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기온 36도. 체감 온도 40도.
햇빛에 달궈진 아스팔트는 그 위로 걷기만 해도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웠다.
170cm의 큰 키에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시대를 역행하는 촌스러운 체크 남방을 입은 가을이 정신없이 뛰어 도담 경찰서로 향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드라마 촬영 때문에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다 뛰어나온 가을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선 가을이 한두 번 온 게 아닌 듯 단번에 강력팀이 있는 형사과로 향했다.
빠른 걸음을 하며 숨을 몰아쉬던 가을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박 형사를 보고 단숨에 다가갔다.
“박 형사님!”
산발한 머리에 충혈된 눈, 공포영화에서 볼 법한 짙은 다크서클, 햇빛에 익어 발개진 얼굴.
가을의 상태에 흠칫 놀랐던 박 형사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돌렸다.
“저녁에 들른다니까 뭐 하러 힘들게 여기까지 와.”
뛰던 걸음을 멈추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땀이 가을의 온몸에서 흘러내렸다.
“어유, 땀 좀 봐. 이쪽으로 와.”
박 형사가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가을을 데리고 강력 3팀 안에 있는 커다란 에어컨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 앞에서 땀 좀 식히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박 형사가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뽑아온 차가운 캔커피 두 개 중 하나를 가을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캔커피를 따서 마시는 가을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던 박 형사가 제 몫의 캔커피를 땄다.
“후우.”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숨을 고른 가을이 박 형사를 돌아보았다.
“사진은요?”
“숨부터 좀 돌려.”
오늘 아침, 관할구역도 아닌 낚시터에서 남자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에 늘 그랬듯이 박 형사가 달려가 시신을 확인했다.
사체를 살펴보던 박 형사가 가을이 얘기하던 반지를 발견해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에게 연락을 줬던 경찰 후배가 증거품 보관함에서 반지를 찍어 사진을 보내 주었다.
관할구역 사건이 아니라 가뜩이나 눈치가 보이는 상황에 증거품 사진을 일반인인 가을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자칫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오후에 직접 사진을 보여 주러 가겠다고 하자 가을이 단걸음에 달려온 참이었다.
가을이 빨갛게 익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냈다.
“숨 다 돌렸어요.”
그 모습을 보던 박 형사가 낮게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꺼내 반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맞아?”
가을의 심장이 요동쳤다.
“모양은…… 맞아요.”
심플한 은색 링에 경찰 마크가 새겨진, 선호가 끼고 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반지였다.
슬쩍 가을의 표정을 살핀 박 형사가 말을 이었다.
“이런 경찰 반지가 한두 개도 아니고……. 부패가 제법 진행돼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일단 DNA 결과 기다려 보자고.”
부패라는 말에 가을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직 선호가 확실한 것도 아닌데 생각만 해도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가을이 일곱 살 때, 매일 싸우기만 하던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했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가을은 아빠와 함께.
그렇게 가족이 분리되었다.
얼마 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가을은 근처 친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선호는 거기서 만난 세 살 많은 동네 오빠였다.
‘안녕? 난 박선호야. 넌 이름이 뭐야?’
‘나, 나는 정가을이야.’
선호가 해맑게 웃으며 내민 손을, 가을이 수줍게 잡았다.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눈치가 빨랐던 가을은 아빠 앞에서 한 번도 엄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와 동생이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엄마 얘기를 하면 화를 내는 아빠를 알기에 어린 가을이 참아 낸 것뿐이었다.
아빠는 늘 바빴고, 할머니는 가을을 돌보지 않았다.
혼자가 된 가을은 자연스럽게 선호와 어울렸다.
선호 역시 가을과 마찬가지로 이혼 가정의 아이였다.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선호는 자상하고 따듯한 오빠였다. 고작 세 살 위면서 가을을 살뜰하게 아끼고 보살폈다.
‘난 오빠가 세상에서 젤~루 좋아.’
‘나도 가을이가 제일 좋아.’
‘그럼 이담에 커서 나랑 결혼해.’
‘그건 안 돼.’
‘왜에?’
‘결혼하면 언젠가 헤어지니까.’
‘맞아, 그렇지이…….’
‘대신 오빠가 평생, 가을이 옆에 있어 줄게.’
이혼 가정의 아이였던 두 사람은 헤어지는 일 없이 누구보다 더 아끼는 사이가 되자고 굳게 약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호는 더 늠름하고 멋지게 성장했다.
의협심이 강해 용감한 시민상도 몇 차례나 받았다.
가을이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선호는 경찰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런 선호가 가을은 자랑스러웠다.
‘역시 우리 오빠, 멋지다.’
‘요 꼬맹이는 언제쯤 멋져질까?’
‘나도 공부하고 있거든?’
‘하는데도 그런 거면 처참한데?’
‘이씨!’
‘난 박 씨야.’
‘뭐야, 개그야? 박선호 안 되겠네?’
가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덤벼들 때마다 선호는 가을의 머리를 ‘콩’ 때리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이 햇살 같아 가을은 일부러 선호를 놀리곤 했다.
