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2)

제20.5장. 드리우는 그림자 (2)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엘라단 아카데미에 온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간 클레리아도 많은 학생을 만났고, 아카데미의 여러 수업을 참관하고 장소를 구경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들처럼.

“이것은 뇌라고 하는데 사람의 생명에 관한 부분들을 즉각적인 신호로 반응케 하는 중요 기관 중 하나다.”

지금 그녀는 인체 해부를 참관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분야를 가르치는 엘라단 아카데미에도 당연하게 의학 분야가 있었다. 시신 해부는 라스칸트에서도 고급 의학교에서만 참여할 수 있는 귀한 클래스였기에 클레리아 역시 기회가 생겨 참관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한기가 도는 해부실 내부와 어딘가 역한 알콜향.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시신의 냄새에 참관만 하는데도 몸이 바싹 긴장됐다.

교수의 설명을 듣던 사이, 클레리아는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해부 설명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러스가 서 있었다.

‘설마 저 사람도 여기 교수로 재직 중일 줄이야.’

엘라단에 대사로 오기 전, 눈을 고쳐 줬던 서제도의 4왕자, 그였다.

우연히 무역학 강의를 참관하러 들어갔는데 그곳 강단에 서 있던 게 사이러스였던 것이다.

좀 의외였던지라 강의가 끝나고 잠시 담소를 나눴는데, 그는 여전히 외알 안경을 착용 중이었다.

“안경…… 여전히 끼시는군요. 혹 치료에 문제가 있으셨나요? 후에 다시 라스칸트를 방문해 주시면 제대로 봐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사이러스는 손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치료는 완벽했습니다. 그저 20년 넘게 착용했기에 이쪽이 익숙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그는 끼고 있던 안경을 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안경알을 통한 왜곡이 거의 없었다.

“도수가 없는 안경알입니다.”

클레리아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일찍이 대외적 활동을 많이 했기에 이 물건은 내 특징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빼고 다닌다면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아지겠죠.”

무감각하게 하는 말이었으나 클레리아는 아차 싶었다. 그의 말대로 갑자기 안경 없이 다닌다면 눈치 빠른 이들은 라스칸트와의 거래를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클레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왕자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딱히.”

그는 메마른 목소리로 대꾸하고 물건을 챙겼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언제나 목석같은 태도와 말투에 클레리아는 서먹함을 느끼며 묵례했다.

그러나 사이러스는 관심도 없단 것처럼 그대로 돌아 강의실을 나가 버렸다.

“이것으로 오늘 수업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교수의 마무리 선언에 클레리아는 현실로 돌아왔다.

위생을 위한 가운을 벗어 정리하는데 클레리아의 옆으로 누군가 슬며시 다가왔다.

“해부학을 참관하실 줄은 몰랐군요.”

소리도 없이 다가온 탓에 클레리아는 화들짝 놀랐다. 어느 틈엔가 사이러스가 곁에 서 있었다.

“아, 네. 일단 치유사기도 하고 라스칸트에서도 시신 해부는 참관할 기회가 적으니까요. 근데…….”

그녀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왕자님께서 참관하고 계실 줄은 미처 몰랐네요.”

“관심이 있으니까요.”

“관심이요?”

그는 감정이라고는 일말 비치지 않는 얼굴로 천천히 손을 씻으며 답했다.

“살아 숨 쉬던 것이 어느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 그건 정말 기이하고도 묘한 일이 아닙니까. 그 참을 수 없는 고요 속에 던져진 인간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클레리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사람……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왠지 모를 섬뜩함을 풍기는 통에 클레리아는 서둘러 옷을 정리해 넣었다.

“그러셨군요. 왕자님께 유익한 시간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왠지 한 공간에 있는 것에 위협을 느낀 클레리아는 최대한 티 내지 않고 강의실을 먼저 빠져나갔다.

사이러스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그때 누군가 강의실로 들어와 그에게 다가왔다.

“왕자님, 방에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늘 싸늘하게 식어 있던 그의 눈에 한순간 빛이 돌았다.

도착한 건가.

“그러지.”

