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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뺏겠습니다-85화 (85/92)

85화

호영이 보여준 사진에는 며칠 전의 거래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멀리 높은 곳에서 망원렌즈로 당겨 찍은 각도로.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 안에 담긴 현금을 호영에게 보여주는 이 회장의 모습은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만큼 충분히 선명했다.

그 사진 말고도 그날 이 회장과 호영의 모습이 여러 장 찍혀 있었다.

“저희 직원을 시켜 동호대교 옆 강변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호영은 차분하게 사진의 출처를 설명했다.

“저도 살길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회장님을 믿지 못하고 이런 조치를 취한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지금 회장님의 태도를 보니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미안해할 필요도 없군요.”

이 회장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사진까지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하지만 법정에서 저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다면…… 저를 돈으로 포섭하고 재판을 조작하려고 시도했다는 혐의까지 추가될 겁니다.”

호영은 침착하게 경고한 뒤 먼저 자리를 떴다.

이 회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끝났다. 이젠 정말 끝났어.

오랜만에 맛보는 완벽한 절망감이었다.

*

오늘은 매우 특별한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신랑 신부는 둘 다 두 번째 결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고 50년이 넘는 세월을 알고 지냈다.

결혼식의 사회와 신부의 들러리를 맡은 남녀 역시 곧 결혼을 앞둔 한 쌍이었다.

장소도 특별했다. 외국에서 크루즈 선을 대여해 결혼식장으로 꾸몄다. 하객들은 항구로 와서 거대한 배에 올랐고, 원하는 하객은 모두 그곳에서 하룻밤 잘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사회를 맡은 한해와 신부의 들러리를 맡은 수진도 크루즈에서 잘 예정이었다.

럭셔리의 끝을 달리는 이벤트임에도 불구하고 하객은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아직 식을 시작하기 전, 한해는 대기실에서 수진과 나란히 앉아 메이크업을 받았다.

웨딩업체 소속 직원들이 마무리를 해주며 감탄했다.

“와아. 두 분 비주얼 정말 엄청나시네요.”

한해는 오랜만에 타이까지 갖춘 블랙 슈트를 갖춰 입었고 수진은 단아한 화이트 드레스 차림이었다.

둘도 얼마 안 있어 결혼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직원들이 더욱 흥분했다.

“그냥 지금 이 차림으로 두 분 결혼하셔도 되겠다.”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진은 거울로 직원과 눈을 마주치고 싱긋 웃어 보였다.

“우리 들러리님 머리에 티아라 하나 얹으면 너무 예쁠 것 같아.”

직원은 소품 가방에서 꺼낸 티아라를 수진의 머리 위에 올렸다.

맙소사…… 한해는 탄성을 내지를 뻔했다.

웨딩드레스를 따로 입지 않아도 그녀는 고혹적인 신부의 모습 그 자체였다.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

하지만 수진은 머리에 얹힌 티아라를 내려놓았다.

“이건 아닌 건 같아요.”

“왜요? 너무 아름다우신데?”

“티아라는 신부의 상징이잖아요. 예쁜 건 오늘의 주인공에게 다 몰아주세요.”

“어머, 마음씨도 고우셔라. 우리 남자 분은 어디서 이렇게 훌륭한 여자 친구를 만나셨대요?”

한해는 속으로 대답했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요. 오늘의 신랑 신부처럼 우리도 첫사랑이었죠.

메이크업을 마무리한 둘은 각자 신랑과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수진을 본 숙희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상에 어쩜 이리 고울까!”

그녀는 수진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어머니도 너무 아름다우세요.”

전에 몇 번 만났을 때는 사장님이나 아주머니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별 생각 없이 어머니라는 호칭이 나왔다.

“너무 좋다. 그 말.”

숙희는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좋아했다.

“내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수진이를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별 말씀을요. 이제 괜찮으실 거예요.”

“괜찮을 리가. 이렇게 예쁜 수진이가 나의 들러리였다는 기억도 사라지겠지.”

숙희는 자기가 입은 웨딩드레스와 대기실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결혼식을 했다는 사실도, 어쩌면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도 기억 못 하는 날이 올 지도 몰라.”

“어머니…….”

