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90)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의영이가 새벽까지 술 마시다가 폭행 시비 붙어서 지금 경찰서에 있대요.

“네???”

디링- 디링- 디링.

FD의 말과 동시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듯 가을의 휴대폰에서 메시지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의영은 ‘시간을 지나서’에 출연하고 있는 서브 남자 주인공이었다.

“김 감독님은요?”

-지금 스튜디오로 오신대요. 조감독님도 얼른 오세요.

“알았어요.”

가을이 휴대폰을 끊었다.

디링- 디링- 디링- 디링-

단톡방에 연락을 받은 스태프들의 메시지로 난리가 나고 있었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던 가을의 눈에 뜨끈뜨끈한 치킨이 들어왔다.

가을이 가장 좋아하는 순금 올리브 치킨이었다.

“정신 차려. 이성을 잃지 마…….”

입에 넣으면 바사삭하는 소리가 날 것 같은 비주얼에 침을 삼키던 가을이 뭔가에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어서 한 입 먹으라는 듯 노란 튀김옷을 입은 치킨들이 요염한 자태를 뽐냈다.

Rrrrr-

“아으으으으……. 미안하다.”

주먹을 꽉 쥐며 치킨에게 사과한 가을이 열심히 울리는 휴대폰을 확인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미친놈! 술을 마셨으면 곱게 집으로 가지, 지가 무슨 파이터야 뭐야!”

스튜디오 회의실에 김 감독을 비롯한 관련 PD들, 스태프들이 자리했다.

어젯밤 생일을 맞아 지인들과 새벽까지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놀던 의영이 손님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리고 결국 주먹이 오가는 패싸움을 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바로 연행되었다.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팬들 역시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거기다 남자 주인공보다 인기가 많아 얼마 되지 않았던 분량이 대폭 늘어난 상태였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여자 주인공 고은이 서브남 의영과 이어지게 해 달라고, 꼭 남자 주인공이랑 이어져야 한다는 편견을 깨라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화제의 동영상 역시 고은과 의영이 나온 장면이 조회 수가 훨씬 높았다.

인기를 증명하듯 벌써부터 각종 광고 섭외가 밀려들고 있었다.

이대로 드라마가 끝난다면 가장 수혜를 보는 건 의영이 분명했다.

꽃길이 예약된 상태에서 행운을 자기 발로 걷어찬 것으로도 모자라 드라마 팀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상황이었다.

“그냥 사라지는 걸로 하면 어때. 유학을 간다든지, 이사를 간다든지.”

“개연성은요.”

“그게 문제야?”

제작 PD와 스태프들의 대화에 가을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게…….”

험악한 분위기 속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가을에게 몰렸다.

“작가님이 스토리 바꾸는 건 절대 안 된대요.”

이미 가을은 작가와 통화를 한 상태였다.

이야기를 갑자기 바꾸는 건 절대 안 된다며, 그렇게 할 거면 드라마를 아예 쓰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허! 웃기고 있어 아주. 자기가 하지 말라면 우린 다 안 해야 해? 갑질하는 거야 뭐야!”

갑질의 표본인 김 감독의 욕을 한참이나 들은 후에야 이미 찍어 놓은 분량은 그대로 방송하는 것으로, 후반부는 도플갱어라고 불리는 배우를 섭외하기로 결정이 났다.

다행히 드라마는 막바지 촬영을 앞두고 있었지만 문제는 사고를 친 의영으로 인해 앞으로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재방송 및 스트리밍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었다.

* * *

타닥- 타닥-

오전 업무를 마치고 ‘시간을 지나서’ 출연 배우의 폭행 사건에 관한 보고를 전해 들은 태준이 거칠게 미간을 구기며 버릇처럼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생각보다 시청률이 부진해 아쉬운 드라마였지만 배우가 가진 영향력으로 해외 판권은 물론이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2차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렇게 주요 출연진 한 명이 사고를 치면 방송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게 뻔했다.

실제로 문제를 일으킨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태준이 인터폰을 눌렀다.

-예, 대표님.

“김 변호사님이랑, 드라마국 김성식 본부장님, ‘시간을 지나서’ 제작팀 총괄 PD한테 연락해서 이쪽으로 오시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2차 수익이 달린 스트리밍 서비스의 방향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주력할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 후에 드라마 촬영을 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할 배우가 물의를 일으켜 손해를 끼쳤으니 그에 대한 피해보상을 김 변호사와 논의할 생각이었다.

삐-

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대표님, 강찬영 대표님 오셨습니다.

