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몇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의사가 수진을 찾아왔다.
“수술 끝났습니다. 강한해 씨는 회복실로 옮겼어요.”
수술이 잘 끝났느냐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냐는 질문이 바로 나와야 하는데 그 당연한 질문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어릴 때 바다에 나갔던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토록 빌었는데도 신은 그녀를 외면했으니까.
겨우 입을 열고 기도의 결과를 확인했다.
“상태는 어때요? 수술은 잘되었나요?”
그녀는 맞잡은 손에 손가락이 부러질 듯 힘을 주었다.
“칼이 워낙 깊이 들어와 장기들이 다쳤어요.”
꽉 다문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 와중에 다행이도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왔고, 또 헌혈자도 구해서…… 생명에는 지장 없을 겁니다.”
“하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 짧은 말만 들어도 숨통이 탁 트였다.
그녀에게 좀처럼 행운이라는 선물을 내어주지 않던 신이 이제야 행운을 허락해주었다.
너무 오래 불운에 익숙해져 있다가 놀란 탓일까. 그녀는 아찔한 감격에 몸을 휘청거렸다.
놀란 의사가 그녀를 잡아주었다.
“괜찮으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거듭 인사를 하고 회복실로 향했다.
한해는 인공호흡장치를 낀 채 누워 있었다.
복부 전체를 칭칭 감은 붕대가 그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려주었다.
고통과 공포가 전이되어 입술을 꽉 물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한해의 손을 잡았다.
“오빠.”
이토록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러본 건 처음.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자고 있을 때도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 반응하던 그였는데.
손을 잡고 이름을 불러도 일어나지 못해.
수진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절망감에 무릎을 꿇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괜찮아질 거야. 오빠는 강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가 곁에 있을 테니까.”
그 다음 말부터는 입 밖으로 내어선 안 될 것 같아 속으로 삼켰다.
오빠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내가 오빠의 손과 발이 되어줄 거야.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해도 내가 오빠를 먹여 살릴 거야. 평생.
그녀는 한해의 손을 자신의 뺨에 대고 온기를 전했다. 그런데 오히려 온기를 받은 사람은 그녀였다.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히려 그녀가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이제 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구나.
수술실에 함께 들어가서 피를 나눠주었던 강도 회복실을 찾았다.
“형은 좀 어때?”
그는 다급하게 한해의 상태를 살폈다.
“살아 있어. 그게 중요해. 왜냐면…… 살아만 있다면 형은 다시 일어날 테니까.”
그는 수진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한해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고마워, 오빠.”
수진은 백번 감사를 표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뭐가 고마워. 말했잖아. 빚을 갚은 거라고.”
강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차마 꺼낼 수 없는 위험한 생각이 풍선처럼 부풀고 있었다.
만약 이 끔찍한 범행이 아버지의 소행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병실에 오래 있는 것조차 불편했다.
어쩌면 난 여기 있을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
그는 한해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형은 나를 용서할 수 있겠어?
나는 나의 더러운 피를 용서할 수 있을까?
.
.
.
강은 돌아가고 수진은 남았다.
이제 뒤처리를 할 시간.
-소란 피워서 죄송했습니다. 다들 걱정해주신 덕분에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날린 단체 문자를 수습했다.
제일 먼저 연락 온 사람은 팀장이었다.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남친 회복할 때까지 잘 지켜줘. 메시지를 보자마자 복도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경황없을 텐데 왜 전화했어?”
“아까 제대로 말씀도 못 드리고 뛰쳐나와서 죄송해요.”
“그럴 만한 일이지. 수술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네.”
“아직 의식은 회복 못 하고 있어요.”
“걱정 마. 곧 깨어날 테니.”
팀장과의 짧은 통화 사이에 야화 작가의 문자도 도착했다.
-상담을 못 할 정도로 놀랐어요ㅠ 수술은 잘 끝났어요? 그녀에게도 전화했다.
