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52)

제21장. 격전, 그리고 기적.

‘이 연기도……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쓰러진 사람도 꽤 많았다. 차 때문이 아닌 연기를 많이 들이마신 탓인 것 같았다.

부욱!

클레리아는 옷소매를 쭉 찢어 단단히 코와 입을 동여맨 다음에 다시 연기 사이를 헤쳤다.

이동하며 몇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으므로, 그사이에 섞여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길을 멈출 순 없었다.

흐린 시야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쓰러진 사람이라도 스치면 기겁하면서도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가까스로 클레리아는 연금술 강의실이 있는 3층에 도착했다. 그 층 역시 연기가 들어차 있었다. 연기는 점점 더 심해져 바로 앞에 뻗은 손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쯤 되니 보이지 않는 것에 공포가 서서히 밀려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앞으로 그렇게 향하던 그때.

뭔가 이상한 기척에 클레리아가 돌아보려던 찰나였다.

콰창!

뒤에서 덮친 강한 힘이 클레리아에게 있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튕겨 나갔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물러서자 점차 주변 연기가 움직이며 상대의 인영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대는 얼굴과 몸을 온통 검은 옷으로 가린, 무장한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시퍼런 검날이 번뜩였다.

‘누구? 왜 이런 곳에?’

주춤거리며 물러설 때 괴한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크읍!”

콰지직!

이번에도 무언가가 그를 튕겨내려 했지만, 괴한은 그것을 뚫고 클레리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벽으로 밀린 채 목이 졸린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며 버둥거렸다. 그러자 괴한은 점차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치켜세웠다.

‘이 틈을 타 기다렸던 것처럼 날 공격하다니……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나 때문에?’

그사이 괴한의 검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크윽!”

그러나 갑자기 검이 멈추며 괴한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클레리아의 목을 놓고 거리를 벌렸다. 그녀가 품에 지니고 있던 단검으로 먼저 찔러 넣은 것이다.

“하아…… 하아…….”

거친 숨과 함께 단검을 쥔 클레리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그가 주춤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뛰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쿠당탕!

정신없이 도망치던 클레리아는 결국 쓰러져 있던 사람을 밟고 넘어져 버렸다.

“이 계집이……!”

그사이 뒤따라온 괴한이 이를 갈며 검을 쳐들었다.

새파랗게 질린 클레리아가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푸욱!

섬뜩한 소리가 들리고, 이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들었던 팔을 내리자 괴한이 옆으로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공녀님! 괜찮으십니까?”

앨런이었다.

“앨런! 어떻게 여기에!”

“사람들을 피신시키던 중이었습니다.”

벌벌 떠는 그녀를 앨런이 일으켜 주었다.

드르륵

그때 옆에 있던 강의실 문이 열리며 겁에 질린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사람들을 우선 안내해 주세요.”

“공녀님도 가셔야죠!”

“저는…….”

클레리아는 에단이 주었던 단검을 있는 힘껏 쥐었다.

“가야 할 곳이 있어요.”

“혹시 황녀님을 찾으십니까? 연금술 강의실은 저 끝에 있습니다.”

“고마워요.”

앨런은 더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간단히 살핀 후, 사람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그가 한심하고 엉뚱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말 한없이 고마웠다. 그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났을 테니까.

클레리아는 두려움과 놀람으로 떨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복도 끝을 향해 서서히 달렸다.

“전하! 에단!”

강의실에 도착했지만, 이미 문은 열려 있었다.

연기가 가득 차 있어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고 살펴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없었다.

‘이미 숙소로 피신한 건가? 그렇다면 다행인데…….’

불안함을 안고 그녀가 돌아서려 할 때였다.

드르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의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클레리아?”

단번에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린 클레리아가 허겁지겁 달려갔다.

“황녀님?”

“클레리아!”

두 사람은 서둘러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차를 드셨나요? 그래서 못 피하신 거예요?”

클레리아가 재차 묻자 세실리아는 한쪽에 숨을 헐떡이며 앉아 있는 에단의 쪽을 바라봤다.

“난 다행히 마시지 않았다만 그전에 칼리스터 경이…….”

그를 발견한 클레리아는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하필 오늘 내가 차를 권하는 바람에…….”

세실리아가 망연한 얼굴로 자책했다.

“에단, 에단.”

다가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붙들자 식은땀으로 덮인 그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클레리아…… 왜 여기까지. 숙소로 갔어야지.”

말을 하는 그의 입술 사이로 피가 비쳤다.

눈물이 왈칵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고 그녀가 짓궂게 웃었다.

“네가 황녀님 제대로 호위 못 하고 있을까 봐 왔지. 거봐, 내 예상이 딱 맞았잖아.”