태준이 거칠게 인상을 구기다가 인터폰을 눌렀다.

“들어오라고 해.”

태준이 꽉 조인 넥타이를 살짝 푸는 사이 찬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찬영은 태준과 이복형제였다.

몇 달 먼저 태어난 태준이 장손이 되고, 찬영은 차손이 되었다.

뭐든지 태준보다 뒤떨어지던 찬영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늘 태준을 미워하느라 바빴다.

태준의 노력은 무시한 채 동갑이라 비교가 되는 것뿐이라며 그저 시기와 질투만 했다.

“어쩐 일이야.”

“배우 한 명이 사고 쳤다며.”

찬영을 올려다보던 태준이 이내 피식- 웃음소리를 냈다.

“그 얘기 하려고 서둘러 왔나 봐?”

태준의 시선을 느낀 찬영이 자신의 와이셔츠를 내려다보았다.

와이셔츠 깃에 핑크빛 립스틱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비싼 옷인 것 같은데, 안 지워지면 어쩌려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노골적으로 비웃는 태준의 모습에 찬영의 얼굴이 귀까지 빨개졌다.

비서와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시간을 지나서’라는 드라마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곤 곧바로 태준에게 온 찬영이었다.

“생각보다 여유 있네? 드라마 쪽은 매번 죽을 쒀서 그런가?”

찬영의 비아냥에 태준이 등받이에 느긋이 몸을 기댔다.

“그러는 강찬영 대표님은, 한가한가 봐?”

“뭐?”

“상반기 실적, 형편없던데.”

태준의 말에 찬영이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괜히 들었다 놨다 하며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금방 좋아져.”

“금방, 언제.”

“잘 모르나 본데, 우리 홈쇼핑은 매년 상반기보다 겨울에 매출이 더…….”

태준이 책상을 ‘탁탁’ 치자 찬영이 말을 멈췄다.

“상반기보다 겨우 5% 매출이 높은 것으로 만족하면, 너무 소박하지 않나?”

“강태준. 홈쇼핑 운영은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알아서 잘해. 내 도움받기 전에.”

약 올리러 왔다가 열만 받은 찬영이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재수 없는 새끼.”

잇새를 비집고 나오는 찬영의 욕에 태준이 피식 웃었다.

어릴 적 지겹도록 듣던 소리였다.

“욕하고 헐뜯을 시간에 노력을 하라고,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 않았나?”

“잘난 척하지 마. 충분히 만회할 수 있으니까.”

“능력도 없고.”

“야!”

“위아래도 없고.”

작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노려보던 찬영이 언성을 높였다.

“야 강태준!!”

태준이 웃음기가 싹 빠진 얼굴로 찬영을 바라보았다.

“왜.”

서늘한 태준의 모습에 찬영이 움찔 몸을 떨었다.

웃으면 마냥 소년 같은 태준이었지만 웃음기가 빠진 태준은 금방이라도 목을 물어뜯을 듯 사나운 맹수 같은 느낌으로 바뀌었다.

찬영이 반듯하게 넘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 올렸다.

“할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있다고 우쭐거리지 마. 끝은 가 봐야 아는 거니까.”

찬영은 인성은 물론이고 능력적인 부분까지 태준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현재는 모든 신임을 태준이 받고 있었지만, 찬영이 차손이라는 점 때문에 태준은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거기다 여자에 대한 이상 증상이 존재하는 지금, 후계 자리에 있어 찬영은 전보다 위협적인 인물이 되었다.

태준이 일부러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기대되네. 어떤 능력을 보일지.”

“내가 늘 너보다 못할 거라고 착각하지 마.”

“알았으니까, 힘내.”

자신의 얘기에도 한결같이 여유로운 태준을 보며 찬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태준이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이좋게 헛소리를 지껄일 시간에.”

“…….”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어때.”

마주 보던 태준과 찬영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나가 봐.”

시선을 거두고 느긋하게 서랍을 연 태준이 말을 이었다.

“비타민 먹을 시간이라.”

죽일 듯이 태준을 쏘아보던 찬영이 몸을 돌려 대표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태준이 그대로 서랍을 닫았다.

어릴 적부터 시기와 질투로 뭉쳐 있던 찬영은 여러 방면으로 머리를 굴리며 태준을 괴롭혔다.

찬영이 무슨 짓을 하든 태준의 능력으로 해결 못 할 일은 없었지만 ‘세양 그룹’의 후계를 위해 태준은 더욱더 찬영을 경계해야 했다.

