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52)

제6장. 에단의 마음.

조금 뒤 있을 기사 서임을 위해 에단은 개인적으로 쉴 수 있는 휴게실을 안내받았다. 그곳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던 그는 답답함에 테라스로 향했다. 바깥으로 나오자 서늘한 바람에 조금이나마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스치듯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봤다.

‘얼마 전 아버지께 들어왔던 밀서에 쓰인 이야기 중 일부는 사실이었어.’

귀족들에 대한 정황과 수도 상황을 담당하는 칼리스터는 도처에 사람을 심어 놓았다. 그중 하나가 눈여겨볼 움직임을 전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클레리아가 바르서스 구호소에서 일을 시작한 시점부터였다는 것이었다. 확실치는 않으나 적어도 치유사와 관련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

‘워낙 소규모인지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시는 해야 해.’

그가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뱉을 때였다.

“에단 칼리스터.”

부름에 돌아서자 테라스 문을 붙든 카이론 이슬레이터가 서 있었다.

엘레나와 같은 짙고 누런 금발을 단정히 빗은 그는, 사뭇 순진한 얼굴을 한 그녀와는 달리 강한 인상을 풍겼다.

“이슬레이터 공작 각하.”

에단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번 결승전 아주 잘 봤다. 장관이었어. 타이엔의 특기를 제대로 익혔더구나. 수제자라고 하더니 아주 많이 뿌듯해하겠어.”

“스승님이 가장 심도 있게 가르쳐 주셨던 기술이니까요. 부족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래, 결실을 제대로 보았구나.”

그는 천천히 걸어 그에게 다가왔다.

“엘레나도 아주 놀랐어.”

엘레나의 이름이 나오자 에단은 표정을 굳혔다.

“요즘 그 아이와 무슨 일 있나? 엘레나가 영, 자네 얘기만 나오면 툴툴거려서 말이지.”

“글쎄요, 특별히 다투거나 한 것은 없습니다만.”

“흠…… 그럼 클레리아와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카이론의 혼잣말에 에단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시합날 조금 나무란 것이 화근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떻게 봐도 그건 엘레나가 경솔했기에 굳이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에단은 뭔가 생각난 듯 카이론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공작 각하. 드릴 청이 있습니다.”

“뭐지?”

“엘레나가 성년 전에 저와 정혼을 염두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했던 말 말입니다. 이제 확실히 엘레나에게 선을 그어 주셨으면 합니다.”

“선을?”

“이제 모두 성년이 되었으니 아직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정혼이란 민감한 문제로 세간에 가십거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에 카이론은 빙긋 웃었다.

“난 꽤 즐기고 있었는데 말이야. 자네는 그렇지 않았나 보군?”

에단은 답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카이론이 넌지시 물었다.

“우리 딸이 정혼 상대로 별로인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에단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냈던 터라 그런 상대로 여겨 본 적 없을 뿐입니다.”

“혹시 마음에 품은 다른 여인이 있는 건 아니고?”

에단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질문까지 나올 문제입니까?”

“딸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상대이니 당연하지. 제대로 된 연유가 아니라면 솔직히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모르겠네만.”

카이론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 건에 대해 내가 먼저 말하려 했었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에단의 아버지 엘빈 칼리스터, 그가 테라스로 나오고 있었다.

“서임식 대기 중인 거냐?”

“네.”

그는 아들의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리고는 카이론을 바라봤다.

“자네도 왔군. 타이엔은 못 오는 건가?”

“그렇다는 것 같더군. 요즘 제일 바쁜 몸이야. 자기 딸 임명식 연회에도 못 가지 않았나.”

그렇게 답한 엘빈이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아무튼, 이 녀석이 말한 건 내가 먼저 제안하려던 건이었어. 정략혼도 좋지만, 일단 아이들도 제 인생을 살아 봐야지. 엘레나와 자네에겐 좀 미안하지만, 난 아들의 의견에 동의하네. 그리고 정식 청도 아니지 않았나? 아들과 내가 그런 시선에 시달리면서도 참아 준 건 자네가 친구였기 때문인 거 알잖나.”

“하…… 자네까지 이러긴가? 에단 같은 사윗감을 또 어디서 찾으라고.”

“또 아나? 훗날 엘레나랑 에단이 저들끼리 좋다고 먼저 찾아올지.”