그는 흐린 눈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차라리 잘됐어. 여기서 사태가 좀 진정되길 기다리자.”

“아니, 숙소로 가야 해. 여기서는 너도, 전하도 제대로 지킬 수 없어.”

마나를 다시 운용한 그가 살짝 정신이 돌아온 듯 단호히 말했다.

“아냐, 밖은 지금……!”

쓰러진 사람이 다수고, 괴한까지 돌아다닌다고 말하는 건 도움이 되질 않았다.

“두 분 다 제 뒤에 잘 붙어 따라오십시오.”

결국, 말리지 못한 채 에단이 앞장서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쿠콰앙!

엄청난 폭발음과 압력에 클레리아와 세실리아가 떠밀려 바닥을 굴렀다.

“에단!”

극심한 통증에도 클레리아가 몸을 일으켜 그를 찾았다.

에단은 문에서 죽 밀려난 채였다. 반사적으로 폭발을 밀어낸 것 같았다. 그래도 완전히 막아 내진 못해 갑옷에서 열기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뚜벅뚜벅

열린 문으로 클레리아를 덮쳤던 이와 같은 차림새를 한 사람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클레리아는 두려움에 주춤거리며 황녀를 보호하려 뒤로 감췄다.

“웬 놈이냐?”

에단의 물음에도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내부를 한 번 살피는 듯싶더니 그의 선택은 망설임이 없었다. 황녀와 클레리아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 달려들었다.

챙강!

에단 역시 속도를 높여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클레리아가 서둘러 황녀를 데리고 자리를 옮겼으나 그때마다 괴한은 에단을 뿌리치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꺄아악!”

콰가각!

뻗어 들어오는 검날이 벽을 긁고, 막아서서 빗나간 검날은 에단의 갑옷을 긁었다.

격한 싸움 속에서 클레리아와 세실리아는 몸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보호하려는 에단 역시 고군분투했다.

‘몸만 성했어도 두 분을 숙소까지 모시는 건 쉬웠을 텐데.’

쿠억!

결국, 에단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가 주춤한 사이 괴한은 바로 황녀에게 달려들었고, 정말 간발에 차이로 클레리아가 그녀를 잡아당겨 검을 피했다.

“아악!”

황녀를 놓친 그가 가까이 있던 클레리아의 머리칼을 거칠게 잡아챘다.

“손대지 마!”

그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에단이 괴한의 어깨에 검을 박아 넣었고, 그대로 벽으로 밀어붙였다.

쾅!

“으으윽!”

갑작스러운 일격을 당한 괴한이 신음을 흘렸으나 살기가 등등한 에단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건드리지 마! 네깟 놈이 감히 손을 대? 네 놈의 사지를 절단 내 당장 죽여 주마.”

광기 서린 그의 모습에 괴한은 검을 휘둘러 거리를 벌렸다.

이번에는 결판을 내려 에단이 그를 향해 땅을 박찼을 때였다.

“크웁……”

다시 한번 그가 피를 토했고, 괴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단의 흐트러진 자세를 역으로 노리려는 모습이 클레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안 돼!’

“클레리아!”

세실리아가 놀라 소리쳤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후였다.

황급히 괴한에게 달려든 클레리아가 다리를 붙들었고, 당황한 그가 검을 그녀에게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딱!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터진 문으로 향했다.

그곳에 괴한과 같은 차림의 또 다른 이가 손을 튕긴 자세로 서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으나 복면 아래 시선이 매우 냉랭하다는 것을 클레리아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모습을 나타내자, 금방이라도 그녀를 검으로 벨 듯하던 괴한이 순식간에 물러났다.

문 앞의 복면인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클레리아에게 던졌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괴한이 등장한 이후, 기존 괴한의 공격이 갑자기 멈췄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타난 또 다른 괴한이 던진 걸 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 온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세상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그저 천천히.

점점 다가오는 저 무언가가.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고 있음에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다가오는 그것을 클레리아는 꼼짝도 못한 채 망연히 바라봤다.

그것이 바로 코앞까지 온 그때.

“위험해, 클레리아!”

그 순간, 누군가 다급하게 그녀의 앞을 가리며 끌어안았다.

“에…… 단?”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이어졌다.

몸을 뒤흔드는 폭발의 충격이 사그라지자 세실리아는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건……!”

그녀는 단번에 이 물건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문이 터진 것도, 지금 폭발이 일어난 것도 모두 폭렬석이야. 대체 누가 그런 위험한 물건을 아카데미에……?’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에단?”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멍한 클레리아의 목소리에 세실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커졌다.

