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화 회장의 운명을 결정짓는 선고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90화
언젠가는 이런 나날이 찾아오리라 믿었다.
너른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숙희를 보며 사토시는 커피를 마셨다.
그는 모든 종류의 사업에서 손을 뗐다. 소유만 하고 경영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는 중이었다.
서울 근교의 단독주택에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만족스러웠다.
사업에서 손을 떼니 하루하루가 특별할 것 없이 비슷했다. 바쁘게 살 때는 도둑맞듯이 사라지던 시간을 비로소 손에 쥐는 기분이랄까.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오랜만에 손님이 온다. 특별한 소식을 들고.
한해가 집에 왔을 때는 점심때가 막 지날 무렵이었다.
성큼성큼 마당을 가로지는 그는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숙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결혼식 이후에 처음 인사드리네요!”
숙희는 한해의 얼굴은 알아보았지만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수진의 존재를 함께 떠올리는 것이 용했다.
“그 아이는? 짝꿍 말이야.”
“아, 수진이요?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 하루 휴가를 냈고요.”
“아. 그랬구나. 그래. 수진이. 나중에 꼭 같이 놀러 와요.”
“네. 그러겠습니다.”
사토시는 한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간 듯, 그 흔한 노트북조차 없는 옛날식 서재에서 마주 보고 앉았다.
“숙희 아주머니는 좋아 보이네요.”
“저 사람이야 늘 웃지. 상태는 비슷해.”
“정말 다행입니다.”
“이러다가 갑자기 치매 진행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으니. 조마조마하긴 하지.”
“선생님이 곁에 계시니 괜찮을 겁니다.”
“응. 재판은 어땠나?”
한해는 보고하듯 결과를 알려주었다.
“주호영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나왔고요. 이태화 회장은 징역 3년을 받고 법정구속 되었습니다.”
사토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형량에 만족하나?”
“결과는 그렇다 치고 의외인 점이 많았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당연히 항소할 줄 알았는데 이 회장은 항소를 하지 않고 그냥 형을 받았습니다.”
“엥? 정말?”
“네. 검사 측에서도 무척 놀라더군요.”
한해는 불과 한 시간 전에 법정에서 본 이 회장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실형 3년이 선고되고 법정구속이 되던 순간, 그는 갇히는 사람이 아니라 해방되는 사람처럼 편안해 보였다.
“왜 그랬을까? 항소를 해볼 만한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재판은 이제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 친구는? 이름이 강이었던가?”
“지난번 첫 공판 때는 상당히 격앙되어 보였는데 오늘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결과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아하. 그건 정말 잘되었군. 자네가 그 친구를 무척 예뻐하는 것 같더니.”
“강이는 저에게 원한이 있을 겁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요.”
사토시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해는 재판장에서 헤어질 때 강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가 법정구속이 된 상황인데도 한해 앞에서 의연함을 지켰다.
‘이것으로 우리 사이의 악연은 모두 끝났으면 좋겠어.’간절한 바람은 담은 한해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강은 가볍게 포옹해주었다.
두어 번 내 등을 두드려주었나? 마치 자기가 형인 것처럼.
언제쯤 다시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한해는 다시 사토시에게 말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또 있습니다.”
“뭔가?”
“저 내년에 아빠가 됩니다.”
사토시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확실한가? 병원에도 가봤고?”
“네. 며칠 전에 같이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직은 콩알만 한데 그래도 보이더라고요.”
“축하한다, 강한해!”
한참 좋아하던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잠깐만. 그럼 빨리 결혼식을 치러야지?”
“안 그래도 지금 식장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수진이는 그때 결혼식이 인상 깊었는지 또 배에서 하고 싶다고.”
한해는 멋쩍게 웃었다.
“안 될 건 뭐가 있나?”
“그렇긴 한데…… 몇 달 차이도 안 나는데 똑같은 크루즈에서 결혼식을 하는 건 이상할 것 같아서 다른 곳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 무조건 신부가 원하는 대로 해줘.”
사토시는 아버지처럼 넉넉한 미소를 머금고 한해의 어깨를 두드렸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건 피차 마찬가지.”
“나중에 수진이 데리고 또 인사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옆에서 잘 챙겨주고.”
인사하고 가려는 한해에게 사토시가 물었다.
“밥 안 먹었으면 식사 같이할 텐가?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쌈밥을 먹을까 했는데.”
한해는 흔쾌히 초대를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파서 햄버거라도 사 먹을까 했는데.
아들이 찾아온 부모님 집에서 흔히 벌어지는 광경이겠지.
손주가 생길 거라는 소식을 전하고 같이 밥을 먹는 흐뭇한 광경 말이야.
허기 때문인지 벌써 군침이 돌았다.
*
이 회장은 몸에 걸친 수의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흔히 죄수복이라고 부르는 옷의 질감은 거칠고 투박했다. 옷의 주인을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부르기 위해 번호표가 달려 있다.
내가 이 옷을 입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재벌 회장의 삶을 살다가 좁디좁은 감방에 갇힌 첫날 밤.
