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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뺏겠습니다-34화 (34/92)

34화

옆에 있어주긴 했지만 술은 별로 먹지 않았다.

레이나는 술에 많이 취한 강의 팔짱을 끼고 술집에서 나왔다.

“괜찮아. 혼자 걸을 수 있어.”

강이 그녀를 밀어냈다.

“좋아서 팔짱 낀 건데?”

“넌 자존심도 없냐? 계속 와이프 얘기를 하는 유부남이 뭐가 좋다고 이래.”

“내 자신한테 수도 없이 던져본 질문이지. 딱히 답을 못 찾겠어.”

“너 오기 부리는 거야.”

“그런가? 어쨌든 이렇게 시원한 밤에 너랑 같이 술도 마시고 나란히 걷는 사람은 진수진이 아니라 나잖아?”

레이나는 다시 팔짱을 꼈고 강은 말리지 않았다.

도로에 차들도 뜸해진 시간, 그들은 느리게 걸었다. 나란한 걸음 주위로 가로등이 만든 그림자들이 왈츠를 췄다.

“오빠 많이 취한 것 같으니까 집까지 바래다줄게.”

“그 정도로 안 취했어. 먼저 택시 타고 가.”

“나도 좀 걷고 싶어서 그래. 예전에 오빠 아랫집에 살던 추억도 떠올릴 겸.”

“아 맞다. 우리 레이나가 나 때문에 이사를 갔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좀 미안하네. 집은 팔았어?”

“아니. 세줬지.”

그들은 횡단보도를 건너 강의 집 앞에 다다랐다.

“그래서 와이프는 도망가고 혼자 자야 한다?”

레이나는 불 켜진 강의 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불쌍하냐?”

“처량하긴 하네.”

레이나는 이미 결심했다. 오늘 밤 함께 있어주겠다는 말을 먼저 하진 않겠다고.

“잘 해결되길 빈다는 식의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넌 내가 이혼했으면 좋겠냐?”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레이나의 답변은 명쾌했다.

“응.”

“그다음엔?”

레이나는 대답 대신 걸음을 멈추고 강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내가 말하면 그대로 되는 거야?”

강은 피식 웃었다.

“정말 궁금하긴 한 거야?”

“궁금하지.”

“와이프랑 이혼하고 나랑 결혼해. 그게 좋겠어.”

강은 고개를 숙였고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레이나. 넌 어쩜 그렇게 모든 게 명쾌하니?”

“일타강사니까. 아무리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명쾌하게 답을 내야 해.”

“좋겠네.”

“나에 대한 오빠의 마음은? 그건 내가 답할 수 없네.”

그는 괴로운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미간에 힘이 들어간 채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멀리서 지켜보기엔 괴이한 풍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강과 레이나. 그리고 저 멀리 빌딩 위 옥외간판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레이나.

음악소리가 들렸다. 신호대기에 멈춘 차의 열린 유리창 사이로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밤의 공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안개 같은 재즈 보컬. 그 위로 얹히는 강의 목소리.

“나는 네가 좋아.”

레이나는 고개를 슬며시 기울였다.

“그게 끝? 좋다?”

“감정표현을 잘 하는 너에겐 별 거 아닌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어려운 말이야.”

“알겠어.”

레이나는 강의 어깨를 툭툭 두르려준 다음,

“그럼 잘 자, 오빠.”

작별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강은 인사를 받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고, 레이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멀어졌다.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걸어가면서 그녀는 궁금했다.

내 뒷모습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집에 들어갔을까?

그녀는 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했다. 빨리 택시가 오길 바라며 긴 팔을 뻗었다.

신호가 바뀌고 사거리 저 편에서 택시가 다가오던 순간,

“가지 마.”

강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레이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기를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이러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오빠…….”

그녀는 몸을 돌려 강과 한 뼘 거리로 마주했다.

“아까 수진이도 바로 이 자리에서 나를 떠났어.”