클레리아를 감싼 에단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은 이미 빛을 잃었고,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피가 물줄기처럼 줄줄 흘렀다.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에단.”

쿵.

클레리아가 그를 붙들었으나 그는 힘없이 옆으로 미끄러져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의 등을 확인한 클레리아의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망토며 갑옷은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고, 심지어 녹아내린 부분도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의 등 전체가 중상이었다. 화상은 물론 살점이 날아가 뼈가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에단! 에단! 정신 좀 차려 봐!”

클레리아가 흔들어도 에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참혹함에 놀라 입을 틀어막은 세실리아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에단! 대답 좀 해 봐! 에단!”

비명에 가까운 클레리아의 절규가 울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람의 몸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음을 클레리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엉망을 넘어 너무도 처참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상까지 입었으니 한시가 급했지만, 도움을 청할 다른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치유력만 쓸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이곳은 치유사의 능력이 발현되지 않는 타국이었다.

그의 옆에 떨어진 검에 박힌 치유석도 그 어떤 힘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참상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도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 아니, 한다고 해서 도움이나 될 수 있을까.

뭔가를 할 수나 있기는 한 걸까?

그녀는 약해져 가는 에단의 숨을 지켜봐야 했다.

‘에단이…… 에단이 죽어. 에단이 죽어 버린다고. 에단이…… 그가 죽으면 난…… 나는……!’

클레리아의 눈앞으로 창대에 꽂힌 아버지의 머리가 스쳐 지나갔다.

죽음을 환호하는 사람들.

차가웠던 감옥.

목에 박히던 도끼날의 감촉과 눈을 뜨고 다시 마주했던 에단.

거기에 유리 파편이 박혀 피가 흐르던 그의 손이 차례로 뇌리를 스쳤다.

싫어.

콰아아아!

그 순간이었다. 클레리아의 몸에서 엄청난 빛과 함께 힘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거짓말…… 말도 안 돼.”

세실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클레리아의 몸에서 방출되는 것은. 라스칸트가 아닌 다른 땅에서는 절대 발휘될 리 없는 치유력이었다.

* * *

아카데미 광장에 마련된 천막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경증의 사람과 중증의 사람들까지, 발생한 환자가 다수였기에 빠른 응급 처치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 있던 터였다.

그때 한 침상에 누워 숨이 곧 넘어갈 것 같이 컥컥거리던 이의 숨이 점차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기로 기침을 호소하던 이들의 호흡이 점차 안정됐다.

차를 마시고 사경을 헤매던 이들도 정신을 차렸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때였다.

“저기…… 저기 좀 봐요.”

한 사람이 아카데미 건물을 가리켰다. 3층 한 강의실 쪽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그 아래로 모여들어 빛을 쐬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넘어지고 굴러 다친 타박상부터 찰과상 등, 부상들이 깨끗이 나은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총장 제럴드가 중얼거렸다.

“치유력이다. 사람을 모아 3층으로 가 봐! 어서!”

“클레리아, 멈춰!”

세실리아의 외침도 그녀에게 전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엄청난 치유력을 방출하고 있는 그녀는 거의 무아에 빠져 버린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건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결단코.

가벼운 경증의 사람들이라면 별문제 없이 낫겠지만, 에단과 같은 치명상은 전혀 달랐다.

아무리 치유사의 치유력이라 할지라도 차근히 부상의 뿌리부터 치료해 나가야 한다는 것쯤은 세실리아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치유력은 클레리아가 받은 충격과 여러 가지 심리상태가 뒤섞인 여파로 방출되는 것이기에 그렇게 될 리 없었다.

에단의 상처는 나아가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치유가 아닌 것이다.

이건 그저 폭주였다.

‘이러다 둘 다 잘못된다고. 아니, 정말 잘못되는 건……!’

“네가 죽는단 말이야! 클레리아!”

세실리아가 절규했다.

치유사들의 폭주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한순간의 폭발력으로 수많은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힘을 발휘한다. 치유사 내면에 있는 간절함이 발화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자각 없이 방출하는 강한 치유력의 대가가 치유사의 수명이라는 점이었다.

‘폭주를 빨리 막지 않으면 클레리아가 위험해!’

그러나 방출되는 기세가 엄청나 세실리아는 감히 근처도 다가갈 수 없었다.

“누가 좀……!”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 질렀을 때였다.

“클레리아, 그만해.”

쓰러져 있던 에단이 어느새 정신이 든 듯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대로 치유된 게 아니라 안색이 파리한 채 그가 천천히 클레리아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난 괜찮아, 클레리아. 그러니까…… 그만해. 그만해도 돼.”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돌아와, 클레리아. 돌아와 줘.”

