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그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몸은 조건반사에 의해 0.1초 만에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촉촉해진 입술로 그의 입술을 삼켰다.
슬며시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빛나는 햇살이 달콤하고도 아찔했다.
아침부터 이러면…… 어쩌려고.
원래 그녀는 늘 다음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타입이었다. 성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한해와의 키스는 그런 원칙 따위는 까맣게 잊게 만들었다.
뜨거운 입맞춤 중에 그녀는 달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밤에 하는 것보다 아침이 더 위험한 것 같아.”
한해는 꽤나 오래 동안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너는 모르지? 내가 얼마나 많이 참고 있는지.”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아. 우리 이러고 있다간…… 안 되겠어요.”
그녀는 도망치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설령 그와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하나도 없다. 이제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주 조금만 더 신중해지고 싶었다.
이미 지금도 너무 빠르고 뜨거우니까.
이럴 때마다 서운해하거나 조르지 않고 이해해주는 한해가 더욱 고마웠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직감했다.
이 오빠도 사람인데, 인내심이 많이 남아 있진 않을 거야.
하얗게 불타오를 밤 혹은 아침이 그리 멀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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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씻고 아침을 먹고 항구를 한 바퀴 돌며 산책했다.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랗고 아득한 수평선을 하늘과 맞댄 바다 위에는 황금빛 파도가 출렁였다.
항해를 앞둔 오징어잡이 배들은 작은 태양들을 줄줄이 달고 출항 채비를 마쳤고 갈매기들은 저공비행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수진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 코로 들어오는 비린내에서까지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이러려고 막 오고 싶었나 봐.”
한해는 수진의 혼잣말을 놓치지 않았다.
“나도 너무 좋다.”
“다 잘되겠죠?”
“응. 우리도. 다른 사람들도.”
원래는 바로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었는데, 수진이 새로운 계획을 제안했다.
“말 나온 김에 어머님을 뵙고 가는 건 어때요?”
“그게 말이야.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꽤나 유명해져서 예약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가면 못 만날 수도 있어.”
“전화 정도는 해볼 수 있잖아요.”
“뭐 그 정도야.”
“오빠가 내키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룰게요.”
그녀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꼭 만나보고 싶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해는 고민에 빠졌다.
체크아웃 시간이 임박해 짐을 다 싸놓은 상황.
오늘은 일요일. 내일 출근을 위해 늦더라도 오늘밤에는 서울에 들어가야 한다. 시간이 될까?
“갑자기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뭔데?”
“남자친구 어머니한테 인사드리고 싶어서?”
남자친구라는 표현에 한해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수진은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말로만 듣던 오늘부터 1일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한해는 수진의 귀를 잡았다.
“세상 구석구석 다 가봤지만 이럴게 귀여운 생명체는 본 적이 없네.”
그리고 다시…… 그들의 입맞춤이란 그냥 한 번 쪽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었다는 프론트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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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신당은 그대로였다.
마치 별장 같은 느낌을 주는 집 앞에서 수진은 감탄했다.
“와, 나는 보통 상가 2층에 있는 그런 곳을 생각했는데.”
“예전에는 그랬어. 유명해지셨나봐. 내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몰라.”
“사실 말 안 한 게 있는데, 남친 어머니에게 인사드린다는 핑계도 거짓말은 아니지만…… 우리 미래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이런…… 속았다.”
“오빠는 안 궁금해요?”
“말했잖아. 이런 거 별로 취미 없다고.”
“나도 완전히 믿는 건 아닌데 재미는 있잖아요.”
“그래. 재미로 들어보자.”
오는 길에 전화로 비어있는 시간을 확인하고 왔는데도 어머니는 아직 손님과 상담 중이었다.
“멀리서 오신 어르신이라 말씀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는 새끼 무당이 양해를 구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급작스럽게 찾아온걸요.”
한해보다 먼저 수진이 공손하게 답했다.
“만신님 아드님 여자 친구인가 봐요?”
“아…… 네.”
이번에는 한해가 대답했다. ‘오늘부터요’라는 말은 생략하고.
이제 겨우 서른이 되었을까 싶은 젊은 무당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로 쓰이는 야외 천막 안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다보니,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더 어린 무당이 찾아왔다.
“만신님이 뵙자고 합니다.”
수진은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냥 남친 어머니를 뵙는 자리도 떨릴 텐데 하필 큰 무당이라니. 게다가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우리 부모님을 잘 아는 분이다.
드디어 만신님을 마주했다.
“오랜만이구나.”
만신은 먼저 아들 한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보다시피.”
“좋아 보이세요. 몸도 그렇고 혈색도 그렇고.”
“요즘 홈트레이닝에 푹 빠져 있다.”
만신은 소리 내어 웃었다.
수진은 적잖게 안심이 되었다.
