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뺏겠습니다-80화 (80/92)

80화

한해와 수진은 입원 후 처음으로 한 침대에서 꼭 안고 잠을 잤다.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날 밤의 온도는 그랬다.

다음 날, 반가운 손님이 병실을 찾아왔다.

“걱정했던 것보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레오는 한해를 보며 감탄했다. 뉴스에 나올 정도로 끔찍한 습격을 당한 사람치고는 정말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이었으니까.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한해는 레오를 보며 웃어주었다.

레오는 소월과 좋은 한 쌍으로 보였다. 함께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팀인 것과 별개로 천생연분처럼 잘 어울렸다.

“편하게 말 놓으세요, 형님.”

성격은 얼마나 좋은지, 한해는 동생뻘 되는 레오가 마음에 쏙 들었다.

수진은 소월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안 그래도 보름 내내 둘이 붙어 있어서 지겨워질 판이었는데.”

“대단하세요. 그동안 계속 병실에서 같이 지내신 거예요?”

“이번 주엔 출근했어요. 잠만 여기서 자고.”

“와아. 진짜 엄청난 사랑이다!”

소월은 한해를 보며 장난을 걸었다.

“오빠 수진 언니한테 평생 잘해야 해요.”

“소월 양이나 레오한테 잘해주시지?”

한해의 말에 레오가 환호했다.

“형님은 사랑입니다!”

한때 서로에게 질투의 대상이었던 넷은 머리를 맞대고 치킨을 먹었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여물지 않은 한해는 한 조각만 슬쩍.

“안 그래도 소월 씨 따로 한번 보려고 했는데.”

수진의 말에 소월이 눈을 반짝였다.

“왜요, 언니? 술 사주시려고?”

“하하. 그것도 콜. 사실은 일 때문에.”

닭 날개를 정성스럽게 발라먹던 레오도 수진에게 귀를 기울였다.

“드라마를 새로 기획 중인데 그 원작 소설을 다음 달부터 연재해요. 플랫폼 측과 상의 중인데 요즘 웹툰도 OST를 쓰곤 하잖아요.”

“네. 그건 알아요.”

“그래서 소설에도 한번 시도해볼까 해서.”

“와! 멋지다!”

소월이 감탄했다.

“그 곡을 두 분께 부탁드려볼까 싶었어요.”

“저희는 완전 땡큐죠! 소설부터 읽어봐야겠다!”

레오도 신이 났다.

“그래요. 일단 소설을 읽어봐야 감이 잡힐 테니까. 기본적으로 로맨스가 얽힌 정치 스릴러에요.”

“언니. 나 그런 거 완전 좋아하잖아요.”

소월이 수진의 팔짱을 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한해는 따뜻한 그림을 감상하는 전시회의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행복한 시간. 늘 이랬으면 좋겠어. 그동안 내 인생은 고독과 고난의 연속이었으니.

강이 녀석하고 레이나 씨도 함께 있다면 더 즐겁겠지?

그 생각을 떠올린 한해는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이태화 회장을 무너뜨린다면? 그래도 강은 친구로서 동생으로서 내 곁에 함께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이 또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의 원수가 되는 일이구나.

그는 삶의 아이러니 앞에 막막해졌다.

“몸 안 좋아요?”

수진의 목소리에 한해는 정신을 차렸다.

“아냐. 딴생각하느라.”

그의 머릿속에 뭐가 있는 지 짐작할 수 있었던 수진은 캐묻지 않고 한해의 등을 쓸어주었다.

“난 지금 확실히 깨달았어.”

레오의 유쾌한 음성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병원 1인실이야말로 치킨을 먹기 가장 좋은 장소라는걸!”

그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맥주가 없어 아쉬워하면서.

“퇴원하면 우리 밖에서 치킨 꼭 먹자. 배가 터질 때까지 맥주도 마시면서.”

닭다리 하나에 만족해야 했던 한해의 절절한 바람이었다.

