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뺏겠습니다-39화 (39/92)

39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너를 아끼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오빠로서 충고야.”

굳어버린 수진 앞에서 한해의 말이 이어졌다.

“너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했어.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내가 뭐라고 하던 너는 주체적으로 결정할 테니.”

“맞아요. 내 인생이니까요.”

“동시에 너의 결정은 내 인생에도 영향을, 지대한 영향을 미치니까 나도 솔직한 생각을 말해야겠다 싶었어.”

“그 솔직한 생각이…… 이혼해라?”

한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는요?”

“지금보다 몇 배 더 행복해질 테니까.”

“예언자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수 있을까? 강이하고 같이 살아보니 행복했어? 앞으로 더 행복해질 것 같아? 강이에게 너는? 너랑 결혼하고 강이는 더 행복해졌어?”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쓰고 도움 되는 말은 듣기 싫은 법이라는 격언을 떠올리면서도 수진은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듣기만 해도 아프네요.”

“작정하고 하는 말이니까.”

“이혼하면? 더 행복해질까요?”

“내가 그렇게 해줄 테니까.”

수진은 슬며시 웃었다.

“멋지네. 상남자 같네.”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고마워요.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해줘서.”

“어차피 결정은 너의 몫이지만 이런 말을 할 지분 정도는 나에게 있겠지.”

“네. 있어요. 아직 결정을 내리진 못했지만…… 지금 당장 오빠의 마음을 받을 수는 없어요. 설령 내가 이혼한다고 해도…… 오빠와 당장 뭔가를 시작하고 이럴 수는…….”

“기다릴게. 네가 준비될 때까지.”

경직되어 있던 수진의 얼굴이 편안하게 펴졌다.

“알아요. 오빠는 기다려주겠지. 하지만 오빠도 알아줘요. 늘 기다려줬던 거……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수진은 마주보던 시선을 슬쩍 떨어뜨리고 목소리에 힘을 뺐다.

“늘 고마웠고, 지금도 고마워요.”

한해는 길고 긴 세월의 기다림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로맨틱하게 바뀐 분위기에 둘 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자, 생선구이가 나왔어요.”

숙희가 생선구이 백반 한 상을 차려주었다.

윤기가 자르르하게 구워진 삼치와 고등어는 물론이고 정갈한 밑반찬까지, 옛날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 먹던 상차림 그대로였다.

“맛있게들 먹어요.”

숙희는 둘의 등을 두드려주고 다시 구석진 자리로 가서 TV로 시선을 돌렸다.

“심각한 얘기는 이제 그만할까?”

“응. 며칠째 너무 심각하기만 했어요.”

“그럼 우리 딱 30분 동안 앞에 놓인 맛있는 밥에만 집중하자.”

“그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죠.”

“오케이. 한번 생선을 해체해볼까?”

한해는 14년 경력의 뱃사람 출신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생선살과 뼈를 분리하고, 고소하게 익은 껍질까지 먹기 좋게 갈라놓았다.

“와…… 무슨 묘기 수준이네.”

수진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먹자!”

구령 같은 그의 말과 동시에 둘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없이 수저가 부딪히고 뜨거운 밥을 호호 불고 음식을 우물거리는 소리들만 소곤소곤했다.

“그릇은 먹지 마.”

한해의 농담에 수진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감동의 생선구이! 후각과 미각은 이미 만족했고 배가 든든하게 불러오는 것까지는 당연한 수순인데, 눈가가 왜 촉촉해지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딱 30분 한정이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실감해서일까?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좋은…….

먹먹하게 차오르는 감정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한해를 마주 보았다.

“맛있었냐고 안 물어볼래. 너무 맛있게 드셔서.”

수진은 엄지를 들어 보였다.

한해는 편안한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이 들리는 듯 했다.

네가 행복해 보여서 나도 행복하다고.

*

“아…… 진짜 황당하네.”

소월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몸을 일으켰다.

낯선 방의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 세 시라는 낯선 기상 시간을 가리키고 있고, 그녀는 낯선 옷을 입고 낯선 침대 위에 있었다.