“작가님.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죄송이라니요. 어쩌다 그런 일이…….”
“아직 수사를 시작 안 해서 모르겠어요. 지금 봐서는 단순 강도 같진 않고요.”
“당연히 그렇죠. 어떤 강도가 아침에 업무 빌딩 주차장에서 강도 짓을 하겠어요? 금품 뺏을 목적이라면 그렇게 못 하죠.”
“오빠가 원한 질 사람이 없는데…….”
“수사를 시작하면 있는 수진 씨가 아는 대로 다 말해주세요. 혹시 정서적으로 힘들거나 불안할 때면 언제든 연락해주시고요.”
그녀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전화를 끊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잠시 정신을 추슬렀다.
이렇게 걱정해주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축복받은 삶이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똑바로 정신 차려야지.
레이나의 문자는 조금 달랐다.
-기도할게요. 제게 허락된 행운을 한해 씨와 수진 씨에게 나눠달라고. 이번에는 고마워서가 아니라 기대고 싶어서 전화했다.
“아, 수진 씨!”
레이나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한결 편안해졌다.
“참 신기한 일이죠. 지금 상황에서 레이나 씨가 친구처럼 의지가 되네요.”
“눈물 나게 왜 그래요.”
“아까 강이 오빠 왔다 갔어요.”
“얘기 들었어요. 두 남자야말로 정말 신기한 인연이죠. 오래전에 강이 오빠가 수영 대결을 하다가 익사할 뻔한 적이 있다면서요. 그때 한해 씨가 우리 오빠를 구해줬고 수진 씨가 인공호흡으로 살려냈다고 들었어요.”
“그건 너무 옛날 얘기라서 기억도 희미한걸요.”
“두 분에겐 그럴 수 있겠지만 강이 오빠에게는 가장 강렬한 기억이에요.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셈이죠.”
“은혜라는 표현은 너무 거창하네요. 아이들끼리 장난치다가 생긴 일인데.”
“수진 씨. 저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이미 모든 걸 다해주셨어요.”
“정말 기뻐요. 제가 수진 씨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어서.”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은 소월이었다.
그녀는 유일하게 통화하는 내내 훌쩍인 사람이기도 했다. 오히려 소월이 미안해질 정도로.
“소월 씨.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한해 오빠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소월 씨가 더 잘 알잖아.”
“맞아요. 선장님들이 그랬어요. 한해는 배가 난파해도 끝까지 살아남을 사람이라고.”
“한해 오빠가 깨어나는 대로 알려줄게요. 이제 그만 울고.”
“힘내요, 언니.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고요. 저 야간 근무 많이 해봐서 밤새는 건 자신 있어요. 교대로 병실 봐도 되니까요.”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지인들과 통화를 마친 그녀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한해는 여전히 영원한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수진은 조심스럽게 그의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심장이 뛴다. 그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반드시…….
스스로를 세뇌하듯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당신은 일어날 거야. 반드시.
.
.
.
한해의 피습 사건은 사회면 뉴스 단신으로 보도되었다.
도심 한복판 출근길에서 벌어진 칼부림
직장인 K씨가 출근길 지하주차장에서 흉기를 든 괴한에게 칼에 찔려 위독한 상태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수진의 연락처에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지 않아 메시지를 받지 못했던 사토시는 포털사이트를 보고도 기사의 주인공이 한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는 혀를 끌끌 차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옆에서 뜨개질을 하던 숙희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아무것도.”
숙희에게는 좋은 것들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다. 의사의 조언이기도 했다.
‘의사인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비과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몸은 놀랄 만큼 정신과 기분의 지배를 받습니다. 초기 치매 환자에게도 여유와 긍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최대한 피해야 하고요.’함께 살면서 사토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치매 진행 과정을 늦추는 일이었다.
적당한 운동, 머리와 손을 많이 쓰는 소일거리, 지속적인 대화와 새로운 자극…….