강의 동공이 방황하듯 흔들렸다. 그의 외로움은 레이나가 취약한 부분이기도 했다.

“넌 가지 않았으면 해.”

레이나는 강의 뺨을 쓰다듬었다.

불쌍한 사람. 다 갖고 태어났지만 사랑은 받지 못한 사람. 그래서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

그녀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선 택시 유리창이 열렸다.

“손님, 탈 겁니까?”

회색 조끼를 입은 기사가 물었고,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레이나는 기사님께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안 탈게요.”

택시는 유리창을 쓱 올리고 떠났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

.

.

오랜만이었다.

강이 아직 결혼하기 전에 여러 번 드나든 적이 있는 집에 다시 들어오게 될 줄이야.

레이나는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전에 비해 크게 바뀐 건 없네?”

“나도 아내도 인테리어에 별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온 그의 손에 여자 잠옷이 들려 있었다.

레이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지금 나더러 집 나간 아내 잠옷을 입으라는 거야?”

“와이프 옷 아니야. 손님방에 있는 옷장에 준비해둔 손님용 옷이야.”

“그렇다면 뭐.”

레이나는 옷을 받아 들었다.

“손님이 오긴 해?”

“오늘 처음 왔네.”

그 말에 레이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 오빠. 그런 유머 코드 아주 좋아. 그렇게 사는 거야.”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닌데, 웃어줘서 고마워.”

레이나는 손님방에 딸린 샤워 부스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예전에 살던 집과 구조가 똑같은데다 이 집에 온 적도 여러 번 있어서 집안 곳곳이 익숙했다.

거실로 나오자 샴페인과 치즈가 준비되어 있었다.

“와우. 오빠가 나를 위해 술상을 봐놓았다니.”

“첫 손님이니까.”

레이나는 또 웃었고 이번에는 강도 따라 웃었다.

그녀의 시선은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자신의 광고판으로 향했다. 그녀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빠. 영화 기생충 봤어?”

“응. 극장은 아니고 TV로.”

“거기 이런 대사가 나오지. 이거 뭔가 되게 상징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광고판을 가리키며 대사를 읊었다.

“정말 그렇지 않아? 오빠의 신혼집을 내가 24시간 엿보고 있는 셈이잖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아무래도 우린 운명이야. 우리 셋 다.”

강은 ‘셋’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샴페인을 따랐다.

기포가 터지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샴페인이 크리스탈 잔에 담겼고, 둘은 건배하고 술을 마셨다.

레이나는 집에 초대받지 않았다면 물어보지 않았을 질문을 꺼냈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강은 잔을 든 채로 중얼거렸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레이나는 이번에도 명쾌하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할 셈이야. 오빠의 곁에 있을 거야. 이혼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계속.”

“영원한 사랑 같은 거냐?”

“천만에. 내 감정이 다할 때까지.”

“감정이 식으면 가버리겠다?”

“감정이 식기 전에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결혼을 한다면 감정이 식더라도 떠나지 않겠다는 거야?”

“그게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 아닐까? 주변을 보면 감정이 식더라도 같이 살 만하다 싶은 사람하고 결혼하는 사람이 결혼생활을 오래하더라고.”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네.”

“하지만 오빠랑은 감정이 식지 않을 것 같기도 해. 지금 이 상황에서도 오빠가 좋은 걸 보면.”

“막상 나를 갖게 되면 김 빠지지 않을까?”

“오빠는? 진수진을 갖게 되니 김이 빠졌어?”

“아내 얘기는 그만하자. 여기서 하긴 불편해.”

“이 시간에 여기서 나랑 같이 있는 건 안 불편하고?”

“그다지. 왜냐면 우린 별일 없을 테니까.”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샴페인을 다 마신 레이나가 피곤하다며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지자 강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진담 반 장난 반으로 그냥 여기서 잠만 자겠다는 레이나와 손님방에서 자라는 강의 실랑이가 잠시 이어지다가 결국 강이 그녀를 번쩍 들어 손님방으로 데려갔다.