휴우. 큰무당님이라고 해서 막 엄청 무서운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홈 트레이닝이라니.
입성도 그랬다. 형형색색 무당 옷이 아니라 명품 니트를 걸치고 화장도 곱게 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수진이구나.”
“네. 안녕하세요. 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만신님이라고…….”
“만신은 무슨. 그건 점 보러 온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고. 그냥 어머니라고 불러.”
“네, 어머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그녀는 기묘한 각도로 고개를 기울였다.
“너, 정말 반가워하는구나?”
“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만나서 정말 반가워하고 있어.”
“그럼요…… 한해 오빠 어머님이시고. 또 예전에 같은 동네에서도 사셨으니까.”
“나는 너를 기억하지. 너의 부모님도 잘 알지. 너도 나에 대한 기억이 있니? 아주 어릴 때였을 텐데.”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몇 가지 모습만.”
“이를테면?”
“그물 다듬으시던 모습하고. 또…… 나들이하실 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모습.”
“어머, 그걸 기억하고 있어?”
“두 가지가 되게 상반적이어서 기억하는 것 같아요.”
만신은 아련한 추억에 사로잡힌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랬지. 일할 때는 몸빼 바지 입고 놀러 나갈 때는 한껏 멋을 내고. 그 시절이 좋았는데.”
한해는 말없이 두 여자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가 끼어 들 틈이 없을 만큼 둘 사이에는 뭔가 특별한 분위기가 흘렀다.
“너는 꼭 여기에 왔어야 하는 아이구나.”
“네?”
“작정을 하고 여기 온 기운이 느껴져서.”
수진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는 그냥…… 알지.”
우리. 그녀가 어떤 특별한 종족의 일원임을 상기시켜주는 표현.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제저녁에 항구를 산책하다가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꼭 어머님을 뵈어야겠다.”
“항구라면? 어느 쪽? 울진에도 항구가 여러 개 있잖니.”
“죽변이요. 죽변항.”
그 말에 만신은 매우 흥미로운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죽변항 어디쯤?”
“등대에서 내려와서 어시장 들어가는 모퉁이 근처에서 갑자기 어머님 생각이 났어요."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해가 수진을 돌아보았다.
“그런 얘기, 나한테는 안 했잖아.”
“그런 작은 생각들까지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어머님을 뵙고 싶다고만 했죠.”
“한해는 잠깐 가만히 있어봐라.”
만신은 수진 쪽으로 몸을 굽혔다.
“그 모퉁이라면…… 바로 내가 신 내림을 받았던 곳인데.”
“네?”
“그 시절 나는 한해 아버지하고 무척 사이가 안 좋았어. 나는 한해 아버지가 끔찍한 변을 당하는 모습이 자꾸 보이는데…… 어떡하겠어. 배를 타지 말라고 조르는 수밖에. 하지만 한해 아버지는 절대 바다를 떠나서는 못 사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매일 싸우다시피 했지.”
한해는 그 시절이 또렷이 기억났다.
“그래서 친정집에서 지내다가 신내림을 받았어. 우리 친정집이 있던 자리가 바로 거기, 등대에서 어시장 들어가는 모퉁이야.”
“그럼 제가 바로 거기서…….”
수진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물론 우연의 일치가 틀림없지만, 하필 만신에게 신내림이 내렸던 바로 그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 생각에 사로잡혔다니. 한해에게 고집을 부려서까지 이렇게 찾아올 정도로.
“원래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만신이 수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들여다볼까?”
만신의 눈동자 색이 변하는 것 같은 착각에 수진은 흠칫 놀랐다.
“어머니…….”
한해가 말리려고 했지만 만신은 아들이 아니라 수진에게 의사를 물었다.
“괜찮겠니?”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묘한 체험이었다. 만신의 눈동자에서 어떤 에너지가 흘러나와 그녀의 눈으로 들어간 뒤 온 몸을 휘젓는 느낌이랄까.
무장해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꽤나 시간이 오래 지난 다음 만신은 눈과 몸에 편안하게 힘을 풀었다.
“우리 수진이. 슬픔이 참 많았구나.”
그 짧은 말에 수진은 울음이 터지려고 했다.
나의 아픔을 누군가 알아봐주고 다독여주는데서 오는 감동이라니.
“지금은 그저 행복하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면 좋을 텐데.”
“그런데요?”
“슬픔 수가 또 있네.”
아…… 이럴 수가.
수진은 이를 꽉 물었다.
“어떤 슬픔인가요?”
만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예언했다.
“상실의 아픔이 있어.”
부모님을 태풍으로 잃었다. 첫사랑은 14년 동안 빼앗겼다가 이제 겨우 찾았다. 그런데 또 상실의 아픔이 있다고?
신이 있다면 수진은 멱살을 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왜 제 인생만 이리도 가혹한가요?