그해 재혼을 한 부친은 가을을 친할머니에게 완전히 떠맡기고 일본으로 떠났다.
모친은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가을의 양육을 거부했다.
일곱 살 때부터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가을은 결국 열일곱 살에 부모에게 외면당했다.
그런 가을에게 선호는 약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가을을 지켜 주겠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가을은 혼자가 아니었다. 선호가 곁에 있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선호가 실종되었다.
용감한 시민상을 몇 차례나 받고, 경찰대도 수석으로 입학한 촉망받던 예비 경찰이 실종되자 선호의 사건은 세간을 뜨겁게 달궜다.
쏟아지는 관심 속에 진행된 수사는 결국 미제 사건으로 끝이 났다.
그때 당시 수사를 맡았던 사람이 박 형사였다.
수사가 종결된 후에도 가을은 경찰서에 들러 선호를 봤다는 제보는 없는지, 다른 소식은 없는지 매일같이 확인했다.
박 형사가 무시하고, 구박하고, 화도 냈지만 가을은 한결같이 경찰서로 찾아갔다.
슬픈 기색 없이 늘 밝은 미소로 찾아오는 가을에게 박 형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 뒤로 선호와 관련된 제보는 물론이고 인맥을 총동원하여 어디서든 그와 체격이 비슷한 신원 불명의 사체가 발견되면 연락을 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10년째였다.
“이번에 박선호가 맞으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선호 오빠가 살았는지……죽었는지……생사라고 알고 싶은데요…….”
가을이 손에 들고 있던 박 형사의 휴대폰을 그러쥐었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을 거라고……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연락 못 하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가을이 눈가가 빨개진 채로 박 형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을아, 오빠가 늘 웃게 해 줄게.’
선호가 해 주던 말이었다.
선호가 사라진 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가을은 더 밝고, 더 즐겁게 웃었다.
선호가 걱정하지 않도록. 혼자서도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렇게 가을은 어디서든 밝은 모습을 보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후에 가겠다고 했는데도 온몸에 뜨끈한 열기가 퍼질 정도로 뛰어와 놓고는 자신을 보며 웃는 가을의 모습에 박 형사의 마음이 아려 왔다.
“슬프면, 좀 울기도 하고 인마.”
자신이 울면 선호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가을은 언제나 울음을 삼켰다.
“울어서 뭐 해요. 그런다고 선호 오빠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박 형사가 캔커피를 마시는 가을을 보았다.
실종된 지 10년.
현실적으로 선호가 살아 있을 확률은 없었다.
“나도 이런 말 하긴 싫은데, 이제 그만 잊고 살아.”
박 형사의 말에 잠시 바닥을 보던 가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선호 오빠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
“내가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니까.”
선호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박 형사는 누구보다 가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이 실종됐는데도 아버지와는 연락도 되지 않고 어머니라는 사람은 그 와중에 여행을 갔다.
아들이 걱정되지도 않냐는 말에 이미 잡은 계획을 취소하란 소리냐며 되레 화를 내던 모습이 생각나 박 형사의 미간이 구겨졌다.
실종된 선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가을뿐이었다.
그런 상황을 알기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을을 돕고 있는 박 형사였다.
“매번 감사해요. 박 형사님.”
“감사는 무슨. 하는 것도 없는데.”
“박 형사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버티고 사는 거 아시죠?”
가을이 손가락 하트를 해 보이며 배시시 웃었다.
“웃지 마, 인마.”
여전히 미소 짓던 가을이 남은 캔커피를 쭉 들이켜고 빈 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럼 국과수에서 DNA 결과 나오면 연락 주세요.”
“어차피 기다려야 할 거, 오후에 사진 보여 주러 간다니까 뭐 하러 이 고생을 해.”
“오늘이 선호 오빠가 실종된 날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어젯밤 꿈도 좀 이상했고…… 오후까지 기다렸으면 심장이 터졌을지도 몰라요. 하핫. 가 볼게요.”
밝게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한 가을이 몸을 돌렸다.
늘 씩씩한 척하는 가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박 형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가을이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햇살에 닿는 맨살이 따가운 날씨였다.
거리 위의 아지랑이만큼이나 가을의 마음이 어지러웠다.
박 형사 말대로 선호가 끼던 경찰 반지는 흔한 반지였다.
하지만 그 반지를 낀 사람이 사체로 발견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발견된 사람이 정말 선호라면.
가을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천천히 걷던 가을이 길가에 있는 난간에 걸터앉았다.
강렬한 햇살이 그대로 가을의 몸 위에 쏟아져 내렸다.
선호가 사라진 이후, 가을은 삶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제까지 웃어 주던 사람이 한순간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건 열일곱 살 소녀였던 가을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가을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선호가 언제 돌아올지 몰랐으니까.
선호가 사라진 후, 가을은 또래의 남자들만 보면 달려가 확인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선호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를 보면 버스에서 내려 쫓아간 적도 수없이 많았다.
박 형사에게 연락을 받고 초조하게 DNA 감식 결과를 기다린 적도 셀 수 없었다.