“네가 아까 물어봤지?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결심했어?”

“응. 마지막으로 노력해보려고. 이 결혼 잘해보려고.”

“진짜 기분 이상하네. 오빠 품에서 이딴 얘기를 들으니.”

“미안해.”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못 하겠고, 슬프다. 그런데 서운하진 않아.”

서운한 이유를 그가 물어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서운하지 않은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력해보겠다고? 이 결혼을 잘해보려고? 아니. 이미 글렀어. 그러려면 나를 이 집에 들여놓지 말아야지.

그러니 나는 걱정하지 않을 거야. 이 결혼 잘될 리가 없을 테니.

강이 침대에 내려놓기 전에, 레이나는 강의 가슴에 도장 찍듯 입을 맞췄다.

.

.

.

드라이어 소리에 눈을 떴다. 레이나는 옆자리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 밤새 꼭 안고 잤던 기억은 꿈이었구나.

강은 출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그녀는 상상에 빠졌다.

만약 지금 우리가 진짜 부부라면, 이 방이 부부 침실이라면 나는 행복할까?

비록 꿈이었지만 폭신하게 안겨 있었던 강의 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행복할 것 같아.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거실로 나갔다.

“일어났어?”

강은 이미 셔츠를 입고 슈트 재킷까지 챙겨 들고 있었다.

“우리 오빠는 역시 슈트 발이 좋아. 제일 섹시해.”

“뭐야. 출근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이라니.”

“막 덮치고 싶다는 말을 아주 순화해서 한 건데?”

“안 돼. 어제 말했지. 마지막으로 노력해보겠다고.”

레이나도 더 이상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일찍 출근하네? 원래 이 시간에?”

“응. 매일 아침에 임원 회의가 있어서.”

그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집을 나갔다.

남의 신혼집에 혼자 오래 있을 필요는 없었다. 레이나도 오후에 강의 녹화할 일이 있어서 준비가 필요했다.

샤워를 하고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입고 막 나가려는데, 손잡이도 돌리지 않은 현관문이 열렸다.

이 집의 안주인, 진수진과 딱 마주쳤다.

오 마이 갓. 웬만한 스릴에는 놀라지 않는 레이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더 놀란 쪽은 수진. 그녀는 문을 열지도 닫지도 못하고 멈춰 있었다.

“저기, 수진 씨. 오해할 것 같은데 제가 이 상황을 좀 설명할게요.”

수진은 반응이 없었다.

“우리 여기 서 있지 말고 거실에서 얘기해요.”

레이나가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휙 뿌리치고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일단 저와 강이 오빠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레이나의 설명을 듣는 대신 수진은 고양이처럼 사뿐히 침실로 들어갔다.

“어제 두 분이 크게 다퉜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래서 오빠 위로해준다고 술을 마시다가 얘기가 길어졌어요.”

그녀는 침실 쪽으로 외치듯 변명했다.

“집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좀 더 하다가 말 그대로 잠만 잤어요! 정말이에요! 심지어 저는 다른 침실에서......”

수진이 메인 침실에서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레이나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들려 있었다.

“남의 침대에 이런 거 흘렸으면 갖고 가야죠.”

그녀는 레이나에게 머리카락을 쥐여주었다.

어…… 레이나는 거기서 안 잤다고, 장난치듯 실랑이를 벌이다가 머리카락이 떨어진 거라고 변명하려다가 그것조차 몹시 부적절함을 깨닫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 봐요.”

수진은 놀랍도록 침착했다. 오히려 레이나가 안달 났다.

“수진 씨. 정말이에요.”

“상관없어요.”

“수진 씨…… 강이 오빠는 아직 수진 씨 사랑…….”

“사랑!”

수진의 날 선 목소리가 레이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레이나 선생님. 웃기지 않나요? 이 모든 것이?”