그는 짧은 대답과 함께 시종을 따라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 * *

“흐음…….”

사이러스는 거실 탁자 위에 올려진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참을 보던 그가 검지를 내밀어 슬쩍 뚜껑을 열자 각각의 색을 발하는 손바닥만 한 보석이 드러났다.

사실 보석처럼 보이도록 위장시킨, 연금술로 정교히 만들어진 돌이었다.

“……폭렬석이로군.”

그러나 흔한 폭렬석과는 달랐다. 뭔가 다른 작용도 첨가된 것 같았다.

‘뭐, 목적을 달성하려면 효과가 분명한 게 좋겠지.’

그는 밑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회색 가루가 빼곡하게 차 있는 것이 드러났다.

“흠…….”

그는 시큰둥한 손짓으로 손가락을 치워 상자 뚜껑을 닫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옆에 작은 상자와 카드 하나가 하나 더 있다는 점이었다.

“이건 뭐지? 물건이 두 개라는 소리는 못 들었던 것 같은데?”

그의 물음에 한쪽에 서 있던 이가 답했다.

“네, 보내신 건 분명 하나인데 그게…… 유통자 하나가 멋대로 집어넣은 듯하다고 합니다.”

“진작 알아서 치우지 않고.”

그의 얼굴에 살기가 뒤섞인 짜증이 순간 드러났다.

거칠게 탁자 위에서 쳐내려던 그때, 그는 거칠게 상자를 뜯었다. 상자 안에 별 볼 일 없는 찻잎들이 가득한 걸 발견한 그의 얼굴이 묘해졌다.

그는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다 물었다.

“유통자가 멋대로 넣은 것이라 했지?”

“예, 아무래도…… 뭣 모르고 성의 삼아 넣은 모양인지라…….”

옆에 있던 카드를 들자 ‘왕자님의 엘라단 생활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실 수 있도록.’이라는 글귀와 함께 ‘데포렌’이란 이름이 보였다.

유심히 카드를 들여다보던 사이러스의 입술을 타고 웃음이 기묘하게 번졌다.

“어쩌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는 중얼거리며 하인에게 두 상자를 함께 내밀었다.

“잘 전달하도록 해라.”

* * *

“드디어 이 짓도 이틀이면 끝나겠구나.”

세실리아가 드디어 해방이라는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지켜보던 클레리아와 에단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픽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늘은 연금술 강의를 함께 하신다고요?”

“그래, 내가 시범을 보이기는…….”

말을 끄는 모습에 뭔가 준비할 것이 많아서 그런가 했는데 세실리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너무 귀찮잖니. 근데 특기가 연슴술이다 보니 요청이 많아서 참관하면서 살짝씩 말이나 얹어 볼 생각이다.”

아하하하. 이쯤 되면 정말 강의 날로 먹는다고 항의하는 학생이 없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동경과 매력이 그걸 압도하고 있으니 뭐,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클레리아는 멋쩍게 웃어 버렸다.

“그래도 전하께서 하시는 말씀은 분명 도움이 되는 말씀뿐일 겁니다.”

그 말에 세실리아가 ‘호오’ 하는 얼굴로 클레리아를 바라봤다.

“네가 그런 아부성 짙은 말을 하는 건 오랜만인 것 같구나. 전에는 같은 빈말이라도 지금과는 느낌이 참 달랐는데.”

그 말에 클레리아가 잠시 난처한 얼굴을 하며 시선을 내렸다. 과거의 그녀를 황녀 또한 분명하게 간파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세실리아는 슬쩍 클레리아의 뒤로 와 속삭였다.

“하지만 난 지금 네가 정말 좋으니 불안해하지 말렴.”

그렇게 속삭인 그녀는 소파로 가 앉았다.

“넌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니?”

“전 아마 마법학 강의를 참관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마법학이라고? 흐음…… 오르테 교수님을 뵙겠구나. 엉뚱해도 실력이 좋은 분이지.”

세실리아가 아카데미 교수 중 칭찬하는 사람은 처음 봤기에 클레리아가 놀란 얼굴을 했다.

