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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뺏겠습니다-57화 (57/92)

57화

그는 눈으로 그녀의 눈을 사로잡고,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결박했다.

“오빠…… 잠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로 포개졌다.

촉촉하게 시작되어 매끈하게 이어지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각의 소용돌이.

완벽한 황홀. 14년이 걸린 첫 키스였다.

푸른 파도 소리 한가운데, 별이 빛나는 저녁 하늘 아래, 막 불이 켜진 작고 하얀 등대.

완벽한 조건 속에서 그들의 키스는 오래오래 이어졌다.

입술에서 시작된 떨림은 온몸으로 번졌다. 수진은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감았던 눈을 슬며시 다시 떴다가 한해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왠지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키스를 멈추기 싫어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1분은 확실히 넘었을 거야. 5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한 시간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슬며시 먼저 떨어진 쪽은 한해였다.

“숨차지 않아?”

“네. 숨 고르고 다시 해요.”

한 뼘도 안 되는 코끝이 스치는 거리에서 마주보던 둘은 숨을 고르면서도 서로의 입술을 살짝 살짝 물었다.

“연습 많이 했나 봐요.”

“무슨 소리야?”

“키스를 너무 잘하는데.”

“누가 할 소리.”

그는 다시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이번에는 좀 더 여유 있고 장난기 어린 키스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수백 번은 상상했었어.”

“키스?”

“응. 그래서 능숙한 거야.”

“믿어줄까?”

“입술이 닳지는 않겠지?”

“더 부드러워지겠죠.”

“그럼 조금만 더 하자.”

입술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손은 상대의 머리칼, 뺨, 등, 허리로 산책하듯 움직였다.

그렇게 온몸의 교감이 이어지던 중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배고프구나.”

“아닌데.”

“배에서 소리 나는 거 들었는데?”

“오빠한테서 나는 소리 아니었어요?”

“거짓말도 키스처럼 잘하네.”

한해는 마무리를 하듯 이마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춰주었다.

“나도 배고파.”

“지금 든 생각인데 키스로 다이어트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게. 오늘 많이 먹어야겠다.”

그는 수진의 귀에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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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회와 해산물, 그리고 술까지 곁들어진 완벽한 저녁.

바닷가에 접한 횟집 창밖으로 항구와 먼 바다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졌다.

“여름에 수영하러 오자.”

“옛날처럼?”

“응. 우리 어릴 때처럼.”

수진은 오랜만에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동안은 취할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이제야 몸과 정신을 옥죄던 고삐가 풀린 느낌이었다.

그들은 많은 것들을 위해 건배했다.

“오래된 벗을 위하여.”

한해는 강도 잊지 않았다.

“녀석과 원수처럼 지내고 싶지는 않아. 예전처럼 어울릴 순 없다고 해도.”

“저도요. 강이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레이나 씨하고는 어떤지 모르겠네.”

“그런 얘기, 불편하지 않아?”

“뭐가 불편해요. 이제 다 지난 일인데. 괜히 숨기는 게 더 이상하지. 오빠도 만나봤다면서요.”

“레이나 씨가 강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뭐랄까 서로 닮았다고 생각하나 봐.”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언젠가 넷이 같이 만날 날도 있을까?”

“모르겠네요. 나는 괜찮을 것 같은데.”

배를 충분히 채운 그들은 다시 나가 항구를 걸었다.

바람이 좀 더 차가워진 탓에 한해는 입고 있던 점퍼를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오빠는 안 추워요?”

“뭘 이 정도로.”

“갑자기 이런 얘기 어떨지 모르겠는데…… 오빠 어머님은 지금 어디 계세요?”

수진은 한해의 어머님에 대해 아주 어렴풋한 기억만 갖고 있었다. 신 내림을 받고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었고.

“잘 지내고 계셔. 자주 연락을 하진 않지만 몇 달 전에 찾아뵌 적 있지.”