불쌍한데 작은 조각 하나 더 줄까?

수진이 치킨박스에 손을 뻗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등장한 사람은 절대 이 분위기에 어우러질 수 없는 존재. 이태화 회장이었다.

칼같이 주름 잡힌 슈트를 입은 변호사를 둘이나 양옆에 대동하고.

이 회장을 본 한해는 드넓은 초원에서 천적을 마주친 맹수처럼 본능적인 긴장에 휩싸였다.

그가 누군지 모르는 레오와 소월은 어리둥절해졌지만, 이 회장은 태연하게 물었다. 병실 안에서 벌어지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에도 불구하고.

“아, 한해 군. 식사 중이었군. 잠시 뒤에 올까?”

한해는 시계를 확인했다.

원래 오겠다고 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이른 시간이긴 했다.

“많이 일찍 오셨네요.”

“늦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니 이렇게 결례를 저지른 셈이 됐네.”

이 회장은 세상에서 제일 매너 좋은 신사처럼 푸근하게 미소를 띠었다.

수진은 가볍게 목례를 했고, 이 회장도 눈인사로 받아주었다.

“손님이 오실 줄 몰랐네요.”

레오가 서둘러 치킨 박스를 치우기 시작했다.

“미안해할 건 없고. 저쪽에서 일찍 도착한 거니까.”

한해가 노려보자 이 회장은 머쓱해져서 중얼거렸다.

“마저 식사하게. 잠시 뒤에 다시 오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한 소월이 레오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아닙니다. 다 먹었습니다.”

한해는 이 회장을 돌려보낼까 하다가 놔두었다.

금방 떠날 준비를 마친 레오와 소월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퇴원하고 봐요,”

소월은 수진과 가볍게 포옹했고 레오와 한해는 악수를 나누었다.

그들은 문 앞에 서 있는 이 회장 일행과 어색하게 인사하고 병실을 나갔다.

이 회장의 시선이 수진에게 머물렀다.

“오랜만이다, 수진아.”

수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부모의 원수일지도 모르는 인간에겐 목례 한 번만도 과분하다는 생각에.

이 회장은 한해에게 다가갔다. 두 남자는 숨겨진 힘을 가늠하듯 서로를 응시했다.

“강한해 군. 이제야 자네를 만났군. 15년 만에.”

“오랜만입니다. 제가 몸 상태가 이래서 어르신에게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리는 점 양해해주십시오. 어떤 미친놈이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회장은 민망해서 이를 꽉 물었고 한해는 이런 불편한 긴장을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아주 특이한 분하고 인연을 맺었던데?”

이 회장은 사토시를 겨냥했다.

“저도 얘기 들었습니다. 두 분이 맛있는 커피를 드셨다고.”

그날 일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십니까? 법무법인 대서양의 변호사 김태현입니다.”

무테안경 속에 날카로운 눈빛을 숨긴 남자가 한해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저는 신영철 변호사입니다.”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가르마 탄 남자도 자신을 소개했다.

수진은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꼈다.

대기업 회장과 호위무사들인가?

한해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사실 저 기대했어요. 회장님 말씀대로 15년 만의 재회니까. 그런데 우리 회장님이 뭔가 큰 착각을 하신 것 같네.”

“착각이라니?”

“사람을 칼로 쑤셔서 이 꼴을 만들어놓으셨으면 말이에요. 먼저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회장이 당황한 건 물론이고, 업무용 미소를 장착하고 있던 변호사들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내용에는 단단한 뼈가 있었지만 말투는 느긋해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아주 그냥 양쪽에 변호사 하나씩 딱 끼고 오셨어요? 머릿속엔 오직 합의할 생각밖엔 없는 거죠?”

“한해 군. 그게 아니라…….”

한해는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이 회장이 궁색해져서 말을 흐렸다.

“그게 아니면 뭐죠?”