엘빈의 말에 카이론은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까지 나선다면야. 그래, 정식 청도 아니었으니. 엘레나에게도 일러두도록 하겠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엘레나도 경솔한 말은 줄여야지. 미안하네.”

에단은 카이론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물론, 집요한 면이 있기야 하지만.

“에단 칼리스터님. 황제 폐하와의 독대 알현이 준비되었습니다.”

시종이 알렸고, 엘빈은 아들을 바라봤다.

“생각해 놓은 기사단은 있고?”

“예.”

“알현 잘 드리고 오너라. 우리는 서임식이 진행될 홀에 가 있으마.”

에단은 두 사람에게 묵례한 뒤 시종을 따라 사라졌다.

“우리도 가지.”

엘빈은 한참이나 아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카이론의 말에 끄덕였다.

* * *

“에단 칼리스터가 제국 라스칸트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육중한 문 안으로 들어온 에단은 인사와 함께 바로 무릎을 꿇었다.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은 황제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단, 둘이 남은 알현실은 처음인지라 에단은 그 분위기가 매우 생소했다.

‘이렇게 둘만 있으면 자칫 암살하려 드는 자들도 있을 텐데 황제는 전혀 그런 것에 대해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무예가 뛰어나니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까 아니라면……’

그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 기둥들을 훑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의 특별 가드들이 몸을 숨기고 있을 곳이었다.

‘어차피 검 같은 건 지니고 올 수도 없지만, 몸놀림이 조금만 이상해도 죽는다…… 이거군.’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마침내 누에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 시합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지. 단 한 번 휘두른 검기로 상위 네 명을 제압했다고.”

“과찬이십니다. 때가 들어맞아 운이 좋았습니다.”

“이런, 제국의 1검사가 그렇게 말하면 쓰나. 라스칸트를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게인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인사치레는 이 정도로 하고. 일어나게, 에단 칼리스터.”

명에 그가 일어서 황제를 바라봤다.

“어느 기사단에 입단하길 원하지?”

“르누엘룻 신전 소속의 성기사단…….”

대답을 들은 누에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확하게는 치유사 전담 수호 기사를 청합니다.”

순간 황제의 얼굴에 매서움이 묻어났다.

“움직임이 있었는가?”

“네, 소규모의 은밀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새 치유사가 바르서스 구호소로 발령됐을 때와 맞아 떨어집니다. 워낙 작은 움직임이긴 하지만 한동안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고하던 에단이 잠시 말을 끌며 눈을 내리깔았다.

“뭐지?”

뭔가 있음을 직감한 누에른이 날카롭게 그를 재촉했다.

“……치유사 전담 수호기사 중 한 명인 템즈 하번 경의 전사 소식이 있었습니다. 서임식이 끝나면 상소문이 올라갈 예정이었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편이 제가 요청한 일에 적당한 이유가 되리라 판단되어 아룁니다.”

“템즈 경이? 전사 사유는?”

“독에 의한 급사로 밝혀졌습니다. 치유사님도 손 쓸 수 없을 정도였다고……. 사주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암살자가 자결해 더 추적하지 못했습니다.”

뜻밖의 소식에 누에른 역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함께 있던 치유사는?”

“무사하다고 합니다. 템즈 경이 연고가 없는지라 담당 치유사님의 요청으로 며칠 내에 조용히 장례를 치를 예정입니다.”

“치유사의 호위 기사가 암살당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많은 이들이 술렁이겠지. 하지만…… 그 좋은 인재를 잃다니.”

황제는 충격이 큰 듯 머리를 짚고 한동안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그는 무척 애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세릭스가 충격이 컸겠어. 10년을 함께해 온 자를 보냈으니. 도착하면 당분간 칼리에 밑에서 수행하도록 해야겠군.”

“예.”

누에른이 피곤한 얼굴로 턱을 괬다.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건만… 어찌하여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생겨나는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아직도 생생했다.

자신의 든든한 전우였던 오랜 친구와 그가 사랑하던 녹색 눈의 해맑던 여인.

비극이 닥치기 전, 그 행복했던 그들의 순간이 말이다.

누에른은 천천히 눈을 뜨며 무겁게 말했다.