“그렇구나. 저도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그러고 싶어?”

“네. 아마 저를 기억하고 계실 텐데.”

“잘 알지. 그런데 만나면 네가 좀 놀랄 수도 있어. 어머니는 만신이야.”

“만신? 그게 뭐예요?”

“보통 무당이라고 하지. 직접 만나보면 아무래도 좀…… 섬뜩할 수도 있고.”

“그 얘기는 어릴 때 들었어요. 괜찮아요. 친구들하고 몇 번 점을 보러 간 적도 있고.”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는지 알아?”

“신내림을 받았다고…… 아닌가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미래를 보셨대. 아버지가 바다에서 참변을 당하는 미래.”

한해가 괜히 경고한 게 아니었다. 수진은 말만 듣고서도 섬뜩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함께 변을 당했으니까.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배를 타면 안 된다고 졸랐고, 평생 배만 탔던 아버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그럴수록 어머니는 자꾸 몸이 아팠고…… 결국 두 분 다 살기 위해 헤어진 거야.”

“그런데 어머님의 예언이 맞았네요.”

“우연일 수도 있고. 정말 신기가 있는지도.”

“몇 달 전에 찾아뵈었다면서요. 그때는 뭐라고 하셨어요?”

한해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 미래밖에 안 보여. 기껏해야 한두 가지 더 보이지. 그런데 네 미래는 여러 개가 같이 보인다. 너의 의지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는 뜻이지. 타고난 운명보다 의지가 더 강한 사람이 가끔 있는데, 너는 유독 더욱 그렇다. 네 아빠는 그렇지 못했지만.’그래서 어떤 것들이 보이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무척 조심스럽게 답해주었다.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 지극한 행복과 지독한 불행이 같이 보인다는 말만 해두마.’한해는 이 말을 수진에게 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털어놓았다.

역시나 수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래요?”

“그 뒤로는 말씀이 없으셨어.”

“더욱 만나 뵙고 싶어지네요.”

“나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지독한 불행은 네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거. 지극한 행복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 거.”

수진은 걸음을 멈추고 한해에게 안겼다.

“정말 그거라면, 그뿐이라면 아무 걱정도 안 하고 살 텐데.”

“응. 그럴 거야.”

“우리는 너무 오래 동안 불행했잖아요. 행복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앞으로는 행복하기만 해야죠. 아닌가요?”

한해는 그녀의 뺨을 소중하게 감쌌다.

“응. 그럴 거야.”

그들은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또 애타게 입을 맞췄다.

어느덧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고, 방을 따로 잡았다는 사실을 둘 다 인식하고 있었다.

“벌써 열 시네.”

“그러게. 아쉽다.”

“같이 TV나 보다가 잘까?”

“좋아요. 내가 하려던 말.”

편의점에 들러 각자 좋아하는 과자를 사고 맥주도 골라 호텔로 돌아왔다.

한해의 방에서 TV를 보며 아쉬운 밤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둘은 10분이 멀다하고 입을 맞추었고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열기에 놀라곤 했다.

등대 아래에서의 첫 키스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침대가 바로 뒤에 있으니까.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촉촉한 입맞춤 뒤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쩔 셈이에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갑자기 여행 오자고 한 사람은 너잖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이렇게?”

한해가 장난스럽게 물었고 수진은 약이 올랐다.

“너무 급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급할 필요 없어.”

“솔직히 말하면 너무 떨려서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아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은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두근거렸다.

“그랬어?”

한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빠는 괜찮아요?”

“이런 상황도 워낙 많이 상상해봐서.”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단련되었다?”

“실전이 조금 다르긴 하네.”

“상상으로는 어땠길래?”

“상상했을 때는 이 정도로 좋지는 않았어.”

한해는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리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부드러울 줄도 몰랐고.”

그녀의 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뛸 줄도 몰랐고.”

그녀를 보물처럼 품에 안았다.