그는 수도승처럼 면벽을 하고 가부좌를 튼 자세로 긴 인생을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집안 형편은 늘 쪼들렸지만 가난이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숙명 같은 것이었다.
영특한 머리와 집요한 의지를 가진 그는 일찍 사업에 눈을 떴고 전도유망한 사업가로 성공을 거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야망은 통제 가능 수준, 인간으로서의 야망이었다.
어린 딸을 앞세우는 아픔을 겪은 뒤 그는 달라졌다. 강박적으로 사업에 몰두했고 원하는 것은 모두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구체적인 사건들은 흐릿하지만 그 시절의 아찔한 속도는 생생히 기억난다.
딸도 아들도 며느리도 아내도 모두 질려서 곁을 떠날 정도의 속도였으니.
그렇게 달리다가 인간 세상 위로 날아올라 신이 된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날 건드리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내 등에 돋았던 날개는 천사의 날개가 아니라 악마의 날개였나.
결국 추락해 이곳에 왔다.
변호사는 항소를 하자고 했지만 이 회장이 포기했다.
그만합시다. 이제 그만.
같은 감방을 쓰는 재소자가 흥얼거리는 처량한 노랫소리가 꿈결처럼 아련했다.
.
.
.
교도소에서 첫날밤을 보낸 다음 날 바로 면회 신청이 들어왔다.
로펌 변호사인가 했더니 면회 신청인은 뜻밖에도 레이나였다.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장소에 맞춰 최대한 얌전한 옷을 입은 티가 났다.
“네가 여기 무슨 일이냐?”
“아버님이 고생하시는데 며느리 될 제가 와보는 게 당연하죠.”
“홑몸도 아닌데 이런 데 오는 거 아니야.”
“아직 잘 보이지도 않는데요 뭐. 다니는 데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배가 부르면 찾아뵙기 힘들어질 테니 배가 나오기 전에 자주 올게요.”
“자주라니…… 또 오지는 마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회장은 뭉클한 감정에 젖어들었다.
“아버님 손주예요.”
그녀는 면회실 투명칸막이를 통해 아이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 말대로 아직 너무 작아서 그저 점처럼 보이긴 했다.
“건강하게 잘 크고 있대요.”
“그래. 엄마 아빠가 둘 다 건강하니까.”
이 회장은 레이나를 똑바로 마주하기 부끄러웠다.
“그이를 졸라서 저 혼자 오겠다고 했어요.”
그녀가 오히려 편안하게 그를 대했다.
“많이 불편하시죠?”
“몸이야 당연히 불편한데.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도 편안해 보였다.
레이나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아버님 상남자!”
톡톡 튀는 표현에 이 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나 잘 지내다가 나갈 테니까 걱정 말고 돌아가라.”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다는 말씀 직접 드리려고 왔어요.”
“…….”
“오히려 저는 아버님한테 고마운걸요.”
“고맙긴…… 내가 뭘 해줬다고.”
“먼저 용기를 내주셨잖아요.”
어젯밤 벽을 보며 했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네.
다들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아버님이 이렇게 달라지실 거라고 믿었어요.”
“내가 달라진 것 같으냐?”
“눈빛부터 다른걸요. 아시다시피 저는 수많은 아이들을 대면하는 게 일이라 눈빛만 봐도 알아요. 지금 아버님 눈빛은 뭔가를 깨닫고 변화하려는…… 수학적으로 말하면 변곡점을 지나는 사람의 눈빛이에요.”
“그렇게 말해주니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은 것 같구나.”
“하하하.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레이나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배 속에 아이가 있으니 얼른 혼례를 치러야지. 내가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대신…….”
“아니요. 누구도 아버님을 대신할 수 없어요.”
그녀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아버님이 자유의 몸이 된 다음, 아버님 모시고 식을 올릴 거예요.”
“괜히 나 때문에 미룰 필요 없어.”
“결혼식의 주인공인 제가 그러고 싶은걸요. 그러니 몸 건강히 잘 지내다가 나오셔야 해요.”
이 회장은 가슴이 너무 벅차서 잠시 말을 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다음 물었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이유가 뭐냐?”
“저는 아버님이 좋아요.”
“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가 아냐. 그쯤은 나도 안다.”
“강이 씨도 그렇잖아요. 제가 강이 씨 좋아하는 거 보면 아시겠죠? 제가 취향이 좀 독특해서 뭔가 좀 삐뚤어지고 상처 입은 영혼에 끌려요.”
그녀는 한껏 명랑한 스타카토로 재잘거렸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냥 착하고 괜찮은 사람. 누가 봐도 좋은 사람. 이런 남자들한테는 안 끌리고 뭔가 나쁜 남자, 사연 많은 남자한테 그렇게 끌리는 거예요. 고쳐보려고 했는데 그런 취향이 어디 고쳐지나요? 아버님 딱 보는 순간 제 스타일인 거 알아봤지 뭐예요.”
어떻게 들으면 감히 어른에게 쓸 만한 표현이 아니었지만, 이 회장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유쾌한 에너지에 기운이 충전된 느낌마저 들었다.