살아서 돌아올지, 죽어서 돌아올지 모르지만, 가을은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는 동안, 그리움은 원망으로, 그러다 슬픔으로, 괴로움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세월은 흐르고 추억은 희미해져 갔지만, 가을은 선호를 기다렸다.
앞에 보이는 신호등이 수십 번 바뀔 때까지 가을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만지면 데일 듯이 가을의 몸이 점점 달궈졌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파란불로 바뀌었다는 알림 소리에 가을이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천천히 횡단보도에 발을 디뎠다.
“박선호…….”
가을의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제 그만 좀…… 나타나라.”
그 순간 휘청이던 가을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점점 흐릿해지는 의식 사이로 누군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던 가을이 이내 의식을 잃었다.
한국병원 응급실 안에 오늘 하루 일사병으로 쓰러져 온 사람이 8명이나 되었다.
덕분에 가뜩이나 바쁜 응급실이 더욱 정신없이 돌아갔다.
응급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자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에 모였다.
짙은 다크그레이 색의 스리피스 슈트를 입고 반듯하게 머리를 넘긴 태준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누군가를 향해 성큼 걸어갔다.
187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에 곧고 긴 다리.
유독 흰 피부에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 그 아래로 머리카락만큼이나 짙은 눈썹이 수려한 태준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눈동자 역시 크고 까매 흰 피부와 대비되었다.
깨끗한 소년미와 강한 남성미가 공존하는 묘한 느낌의 얼굴.
한쪽 눈에만 진 속쌍꺼풀 때문에 묘한 느낌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압도적인 태준의 외모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던 사람들이 곧 다시 서둘러 각자의 일을 재개했다.
“예, 그럼 조속히 와 주십시오.”
태준이 통화를 하고 있는 명석의 뒤로 다가섰다.
큰 키에 다부지고 날카로운 눈매. 그 위로 쓴 금테 안경이 깔끔한 슈트와 멋스럽게 어울렸다.
가을의 휴대폰으로 통화를 끝낸 명석이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어, 벌써 검사 끝나셨어요?”
놀란 얼굴로 태준을 보던 명석이 가을의 휴대폰을 침대 옆에 올려 두었다.
“보호자야?”
“예. 지금 이쪽으로 오신답니다.”
명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태준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로 오셨어요?”
조금 전, 신호 대기를 하다 차 앞에서 쓰러진 가을을 보고 응급실에 데리고 온 두 사람이었다.
태준이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가을을 슬쩍 바라보았다.
“의사가 뭐래.”
평소엔 여자 근처에도 가지 않는 태준이 일부러 여기까지 오자 명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거 궁금해서 오신 건,”
“아니고. 주차장 가던 길.”
“주차장은 반대쪽입니다.”
“……그래서, 상태는.”
“자세한 건 보호자가 오면 CT를 찍어 본다는데, 지금으로 봐선 일사병이나, 과로로 쓰러진 것 같답니다.”
그 말에 태준이 슬며시 가을을 훑어보았다.
의사 말이 아니더라도 가을의 상태는 피로함 그 자체였다.
명석이 태준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걱정되세요?”
“누가, 내가? 왜.”
태준이 괜히 목소리를 높이며 명석을 돌아보았다.
“대표님 얼굴이, 제가 아팠을 때 봤던 표정이에요.”
“임명석.”
“예.”
태준이 과하게 빛나는 명석의 금테 안경을 가리켰다.
“가서 안경 맞춰.”
명석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안경을 스윽 올렸다.
“보너스 주시든가요.”
위이잉-
“예, 임명석입니다.”
전화를 받으며 걸어가는 명석의 뒷모습을 보던 태준이 다시 시선을 가을에게 돌렸다.
오늘따라 일정이 자꾸 꼬여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거기다 자꾸만 신호가 걸려 짜증이 나던 중, 빨간불에 걸려 정지한 태준의 차 앞에서 가을이 쓰러졌다.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걸 싫어하는 태준이었지만 딱 자신의 차 앞에 쓰러진 가을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길을 막은 게 물건이라면 치우고 가면 될 일이었지만 사람이었다.
119를 기다리기엔 불판처럼 뜨거운 바닥이 걱정돼 차 안으로 옮겼고, 어차피 병원으로 가던 길이었으니 그대로 응급실로 향했다.
명석이 응급실에서 가을을 살피는 사이 태준은 예약해 둔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끝냈으니 그대로 차로 가서 명석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태준은 주차장이 아닌 응급실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확인하는 것 따위는 하지 않았을 태준이었다.
[……선호 오빠…….]
응급실 앞에서 스트레쳐카로 이동하던 가을이 뱉은 말이었다.
어쩐지 그 목소리가 너무 슬프게 들려 남의 일엔 일체의 관심도 없는 태준을 이 자리에 서 있게 만들었다.
“으응…….”
의식이 돌아온 듯 가을이 얕게 몸을 떨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가을을 향해 한 발 내딛으려던 태준이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정신이 들어요?”
느리게 깜빡거리던 가을이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해 보던 가을이 자신의 손에 꽂혀 있는 링거 바늘을 발견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가을이 점차 또렷해지는 태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