“이렇게 욕심이 날 줄도 몰랐어.”

그의 달달한 목소리가 그녀를 더욱 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키스를 위해 다시 몸을 기울였고, 그녀는 그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우리 30분 동안 키스 금지.”

비장한 선언에 한해는 웃음을 터뜨렸다.

“30분? 한 시간은 너무 길 것 같아서?”

“자꾸 놀릴 거면 나 갈래.”

토라진 그녀를 주저앉히고 한해는 리모컨을 들었다.

“우리 영화나 보자. 무슨 영화 볼까?”

“오빠가 골라줘요. 배에서 영화 드라마 소설 엄청 많이 봤다면서요.”

“보긴 많이 봤지만, 너도 직업상 엔간한 영화는 다 봤을 텐데?”

“나 본 영화 또 보는 거 좋아해요. 맘에 드는 영화는 네 번 다섯 번씩도 봐요.”

한해는 잠시 고민하다가 영화를 검색했다.

“좀 오래되긴 했는데.”

앤 해서웨이와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을 맡은 ‘러브 앤 드럭스’였다.

“바람둥이가 진실한 사랑에 눈을 뜨는 식의 단순한 줄거리인 줄 알고 봤다가 마지막에 울었어. 너도 봤어?”

“아, 이 영화 너무 좋죠. 벌써 10년이 넘었네. 또 보고 싶다!”

그녀는 최고의 선택이라며 바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할까? 영화 속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면 우리도 따라 하기.”

느닷없는 한해의 제안에 수진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여주었다.

진부하게 시작했다가 예상 밖으로 웃기고 갑자기 야하고 결국엔 눈물샘까지 건드리는 영화였다.

키스신도 여러 번 나왔다. 그들은 키득거리며 화면 속 키스신을 따라했는데, 베드신이 나올 때는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저건 따라 하지 말아요.”

“그럴 생각 없었는데?”

“혹시나 해서.”

“기대했던 건 아니고?”

“뭐래!”

수진은 그의 품에 안겨서 영화에 푹 빠져서 꿈결 같은 밤을 보냈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볼 수도 있구나, 속으로 감탄하면서.

“난 네가 필요해. 너도 내가 필요하고. 다들 누군가 필요해. 사람은 원래 그래.”

영화 속 대사를 절절하게 느끼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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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강은 혼자 영화를 보고 있었다.

제목도 잘 모르는 액션 영화를 넷플릭스로 틀어놓고 피자에 맥주를 곁들였다.

회사에 특별히 일이 없을 때면 보통 혼자 밥을 먹었다. 레이나도 요즘 저녁에 특강 나갈 일이 많아져서 저녁에는 자주 보지 못했다.

오늘은 그녀가 같이 밥을 먹자고 했지만 그가 거절했다.

드디어 끝났다. 길고긴 세월 동안 이어졌던 인연을 드디어 놓아버렸다.

강은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할 허탈함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고 싶었다. 캔 맥주와 피자, 그리고 내용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 영화와 함께.

“인생은 외롭고 결국 인간은 모두 혼자야.”

영화 속에서 수십 명의 상대편을 죽인 주인공은 자신을 배신한 여자에게 총을 겨누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대신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강은 여자의 머리가 총에 날아가는 장면도, 뜬금포로 남자가 여자를 용서하는 장면도 보고 싶지 않아 TV를 꺼버렸다.

어느새 밤 열시가 훌쩍 넘은 시간. 폰을 확인했지만 그 사이 아무도 연락한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다. 나에게는 아무도 없다.

예전에는 외롭다는 이유로 레이나를 찾았다. 그러나 정작 떳떳한 싱글남이 된 지금은 도리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그만큼 소중해져서였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언제나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그녀.

“혼자 맛있는 저녁 먹었어?”

“오늘 드디어 숙려기간이 끝났어. 네가 많이 보고 싶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혼자 마음을 정리하고 견뎌야할 것 같아서.”