조각조각 기억이 나긴 했다. 작업실에서 혼술을 하다가 레오의 전화를 받았고, 그 녀석이 나를 데리고 왔지.

레오 누나하고도 인사를 한 기억을 떠올렸지만, 강한해라는 위험한 이름을 입 밖에 낸 사실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보았다. 너른 거실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레오?”

대답이 없자 그녀는 조금씩 소리를 높여 이름을 불렀다.

아무도 없다. 이런! 남의 집에 나 혼자 자고 있었어! 오후 늦게까지! 이게 무슨 민폐냐!

소월은 머리를 벽에 꿍꿍 찧었다.

그 소리에 화답하듯 현관문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허걱!”

화들짝 놀란 소월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밖의 상황을 살폈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얼른 침대에 몸을 묻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직도 자냐?”

문이 열리고 들리는 목소리는 다행이도 레오였다.

“자긴 누가 자. 아…… 아까 일어났지.”

이불 밖으로 고개를 뺀 소월은 민망함을 감추지 않았다.

“아까는 무슨. 10분 전에 나갈 때도 자고 있더만.”

“아닌데…….”

“씻고 나와. 해장해.”

레오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

.

.

세면대에 거울에 비친 몰골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소월은 얼른 샤워부스로 들어가 어젯밤의 흔적을 지웠다.

그녀를 위해 준비해둔 새 칫솔과 수건을 보며 조금 뭉클해지기도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레오는 포장해 온 해장국을 한 번 뜨겁게 끓여 대령해두었다.

“뜨거울 때 먹어. 그래야 제대로 속 풀리지.”

“고맙다.”

“고맙다는 말은 좀 따뜻하게 해주지?”

“따뜻하게 했지. 이 정도면…….”

소월은 왠지 그의 눈을 마주 보기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해장국을 먹었다.

“레오야. 이건 점심일까 저녁일까?”

늦은 오후라도 해도 좋고 이른 저녁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이었다.

“자기 전에 뭐 먹으면 이게 점심이 되는 거고. 이게 마지막이면 저녁이 되겠지.”

“올. 똑똑한데?”

“술은 좀 깨?”

“맛이 느껴지는 걸 보니 좀 깨는 것 같다.”

소월은 뚝배기에 얼굴을 들이대고 국물을 떠먹었다.

“어제 우리 누나 만났던 건 기억 나?”

“얼핏. 혹시 내가 실례……했겠지. 여기 온 것 자체가 실례니까.”

“우리 누나 세상 쿨해.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써. 강한해 욕한 건 기억 나?”

수진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그 이름을 말했어?”

“여러 번.”

레오도 아직 소월과 강한해, 그리고 레이나 누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휴. 나 진짜 취했나 보다.”

“술에 취한 게 아니라 그 사람한테 취한 거지.”

“너랑 그 사랑 얘기하는 거 불편해.”

“그만두면 안 되냐? 다른 여자한테 마음이 간 남자를 왜 좋아해?”

“어차피 돌아오게 되어 있어. 이미 다른 남자하고 결혼한 여자하고 잘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 일 모르는 거야.”

“무슨 뜻이야?”

“그 여자가 이혼이라도 하면 어쩔래? 강한해가 홀라당 가버리면? 누나는 완전 새 되는 거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해.”

“결혼만큼 이혼이 흔한 시대야.”

레오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더니 보여주었다.

“봐봐. 작년에 결혼이 24만 건. 이혼이 11만 건.”

“통계는 통계고. 그 여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숫자를 보여줘도 안 믿어.”

레오는 핸드폰을 거두고 물었다.

“어제는 왜 그렇게 속상했어?”

“너랑 그 사람 얘기 하는 거 불편하다니까.”

“다행이네. 불편하다고 느끼기라도 해서.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 얘기 줄줄 하더니. 내 마음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이제 불편한 걸 보니 내가 신경 쓰인다는 얘기네.”

소월은 못 들은 척 다시 고개를 숙였다. 더 먹을 해장국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레오의 말이 맞다. 달라졌다. 신경 쓰인다. 어제의 추태도 신경 쓰이고, 지금 꾀죄죄한 몰골도 신경 쓰인다.