“괜찮아. 인생은 어차피 유한하고 여러 종류의 끝이 차례로 다가오니까. 나는 남들보다 기억의 끝을 조금 빨리 맞이하는 것뿐이야.”

“제가 자주 뵙고 계속 기억하게 해드릴게요.”

“말도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해.”

숙희는 수진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마음껏 사랑해. 망설이지 말고 사랑해. 지금 사랑해.”

지금 사랑해.

그 말이 수진의 귀에 잔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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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씨는 멋들어진 턱시도 차림으로 대기실에 서 있었다. 사회를 볼 준비를 마치고 들른 한해와 씩씩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결국 이런 날이 왔군요.”

한해는 자기 결혼식도 아닌데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기억나나 한해군? 우리가 같이 배를 탔던 시절.”

사토시는 대기실 창문 밖으로 푸른 바다를 응시했다.

“그때 우린 둘 다 혼자였고 외로웠는데.”

“선생님을 안 만났더라면 전 지금도 혼자였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은 내가 하려고 했는데.”

깊고 오랜 포옹을 나누는 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아버지와 아들 같았다.

“자네한테 조금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네. 지금 수진이하고 살고 있는 그 집, 결혼 선물로 줄까 해.”

한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세요. 이미 저는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선물이야. 그러니 받도록 해.”

한해가 한 번 더 만류하려고 하는데 노트 소리와 함께 대기실 문이 열렸다.

“사회자 님. 리허설 한번 하실까요?”

웨딩 업체 직원이 한해를 찾고 있었다.

“잘 부탁하네.”

사토시는 한해의 손을 잡고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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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잔잔한 바다처럼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예식 순서는 주례사가 없는 것만 빼면 보통 결혼식과 똑같았다.

주례가 없는 대신 신랑과 신부가 각자에게 한 마디씩 하는 순서가 있었다.

“아이고. 나 이런 거 처음 해보는데 너무 떨리네.”

먼저 신부 차례였다. 숙희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잡고 바들바들 떨었다.

“결혼을 하는데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면…… 저는 가장 자격이 없는 신부예요.”

솔직한 언어와 억양이 크루즈 선의 이벤트 홀에 울려 퍼졌다.

“보시다시피 나이도 많고,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했고, 얘기 들으셨겠지만 치매가 진행 중이에요. 이렇게 멋진 모습을…….”

숙희는 수많은 꽃들로 거대한 화원처럼 꾸민 식장을 둘러보았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사토시가 특별히 준비한 장관이었다.

“이렇게 멋진 모습을 하나도 기억 못 할 수도 있어요. 며칠 전에 만났던 사람도 깜박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 오늘 저와 인사하고 다음에 제가 기억을 못 한다고 해도 서운해하지 마세요. 제 탓이에요.”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이렇게 결혼을 할 자격도 없고 상황도 안 되는데…….”

그녀의 시선이 옆에 선 사토시를 향했다.

“이 사람이 저를 기다렸다고 하네요. 참 이해가 안 가죠. 이렇게 부자에 잘생기고…… 멋있는 분이 왜 저를 기다렸을까요. 수십 년 동안 남의 아내로 살았던 저를.”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동안 말 못 했던 비밀을 이제야 말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도…….”

비밀이라는 말에 사토시가 바짝 긴장했다. 숙희는 용기 내어 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을 기다렸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젖어들었고, 하객들도 돌연 숙연해졌다.

“평생을 기다렸어요. 처음부터 당신을 선택하지 못한 일을 평생 후회하며 살았어요.”

들러리로서 곁에 서 있던 수진의 눈이 촉촉해졌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 뻔했지. 그랬다면…… 나도 평생 기다렸을까?

들러리 주제에 화장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당신의 아내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예상 못했던 그녀의 고백을 받은 사토시는 잠시 얼어 있었다. 보다 못한 한해가 끼어들었다.

“정말 감동적인 신부의 한마디였습니다. 신랑께서 화답을 해주셔야 할 텐데 설마 울고 계신 건 아니죠?”

사토시는 몇 번이나 입술을 물었다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결혼식 날이어서 의례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날이어서 그렇습니다.”