그의 말에 점차 클레리아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에단?”

몸에서 뿜어지던 강렬한 빛도, 따스한 기운도 점차 사그라졌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클레리아가 울먹이며 묵자 에단은 희미하게 웃었다.

“응, 괜찮아. 그러니까 이제 됐어.”

“다행…….”

클레리아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에단의 품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 * *

탁!

3층에서 뛰어내린 괴한들이 바닥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그런 그들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처리했나?”

“……보는 눈이 있으면 어쩌려고 오십니까.”

“이 상황에 이런 외진 곳까지 사람이 있을 리가.”

묘한 웃음을 흘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이러스였다.

“모시던 이는 잘 보내 드렸고?”

괴한은 모자라고 거만하던 앨런을 떠올렸다. 잠입을 위해 호위로 위장했는데,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쓸데없는 일에 이어 치유사까지 찾으려고 설레발을 쳐 댔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목숨은 부지했을 것을.

“예, 스스로 명을 재촉하던 놈이었죠.”

대답에 사이러스가 코웃음 쳤다.

“그렇군, 본론으로 돌아와 다시 묻지. 처리했나?”

“셋 중 둘. 또는 하나는 반드시 죽을 겁니다. 원하시는 바대로 계획을 실행하시면 됩니다.”

“폭렬석에 뭐 그리 돈을 들이부었나 했더니. 큭, 그래. 수고했네, 이아스.”

그렇게 말한 사이러스가 돌아섰을 때였다.

“잠깐.”

그가 괴한들을 불러 세웠다.

“……?”

이아스가 바라보자 사이러스는 조용히 검지를 치켜세웠다. 그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이 보였다.

사이러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저건 분명…….’

그것을 바라보던 이아스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타국에서 치유력은 절대 발현되지 않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도, 사이러스도 일이 틀어진 것에 불쾌한 침묵을 유지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해라, 후에 연통하지.”

“네.”

둘 다 짜내듯 대화하고 서둘러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분명한가요?”

세실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니 그녀는 에단이 옮겼다고 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도중, 사망자를 모아 두는 곳을 지나쳤는데. 그녀의 흐린 시야에 의외의 사람이 있던 것이다.

“앨런 테일러…… 그 사람 죽었다고요?”

“그래, 우리를 습격했던 자들에게 당한 것 같았다고 하더구나. 얘기를 들어 보니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다시 널 데리러 갔다는 증언이 있었어.”

클레리아는 시선을 무겁게 내렸다.

‘그때…… 내가 황녀님과 에단에게 향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거구나. 그래서 날 찾으러 다시 왔다가…… 변을 당한 거야.’

앨런이 죽은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에 클레리아는 이불을 쥔 손을 조용히 힘을 실었다.

“오랜 전통의 허점을 노린 치밀한 술수였어. 네 탓이 아니다.”

세실리아가 클레리아의 눈을 손으로 덮어 억지로 감겨 주었다.

“하지만…… 하지만 저 때문에…….”

결국, 가린 손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번져 갔다.

“네 탓이 아니야, 클레리아. 쉬어라, 넌 쉬어야 해.”

세실리아는 약병을 열어 클레리아의 코 밑에 가져갔고, 곧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세실리아는 무서운 눈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에단과 클레리아를 번갈아 쳐다봤다.

“전하, 이번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하시라는 황제 폐하의 전갈입니다. 국경에 치유사들을 배치했으니 한시라도 빨리 귀환하시라는 명이십니다.”

외부에서 머물던 호위들이 들어와 전했다.

“한 시간 뒤 출발한다.”

간단히 명한 세실리아의 눈에 서슬 퍼런 살기가 번뜩였다.

‘이번 습격은 우리 중 그 누구 하나만을 노린 게 아니다. 이건 셋, 전부를 노린 거야. 세 명 중 누가 죽어 사라져도 이득이었단 거지. 그 말인즉…….’

세실리아의 목숨도 노렸다는 것.

클레리아는 치유사이고, 에단은 치유사 수호 기사에 제국 1기사다. 그 정도가 그들을 향한 노림수의 이유였다면, 세실리아는 달랐다. 그녀에게는 지금껏 이런 위협이 없던 것이다.

후계자 경쟁에서도 일찍 물러났고, 타국을 돌며 늘 조용히 살았다. 그런데 왜?

“그건 날 위협으로 느끼거나 눈엣가시로 여기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겠지.”

감히 이렇게 직접적으로 날 내 측근들과 함께 없애려 작당을 해?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아.’

분노에 사로잡힌 세실리아의 눈이 침상의 에단과 클레리아에게서 한참이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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