“전하께 그런 평을 듣는 분이라면 강의가 기대되네요.”

클레리아가 들떠 말하자 세실리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기대해도 좋을 거다.”

강의실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솔직히 호기심이 동했다. 칭찬에 박한 세실리아의 칭찬을 들은 교수니 말이다.

외모가 수려한 걸까?

세실리아가 뛰어난 외모를 좋아하는 건 익히 알려진지라 혹 그럴까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듯 싶었다.

막상 보니 그는 머리가 까지고, 인자한 인상을 한 백발의 노인 교수였으니까.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시려나.’

그 순간이었다.

“자네들은 마법을 배우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었나?”

그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강해지고 싶다. 능력자가 되고 싶다. 황실 마법사를 꿈꾼다, 등등의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교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냐, 고작 그 정도란 말이냐.”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강연대를 쾅! 내리쳤다.

“난 말이다. 내가 마법사가 되면 말이지…… 돈을 무한정 만들고 싶었단 말이다! 크아…… 아주 그냥 끝내주는 갑부가 되는 게 꿈이었어! 그런데 돈이나 금을 만드는 건 연금술이라더군? 선택을 그만 잘못했지 뭐냐.”

다들 깜짝 놀라게 버럭 소리 지르고는 한다는 소리가 선택 과목 실수?

“근데 뭐 그쪽도 돈 만드는 건 불법이라던가 금기라던가 뭐라던가.”

구시렁대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학생들이 난색을 표했다. 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지극히 개인의 바람에 관련된 사족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오르테는 ‘자 이제 그럼 책을 펴 볼까?’ 하며 능청스럽게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쯤, 클레리아는 그의 강의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는 걸 깨달았다.

멀쩡히 수업하다가도 전혀 연관성 없을 것 같은 과거의 기억을 끌어와 한 섞인 절규를 하다가 또다시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허허.’거리며 수업을 이어 갔다.

‘이쯤 되면 조울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닐까 싶은데…….’

그제야 세실리아가 그를 엉뚱하다 평한 것에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렇게 감정이 널뛰기하는 오르테의 수업시간이 절반 정도 지나고.

“그러니까 말이야, 응? 술식 같은 거 필요 없게 다들 열심히 하면 좀 좋으냐? 세상에서 술식이 가장 귀찮단 말이다! 뭐, 그 정도 천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좀 노력하란 말이다!”

혼잣말과 호통을 번갈아 하던 그는 잠시 옆에 놓인 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오랜만에 강의라 힘들구나, 좀 쉬자.”

정말 제멋대로네.

강의 중 단지 손짓 몇 번으로 책에 있는 마법을 해내는 것 보면 분명 실력자이긴 하나 저 변덕스러움은 계속 보고 있기 힘들 것 같았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본인도 저렇게 지치고.

의자에 앉아 ‘에구구’ 소리를 내는 그를 보며 클레리아는 쓰게 웃었다.

“간단한 다과 준비했습니다.”

그때 도우미가 쉬는 시간을 위한 다과를 작은 카트에 담아 들여왔다. 카트에는 차와 주스, 물. 그리고 간단한 비스킷과 과일이 담겨 있었다.

도우미는 자리를 돌며 각자 주문하는 것을 건넸고, 오르테 교수에게도 차를 건넸다.

호통도 꽤 쳤으니 목이 말랐던지 그는 차를 단숨에 마셨다.

‘하긴 나이가 있으신데 무리하셨지.’

그렇게 생각하며 클레리아가 간단히 물로 목만 축일 때였다.

쿵.

갑작스러운 소리에 흠칫하며 앞을 보자 오르테가 그대로 의자에서 고꾸라져 있었다.

“교수님?”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둘러 도우미와 클레리아가 다가갔다.

그러나 가까이서 그를 확인한 두 사람은 얼어붙고 말았다. 오르테가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숨을 거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맥을 짚던 클레리아가 놀란 얼굴로 도우미와 서로 바라볼 때였다.

“윽……!”

각기 다른 자리에 있던 두 명의 학생이 인상을 쓰며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무슨 일이에요?”

