐다보자 태준이 살짝 고개를 돌려 가을을 빤히 바라보았다.
“버텨 줘서.”
“…….”
“그래서 내가, 정가을 씨를 만났으니까.”
“……크흠!”
눈 둘 곳을 몰라 몇 번 깜빡이던 가을이 괜히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 말이에요.”
“예.”
“되게 선수셨나 봐요.”
“그럴 리가요.”
“그럼 태생이 선수신가…….”
“정확히 어떤 부분이요?”
“……아까 예쁘다는 말도 막 아무렇지 않게 하시고…….”
“그거야 정말 예쁘니까.”
“그것 봐요.”
태준이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가을을 보며 미소지었다.
“난 뭐든 정가을 씨가 처음이에요.”
“콜록, 콜록.”
가을이 재빨리 손으로 입술을 훔치며 태준을 돌아보았다.
“그거 진짜 선수 멘트인 거 알죠?”
“선수 같은 남자랑, 만났었나 봐요?”
“많이 만나 봤죠.”
대본으로, 영화로.
태준의 눈매가 어딘가 가늘어졌다.
“선호라는 사람도, 선수였어요?”
“아뇨.”
가을의 얼굴에 연한 미소가 걸렸다.
“선호 오빠는 진짜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어요. ……햇살 같은 사람이랄까. 같이 있으면 따듯하고 포근한 그런 느낌. 알죠?”
“모릅니다.”
태준이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뱉었다.
“그런 여자 안 만나 보셨어요?”
“말했잖아요. 난, 정가을 씨가 처음이라고.”
“아, 네.”
태준이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힘든 가을이 영혼 없이 대답했다.
태준이 뭔가를 생각하며 빤히 가을의 얼굴을 응시했다.
[정가을 씨가 좋아하는 선호라는 사람과도 사귈 수 없습니다.]
[그럴 일은…… 없어요.]
좋아는 하는 사람인데, 사귈 일도 없고. 거기다 조금 전 가을의 말은 과거형이었다.
“……선호라는 사람. 혹시 전 남자 친구입니까?”
선호의 이야기를 거짓말로 둘러대고 싶지 않아 가을이 대답을 피하듯 남은 샌드위치를 입 안에 넣었다.
그런 가을의 모습에 이유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은 태준이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10분으로 잡은 일정이었지만 어느새 20여 분이 지나 있었다.
가을과 관련해선 예정된 시간을 자꾸 지켜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 가 볼게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가을이 꾸벅 인사하자 태준이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고 몸을 돌렸다.
어딘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태준의 뒷모습을 보던 가을이 세트장 쪽으로 향했다.
“조감독님!!”
지영이 가을을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언제부터예요? 왜 저한테 아무 얘기 안 하셨어요? 제가 그때 대표님 얘기했을 때도 알던 사이예요? 와우~! 그럼 나 배신감 드는데?”
“천천히 하나하나 다시 얘기할래?”
지영의 반짝이는 눈빛 공격에 가을이 응급실에서 만난 저승사자가 태준이었다는 얘기와 그 뒤로 몇 번 우연히 만났고,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했다.
“대표님이 고백했어요?? 어디서요?? 어떻게요??”
“……공원에서.”
“공워어어언~~~~~ 로맨틱해라.”
지영이 마치 꿈을 꾸는 소녀처럼 눈을 빛내며 손을 맞잡았다.
“그래서 사귀는 거예요? 아니면 썸 타는 중?”
“둘 다 아니고.”
“그럼요???”
“대표님이 혼자, 그러니까 난 아닌데 혼자서. 날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네.”
“왜요?”
내내 하이톤이던 지영의 목소리가 단번에 걸쭉해졌다.
그래, 이해가 안 가는 게 당연하지.
“왜 대표님이 혼자 조감독님을 좋아해요?? 대체 왜??”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누구나 반할 만한 태준을 거절하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만큼 빠르게 이해시킬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헐!!!!! 그럼 저 대표님, 짝사랑, 헐!!”
지영이 연신 입을 막았다 말했다 하며 분주하게 가을의 앞을 돌아다녔다.
이 바닥 최대 소문꾼인 지영이 알았으니 소문이 퍼지는 건 불 보듯 훤했다.
좀 성가시겠지만 남들 얘기는 귀 막고 사는 가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 *
“짐이 이게 다야?”
의찬이 가을의 원룸 안에 놓인 커다란 이사 박스 다섯 개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드라마가 종방하고 나서 이사를 하고 싶었지만 방을 빼야 하는 날짜가 마땅치 않아 드라마 촬영 중간에 시간을 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촬영이 비는 날이 생겨 그날을 이사하는 날짜로 맞출 수 있었다.
“뭘 하고 살면 짐이 이것밖에 되지 않을 수가 있냐.”
“한 달에 집에 오는 횟수가 한두 번이면?”
“이야, 정가을. 눈물 나게 사는 건 알았지만, 이 오빠는 마음이 아프다.”
주로 의찬의 가게에서 만나거나, 의찬의 집에서 보거나 했던 탓에 가을의 집엔 몇 번 오지 못한 의찬이었다.
중산층 이상이 되는 집에서 태어난 의찬은 처음 가을의 집에 왔을 때, 자신의 방보다 작은 집에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었다.
가을이 독립해서 처음 얻은 집은 이 방보다 더 작은 고시원이었다.
“진짜 짐이 이게 다야?”
“반은 버려서 그래.”
“네가 퍽이나 버렸겠다.”
오천 원짜리도 몇 번은 고민하다 사는 게 가을이었다.
“가영이는 언제 와?”
“걘 이사할 집에 가 있어.”
“왜?”
“거기 청소부터 해 준다고.”
“걔가? 청소를? 아, 거긴 아직 뭔가 박살 낼 게 없지.”
의찬이 그제야 안심이라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옮길 테니까 넌 뭐 빠진 거 없는지 확인해 봐.”
의찬이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원룸을 나가자 가을이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이 집에 온 지 5년.
작지만 많은 추억이 묻은 집이었다.
새로운 집과의 시작을 앞둔 가을이 정들었던 집을 둘러보며 인사를 건넸다.
“잘 있어라.”
가을이 애틋하게 집 안을 둘러볼 때.
‘와장창.’
뭔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