신부는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고 신랑은 눈을 떼지 못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이번 생과는 다른 선택을 할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타임머신이 없고 이미 인생은 뒤안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겠습니다. 조금 늦게 제 아내가 된 이 여자와 함께요.”

그는 숙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막 터져 나온 사람들의 박수를 한해가 막았다.

“잠깐만요. 키스 타임은 축가를 듣고 난 다음에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신랑님이 너무 급하셨나 봐요.”

하객들의 웃음 속에서 한해는 축가를 불러줄 가수를 소개했다. 레오와 소월이었다.

그들은 신랑과 신부의 나이를 고려한 두 곡의 노래를 이어 불렀다. 플래터스의 ‘온리 유’와 양희은의 ‘당신만 있어준다면’.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걸.”

소월과 레오가 한 소절씩 이어서 불렀다.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코러스는 함께 화음을 만들어 불렀다.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람 없어요. 당신만 있어 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준다면.”

노래가 끝나고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한해는 키스의 지휘자로 나섰다.

“자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결혼의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먼 길을 온 하객 여러분들 앞에서 신랑 신부는 키스로 사랑을 증명해주세요.”

신랑과 신부가 수줍게 키스를 시작했고 예식 내내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와 함성이 이어졌다.

흐뭇하게 지켜보던 한해의 시선은 신부 곁에 선 수진에게 향했다. 그녀 역시 한해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눈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키스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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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나고 선상에서 피로연이 이어졌다.

최고급 요리와 술이 잔뜩 준비되어 있었고 하객들은 크루즈 곳곳을 누비며 마음에 드는 곳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실내에서 식사를 마친 하객 대부분은 갑판으로 나가 바다를 보며 샴페인을 즐겼다.

한해와 수진, 그리고 소월과 레오도 함께 샴페인을 마셨다.

“정말 이렇게 낭만적인 결혼식은 처음 봤어요.”

소월은 감동적인 영화를 본 관객의 표정이었다.

“배에서 결혼식 하는 게 꿈이었는데.”

황홀에 젖은 그녀의 허리를 레오가 박력 넘치게 휘감았다.

“그 꿈 내가 이뤄준다.”

한해와 수진도 미소를 잃을 새가 없었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 캔버스 위로 하얀 구름과 갈매기들이 어우러졌다.

완벽한 풍경만큼 완벽한 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레이나 언니도 왔다면 좋았을 텐데.”

소월이 별 생각 없이 말했고 레오도 맞장구를 쳤다.

둘 다 이태화 회장 문제로 두 커플 사이가 어색해졌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누나랑 강이 형한테 늦게라도 오라고 할까요? 실례가 되려나?”

레오가 물었다.

수진은 못 들은 척 슬쩍 고개를 돌렸는데 오히려 한해가 대답했다.

“그래. 바쁠까 봐 연락 안 했는데 지금 전화해볼까?”

그는 오히려 잘됐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문제를 회피하는 일은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지금쯤 강은 아마도 이 회장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거다. 선처는 없다는 한해의 입장을.

강은 두어 번 벨이 울린 뒤에 전화를 받았다. 한해는 일부러 쾌활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 몇 번 이야기했던 우리 회사 대표님이 오늘 결혼을 하셨어. 크루즈를 빌려서 파티를 하는데 레이나 씨하고 잠깐 들를래? 원한다면 남은 객실에서 하룻밤 자고 가도 좋고.”

강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연락해줘서 고마워. 형도 짐작하겠지만 내가 지금 형하고 편하게 어울릴 기분이 아니어서 말이지.”

“그래. 당연하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들었어.”

“회장님이 많이 힘들어하시지?”

“그저께 뵈었는데…… 이렇게 멘탈이 무너진 모습은 처음이었어.”

“미안하다.”

“아냐. 형을 원망하지 않아. 다만……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무엇을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인지 한해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다시 웃는 얼굴로 잔을 들고, 떠들고 장난치고, 이렇게 멋진 배에서 파티도 즐기기 위해서는 세월이라고 부를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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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말. 늘 네가 나에게 하던 말이었지. 내가 수진이에게 자주 하던 말이기도 하고.

그 말은 정말 좋아하는 대상에게 하는 말인가 봐.