다급하게 뛰어 올라간 클레리아는 두 사람을 살폈다. 한 사람은 이미 의식이 없었고, 다른 이는 사지를 뻗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목 근처와 배 쪽을 누르자 파르르 몸이 경련했다.

‘뭐지? 뭔가에 내상을 입은 것 같은데 대체……?’

그 순간 책상에 엎질러진 찻잔이 눈에 들어왔다.

클레리아가 망설임 없이 한 모금 들이켜 음미하다 ‘읍!’하는 소리와 함께 뱉었다.

‘차에 독이 있어!’

막 머금었을 때는 그냥 평범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갑작스레 강한 독 기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단지 잠깐 머금었을 뿐인데 입 전체가 아리고 통증이 일었다. 게다가 살이 벗겨지는 것 같은 통증도 느껴지고 피 맛도 났다.

“호위병! 서둘러서 의무실로 데려가세요!”

빠르게 지시하고 그녀는 도우미와 오르테에게 다가갔다.

“차에 독이 들었습니다.”

“독이요? 그럴 리가!”

“여기까지 내어진 걸 보면 검시에 드러나지 않는 독이었을 겁니다. 이 차가 모든 강의실에게 배급된 겁니까? 대답하세요, 한시가 급해요!”

도우미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아카데미 측에 알리고 상황을 파악하세요. 쓰러지는 사람이 더 나올 겁니다.”

도우미가 나가고 오르테 교수의 시신을 잘 눕힌 뒤 클레리아는 놀란 학생들을 독려했다.

그때.

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른 곳에서도 부상자가 나왔나?’

학생들에게 기다리라 이른 뒤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뭐지?”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복도에 들어차고 있었다.

밖은 아비규환이었다. 가리는 시야에 당황한 이들이 도망치거나 호위를 받으며 움직였다.

클레리아가 소매로 입과 코를 막고 다른 강의실을 확인하고 돌아섰을 때였다.

물컹.

묵직한 것이 밟혔다.

‘……!’

그것은 새하얗게 질려 숨이 끊어진 학생의 시신이었다.

‘오르테와 같아.’

눈도 못 감은 것을 보니 그대로 즉사한 것 같았다.

엘라단 아카데미가 세워진 이래로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클레리아는 서둘러 강의실로 돌아와 딸린 교재실로 학생을 모았다. 그리고 옷가지와 다른 것들로 하여 문틈을 막고 호위들과 함께 있을 것을 권고했다.

지금 밖은 연기가 퍼진 상태니 시야가 확보 안 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놀라 마구잡이로 움직이니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여기서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호위들과 함께 기다려야 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에단!’

뒤늦게 그가 떠올랐다.

황녀 때문이 아니라 평소에도 차를 즐기는 그의 습관 때문이었다.

‘설마…….’

호위 중이니 마시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 몰랐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해 놀란 가슴이 이제는 두려움으로 물들어갔다.

결국, 클레리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전 아무래도 황녀 전하의 안위를 확인해야겠습니다. 가는 길에 여기에 피신 중인 귀빈이 있다고 알릴 테니 함부로 문 열지 마시고 꼭 기다리세요.”

“하지만 치유사님!”

몇몇이 말렸으나 클레리아는 그대로 강의실 밖으로 내달렸다.

* * *

무심한 눈길로 몇 가지 재료를 섞은 세실리아가 술식이 그러진 종이 위에 그것을 부었다. 그리고 간단히 힘을 연동시키자 순식간에 ‘펑’ 소리와 함께 작은 발광석이 만들어졌다.

우오아아!

정확한 계량도 하지 않고, 단 몇 초 만에 발현된 능력에 학생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그녀는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연금술을 발휘했지만, 이건 사실상 그녀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실력자이기에 가능했다.

연금술은 재료 계량이 단 1이라도 벗어났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힘의 연동도 균일하게 이어지지 않으면 발휘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일을 순식간에 해냈으니 감탄할 수밖에.

정작 세실리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 몇 번 털어 낸 뒤 앉았던 의자로 돌아갔다.

