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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201화 (201/212)

# 201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201화

에드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미노스의 설명은 언뜻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문제없이 태어났지 않은가.”

미노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방대한 이야기라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차근차근 설명해도 되네.”

“그러고 싶긴 합니다만 이오스 님이 언제 오실지…….”

주방에서 가브리엘을 만난 이오스가 놀라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노스는 걱정이 많았다. 처음부터 하나씩 설명하자니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간략하게 중요한 정보만 전달하기로 했다.

“각하의 어머니이신 님프는 마법의 힘을 이용해 인간으로 변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떤 마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오스 님이나 제가 쓰는 어설픈 변신 마법이 아니라 영혼까지 인간으로 탈바꿈시켜 주는 마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별문제 없이 각하를 낳고 키울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럼, 내 아버지가 배신한 날 어머니의 마법이 깨진 걸까?”

“아마도, 네.”

에드가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여태까지 어머니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미노스가 영혼까지 인간으로 변한 상태라고 말한 걸 보아 그게 자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럼 그 직후 물거품이 된 건 님프의 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인 건가? 이오스가 땅을 통해 이동하는 것처럼.”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노스가 말을 아꼈다. 어쩌면 에드가의 어머니는 물거품이 되어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에드가를 슬프게 했다.

“어쨌든 마법이 깨져 그녀는 다시 님프가 되었고, 원래대로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단 소리지?”

“네, 하지만 각하의 어머니께서 저주를 거셨죠. 그 저주 덕에 님프의 힘이 각성하지 않아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유모가 그에게 저주와 축복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왜 그녀는 그 사실을 그에게 바로 이야기해 주지 않은 걸까?

어머니의 저주 덕에 그가 살 수 있는 거라는 힌트만 줬다면 그동안 무거운 돌을 가슴에 올린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도 완벽히 다 아는 건 아닙니다. 님프란 존재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많지 않고, 거기에 님프와 인간의 혼혈은 사실상 각하가 처음이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제 좁은 식견으로 추측하기에 님프의 힘과 햇살 사이에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루비카,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문제없이 걸었다고 그랬었지?”

“응.”

에드가의 질문에 루비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그는 책상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건 내 두 눈에 햇살이 어렸을 때인가 보군.”

“네, 어둠 속에서는 님프의 힘이 작용하지 않아 각하도 평범한 인간으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 살려면 장님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말하고 나서도 어이가 없어서 그가 피식 웃었다. 그가 해야 할 일에 두 눈은 필수 불가결의 요소였다.

보지 않고 어찌 정확히 설계도를 그리고 실험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오랜 기간 연구하고 숙련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깊은 생각에 빠졌던 에드가가 고개를 들어 루비카를 바라봤다.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맑은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분명 미래의 그는 그녀가 보고 싶어서 사무쳤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이오스 님의 영향 때문에 장님이 된다고 해서 괜찮아질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 도마뱀, 정말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군.”

에드가가 거칠게 앞머리를 쓸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오스를 만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노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눈치를 본 다음 운을 뗐다.

“이베르의 권속이 저주를 풀고 각하께서 안전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합니다.”

잠시 서재에 침묵이 흘렀다. 에드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루비카는 순간 벌써 저주가 풀린 줄 알고 놀랐다.

하지만 창문 너머 하늘이 벌써 어둑해진 걸 뒤늦게 발견하고 그저 시간이 지나 그리된 것임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그걸 제일 먼저 말해야지! 이렇게 뜸을 들여?”

“가, 각하!”

소파에 앉은 미노스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에드가가 따지며 다가오는 데 공포를 느꼈다. 블랑코에게 패대기쳐진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나마 클레이모어 공작가로 와 제대로 대접받고 쉴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했건만 역시 분노 앞에서는 한낱 인간도 권속과 똑같은 것인가.

에드가가 그의 겨드랑이를 잡았을 때 미노스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가련히도 운명에 순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에드가가 있는 힘껏 그를 천장으로 던졌을 때 가차 없이 땅으로 떨어지는 걸 각오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미노스를 에드가는 안정적으로 잡더니 다시 천장을 향해 던져 올렸다.

“하하하하!”

게다가 공작은 이가 다 보이도록 활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미노스는 뒤늦게 에드가가 자신에게 하고 있는 행위가 ‘헹가래’임을 깨달았다.

그는 미노스가 어지러움에 구토 증상이 있다고 호소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미노스, 고마워.”

어지러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의자를 잡고 있는 미노스에게 루비카가 감사를 표했다. 미노스는 벌써 자신이 공작 부부의 은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 기분을 한껏 누리고 싶었지만 미노스는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움직였다.

“아직 속단할 때가 아닙니다. 권속들이 각하께서 저주를 풀고 싶으면 이베르의 권역에 직접 오라고 했습니다.”

“…… 푸는 방법을 바로 알려 줄 수는 없고?”

“그게 저주에 걸린 당사자가 저주를 푸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지 않고 누가 말해 줘서 알게 되면 그 저주는 영원히 풀 수 없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그저 저주를 풀게끔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에드가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한순간에 서재가 이베르의 권역처럼 추워졌다.

“함정일 수도 있겠군.”

“네.”