가만히 듣고 있던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강한해 씨.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저희 의뢰인께서는 진심으로 강한해 씨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본인의 사과만으로 부족할까 봐 저희를 데리고 온 겁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보상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하. 그럼 오늘 합의 얘기는 안 하겠다 이거죠? 사과와 보상 문제만 이야기하겠다?”

변호사들도 궁지에 몰렸다.

“좋습니다. 그럼 한번 제대로 사과해보세요. 출근길에 칼에 맞아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사과가 뭔지 궁금하네요.”

한해는 가볍게 팔짱을 꼈다.

이 회장은 입술이 터질 듯 힘줘 닫은 채 한해 앞에 섰다.

“미안하네, 한해 군. 내가 어리석었어.”

그는 하얗게 센 머리를 명치까지 굽혔다.

“왜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하십니까?”

한해는 나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회장은 주먹을 꽉 쥐고 모욕감을 참는 중이었다.

“당신이 어리석어서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잖아요.”

변호사들도 끼어들지 못했다.

“술 마시고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괜히 술 핑계 대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뭘 몰라서 그랬던 것처럼 어리석었다느니 하는 이야기 다시 내 앞에서 꺼내면 합의는 없습니다.”

당황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 회장을 보다가 한해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휴. 가요.”

“응? 뭐라고?”

“가시라구요. 그냥.”

지켜보던 수진조차 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인 ‘무례’를 최대한 펼치고 있었다. 당장 이용할 수 있는 무기가 그것뿐이니까. 아니면 이 회장의 감정을 동요시켜 그의 실수를 유도하는 걸까?

“사과할 기회는 하루에 한 번. 다음에 다시 와서 제대로 하세요. 연습을 하시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한해는 문 앞에서 질려 있는 변호사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분들하고 연습하면 되겠네.”

“한해 군…….”

이 회장이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한해는 발로 그를 밀어버렸다.

“아이쿠!”

이 회장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놀란 변호사들이 잡아 일으켰다.

한해는 침대 아래 늘어뜨린 발을 까닥까닥 흔들며 물었다.

“변호사님들. 날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몸에 손대려는 걸 본능적으로 막아도 폭행입니까?”

이 회장의 팔을 양쪽에 잡고 있던 변호사 둘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궁금해서 그래. 대답해봐요.”

이 회장은 괜찮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해 군. 아직 화가 안 풀린 거 이해하네.”

한해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재미있네요. 뭘 이해해, 당신이.”

그는 손가락을 까닥거려 이 회장을 불렀다.

누가 봐도 눈을 의심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재계 서열에 오르내리는 재벌 회장이 새파란 청년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있다.

이 회장은 벌 받는 노예마냥 한해 앞에 가서 섰다.

변호사들은 또 무슨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정말로 당신이 내 심정을 이해하려면.”

한해는 침대 옆에 있던 리모컨을 집더니 이 회장의 옆구리를 확 찌르는 척했다.

깜짝 놀란 이 회장이 또 휘청 넘어질 뻔했고 이번에는 한해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옆구리에 칼이 팍 꽂혀봐야 해. 숨이 딱 막히고. 줄줄 흐르는 피가 얼마나 뜨거운지 느껴봐야 해.”

이 회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변호사분들은 알죠?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한해는 이 회장의 목덜미를 놔주었다.

“제대로 사과하는 연습 좀 한 다음에 다시 오세요.”

이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여미고는 한 번 더 한해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쾌유를 비네.”

한해는 리모컨으로 TV를 켜고 아예 시선을 돌려버렸다.

“다시 오마.”

이 회장과 변호사가 나가려는 순간,

“저한테는 안 미안하세요?”

수진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챘다.

이 회장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하얀 목덜미가 유난히 드러나 보이는 니트를 입은 수진은 옹골찬 음성으로 물었다.

“제 삶을 망친 일에 대해서는 사과 안 하세요?”

“수진아…….”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 된 일은요?”

한해의 기세에 놀란 변호사들은 또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완전히 얼이 빠졌다.