“황녀님은 정말 아카데미가 발굴한 최고의 연금술사 아닙니까? 여러분도 그 뒤를 쫓는 걸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겁니다.”

세실리아의 여파는 대단했다. 열광하는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똑똑히 됐으니까.

그런 천재는 흔하지 않다는 말을 쏙 뺀 걸 보면 토프 교수의 수완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높은 편일 것이다.

“토프 교수님, 오랜만에 연금술을 썼더니 피곤하군요. 좀 쉬지요.”

“그럴까요?”

거짓말.

세실리아에게 발광석을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을 텐데 피곤할 리가.

그저 귀찮을 뿐이란 걸 아는 에단은 표정이 드러날까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도우미가 카트에 각종 음료와 다과를 준비해 전달하기 시작했다.

“칼리스터 경, 이리 와라.”

그녀가 차 두 잔을 주문하며 그를 불렀다.

“내일모레면 이 짓도 끝나겠구나. 고생 많았다. 매일 그리 딱딱하게 서 있는 것도 곧 끝날 테니 조금만 참도록 해.”

그녀는 따른 차 한 잔을 에단에게 주라고 도우미에게 고갯짓했다.

“호위 중이니 괜찮습니다.”

“융통성 없긴, 다른 호위들도 이 정도는 다 한다. 넌 날 악덕으로 뵈게 할 셈이냐?”

에단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손을 뻗어 찻잔을 쥐었다.

사실 그만큼 경호에 착실했던 호위병도 없었다. 하도 곁에 딱 붙어 있는 터라 다른 해보다도 올해 세실리아의 호위가 유독 탄탄해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간 역할에 충실해 이제 좀 숨통 트이자는 의미니까 심기 거스르지 마라.”

명을 섞어야 에단이 편해질 거란 걸 아는 세실리아는 괜스레 짜증을 섞어 말했다.

“그럼 차 한 잔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픽 웃음을 흘리며 그가 차를 들이켰다. 그것을 지켜보던 세실리아 역시 빙긋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챙그랑!

그 순간 에단이 세실리아의 손을 내리쳤다.

“에단? 이게 무슨……?”

황당한 얼굴로 바닥을 나뒹구는 찻잔 파편을 보던 세실리아가 말을 멈췄다.

“칼리스터 경?”

“드시면…… 안 됩니다.”

그의 입가에 피가 맺히고 있었다.

고작 차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그는 심각한 부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힘겹게 카트를 붙들었다.

쿵!

“꺄아악!”

그 순간 청강석에서도 비명과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차를 마시고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한 것이다.

“이게 대체……?”

토프 교수도, 세실리아도. 다른 학생들 모두 놀라고 혼란스러워할 때 에단이 도우미를 붙들었다.

“차에 독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아카데미 측에 알려 최대한 빨리 의료진을 배치하라고 전달하세요.”

사시나무 떨듯 떨던 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허둥지둥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쓰러진 이들을 부축한 호위들도 그 뒤를 따랐다.

엘라단은 입학하는 이들의 신분은 물론, 어마어마한 재단으로 운영되기에 경비나 음식 모든 것에 철저했다. 도우미들에게는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주술까지 걸어 놓으니까. 그렇기에 도우미가 차에 독을 탔을 리는 없었다.

‘이건 아카데미 내부에서 접근한 소행이다.’

불로 지지고, 칼날로 내장을 긁어내리는 듯한 통증에 몇 번이나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에단은 체내의 마나를 운용하며 통증을 간헐적으로 마비시켰다.

그는 자꾸 울컥거리며 목구멍을 넘으려는 피를 억척스럽게 삼켰다.

“여러분은 지금 당장…… 숙소로 대피하십시오. 각 숙소에는 최소한의 방어로 결계가 쳐져 있습니다. 그 안에 머무시며 안내가 있을 때까지 호위를 받으십시오.”

그의 말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호위들이 다그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프 교수까지 나가는 것을 확인한 에단이 세실리아를 호위했다.

“제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십시오.”

“……에단.”

시시각각 안색이 질리는 그를 보는 세실리아의 눈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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