도움이 된다는 것은 가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잘 지내나 모르겠어요.”
부지런히 뜨개질바늘을 놀리던 숙희가 중얼거렸다.
“아이들이라니?”
“그 아이들이요.”
이름을 기억하는 건 그녀에게 무리였다. 그 정도만 해도 사토시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아, 한해랑 수진이?”
“네네. 한해랑 수진이.”
이래놓고선 또 금방 이름을 잊어버릴 테지만.
“오랜만에 목소리나 한번 들어볼까?”
사토시는 한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퇴근했을 저녁 시간이니 괜찮겠다 싶었다.
한참 이어지던 통화대기음이 끊기고 나온 목소리는 수진이었다.
“선생님…….”
“누구지? 수진 씨?”
“네. 저예요.”
“한해는 퇴근했어?”
“선생님.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수진은 차분하게 사건 경위를 전해주었다.
사토시는 몇 번이나 되묻고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숙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알겠어. 내가 다시 연락하지.”
그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음성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무슨 일이에요?”
숙희의 물음에 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잠깐 나갔다와야겠어. 사업상 일 때문에.”
“그래요. 나도 이거 오늘 안에 다 뜰 수 있겠다.”
숙희는 거의 완성된 목도리를 들어 보였다.
“고놈 참 따뜻해 보이네.”
사토시는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집에서 나가면서 한해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이 어딘가?’
.
.
.
이태화 회장은 경영인들 모임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소란 피워서 죄송했습니다. 다들 걱정해주신 덕분에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진이 보낸 단체 문자가 그에게도 도착한 것이었다. 아까 피를 구하는 문자도 받았으니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는 셈이었다.
그는 한해의 얼굴을 떠올리며 손끝으로 차 시트를 두드렸다.
녀석. 죽지는 않았군.
메시지가 떠 있는 액정 화면을 캡처해서 호영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로 보냈다. 만의 하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택한 비밀 메신저였다.
-딱 적당하게 되었군요. 호영에게 답장이 왔다.
이 회장은 어느 선이 적당할지 끝까지 신중하게 고민했다.
아예 죽여버리는 편이 나을지, 아니면 흠씬 두들겨 패주는 정도에서 끝낼지.
호영은 후자를 원했지만 이 회장의 판단은 달랐다. 그 정도는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한해를 자극하는 역효과가 날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예 살인을 저지르는 건…….
그래서 딱 죽기 직전까지 무서운 맛을 보여주라고 주문했다.
이제 제대로 겁을 먹었겠지. 둘이서 붙어 다니면 어떤 꼴이 되는지.
-수사 상황도 가끔 체크해봐. 이 회장이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네. 경찰 쪽에도 제가 심어놓은 정보원이 있습니다. 항시 체크하겠습니다. 이 회장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최고급 세단 뒷자리에만 있는 안마 기능을 실행시켰다.
.
.
.
병원에 도착한 사토시는 한해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보호자 외에 면회는 곤란한 상황.
대신 수진이 복도에서 그를 맞아주었다.
“한해는? 수술은 잘 끝난 건가?”
“네. 수술은 잘되었대요. 그런데 아직 의식이 안 돌아오고 있어요.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출혈도 컸고 장기 손상도 심해서 쇼크가 심하게 왔대요.”
사토시는 눈물이 왈칵 솟았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슬픔이었다.
사토시가 지금까지 본 한해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그 모든 모습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생명력’이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빚더미에 앉은 채 바다로 쫓겨났을 때도, 비린내 나는 선창에서 일할 때도, 폭풍에 배가 뒤집힐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한해는 늘 팔팔하게 살아 있었다.
그런 아이가 배에 구멍이 난 채 누워 있다니.
사토시는 말없이 수진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경찰은?”
“금방 다녀갔어요. 금품을 노린 범행은 아닌 것 같다고 해요.”