“한해 오빠한테 고작 십분 모욕을 당하니 분한가요? 평생 당신 손아귀에서 숨 막혔던 저는 어땠을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는 촛불이 아니라 곧게 뻗은 레이저였다.

“사과해. 직접.”

이 회장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그녀 앞에 고개 숙였다.

“미안하다, 수진아.”

그제야 그는 병실에서 나갈 수 있었다.

복도로 나온 이 회장은 분노를 걷어차며 걸었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무테안경을 쓴 변호사가 따라가며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저 청년 보통이 아닌데요?”

포마드를 잔뜩 바른 변호사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야 이 새끼야!”

이 회장이 그의 멱살을 잡고 벽에 밀어붙였다.

“닥쳐. 그냥 한마디도 말하지 마!”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그들을 쳐다봤지만 이 회장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알았어, 이 새끼야?”

목이 졸린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 회장은 멱살을 풀어주었다.

분노를 연료 삼은 그의 발걸음은 다시 복도를 박차고 빨라졌다.

사토시가 인생 최악의 위협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핏덩이 꼬맹이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컸을까?

그리고 수진이는? 늘 두려움에 고삐가 채워져 있던 아이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

.

.

겨울밤은 고요했다. 불 꺼진 병실 창밖으로는 그저 막막한 어둠뿐이었다.

어제 한 침대에서 꼭 붙어 잤던 한해와 수진은 여느 때처럼 환자 병상과 보호자 침대에서 각자 잠을 청했다.

족히 한 시간을 뒤척였지만 한해는 좀처럼 잠의 꼬리를 잡지 못했다.

“잠이 안 와?”

어둠 건너편에서 수진이 물었다.

“응. 너도 그런가 보네.”

“나도 그래. 아무래도 아까 일이 신경 쓰여서.”

한해는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그렇지.”

“오빠가 일부러 그런 거 알고 있어. 이 회장을 흔들어보려고.”

“알아챘구나. 그건 그런데…… 역시 강이 때문에.”

캄캄한 침묵 끝에 한해가 중얼거렸다.

“어쨌든 강이 아버지잖아.”

“나는 늘 궁금했어. 한해 오빠에게 강이 오빠는 어떤 존재일까?”

그 역시 여러 번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어릴 때는 강이가 신기하고 부러웠어.”

“부러워했다고? 오빠가 강이 오빠를?”

“응. 강이의 격렬함이 부러웠어. 난 늘 애늙은이처럼 덤덤한데 강이는 뜨겁거나 차갑거나…… 나보다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정말 의외다. 난 강이 오빠가 질투하는 모습만 봐서.”

“그건 너 때문이었겠지.”

“지금은 어떤데?”

“친구. 둘도 없는 친구.”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사회생활도 최근에야 시작한 한해에겐 충분히 그럴 법한 일.

“속상하겠다. 친구의 아빠에게 그럴 수밖에 없어서.”

“이제 그분한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용서해주겠다는 뜻?”

“나에 대해서는. 그러나 만약 이 회장이 우리 부모님을 그렇게 했다면…… 용서할 수 없겠지.”

“그걸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낫는 대로 내려가 보려고. 우리의 시작이었던 그곳에 답이 있겠지.”

“그래 오빠. 같이 가자. 우린 같은 처지니까.”

한해는 잠시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서서히 잠기운이 잠긴다 싶을 때쯤 바닥을 스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의 침대에 올라온 그녀는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따뜻하다. 온기뿐일까? 체취는 달콤하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지만 그는 웃음기를 빼고 일부러 더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진수진. 너 뭐하냐?”

“같은 처지니까 같은 침대에서 자려고.”

“안 불편해?”

“나는 괜찮은데. 오빠 불편해?”불편하다고 하면 가버릴 것 같고, 안 불편하다고 하면 이 상황을 너무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테고.

“3초 안에 대답 안하면 다시 내 침대로 가고.”

그녀는 짓궂게도 그의 귀에 속삭였다.

“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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