그녀는 거실에서 보이는 레이나의 일타강사 광고판을 가리켰다.

“당신이 지켜보는 이 집에서 나와 그 사람이 신혼부부로 살고 있고, 내 남편 곁을 얼쩡거리던 당신이 이렇게 떡하니 자기 집인 양 자고 다니는 현실이?”

“수진 씨는 강이 오빠하고 잘해볼 생각이 없군요?”

“레이나 선생님은 우리가 이혼하기를 바라는군요?”

레이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수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잘해줘요?”

“네?”

“우리 남편이 레이나 씨한테 잘해주냐고.”

“안 믿어지겠지만 강이 오빠가 저한테 하는 이야기의 절반이 수진 씨 이야기예요.”

“믿어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오빠는 마지막으로 수진 씨하고 잘해보겠다고…….”

“그런 사람이?”

수진은 레이나가 들고 있는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가요. 머리카락 떨어질라.”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시간이었다. 고작해야 10분도 안 되는 만남.

그러나 오직 둘만 마주한 극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리버 오빠가 왜 이 여자를 못 끊는지 알겠어. 매력 있네.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고 했잖아? 남의 집에 얹혀살았다면서?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 도도하고 고상한 분위기는 뭐지?

다른 여자 같았으면 쌍욕을 하고, 소리 지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

그런데 이 여자는 황당하게도 자기 침대에 떨어져 있는 내 머리카락을 주울 뿐.

레이나는 손에 들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보며 시인했다. 완전히 압도되었음을.

졌다. 가자.

“미안해요, 수진 씨.”

수진은 소파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눈도 안 마주쳐주는 것으로 자기 침대에 머리카락을 흘린 내연녀에 대한 경멸을 보여주었다.

쿵- 공허하게 울리는 현관문 소리가 들린 뒤에야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아아, 아픈 숨소리를 내뱉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강. 결국 이거였어?

그는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는? 나 역시 그랬잖아. 나도 어제 한해 오빠 집에서 잤잖아. 그래도 우린 딴 방에서 잤다고? 한 침대에서 잔 레이나와 다르다고?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다. 신혼집에서 다른 여자가 튀어나왔는데, 혼란스럽기는커녕 모든 게 선명해지는 느낌.

똑바로 보자. 남도, 내 자신도.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담담하게 옷을 챙겼다. 일단은 며칠 정도 버틸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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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평소보다 늦게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수진은 몇 안 되는 사무실 식구들에게 커피를 돌렸다.

“이야, 이거 맛있다. 이런 고급진 커피 사 올 거라면 매일 늦게 나와.”

핀잔주는 것 같지만 늘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는 팀장의 호들갑을 보면서 수진은 미소가 지어졌다.

봐봐.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아. 감사한 인생이지.

노트북을 켜고 업무를 시작했다. 야화 작가의 이메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송 시간을 보니 어젯밤 늦은 시간이었다.

-일이 예정보다 일찍 끝나는 바람에 일찍 귀국했어요. 조금 더 작업한 내용 보내드릴게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며칠 더 있다가 올 줄 알았는데. 뭐 일찍 와서 나쁠 건 없지.

그녀는 야화 작가가 첨부한 원고를 읽고, 감탄하고, 고민하고, 정성스럽게 모니터를 작성하고, 답 메일을 썼다.

-이른 귀국 축하드립니다! 원고는 잘 봤고요. 연재소설 읽는 기분이 나서 두근두근하네요. 아직은 유일한 독자로서, 모니터 보내드립니다.

야화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고, 종편 채널 드라마 부분 팀장과 점심 겸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회의를 하고…….

내내 신경 쓰였다. 남편에게 연락이 오려나?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나? 지금쯤 레이나가 집에서 날 마주쳤다고 얘길 했겠지? 그런데 왜 연락이 없지?

강의 연락이 온 건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레이나한테 들었어. 짧은 메시지를 들여다보던 수진 역시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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