“오랜만에 치유사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 이런 움직임이 발생하다니, 짐과 생각이 다른 이가 있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 너무 염려는 마십시오. 불손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그 즉시 아뢰고 저희, 칼리스터가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누에른은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혹여 치유사 전담 수호 기사가 되길 원하는 것이 사적인 감정도 포함되어 있는가?”

그의 물음에 에단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프라이어스 영애가 치유사니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떠보는 걸까.

어떤 대답을 듣든 간에. 황제는 언제 어느 때 입맛에 맞춰 마음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랬기에 에단은 솔직히 대답해야 할지 얼버무려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자네도 생각해 보게. 자네는 이제 라스칸트 첫 번째 검이 될 자네. 그런 그를 고작 치유사 하나를 위한 전담 수호 기사로 책정한다. 이 얼마나 전력 낭비가 될지 생각해 보지 않았나?”

“그토록 폐하께서 기다리고 기대하신 치유사입니다. 10년 만에 나타난 그녀를 잃는다면 그것도 제국에 큰 불행이겠지요. 폐하의 통치에 대한 말도 뒤따를 겁니다.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일리는 있군.”

그러나 무슨 꿍꿍이인지 누에른은 쉽게 그의 청에 응해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1순위를 차지했던 기사가 이런 행보를 보인 적은 없네. 솔직히 나도 의외의 청에 좀 당황스럽군. 자네는 그것에 만족하는가?”

“치유사 수호 기사는 황실 근위대 다음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활동 범위는 매우 근소하나 지금 시국에 그만한 명예를 거절하는 기사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누에른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만 묻도록 하지. 황실이 위험에 처할 때 만사를 제치고 달려올 수 있겠나?”

“달려오겠습니다.”

“자네가 전담하는 치유사를 버려야 할 수도 있어.”

“폐하께 있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치유사까지 대동해 달려오겠습니다.”

“하하하하하. 의지가 확고하군. 패기가 마음에 들어.”

누에른은 그제야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적.”

그는 검지를 세워 보였다.

“일단은 한시적이네. 자네가 보고한 위험이 더는 견제할 정도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그때는 불러들일 걸세. 알겠나? 난 인재는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예.”

“잘 지키도록 하게. 어차피 치유사가 나왔으니 수호 기사를 배정하기는 해야 했으니까.”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움직임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홀에서 보도록 하지.”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게 먼저 알현실을 빠져나가려던 누에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제 보고가 충분히 폐하를 설득했다면…… 이번 시합 순위권에 든 자 중에 원하는 이가 있습니다. 부디 그도 함께할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일어서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 앉은 누에른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대가 가져온 정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주제넘는다고 당장 내쳤을 것이야. 내가 주최한 검술 시합 1위에 오른 자라도 말이지.”

“송구합니다.”

그의 말에 누에른은 비어 버린 수호 기사 한 자리를 다시 떠올렸다.

“그래, 원하는 자가 있다고. 그게 누구지?”

* * *

르누엘룻 신전에 있는 치유사 소속 건물인 히리스벨라관이 오늘도 분주한 아침을 맞이했다.

“클레리아, 이쪽에 있는 약품들도 마차로 옮기라고 해 줘요. 그리고 새로 충당할 약품들 목록도 적어 두고요.”

“네, 칼리에 님.”

클레리아는 이제 익숙해진 놀림으로 시키는 것을 곧잘 해냈다. 때로는 그녀가 먼저 칼리에가 할 일까지 끝내 놓기도 했다.

“선물, 어떻게 됐나요?”

은근히 물어 오는 칼리에의 말에 잠시 클레리아가 확인하던 장부를 안은 채 동작을 멈췄다.

“네, 줬어요.”

“반응은요?”

‘반응이라…….’

클레리아는 자신을 끌어안던 에단을 떠올렸다.

어깨에 느껴지던 깊은 숨결.

왠지 높게 느껴지던 체온.

묵직했던 손길까지.

‘뜻밖의 행동이 굉장히 의외이긴 했지만…….’

치유석을 내려다보던 에단의 눈길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감동한 것 같기도, 뭔가 울 것만 같기도 했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좋아해 줬던 거겠지.’

“무척 기뻐해 줬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요.”

칼리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역시 칼리스터 영식에게 딱 맞는 선물이었죠?”

클레리아 역시 그녀의 말에 수줍게 웃으며 끄덕였다.

“앞으로 칼리스터 영식이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되네요.”