면회 시간이 다 되었고 그녀는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이 회장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맙다.”
더 이상 레이나를 마주하는 일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불러보았다.
“몸조리 잘하거라. ……우리 며느리.”
며느리라는 표현에 그녀는 한 방 맞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
작은 다툼이 있었다.
임신 소식을 한해의 어머니에게 알리는 방법을 놓고 둘의 의견이 달랐다.
그냥 전화로 말씀드리자는 한해에게 수진은 몹시 서운해했다.
“그런 얘기를 어떻게 전화로 해? 이럴 때 오랜만에 얼굴 뵙고 인사드리는 거지.”
“거기까지 또 언제 내려가.”
“차 타고 몇 시간만 가면 되는데? 무슨 외국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
“주말에는 좀 쉬어야지.”
“여행 간다는 생각으로 갔다 오면 되잖아?”
“아니 아들인 내가 괜찮다는데 왜…….”
언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서로 깨닫고 대화를 중단했다.
수진은 얼음을 넣어 차갑게 식힌 차를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한해는 잠시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오해는 빨리 풀수록 쉽고 화해도 마찬가지지.
그는 정원으로 나가 수진 옆에 앉았다.
“서운하게 했다면 미안해.”
“내가 서운한 건 알아?”
“알겠는데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다.”
“내 입으로 말하긴 참 그런데…… 난 엄마가 없잖아.”
딱 거기까지만 말했는데도 한해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그녀의 속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머니를 더 자주 뵙고 싶어. 이런 좋은 소식도 만나서 자랑하고 싶고, 축하도 직접 받고 싶고…… 그런 마음이었어.”
꽤나 서운했는지, 말을 하면서 그녀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미안해, 수진아. 이제 이해했어.”
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서 무릎 위에 앉혔다.
“난 그저 널 편하게 해주려고 그랬던 것뿐이야. 시어머니 만나는 일은 좋아하는 며느리는 많지 않으니까.”
“내가 그 희귀한 부류라는 사실을 이제 기억해둬.”
“기억 버튼을 눌러야겠다.”
한해는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꾹 눌렀다.
말이 나온 김에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곧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래. 안 그래도 너희들이 한번 올 것 같았다.”
그녀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
.
.
수진의 말대로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길을 떠났다.
각자 좋아하는 노래들을 틀면서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한테 그 얘기도 할 거야?”
수진이 ‘그 얘기’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한해는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좋은 일도 아닌데. 아빠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만 남겨드리고 싶어.”
“응. 나라도 그럴 것 같아.”
그들은 목적지로 곧장 가지 않고 예쁜 해안 카페들이 모여 있는 명소에 들러 시폰 케이크와 커피를 즐기고, 계곡 사이에 만들어 놓은 휴게소에 들러 인생 셀카 포인트에서 사진도 찍었다.
경치가 시원한 휴게소 나무 벤치에 앉아 스티커로 사진을 꾸미던 중에 수진이 물었다.
“아까 우리 싸운 거야?”
“그 정도면 싸운 거라고 쳐야겠지?”
“그럼 우리의 첫 싸움이네.”
“그런 것도 기억하려고?”
“응. 첫 싸움치고는 아주 잘 싸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싸움도 잘 싸우고 못 싸우고가 있냐?”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휴전을 갖고 적절하게 화해했잖아.”
한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은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리 앞으로 또 싸울 일이 생기면 아까처럼만 싸우자.”
그 말이 참 듣기 좋아서 한해는 빙긋이 웃었다.
“그래. 딱 그만큼만.”
.
.
.
어머니에게 도착한 건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그녀는 함께 사는 무당들끼리 저녁을 차려 먹으라고 하고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 집이 고기가 아주 맛있어.”
그녀가 집게를 들자 수진이 손을 저었다.
“제가 구울게요, 어머니.”
“아니다. 멀리서 내려왔는데 내가 해주고 싶어.”
평상복을 입고 아들 여자 친구에게 고기를 구워주는 모습에서 만신의 위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한해를 보며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완전히 회복했구나.”
병원에 문병 갔을 때 이후로 아들을 처음 보는 자리였다.
“네. 불편한 데는 없어요.”
한해는 이 회장과의 재판 소식부터 전해주었다.
어머니는 형량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늘그막에 쓴맛을 좀 보면 사람이 달라지려나.”
“네. 벌써 눈빛도 바뀐 것 같더라고요.”
한해와 대화를 나누던 그녀는 무심한 시선을 수진에게로 향했다.
“재판 얘기하러 온 건 아니잖아? 좋은 소식이 있는 것 같은데?”
수진은 소름이 쫙 끼쳤다. 설마 임신 사실까지 벌써…….
“뭘 그리 놀라니, 수진아. 넌 아마 태몽도 안 꾸고 임신을 했을 거야.”
맞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태몽은 없었다.
“내가 대신 꿨거든. 가족이 태몽을 대신 꾸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
수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무슨 내용인지 말씀해주세요. 너무 궁금해요.”
그녀는 고기를 굽던 집게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