“하지만 잘 왔어.”
만신은 부르르 떨고 있는 수진의 손을 잡아주었다.
“위협을 알았으니 대비할 수 있잖니?”
“위협이 있다는 것만 알지 그게 뭔지는 모르잖아요. 어떤 모습을 보셨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울고 있어.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슬퍼하고 있어.”
수진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머님. 누군가를 잃고 제가 그렇게 슬퍼한다면…… 그럴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녀는 옆에 앉은 한해를 돌아보았고, 만신도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해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왜 이런 끔찍한 예언을 해서 수진이를 겁에 질리게 하는 거야? 미래를 본다는 게 말이나 돼?
머리로는 합리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눌어붙은 껌처럼 찜찜했다.
“어머니. 차라리 미래를 보지 않는 편이…….”
“이미 늦었다.”
만신은 아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녀는 아까 수진의 눈을 들어다볼 때보다 더 강렬한 눈빛으로 아들의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한해 역시 수진처럼 꼼짝없이 사로 잡혔다.
처음 왔을 때 생글생글 웃던 수진은 이제 조금도 웃지 않았다.
그녀는 수술실에 들어간 가족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애타게 만신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의 주름진 입술이 열렸다.
“아들아.”
수진의 슬픈 미래를 보면서도 차분했던 만신조차 이번에는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네, 어머니.”
“수진이를 사랑하면 죽는다.”
“뭐라고요?”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만신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오히려 한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뭐가 보이시는데요?”
“병원이야. 너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고…… 수진이는 땅을 치며 울다가 실신했어.”
한해는 주먹을 꽉 쥐었다. 두려워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잘못 보셨어요.”
“내 눈에는 보인다.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됐을 때처럼.”
“그건 우연이었어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해야!”
만신이 잡으려 했지만 한해는 뿌리쳤다.
“오빠. 조금만 더 얘기 들어봐요!”
수진도 그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운명 따위 무섭지 않아요.”
그는 똑똑히 말했다.
“운명에 질 거였으면 벌써 졌죠. 이것 봐요.”
그는 수진의 손을 꽉 잡았다.
“결국 이렇게 운명을 이겼잖아요.”
“오빠…….”
“그리고 만약 어머니가 본 미래가 정말 그렇다면, 내가 수진이와 헤어진다고 그 미래를 피할 수 있을까요?”
그 말에는 수진도 공감할 수밖에. 한해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오히려 수진이와 헤어졌을 때 생기는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만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맞다.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직 몰라. 다만 너의 여러 가지 미래들 중 그 장면은…… 분명히 내 눈에 보인다.”
“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장면은 사라질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전 수진이와 함께 있는 쪽을 택할래요.”
한해의 최종 선택이었다.
수진은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한해와 만신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녀 역시 한해의 말이 맞다고 인정할 수밖에. 어떤 선택이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니. 그러나 잘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처럼 불안이 남은 것도 사실이었다.
한해는 허리 굽혀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만신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아들을 배웅 나왔다.
“조심해라, 한해야. 특히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
그녀는 잔디가 잘 가꿔져 있는 뜰에서 아들을 꼭 안았다. 그리고 귀엣말로 뭔가를 속삭였는데 수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꽤나 긴 이야기 같았다.
한해의 미간이 잔뜩 찌그러졌다.
“확실한가요?”
만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만신은 수진을 보며 불경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 인생에 마 없기를 바라지 말라.”
“네. 저는 불행에 익숙해요. 이제 다신 없었으면 하지만요.”
“아까 내가 한 말도 불행을 막기 위해 한 말이야. 먼 곳에서 여길 찾아오는 사람들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서 오는 거고.”
“그럼요. 오히려 조심하는 계기가 되어서 좋죠. 한해 씨 응급실 갈 일 없도록 저도 매사에 신경 쓰겠습니다.”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누.”
만신은 두 팔을 벌렸고 수진은 잠시 망설이다 그녀와 포옹했다. 속삭임이 들렸다.
“우리 한해.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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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의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는 길.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에도 한해는 말없이 운전만 했다.
수진 역시 생각이 많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사소한 것들을 혼자 떠들었다.
그러다 빗줄기가 두어 줄 차창에 스치고 그녀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오빠. 나 원래 남의 비밀 같은 거에 관심 없어요. 핸드폰 뒤지는 일도 질색이고.”
“갑자기 뭐야. 그런 얘기는.”
“그런데 오빠가 계속 아무 말도 없는 것도 그렇고. 아까 오빠 표정도 그렇고. 도저히 안 물어볼 수가 없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물어봐, 뭐든.”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씩 웃어 보였다.
수진은 거울로 한해를 보며 말했다.
“아까 우연히 봤어요. 어머님이 오빠에게 귀엣말하는 거.”
한해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뭐라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