부드러운 촉감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레오의 손길이었다.

“머리카락 적셔 먹을 거야?”

식탁 위로 몸을 숙인 레오가 축 늘어진 소월의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소월은 요상한 감정을 침과 함께 삼켰다.

엄청 신경 쓰이는 두근거림이었다.

*

다시 찾아온 월요일.

수진은 호텔에서 회사로 출근했다.

쾌적함에 있어서는 특급호텔에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인간에겐 확실히 정착 욕구가 있나 봐.

호텔에서 길게 버티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하면서 사무실로 들어섰다.

몇 년 전만 해도 TV에 머물러 있던 드라마는 이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포털사이트에서 직접 제작하는 드라마들도 많아지는 추세였다.

편당 60분에 20회 안팎으로 편성되던 룰도 이제 다 무너졌다. 30분짜리 10회차 드라마, 70분짜리 4회차 드라마, 10분짜리 30화 웹드라마 등등 정해진 룰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뭘 그렇게 눈 빠지게 하고 있냐?”

20년 가까이 드라마 제작에 몸 담아온 최고참 선배가 옆자리에 털썩 앉더니 수진의 노트북 화면을 힐금 보았다.

“아, 이거. 이번에 웹TV에 편성되는 숏드라마 기획서예요.”

수진은 종전의 드라마 기획서하고는 완전히 다른 내용을 보여주었다. 야화 작가의 아이템과 별도로 오래전부터 진행하던 건이었다.

“좋은 시절 다 갔다.”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푸념했다.

“아니 10분 안에 어떻게 기승전결을 다 담냐? 요즘은 그런 거 필요 없나?”

“왜요. 10분짜리라도 그 안에서 흐름은 선명하게 있죠.”

“나 같이 60분 TV 드라마만 만들던 사람은 이런 건 손도 못 대겠다.”

“에이. 선배님이 마음만 먹으면 저보다 더 잘하실걸요. 저랑 이번 작품 같이해보실래요?”

“아이고. 됐습니다. 이 나이에 진 피디한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 그나저나…….”

선배는 수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좋아 보인다. 지난주에 영…… 얼굴이 안되어 보여서 걱정했거든.”

“그랬나요? 걱정시켜드려서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선배는 수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자리를 떴다.

“그거…… 웹드라마 기획서 재미삼아 보게 하나 보내줘봐.”

넌지시 부탁을 남기고.

회사 대표보다 더 나이가 많은 고참 피디.

히트작도 몇 개 있어서 마음만 먹었다면 자기 회사를 차려 독립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저 드라마 만드는 일이 좋다며 현업 피디로 남기를 원하는 선배.

그의 이름을 믿고 따르는 작가와 배우들도 많았다.

그녀도 그렇게 오래오래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마무리 중이던 기획서를 선배에게 보내준 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직 연락이 없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오늘 중으로 매우 중요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올 것이다. 그녀의 결정에 마지막 참고 사항이 될 터였다.

*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을 마친 레이나에게 인사와 찬사가 쏟아졌다.

오늘은 강의 영상이 아니라 광고 촬영이 있었다.

학습지 광고는 찍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는데,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돕는 일에 광고 모델비를 전액 기부하고, 그만큼을 출판사 측에서도 동시에 기부한다는 조건으로 허락한 광고였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특별히 출판사 대표가 직접 촬영 현장을 찾아와 감사를 전했다.

“선생님의 뜻에 저희 모두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대표가 봉투를 건넸지만 레이나는 그마저도 사양했다.

“저는 다른 일로도 충분히 수입이 많습니다. 그 돈도 같이 기부해주세요.”

레이나는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촬영장을 떠났다.

신호대기에 걸렸을 때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동생 레오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소월 누나랑 저녁 먹고 올게.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얘기 못 했는데 너무 고맙고 죄송하다고 전해달래. 아, 정말 아름답다는 말도.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이 짜식이…….”