기다리겠다는 한해의 말을 되뇌며 강은 레이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한해 씨?”

“응.”

“뭐라고 해?”

그는 레이나에게 통화 내용을 간단히 말해준 다음 물었다.

“크루즈 파티에 가고 싶어?”

“아니. 난 오빠랑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싶어.”

“넌 어쩜…….”

강은 레이나를 품에 안았다. 시간이 정지한 듯 둘은 움직이지 않고 서로의 체온과 박동을 나누었다.

그것은 일종의 확인이었다. 나는 늘 당신의 편일 거라는 확인.

당신의 운명, 당신의 난처함, 당신의 안타까움 마저 함께 나누고 기다리겠다는 약속.

그리고 언젠가 다시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약속.

그거면 됐다.

“밥 먹으러 가자!”

강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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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마친 한해는 멍하니 서서 강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앞에 있다면 포옹이라도 해줬을 텐데.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을 텐데.

뻣뻣해진 그의 허리를 수진이 감싸안았다. 그녀는 섣부른 위로를 하는 대신 그저 토닥여주었다.

그들에게 야화 작가가 다가왔다.

“이렇게 멋진 파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사토시 씨는 친구들을 데려와도 좋다고 허락해주었고 수진은 야화 작가를 초대했다.

“작가님. 오셨어요? 아까 못 봤는데.”

“조금 늦었어요. 오늘 병원 근무가 있는 날이라.”

수진과 인사를 나눈 야화 작가는 한해를 보며 목례했다.

“이분이 강한해 씨?”

수진에게 야화 작가와 관련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들어서 알고 있던 한해도 반갑게 인사했다.

“드디어 만나네요. 소설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연재 시작일은 며칠 뒤였지만 예전에 모니터를 부탁하며 수진이 원고를 보여준 적 있었다.

제목도 기억 났다. 티파니를 위하여.

그녀는 한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인공을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신기하네요.”

“주인공이요? 아…… 저희 이야기도 나중에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하셨죠. 수진이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해와 대화를 나누던 야화 작가 어깨를 수진이 톡톡 두드렸다.

“인사해요. 이 두 분이 이번 소설에 주제곡을 불러준 분들이에요.”

수진은 레오와 소월을 인사시켜주었다.

“우와, 작가님을 여기서 뵙다니!”

소월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야화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야화는 소월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하. 소월 씨는 이런 캐릭터구나. 큐트 앤 러블리.”

옆에서 듣고 있던 레오가 끼어들었다.

“저희도 작가님 다음 소설에 등장하나요?”

“그럼요. 꽤나 중요한 역할로 나올 것 같은데요. 허락해주신다면요.”

“당연히 허락하죠.”

야화는 두 커플 모두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파티에서 네 분의 모습을 제가 카메라에 담아도 괜찮을까요? 일종의 취재랄까요.”

수진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이들도 동의했다. 소월은 꾸벅 인사까지 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네 명이 모여 포즈를 취한 사진부터 찍는 순간, 펑- 소리와 함께 선상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와! 진짜 끝내준다.”

소월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멀리 서쪽하늘에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선홍빛 스펙트럼이 반짝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광경을 캔버스 삼아 형형색색의 불꽃이 피고 졌다.

소월과 레오를 비롯한 하객들은 난간으로 몰려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한해와 수진 커플은 서로를 꼭 안고 눈과 귀로 이 순간의 감격을 가득 담았다.

“언젠가 정말 우리 이야기가 소설로 만들어진다면 이 장면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그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적절하네. 나도 같은 생각. 그래도 키스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는 흥분으로 가득한 불꽃놀이 앞에서 그녀에게 키스했다.

황홀한 감각에 녹아들면서, 그녀는 훗날 자신이 등장할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소설은 끝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사랑은 계속되겠지.

“사랑해.”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귀에 속삭이고, 또 속삭이고, 귀한 얼굴을 감싸고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불꽃놀이를 잠시 구경하다가 몸을 돌린 야화 작가는 두 주인공의 키스신을 목격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둘의 모습을 담았다.

아, 완벽하게 아름답다.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거야!

찰칵. 해피엔딩을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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