클레이모어 공작가에 대한 이베르의 권속이 가진 분노는 쉬이 풀릴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미노스는 스노우가 ‘저주를 풀게 도와줄 테니 클레이모어 공작이란 자식을 여기로 데리고 와.’라고 말할 때 블랑코의 표정에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는 걸 놓치지 않았다.

저주의 당사자가 아닌 자가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면 안 된다는 말 자체가 거짓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좋은 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에드가에게 자신이 듣고 추측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솔직히 에드가의 뛰어난 두뇌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유모가 정확히 말하지 않고 축복 같은 소리로 에둘렀던 건가?’

하지만 에드가는 전혀 다른 추측을 하고 있었다. 이베르의 권속들이 한 말이 맞는다면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고 수수께끼 같은 말만 했던 유모의 행동이 모두 설명된다. 물론 함정일 가능성이 없진 않았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했다.

“당장 갈 준비를 해야겠군.”

에드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이베르의 권역까지 가는 데 이오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지하를 통해 이동하는 경험은 끔찍했지만 이오스의 이동 속도는 마석마차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오스의 능력을 생각하면 이베르의 권역에 함께 가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칼, 이오스는 아직 오지 않았나?”

“네.”

하지만 한참 전에 땅콩을 가지러 간다고 나선 이오스가 소식이 없다.

“다 깐 걸 마다하더니 아주 땅콩을 심고 있나…….”

에드가는 루비카와 함께 직접 주방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오스는 터럭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작 님을 찾으세요? 글쎄, 접시에 땅콩을 다 쏟더니 줍지도 않고 그냥 가시지 뭐예요.”

이오스가 루비카를 사촌 누나라고 부르고 다닌 턱에 수도 저택 하녀들는 그가 아이작 베르너인 줄 알았다. 진짜 아이작 베르너는 에드가의 명령으로 도박중독 전문 병원에 입원 중이었으나 이오스의 정체를 아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오해를 방치했다.

“갔다고? 말도 없이?”

“네.”

필요 없을 때는 잘도 붙어 있더니 정작 필요할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게 이오스답다고 해야 하나.

한숨을 푹 쉬는 에드가의 눈에 주방에 접시를 들고 온 가브리엘이 보였다. 벌써 두 번째 디저트 접시와 아이스크림을 해치운 그녀는 세 번째 접시는 초콜릿으로 가득가득 채울 속셈이었다.

“그 남자 이름이 아이작이에요?”

가브리엘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에 루비카는 이오스가 왜 도망쳤는지 깨달았다.

‘야단났네.’

가브리엘이 관심을 가지면 진짜 아이작 베르너가 어디 있는지, 이오스의 진짜 정체가 뭔지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어떻게 관심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스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브리엘, 네가 그런 걸 궁금해할 때가 아닐 텐데?”

“헉!”

가브리엘은 뒤늦게 자신이 드래곤에게 제 발로 걸어왔음을 깨달았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에드가의 눈빛에 그녀는 초콜릿을 공략하려던 마음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큰 카스테라를 입 안에 밀어넣고 오물거렸다. 물론 그 모습은 에드가의 화를 돋우고도 남았다.

“가브리엘!”

원래 에드가는 가브리엘에게 궁정에 그런 식으로 잠입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따끔히 설교하고 그래도 위험한 순간에 도망치지 않고 루비카를 도와 크리스토퍼를 해치운 일에 대해서는 칭찬을 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때에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 이오스에 대한 분노까지 가브리엘에게 쏟아붓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각하. 위험한 짓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할게요.”

“두 번 다시 안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위험한 짓을 아예 안 하고 살 수 있어요.”

“가브리엘!”

놀라운 것은 저택을 다 얼릴 정도로 서슬 퍼런 에드가의 공격에도 가브리엘이 기죽은 표정으로 훌쩍거릴진대 꼬박꼬박 할 말은 다 한다는 점이었다.

많은 형제들에게 둘러싸여 제 몫을 쟁취하기 위해 붙은 습관임을 모르는 에드가는 분노에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차마 국왕 전하에게 알리겠다는 협박까진 할 수 없었다.

“루비카, 카나 의상실에 연락해. 이번 사교계 시즌 동안 가브리엘의 옷을 주문받지 말라고.”

“네에?”

대신 이 아가씨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할 만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역시 예상대로 가브리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안 돼. 절대 안돼요. 부인, 각하께 말씀해 주세요. 이건 지나친 처사에요. 마담 카나는 자신이 받고 싶은 고객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가브리엘은 에드가가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가 지나치게 똑똑해 관심 없는 사람의 습관이나 취미, 관심사도 모두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자신의 실수였다. 이건 디저트를 일 년간 금지당하는 것보다 더한 벌이다.

“가브리엘, 클레이모어는 카나 의상실의 후원자야. 물론 마담에게는 받고 싶은 고객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마음이 내킨다면 후원자의 청을 들어줄 권리도 있어.”

하지만 이번만큼은 루비카도 단호했다. 마담 카나가 누구보다 루비카의 부탁을 우선시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결국 가브리엘은 항복 선언을 했다.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일은 꾸미지 않을게요.”

하지만 에드가는 바로 카나 의상실을 이용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가브리엘의 행동으로 곤경에 빠진 것은 그녀 자신만이 아니었다. 곧바로 용서한다면 자신의 행동으로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알지 못할 수 있다.

대신 의상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기간을 사교계 전 시즌이 아닌 한 달로 줄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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