“한해 군 주변에 이런 짓을 할 만큼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어?”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수진 씨 전남편은? 강이라고 했나?”
“그이는 오히려 자기가 달려와서 수술대에 누워 한해 오빠를 살려준걸요.”
“돈도 아니고 원한도 아니라면…… 묻지 마 범죄인가?”
“경찰은 그것도 아니래요.”
수진은 한 시간 전에 경찰이 와서 주고 간 사진을 보여주었다.
“주차장하고 빌딩 주변 CCTV 사진들이에요.”
“범행 현장은 안 찍혔고?”
“사각지대가 몇 군데 있는데 하필 거기에서 공격을 당한 모양이에요.”
사토시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사진을 노려보았다.
“이건 계획적인 범행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짐작 가는 사람은 전혀 없다는 말이지…….”
“한해 오빠가 깨어나야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겠죠. 내가 아는 오빠라면 분명히 작은 단서라도 기억해뒀을 거예요.”
“용의자는?”
“범행 추정 시간에 비상구를 통해 빌딩 밖으로 나온 사람이 CCTV에 찍혀 있긴 한데 오토바이 헬멧을 써서 신원 파악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증거는? 칼이나 오토바이 같은.”
“전혀 없대요.”
“더더욱 계획적일 수밖에 없네.”
그는 탐정이라도 된 듯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헬멧을 쓰고 비상구로 올라온다? 생각해 봐. 오토바이 헬멧은 무겁고 시야도 불편한데. 계단을 올라오면서 왜 안 벗었을까?”
“경찰도 그 사람이 제일 미심쩍다고 하긴 했어요.”
사토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람은 하수인에 불과할 거야. 본인이 원한이 있었다면 그렇게 재빨리 치명상만 남기고 재빨리 떠나갈 수 없어. 감정이 실려서 여러 번 찌르게 되고 급소도 빗나가기 마련이지. 도주하면서도 흔적을 남기기 십상이고.”
“그럼 누군가 청부업자라도 썼다는 말씀인가요?”
“내 판단으로는 그렇다네. 그 말은…… 이번에는 경고로 끝났다 하더라도 다음에는…….”
사토시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눈을 감고 누워있는 한해와 불안에 짓눌린 수진을 번갈아 보았다.
“회복되는 상황 봐서 편한 곳으로 옮기도록 하지. 그리고 범죄 위험이 있으니 내가 사설 경비원을 붙여줄게.”
여느 때 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수진은 이를 꾹 물고 있었다.
“다 나을 때까지는 마음 편하게 쉬어야지.”
수진이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과분한 배려를 해주시는데…… 차마 사양을 못 하겠어요.”
“배려라기보다는 사회 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
“네?”
“한 달 뒤에 결혼식인데 그 녀석이 사회를 봐주기로 했거든. 얼른 일어나야지.”
농담처럼 호의를 포장한 사토시의 배려에 수진은 눈물이 맺혔다.
부모와 자식 세대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그녀가 본 한해와 사토시의 관계는 우정이었다.
“그 녀석이 아니었다면 나도 숙희에게 용기 내지 못했을 거야.”
사토시는 다시 한해의 손을 잡아주었다.
“한해가 수진 씨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낸 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은인이기도 하지.”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그래. 그러니 사소한 호의에 너무 감동하지 말라구.”
사토시는 수진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는 떠났다.
그녀는 엘리베이터까지 사토시를 배웅해주려 했지만 그가 만류하는 바람에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오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었나 봐.”
그녀는 한해 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빠를 좋아하고 도와주네.”
그는 한해의 손을 조물조물 주물렀다.
“그런데 이건 오빠가 잊지 말아야 해. 오빠 편인 사람들 중에서 누가 최고인지 말이야.”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느낌으로라도, 온기로라도 내 마음을 알아줘.
기다릴게. 영원의 시간이 걸린다 해도 기다릴게.
그녀는 한해의 이마에 입을 맞춘 채 잠시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