그렇게 말하며 칼리에가 손을 털었다.

“자, 우리도 이만하면 될 것 같네요. 난 짐마차에서 구호소로 갈 준비하고 있을 테니 창고 문단속 잘하고, 보고서 올리고 오도록 해요.”

클레리아는 그녀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약품 장부를 점검했다.

“어…… 잠깐. 소독약 한 상자를 빼놨네.”

이리저리 살피던 그녀의 눈에 높은 선반에 놓인 소독약 상자가 들어왔다.

“꺼낼 수 있을까?”

클레리아는 장부를 내려놓고 까치발을 세운 채 손을 뻗었다. 닿을 듯 말 듯한 상자는 간신히 중지가 스치다 말기를 반복했다.

“조금만 더…….”

입술을 깨물며 안간힘을 썼을 때였다.

“그러다 사고 치지.”

낮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그녀의 얼굴 곁으로, 건장한 팔이 쑥 들어와 꺼내려 애쓰던 상자를 순식간에 내렸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에단이었다.

1순위 기사였으니 분명 자신의 아버지, 타이엔이 이끄는 1기사단인 황실 근위대에 들어갔거나 수도를 지키는 2기사단에 들어갔을 거로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에단이 입은 성기사단의 상징인 백색 갑옷이 하얗게 빛났다.

어찌나 어안이 벙벙한지 체면도 잊은 채 클레리아는 입을 벌리고 넋이 나가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를 에단이 짓궂게 보며 웃었다.

“침 떨어지겠네. 예의범절 안 배우셨습니까? 영애?”

“아니, 아니! 왜 여기에 있어. 근위대나 2기사단에 들어간 게 아니야?”

그러자 갑자기 에단이 자세를 바로잡고 주먹을 쥐어 가슴에 올렸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오늘부로 세인트 가드 성기사단 소속, 치유사 전담 수호 기사로 임명받은 에단 칼리스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치유사님.”

“치유사 전담…… 수호 기사라고?”

믿기지 않는 얼굴로 그녀가 중얼거리자 그가 웃으며 클레리아의 머리를 거칠게 문질렀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어떤 순둥이가 치유사가 되어서 말이야. 걱정돼서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지.”

에단의 말에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설마 날 위해…… 나 때문에 여기로 온 거야? 그래?’

놀라움 반, 기쁨 반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아 내는 그녀를 보며, 에단이 따스하게 웃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파견 임무도 맡게 될 텐데. 내가 받은 선물에 보답해야 할 것 같아서.”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 그저 네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건데…… 이렇게 될 줄은…….”

“착각하지 마. 치유사 전담 수호 기사도 황실 근위대에 버금갈 만큼 명예로운 자리라 폐하도 수락하신 거니까. 그 정도가 아니면 나도 할 생각 없었어.”

능청스러운 말에 클레리아가 ‘하하’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 저기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나 있는 거 잊지 말아 줄래? 프라이어스 영애! 저도 있어요, 저도!”

문밖에서 붉은 머리의 사내가 손을 흔들었다. 리암 아켈리엔이었다.

“특별히 폐하께서 내 청을 받아 주셔서 함께 하게 된 리암 아켈리엔이야. 사실 요 일전에 수호 기사단 쪽에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에단이 소개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들어와 인사했다.

“영애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한 번쯤 꼭 이렇게 뵙고 싶었어요! 영광입니다.”

“저도 축하드려요, 아켈리엔 경.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리암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의 말에 클레리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에단이 인상을 구기며 리암을 밀어냈다.

“인사했으면 떨어져.”

“야, 왜 이래? 내가 무슨 병균이냐?”

“응, 내 눈엔.”

“뭐야? 이럴 거면 왜 수호 기사 같이 하자고 데려왔어!”

“어쩌다 자리 난 걸 한 번 제의 드린 것뿐인데 폐하가 받아들이실 줄 난들 알았나? 게다가 시합에서 제 실력 발휘도 못 한 게 불쌍하니 그랬지.”

“뭐가 어쩌고 어째? 그놈이 야비했던 거야!”

“그거고 저거고 일단 떨어져.”

“난 병균이 아니라고!”

클레리아는 두 사람의 티격태격에 놀란 듯했으나, 웃음은 얼굴에서 떠날 줄 몰랐다.

‘앞으로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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