레이나는 웃으며 폰을 내려놓았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소파에 드러누워 게으름을 피웠다.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 저녁은 온전히 쉴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SNS에 달린 댓글을 훑어보았다. 워낙 많은 댓글들이 달려 다 볼 수는 없고, 비밀메시지 위주로.

대충 보고 폰을 내려놓을까 했는데 시선을 잡아끄는 댓글이 있었다.

-진수진입니다. 전화번호를 몰라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연락 부탁드려요.

그리고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

편안하게 늘어져 있던 레이나는 몸을 곧추세웠다.

신혼집에서 맞닥뜨리고 겪은 수모 때문에 잔뜩 위축되어 있다가, 소월 때문에 다시 전의를 불태우던 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내 목소리일 텐데, 왜 전화를 하라고 했을까?

수진을 떠올리면 레이나는 비이성적 상태에 빠져버리곤 했다.

그녀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미워해야 정상일 텐데 그런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았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 더 나아가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미쳤지. 내연녀 주제에!

레이나는 수진의 번호를 저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진은 기억에 선명한 차분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저 레이나예요.”

“잠깐만요.”

잠시 어디론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네, 이제 괜찮아요.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의외였어요. 제 목소리 듣고 싶지 않을 텐데.”

“설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연락했을까 봐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물어보세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심하게 솔직하거든요.”

“제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구체적으로. 그냥 흔히들 말하는 엔조이인가요, 아니면 진지한 감정을 갖고 있나요?”

레이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어 바로 대답했다.

“너무 진지해서 문제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유부남하고의 관계가 진지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정말 미안한 말씀이지만…… 수진 씨. 저 강이 오빠 포기 못 해요. 어떻게든 뺏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해줄 거예요.”

너무 노골적으로 말했나? 레이나는 거듭 사과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수진의 반응을 기다렸다.

“정말 참담할 정도로 뻔뻔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말은 다행이네요. 그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니.”

“진심이에요.”

“진심 같아요. 아내인 제가 듣기에도.”

“다시 사과드릴게요. 제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네요.”

“알겠어요. 그럼 이만.”

레이나가 인사를 할 틈도 주지 않고 수진은 전화를 끊었다.

“와…… 뭐냐. 자기 할 말만 딱 하고.”

레이나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뭔가가 시작되고 있어. 내 인생까지 뒤흔들 어떤 일이…….

*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싶었다. 약속시간으로 저녁이 아니라 낮을 택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하루 종일 브런치 메뉴를 서빙하는 식당 제일 구석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며칠 만에 와이프랑 밥 먹으려니 기분이 묘하네.”

강은 식사를 하는 내내 수진을 쳐다보았고, 수진은 그 시선이 몹시 부담스러워 관심도 없는 메뉴 얘기를 했다.

“에그 베네딕트가 맛있네.”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새로 지은 빌딩에 여기 2호점이 아주 큰 규모로 입점하거든. 세가 만만치 않은데 들어오더라고. 궁금해서 한 번 와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당신하고 먹게 되었네.”

“보기 좋아. 늘 열심히 하는 모습.”

“정말 오랜만이네. 와이프한테 칭찬 듣는 거.”

“괜히 미안해지네.”

서로 눈치를 보며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잠깐 산책할 시간은 되지?”

“그럼. 당신 만난다고 오후 일정 미뤄놨어.”

“그럼 같이 좀 걸어.”

둘은 브런치 식당에서 멀지 않은 도심 공원을 산책했다.

푸르른 잎사귀를 한껏 펼친 나무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흙길 위로 돌아다니고, 느긋한 표정의 사람들이 느린 걸음을 옮기는, 온갖 좋은 것들로 가득한 공원이었다.

식당에서는 이런 저런 대화를 끊이지 않고 이어가던 강은 수진이 뭔가 심각한 얘깃거리를 품고 왔다는 사실을 눈치 챈 뒤 말없이 걷기만 했다.

“여기 좀 앉을까?”

수진은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다. 옆에 나란히 앉은 강은 그녀가 용건을 꺼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아주 깊이 생각해봤어. 결혼할 때도 이렇게 고민하진 않았어.”

수진은 심호흡을 하고 주먹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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