“응. 오늘 무슨 날인지는 알고 있었어.”

“네가 어떻게 알아?”

“오빠 서류 낼 때 나한테 말했잖아.”

“아, 그랬나?”

“우리 리버 오빠…… 위로가 필요하려나 싶었는데 혼자 견뎠다니 기특하네.”

“좀 처량한 꼴이긴 했어. 내일 저녁에 시간 되면 볼까?”

“아, 내일은 다른 약속이 있어. 곧 보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명확한 거리를 유지하곤 했다. 지금도 역시 그런 태도.

그는 약간 초조해졌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곧 보자.”

“잘 자, 리버 오빠.”

“너도 잘 자, 레이나.”

그는 쓸쓸한 영화 대사를 속으로 되새기며 잠을 청했다.

‘인생은 외롭고 결국 인간은 모두 혼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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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는 두 손 꼭 모아 기도했다.

강이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그 행복이 나 때문이기를.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의 집으로 올라가 그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아주 쉽다. 승강기를 안 타고 계단을 올라가도 몇 분이면 된다.

그러나 꾹 참고 기다렸다. 그가 혼자 외로움을 견뎌내기를.

몸과 마음이 헛헛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당신이 날 원할 때, 난 아무 망설임 없이 당신을 안아줄 거야. 예전에 우리가 그랬듯이 아주 뜨겁게 말이야.

내일 녹화할 특강 자료를 준비하는데 동생 레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 다음 주에 저녁 시간 한번 내줘.”

“무슨 일인데?”

“소월이하고 듀엣으로 음원 발표하거든. 조촐하게 축하 파티를 하려는데 소월이가 누나도 모시고 싶어하더라고.”

“너 이제는 소월 누나도 아니고 소월이라고 하냐?”

“여자 친구잖아.”

“확실해?”

“만나면 물어봐.”

“못 믿겠는데. 어쨌든 축하할 만한 일이고, 정말 축하해주고 싶은데…… 싫다.”

“왜?”

“너네 연애질하는 거 사이에 껴서 난 뭐냐.”

“그럼 누나도 남친 데리고 와. 남자 많잖아.”

연락만 하면 달려올 남자는 많았지만 정말로 그런 자리에 함께 하고 싶은 남자는…… 있다. 한 명.

“하튼 알았어. 누나 지금 바쁘니까 내일 다시 연락해.”

레이나는 전화를 끊고 피식 웃었다.

어떤 분위기일까? 나랑 강이 오빠. 그리고 레오와 소월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잘못 꿰어져 있던 고리들이 하나씩 제대로 맞춰지는 건가?

그녀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특강 준비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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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맞이하는 아침만큼 행복한 시간이 또 있을까?

아마 태초의 원시인 커플도 그랬으리라. 동굴 속에서 잠을 자고 동굴 입구에서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맞이하며 우리가 어둠을 이기고, 흉포한 맹수들로부터 하룻밤을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나누었겠지.

한해는 그녀를 안은 채 잠이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잠에서 깨면 금방 알아차리곤 했다.

“일어났어?”

“어떻게 알았어요?”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지니까.”

“안 꼼지락거렸는데.”

“애를 썼겠지만 느껴지는걸.”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 어제 잠든 게 기억이 안 나.”

“영화 보고 나서 맥주를 더 마시다 보니까 졸고 있더라고. 그래서 침대로 데리고 와서 재웠지.”

“미안해요.”

“미안하긴. 나는…….”

그는 커튼 틈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가리켰다.

“이 바다를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행복할 텐데.”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해?”

“큰일이다.”

“뭐가요?”

“눈만 마주치면 하고 싶어져서.”그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몸은 조건반사에 의해 0.1초 만에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촉촉해진 입술로 그의 입술을 삼켰다.

슬며시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빛나는 햇살이 달콤하고도 아찔했다.

아침부터 이러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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