책상에 팔을 올려 손을 맞잡은 태준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 * *

고깃집 안에서 스태프들의 회식이 한창이었다.

후반부에 가서 사건 사고가 끝이질 않자 남자 주연 배우가 스태프들을 위해 마련한 회식 자리었다.

김 감독을 비롯한, 각 분야를 담당하는 감독들과 배우들이 한자리에 앉고 스태프들은 몇 명씩 따로 앉았다.

“조감독 많이 먹어.”

감독들이 앉은 자리를 놔두고 촬영 감독인 도식이 굳이 스태프들 자리에 앉아 가을을 챙겼다.

‘시간을 지나서’는 가을과 도식이 두 번째로 만나 하는 촬영이었다.

제주도에 사는 막냇동생과 가을이 닮았다며 촬영 내내 도식은 자신의 동생처럼 가을을 아꼈다.

얼마 전 가을이 과로에 일사병으로 쓰러졌을 땐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잔뜩 사서 가을에게 건네주었다.

“근데 조감독.”

깻잎에 삼겹살, 각종 재료를 넣고 입에 넣던 가을이 맞은편에 앉은 도식을 쳐다보았다.

“그 현란한 체크 셔츠, 오늘은 왜 안 입었어?”

색만 다를 뿐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셔츠였다.

“빨았어요.”

“그냥 버리는 게 현명하지 않았을까?”

“그거 버리려면 멀었어요.”

“내가 예쁜 거 하나 사 줄게.”

“그 얘긴 드라마 첫 회식 때부터 하신 거 같은데요.”

“그랬나?”

“그랬죠.”

“너도 내 나이 돼 봐. 내가 방금 이 상추 안에 뭘 넣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

도식이 상추에 싼 고기를 입에 넣었다.

“감독님! 지난번에 저 운동화 사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어? 나는 바지 사 준다고 하셨는데?”

여기저기서 스태프들의 말이 이어졌다.

술에 취하면 공수표를 날리는 게 도식의 버릇이었다.

“니들 자꾸 그런 거 기억하면, 다음엔 기억 안 날 때까지 마시게 할 거야.”

“적당히 마시세요. 좋은 것도 아닌데.”

“이게 왜 좋은 게 아니야? 세상에 이놈만큼 좋은 게 어딨다고.”

도식이 소주 한 잔을 가볍게 비워 냈다.

“넌 지금도 애인 없지?”

“네. 없습니다.”

“만들 생각은 있고?”

“아뇨.”

“잘 생각했어.”

“왜요? 이 일 이해해 주는 사람 만나서 얼른 시집가라면서요?”

밤낮도, 휴일도, 출퇴근도 없는 일. 스태프의 경우 그렇게 일하고 손에 쥔 돈은 백만 원도 채 안 되었다.

현장에서 배운다는 사실 하나로 촬영 현장은 아직 열정페이가 당연시되는 곳이었다.

“결혼은 늦게, 아주 늦~게 해.”

“사모님이랑 또 싸우셨어요?”

“이젠 내가 마시는 공기도 아깝대. 나는 뭐, 자기한테 마냥 후한 줄 아나? 나도 공기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이야.”

도식이 빈 잔에 술을 따르자 가을이 기운 내라는 듯 조용히 소주잔을 들어 도식의 잔과 부딪쳤다.

“정가을!”

“네!!”

김 감독 목소리에 가을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 감독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시키실 거 있으세요?”

“내가 너한테 뭘 시키기만 하는 사람인가.”

술 한잔이 들어가야 기분이 좋아지는 김 감독이 평소 보기 힘든 환한 얼굴로 가을을 올려다보았다.

“앉아.”

김 감독이 비어 있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자 가을이 어정쩡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 촬영 현장에서 이미 한바탕 가을을 잡았던 김 감독이 소주잔에 술을 채웠다.

“알지? 내가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

“알죠.”

가을이 김 감독이 들고 있는 소주잔에 조심스럽게 잔을 부딪치고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가을 씨가 현장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내 말이요.”

“내가 일하면서 가을 씨처럼 빠릿빠릿한 사람 처음 봤잖아.”

여기저기서 가을을 칭찬하는 얘기가 이어졌다.

“아유- 부끄럽게 왜들 그러세요. 제가 잘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요.”

가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앞에 놓인 빈 컵에 사이다를 따라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래서 말이야.”

김 감독의 목소리에 가을이 사이다를 마시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우리 정가을이랑 앞으로 쭈욱 같이 작업하려고.”

순간 가을이 입에 가득 머금었던 사이다를 김 감독의 얼굴에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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